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리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사탕 하나를 집어 들고 다시 보건실로 향했다.보건실 안에서 서보겸을 밀친 아이는 여전히 눈물을 쏟고 있었다.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장하리는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먼저 나가서 기다리렴. 선생님이 보겸이랑 잠깐 이야기 좀 할게.”남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느끼며 나갔다.장하리는 침대에 앉아 전보다 더 불안해 보이는 서보겸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보겸아, 아직도 아파? 사탕 먹을래?”장하리는 서보겸의 손을 잡아 그 위에 작은 사탕 하나를 올려놓았다.서보겸은 고개를 숙이고 분홍색 사탕을 바라보더니 그 긴 속눈썹이 내려앉자마자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장하리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당황하며 서둘러 휴지를 뽑아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미안해. 아까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말 한 게 아니야. 그저 네 아빠의 처리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야. 너랑은 상관없어. 선생님을 용서해 줄 수 있겠니?”서보겸은 맑은 눈으로 장하리를 올려다보며 길게 자란 속눈썹 사이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장하리는 마치 심장이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는 그의 볼을 부드럽게 닦으며 말했다.“선생님도 사람이라 실수할 때가 있어.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정말 미안해. 어떻게 해야 보겸이가 선생님을 용서해 줄래?”서보겸은 입술을 살짝 떨며 말했다.“아리... 아리를 주세요.”아리? 그건 서보겸이 기르는 강아지 이름 아닌가?“너 또 다른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거야? 선생님이 오늘 오후에 강아지 사줄까?”“아니요... 선생님이 접어준 아리요.”장하리는 그제야 기억이 났다. 아까 그가 장난감 종이 고양이를 원하다가 밀쳐졌던 거였다.그녀는 속이 아려왔다.“그래. 선생님을 용서해 준다면 아리 세 마리 접어줄게.”서보겸은 마음이 아려왔지만 결국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장하리는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달랬지만 서주혁 쪽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보겸에게
서보겸의 눈빛은 잠시 빛나더니 장하리의 말을 듣고 다시 어두워졌다.장하리는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바로 작은 교실로 향했다.교장실에서는 서주혁이 서보겸을 꽉 안고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많이 아팠어?”“아니요. 아빠... 안 아파요.”“바보야, 그 애가 일부러 널 밀친 거잖아.”그건 질문이 아닌 단정이었다.서보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천천히 떨궜다.서주혁은 감시 카메라를 통해 그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그 아이가 서보겸의 귀에 대고 했던 말을 알아차렸다.“못생긴 괴물.”명백히 고의로 밀친 것이었다.서보겸은 첫날부터 반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았다.서주혁은 입술의 움직임만 봐도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아이들 사이의 호감은 순수하지만 질투 또한 순수했다. 그 아이는 서보겸이 피를 흘리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서보겸은 장하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억울함을 꾹 삼킨 것이다.하지만 서주혁은 자신의 아들이 억울함을 참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서보겸을 네 살부터 키우면서 한 번도 이런 억울함을 겪게 한 적이 없었다.하물며 그 억울함이 장하리와 관련된 일이라니 더 말이 안 됐다.서주혁은 교장을 쳐다보았다. 교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만약 그 아이가 일부러 밀친 거라면 사안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서 대표님, 저희가 확실히 책임을 지고 이 일을 처리하겠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서보겸이 서주혁의 손목을 붙잡았다.“아빠... 그냥 놔두세요.”보겸은 엄마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엄마와 약속했으니까, 친구들과 잘 지내기로 말이다.서주혁은 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장하리 선생님과 약속한 거야?”서보겸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주혁은 마음이 쓰라렸다.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장하리를 데려와 보겸과 잘 지내게 하고 싶었다. 보겸에게서 결핍된 어머니의 사랑을 채워주길 바랐다.그러나 이 모든 게 누구의 탓이겠는가. 그의 잘못이었다.그는 그때 자신이 장하리를 사랑
“하리야, 이건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회야. 놓치고 싶지 않아.”이 말을 듣고 장하리는 모든 상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소준호는 이미 결정을 내렸고 그저 그녀에게 통보하는 것에 불과했다.둘 다 어른이었다. 서로가 각자의 일과 커리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감정은 아직 깊지 않았다.소준호가 이 기회를 그녀 때문에 포기할 리가 없었다.장하리는 조금 씁쓸해졌고 그의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너 나랑 같이 해외로 나갈래?”“미안해요. 나는 부모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준호 씨, 솔직히 말해주세요. 우리 헤어지자는 뜻인가요?”소준호는 잠시 침묵하더니 쓴웃음을 지었다.“하리야, 난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네가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 정말로 널 좋아해. 하지만 내가 너 때문에 이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그게 우리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거야. 우리는 서로의 연인이 되기 전에 먼저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장하리의 손을 잡았다.“아카데미에서 내일모레까지 대답을 달라고 해. 네가 같이 가기 싫다면 우리 먼저 약혼이라도 하자.”그는 관계를 확실히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야 서로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장하리는 잠시 망설이며 소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부정할 수 없었다. 소준호 같은 사람은 분명 훌륭한 배우자가 될 수 있었다. 따뜻하면서도 결단력이 있는 사람.하지만 이렇게 빨리 결혼을 확정 짓는 건 그녀에게 아직 이른 결정처럼 느껴졌다.부모님이 떠오르자 마음속의 불안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준호 씨, 오늘 밤에 한 번 더 생각해 볼게요. 내일 대답해 줄게요.”소준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그래. 내일 답해줘. 하리야, 기다릴게.”장하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도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장민철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우리 딸 무슨 일이야? 감정 문제야, 아니면 학교에
장하리는 쉬고 싶었지만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어보니 맞은편의 집에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한밤중에 이사를 하는 것 같았다.장하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맞은편 집이 이사를 가는 건가? 하지만 그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그러다 갑자기 몇몇 인부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 소독을 하고 고급 가구들을 들여놓는 모습을 보았다.장하리는 베란다에 서서 한참을 지켜봤지만 누가 이사를 오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그녀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그대로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1층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추미현이 말했다.“맞은편에 새 입주자가 왔더라. 내가 알아보니까, 그 집은 매물로 나와 있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돈이 그렇게 많았는지, 8억 원이나 주고 샀대. 원래 가격의 네 배나 더 주고 산 거야. 그 집 사람들 완전 기뻐서 밤새 이사 나갔어. 그런데 누가 들어오는지는 모르겠어.”사천만 원?누가 그렇게 큰돈을 주고 그 집을 산 거지?밤을 새워서 이사할 만하네,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졌구나.추미현은 부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그 집이 우리 집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어휴, 우린 그런 행운이 없나 봐.”장하리는 엄마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엄마, 반찬 드세요.”추미현은 그제야 마음이 누그러지며 말했다.“하리야, 아버지랑 어머니는 이제 준비가 다 됐어. 은행에서 오늘 밤에 출발해야 한다고 하더라고.”“그렇게 빨리요?”“응. 호텔 예약 정보 확인을 미리 해야 한다나 봐. 하루만 늦어져도 십만 원 손해래.”장하리는 더 마음이 허전해졌다.“그래요. 그럼 이따가 짐 싸는 거 도와드릴게요.”“괜찮아. 넌 출근해야지. 늦으면 안 돼.”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대문 앞에 서 있는 소준호를 발견했다.소준호는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장하리는 바로 차를 세웠다.“준호 씨?”“하리야.”소준호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경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