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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7화

”강책, 아까 할아버지 모습 봤어? 달아오른 주전자 마냥 목덜미까지 빨개지더라.”

“너도 언제부터 이렇게 나빠진 거야? 예전에는 할아버지한테 예의를 좀 차리라고 하지 않았어?”

강책이 웃으며 말하자, 정몽연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랬지, 어찌 됐든 내 친 할아버지니까. 그런데 오늘 이 일은 정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어. 만약에 세대주 30명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 일을 해냈을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이 말을 내뱉자, 정몽연은 더욱 궁금해졌다.

“그런데 사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강책, 왜 다른 사람이 유세하러 가면 다 쫓겨나고 내가 가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 서명을 해주는 거지?”

강책은 눈동자를 굴렸다.

“왜냐하면……넌 미모가 타고났으니까. 등장하자마자 화사하게 빛나는 네 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이 다 겁에 질린 게 아닐까? 선녀가 등장했으니 당연히 굴복당하지.”

정몽연은 집게손가락을 내밀어 강책의 머리를 쿡쿡 찔렀다.

“너는 왜 이렇게 하루 종일 헛소리만 하는 거야.”

그녀는 강책을 쳐다보았고,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

“뭐가 웃긴 거야?”

강책이 물었다.

“네가.”

“내가?”

“응.”

정몽연은 뒷짐을 지고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서경에서 막 돌아왔을 때, 과묵하고 웃음기 없었던 거 기억나? 그때 사실 난 너를 대하기가 무서웠어.”

“그런데 이제는……”

“책아, 넌 점점 더 말이 많아지고, 웃음도 많아지고, 심지어는 방금처럼 말도 안 되는 농담까지 하잖아. 몇 개월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네 모습을 지금 보고 있어.”

그렇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수라군신에게 이렇게 따뜻한 면모가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실 강책의 이런 변화는 모두 정몽연 때문이었다.

아내가 있으면, 남자는 매일 꿀이 가득 찬 항아리에 담겨 있는 것처럼 달콤해진다.

강책 본인도 자신의 변화를 깨닫지 못할 때가 더 많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부드러운 면모는 정몽연 앞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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