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지는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라서인지 신예준의 보복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차 안에 앉아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신예준은 그녀의 차창 앞에 다다르더니 문을 확 열어젖혔다.강민지는 울었던 것처럼 붉게 충혈된 신예준의 눈동자를 보고 잠시 의아해졌다.하지만 곧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예준 같은 교활한 인간이 눈물을 흘릴 리 없었다.신예준은 강민지를 힘껏 끌어내렸다. 그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가슴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는 결국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채 멀리 있는 차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이때 서민규가 차에서 내려 막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신예준은 재빠르게 발차기 한 방으로 서민규를 바닥에 쓰러뜨렸다.서민규는 바닥에 나뒹굴며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강민지는 손목이 아파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놓으라고! 나 너랑 결혼 안 해!”“그럼 합의서도 필요 없다는 거지?”“신예준, 네가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을 리가 없어. 넌 그냥 비열한 악마야. 심지어 아이까지도 네 계획에 넣어두고 있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믿어?”그는 결코 합의서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려는 생각뿐이었다.신예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순간적으로 약하게 풀었다. 마치 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그는 웃으려고 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힘이 빠졌다.“네 말이 맞아. 난 비열한 인간이야. 너도 네가 임신한 걸 알고 있었구나.”강민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신예준은 한 걸음 다가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그만해. 돌아가서 결혼식 잘 치르자. 아이에게까지 충격 주지 말고.”그의 목소리는 차분해졌다. 옆에 쓰러져 있는 서민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강민지는 그대로 손바닥을 올려 그의 뺨을 때렸다. 그의 얼굴엔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신예준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그
강제로 헬리콥터에 들어간 순간, 강민지는 손을 들어 올려 신예준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볼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신예준이 손을 뻗었다.강민지는 신예준이 자신을 때리려는 줄 알고 얼른 눈을 감았다.그러나 예상했던 통증이 아닌 그녀의 안전벨트가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채워졌다.‘이 사람... 정말 미쳐버린 건가? 뺨을 때려도 화를 내지 않는다니 대체 무슨 꿍꿍인 거지?’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신예준에 강민지는 오히려 더 어리둥절해졌다.지난번에는 강씨 가문을 아예 산산조각내버리더니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꾸미려고...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민지는 갑자기 엄청난 절망감이 느껴졌다.“신예준 씨, 이제 솔직하게 털어놓지? 대체 뭘 원하는 거야?”안전벨트를 매어주기 위해 고개를 숙였던 신예준이 그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사냥감을 노리는듯한 신예준의 눈빛에 강민지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정말 듣고 싶어?”“그래. 그냥 통쾌하게 다 털어놓지? 난 당신과 알게 된 후 단 한 번도 당신에게 미안할 짓을 한 적이 없을 텐데. 설령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해도 이제 충분하지 않나? 내 뱃속의 이 아이를 봐서라도 말이야.”“그건 나도 알아...”말을 마친 후 그는 또 옆에 있는 담요를 가지고 와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강민지야말로 이 세상에서 그에게 가장 잘해주었던 사람이라는 건 신예준도 잘 알고 있다.“민지야, 네가 영원히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신예준은 긴장한 마음에 속눈썹마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강민지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아직도 복수가 끝나지 않은 거야? 신예준, 역겨운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이것 봐. 아직 사랑 고백은 하지도 않았는데 강민지는 벌써 신예준을 역겨워하고 있다.신예준 역시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굳이 모든 일을 강민지더러 이해해달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신예준도 함께 헬리콥터에 올라타는 것을 보니 그녀를 데리고 함께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여기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강민지는 온몸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바닥에 닿는 것조차 두려워진 강민지는 온몸을 웅크린 채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아직도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빨리 깨어나자. 빨리 깨어나라고.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조종사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돌리며 조금 전의 상황을 알리고 대표님을 찾으라며 지시를 내렸다.“아가씨, 어떡하실래요? 저와 같이 가실래요? 아가씨께서 움직이지 않으시면 저도 여기에서 아가씨를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나 강민지는 헬리콥터에서 내릴 힘조차 없었다.신예준이 뛰어내리는 순간, 강민지의 영혼도 함께 산산조각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지금 살아 움직이는 것은 그녀의 육체일 뿐이다.머릿속이 찌릿해지며 강민지는 자신을 꼭 껴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아프다. 심장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정말 죽었어?강민지의 그 말 하나 때문에 신예준이 죽었다고?실없는 희망은 그저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고 강민지는 더 깊이 사고할 용기조차 없었다.신이시여, 어서 시간을 돌려주세요.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절대 그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신예준이 아무리 악랄한 개자식이고, 악마이고, 소인배여도 그녀는 그가 살아있기를 바랬다.강민지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신예준이 죽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그 말은 단지 욱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언제부터 그렇게 말을 잘 들었다고? 신예준은 미친 것이 분명하다. 죽으라는 말에 정말 뛰어내리다니.예전에는 그렇게 사랑을 애원해도 말 한번 안 들었으면서 죽으라는 한마디는 왜 그렇게 잘 듣는 거지?입술을 짓이기며 애써 현실을 부정했지만 눈가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후드득 흘러내렸고 강민지는 심지어 눈앞의 세상을 똑바로 정시할 수조차 없었다. 뿌옇게 희미해진 세상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신예준과 만나지 않는 건데.그를 사랑하지 않는 건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