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지는 마치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추측이 있었지만 그 추측이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그렇게 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결국 피로를 못 이겨 잠들고 말았다.다음 날 아침, 신예준은 결혼식 준비로 다시 바빠졌다. 원래 오늘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강민지가 가고 싶어 하지 않자 그는 억지로 데리고 가지 않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떠났다.어제부터 오늘까지 신예준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다정했다. 강민지는 그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신예준은 결혼식이 열릴 호텔에 도착했고 현장은 이미 거의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사회자도 현장에 있었고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신예준은 꼼꼼하게 모든 사항을 확인한 후 문제가 없음을 확신하고 서민규에게 전화를 걸었다.서민규는 호텔에 도착해 화려하게 꾸며진 결혼식장을 보며 속에서 질투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강민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민지가 자신을 그저 장난삼아 대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신예준은 과연 강민지에게 어울리는 사람일까?아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강민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진 결혼식장을 강민지는 절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신예준은 서민규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오랜 친구였고 신예준은 서민규가 언젠가 여자 문제로 큰일을 칠 것이라고 예상해 왔지만 그 대상이 강민지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민규야, 사회자랑 맞춰봐. 내일 들러리 동선까지 다 짰으니까.”서민규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표정 관리에 신경 썼다. 신예준 앞에서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렀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쩐 일인지 이상하게 잘 해내고 있었다.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서민규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반드시 강민지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리라.모든 확인을 마쳤을 때는 이미 오후가 되었다. 서민규가 물었다.“술이나 한잔할래?”기분이 좋은
“예준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너도 희서가 얼마나 슬프게 우는지 들었잖아. 너 예전에는 절대 희서를 울게 하지 않았잖아. 그때 넌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희서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라면 뭐든 했잖아. 회서를 좋아한다고 평생 책임지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네 행동은... 솔직히 말해서 쓰레기랑 다를 바가 뭐야?”신예준은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민규야, 넌 내가 희서한테 잘해줬다고 생각해?”“당연하지. 넌 희서한테 정말 뭐 하나 부족함 없이 해줬잖아. 그래서 난 너희가 정말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어.”“희서가 원하는 게 뭐든지 어떻게든 손에 넣었어. 비싸든 내가 보기에 별로 가치가 없든 상관없었지. 그냥 내가 희서한테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우리 집안이 희서한테 빚진 게 많았으니까. 사실 희서의 요구는 가끔 무리한 것들이 많았어. 학교 다닐 때도 명품을 좋아했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주고 장학금도 항상 먼저 희서한테 줬어. 희서한테 잘해주는 건 나한테 당연한 일이었고 나도 진심으로 희서를 보호하고 싶었어.”신예준은 술 한 모금을 마시고 손에 쥔 잔을 천천히 돌렸다.“희서가 병에 걸린 뒤로 의료비를 대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고 심지어 사채까지 손을 댔어. 만약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내가 더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하셨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는데, 도대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해?”“그러니까, 넌 희서랑 결혼해야 하는 거잖아. 너희는 어릴 때부터 함께했고 서로 사랑했잖아. 희서는 널 그토록 사랑하는데, 네가 내일 정말 결혼하면 희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내 계획대로라면 맞아, 나는 희서랑 결혼해야 해.”“그럼 왜...”서민규가 더 물어보려 했을 때 신예준이 말을 끊었다.“내가 왜 강민지와 결혼하냐고?”이건 업계에서도 모두가 궁금해하는 일이었다. 신예준이 협력사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듣는 질문이었다. 강민지를 도대체 어떻게 할 계획이냐는 질문이 항상 뒤를 따랐다.모두
신예준이 집에 돌아왔을 때 저택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강민지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코트를 한쪽 소파에 놓으며 도우미에게 물었다.“저녁은 먹었나요?”“아가씨께서 입맛이 없다고 하셨어요.”신예준의 시선이 강민지에게 향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걸 알면서도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가슴이 조금 아려왔지만 그는 감정을 억누르고 그녀 옆에 앉았다.“왜 저녁을 안 먹었어?”“혜인이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게 있어.”신예준은 옆에 있던 비서에게 눈짓을 보냈다. 비서는 곧 그녀의 휴대폰을 가져왔다.강민지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서민규에게서 온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짧은 음성 파일이었다.강민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를 낮추고 이어폰을 귀에 대었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신예준의 목소리에는 강한 집착과 미움이 담겨 있었다.“내가 강민지와 결혼하는 건 그저 강민지를 내 곁에 묶어두기 위해서야. 그래야 계속 괴롭힐 수 있잖아. 강민지는 나와 깨끗이 끝낼 수 없을 거야.”강민지는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며 손가락이 굳어버린 듯 타자를 하지 못했다.서민규는 그녀가 메시지를 읽은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여러 개의 메시지를 연달아 보냈다.[이건 방금 예준이가 술 마시면서 한 말이에요. 술김에 진심이 튀어나온 거죠. 민지 씨. 예준이는 정말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강민지는 서민규의 말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굳이 서민규가 말해주지 않아도 신예준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긴 강민지는 성혜인에게 전화해 도망갈 계획을 상의하려 했지만 배 속의 아이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지면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내일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평생 자신을 괴롭히고 복수만을 꿈꾸는 남자 곁에 묶여 있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밤에 또 한 번 구토하면서 아이에 대한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신예준이 그
신예준이 샤워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강민지는 이미 식사를 끝낸 상태였다.그는 다시 물었다.“웨딩드레스는 안 입어볼 거야?”“필요 없어.”강민지는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내일 이 결혼은 성사되지 않을 거라고.그녀는 더 이상 그와 할 말이 없다는 듯 일찍 침대에 누웠다. 신예준은 술에 살짝 취한 상태였지만 결혼식 준비에 필요한 마지막 세부 사항을 디자이너와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침대로 올라왔다.강민지는 얕게 숨을 고르며 자는 척했다. 그녀의 연기는 여전히 서툴렀다. 신예준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조용히 말했다.“민지야.”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옆으로 돌렸지만 신예준은 다시 그녀에게 바짝 다가왔다. 결국 강민지는 눈을 꼭 감고 계속 자는 척했다.그때 신예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민지야, 나한테 이렇게 잘해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그 말을 들은 강민지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몸을 떨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민지는 천장을 응시하며 옆에서 신예준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안도했다. 다행히 꿈을 꾸는 듯했다. 그녀는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잠들었다. 하지만 신예준이 그녀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더 들어간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 팀이 강민지의 스타일링을 위해 찾아왔다. 신예준도 턱시도를 갈아입으러 갔다. 이번 결혼식은 복잡한 의식을 생략하고 간소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는 강민지가 지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신부 측 사람들이 그녀를 호텔 외부까지 데리고 오기만 하면 신예준은 호텔 밖 레드카펫에서 기다렸다가 강민지의 손을 잡고 함께 예식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결혼식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호텔 전체를 대관하고 모든 기자의 출입도 철저히 막았다. 오직 업계 사람들만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강민지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신예준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신예준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강민지의 지인을 들
신예준의 들러리들은 그가 성공한 후 알게 된 몇몇 협력사 대표들이었다. 그의 진정한 친구는 서민규 단 한 명뿐이었다.신예준은 들러리들의 자리를 스치듯 보았으나 서민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중요한 순간에 도대체 어디 간 거야?’신예준은 서민규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신예준은 약간 기쁨이 담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신 대표님, 강민지 씨가 도망간 것 같습니다.”그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빛은 싸늘하게 변했다.“차는?”“추격 중이었지만 갑자기 도로에 트럭들이 많이 나타나 우리를 가로막았습니다. 결국 강민지 씨의 위치를 놓치고 말았습니다.”신예준은 갑자기 자신의 넥타이를 확 풀어 헤치고 옆에 세워둔 결혼식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액셀을 밟았다. 차는 순식간에 도로를 질주했다.결혼식장 밖에서 기다리던 하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 중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신예준이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운 것으로 보아 큰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할 뿐이었다.다행히 사회자가 침착하게 상황을 수습하며 하객들을 호텔 안으로 안내했다.신예준은 가속 페달을 힘껏 밟으며 옆에 있는 장치를 켜고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 속 빨간 점 하나가 도시 외곽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그는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 빨간 점의 위치를 전달했다.도로 위에 온 신경을 집중한 신예준의 눈은 핏발이 섰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맴돌았다. ‘더 빨리, 더 빨리.’하늘에는 이미 헬티콥터가 대기하고 있었다. 신예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차를 버리고 헬리콥터에 올랐다.이미 흐트러진 턱시도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헬리콥터에 올라탄 신예준은 여전히 GPS에 표시된 빨간 점을 주시하고 있었다.그가 강민지에게 선물한 팔찌에는 위치 추적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언젠가 이 장치를 사용하게 될 날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사용하
서민규는 긴장한 나머지 몇 번이나 침을 꿀꺽 삼켰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여전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뒷좌석에 앉아 있던 강민지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와. 민규 씨, 정말 용감하네요. 신예준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다시 보게 됐어요.”그 순간 강민지는 자신이 정말로 남을 이간질하는 비열한 인간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어차피 이제 곧 따라잡힐 테니 차라리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었다.결혼?자기 집안을 망가뜨린 남자와 결혼한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신예준 역시 강민지의 말을 들었고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마치 심장이 거대한 손에 꽉 잡힌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옆에 있던 사람은 결혼식장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그에게 어떻게 처리할지를 물어보려 했지만, 신예준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다.그 모습을 본 그 사람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며 침묵을 지켰다.차는 여전히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지만 이미 열댓 대의 헬리콥터가 차량을 거의 포위한 상태였다.강민지는 이제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말했다.“차를 세우세요.”서민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그들을 쫓는 헬리콥터와 차량들뿐이었다. 이대로 계속 도망가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그는 강민지의 목숨을 걸고 도박할 용기가 없었다.한편 결혼식장에서는 강상원이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와 한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다급히 차를 내온 사람의 태도에는 긴장감이 묻어났다.하객들은 저마다 속삭이며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해했다. 분명 감옥에 있어야 할 강상원이 어떻게 갑자기 이 자리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강상원은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최근 들어 그는 살이 많이 빠져 몸이 매우 쇠약해 보였다.어젯밤 신예준이 갑자기 합의서를 제출했다. 조희서의 합의서까지 함께 법원에 제출되었다.가족들이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태도를 밝혔고 게다가 당시의 보상금도 누군가가
강민지는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라서인지 신예준의 보복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차 안에 앉아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신예준은 그녀의 차창 앞에 다다르더니 문을 확 열어젖혔다.강민지는 울었던 것처럼 붉게 충혈된 신예준의 눈동자를 보고 잠시 의아해졌다.하지만 곧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예준 같은 교활한 인간이 눈물을 흘릴 리 없었다.신예준은 강민지를 힘껏 끌어내렸다. 그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가슴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는 결국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채 멀리 있는 차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이때 서민규가 차에서 내려 막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신예준은 재빠르게 발차기 한 방으로 서민규를 바닥에 쓰러뜨렸다.서민규는 바닥에 나뒹굴며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강민지는 손목이 아파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놓으라고! 나 너랑 결혼 안 해!”“그럼 합의서도 필요 없다는 거지?”“신예준, 네가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을 리가 없어. 넌 그냥 비열한 악마야. 심지어 아이까지도 네 계획에 넣어두고 있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믿어?”그는 결코 합의서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려는 생각뿐이었다.신예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순간적으로 약하게 풀었다. 마치 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그는 웃으려고 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힘이 빠졌다.“네 말이 맞아. 난 비열한 인간이야. 너도 네가 임신한 걸 알고 있었구나.”강민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신예준은 한 걸음 다가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그만해. 돌아가서 결혼식 잘 치르자. 아이에게까지 충격 주지 말고.”그의 목소리는 차분해졌다. 옆에 쓰러져 있는 서민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강민지는 그대로 손바닥을 올려 그의 뺨을 때렸다. 그의 얼굴엔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신예준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그
강제로 헬리콥터에 들어간 순간, 강민지는 손을 들어 올려 신예준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볼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신예준이 손을 뻗었다.강민지는 신예준이 자신을 때리려는 줄 알고 얼른 눈을 감았다.그러나 예상했던 통증이 아닌 그녀의 안전벨트가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채워졌다.‘이 사람... 정말 미쳐버린 건가? 뺨을 때려도 화를 내지 않는다니 대체 무슨 꿍꿍인 거지?’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신예준에 강민지는 오히려 더 어리둥절해졌다.지난번에는 강씨 가문을 아예 산산조각내버리더니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꾸미려고...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민지는 갑자기 엄청난 절망감이 느껴졌다.“신예준 씨, 이제 솔직하게 털어놓지? 대체 뭘 원하는 거야?”안전벨트를 매어주기 위해 고개를 숙였던 신예준이 그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사냥감을 노리는듯한 신예준의 눈빛에 강민지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정말 듣고 싶어?”“그래. 그냥 통쾌하게 다 털어놓지? 난 당신과 알게 된 후 단 한 번도 당신에게 미안할 짓을 한 적이 없을 텐데. 설령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해도 이제 충분하지 않나? 내 뱃속의 이 아이를 봐서라도 말이야.”“그건 나도 알아...”말을 마친 후 그는 또 옆에 있는 담요를 가지고 와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강민지야말로 이 세상에서 그에게 가장 잘해주었던 사람이라는 건 신예준도 잘 알고 있다.“민지야, 네가 영원히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신예준은 긴장한 마음에 속눈썹마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강민지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아직도 복수가 끝나지 않은 거야? 신예준, 역겨운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이것 봐. 아직 사랑 고백은 하지도 않았는데 강민지는 벌써 신예준을 역겨워하고 있다.신예준 역시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굳이 모든 일을 강민지더러 이해해달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신예준도 함께 헬리콥터에 올라타는 것을 보니 그녀를 데리고 함께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