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언니.”강연지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묻어났다. 그 말을 들은 강민지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어릴 때부터 이 사촌 동생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이번 강씨 집안의 몰락에 삼촌 강상태도 큰 원인을 제공했지만 그렇다고 강연지와 완전히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강연지는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좋아했다. 번지 점프, 레이싱, 스케이트 등 무엇이든 잘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흥미롭게 여겨지는 수준이었다.“돈은 네 카드에 넣어뒀으니까, 알아서 써. 삼촌 일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신예준과 협력하다가 배신을 당해 강상태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상태는 강연지를 자주 때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강연지가 친딸이 아니라고 의심하기까지 했다.강상원에게는 오직 강민지라는 딸 하나뿐이었다. 강연지도 집안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강상태는 외부에 사생아가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강상태는 강민지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강민지는 그가 신예준과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연지야, 삼촌이 밖에 아들이 있다고 말하던데, 넌 혹시 알고 있었어?”강연지는 잠시 침묵했다. 그 순간 강민지는 뭔가 복잡한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연지야?”“언니, 이 일은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앞으로는 우리 서로 연락 자제하자. 언니가 잘해준 거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신예준이 나한테 경고 문자를 보냈어. 언니, 이만 끊을게.”강민지는 초조했지만 이미 전화가 끊겨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강연지가 차단한 걸까?강민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연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마음이 없다는 것은 확신했다.한숨을 내쉬며 강민지는 이제 자신도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까지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설날 아침, 강민지는 오후 4시까지 밖을 떠돌아다녔다.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민지 씨,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서민규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오늘은 설날 첫날이고 이 시간대면 다들 집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강민지는 혼자 벤치에 앉아 있었다.강민지는 그를 무시하고 눈을 감으려 했지만 서민규가 차에서 내려 앞으로 다가와 우산을 건네는 모습을 보았다. 눈을 다시 뜨고 평범한 외모의 그를 바라보며 문득 그가 신예준에게 준 약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신예준한테 준 약 부작용은 없나요?”서민규는 지금 제이엔 쥬얼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물론 신예준이 그를 데려간 덕분이었다. 그는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를 미워하는 상사 때문에 승진이 어려웠다. 지금은 신예준 덕에 제이엔 쥬얼리에 들어가서 바로 팀장 자리를 맡았고 제법 잘 해내고 있었다.“있죠. 하지만 예준이는 아마 내가 말하는 걸 원치 않을 거예요. 약에 대해서는 민지 씨가 더 묻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도 예준이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죠? 그런데 예준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조희서예요. 처음에 강민지 씨에게 다가간 것도 조희서 씨의 수술 때문이었다고요.”서민규는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강민지가 여전히 신예준에게 미련을 두는 것이 싫었다. 이제 강민지네 회사를 손에 넣었으니 당연히 조희서와 결혼할 줄 알았는데, 신예준이 결혼 상대로 선택한 사람은 강민지였다.서민규는 속이 조금 불편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늘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도 이제는 팀장이 되었지만 신예준은 이미 대표 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게다가 신예준은 외모까지 잘생겼으니... 이제 결혼하는 상대도 진짜 재벌가의 딸이었다. 당시에 강민지가 얼마나 신예준을 좋아했는지 다들 알았다. 어째서 모든 좋은 일은 신예준이 다 차지하는 것일까?친구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 안쓰럽지만 막상 그 친구가 나보다 더 잘 나가거나 좋은 차를 타면 은근히 배 아픈 법이다. 지금 신예준은 이미 돈과 권력을 다 가졌는데 여자 문
하지만 분명한 건 예전에 강민지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들이 신예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물건이었다는 사실이다. 신예준은 그녀를 그렇게도 싫어했으니, 선물을 받을 때마다 아마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강민지는 거실을 한 바퀴 돌아보며 자신의 선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여기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어이가 없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서민규는 그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일찍 제원에 집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랬다면 강민지가 이렇게 작은 거실에 앉아 있지 않았을 텐데.강민지는 분명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가의 딸로 권력과 부 속에서 살아가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이런 허름한 집에 앉아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서민규는 여자를 몹시 원했다. 그는 신예준처럼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너무나도 평범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얼굴이었다.예전에 1억짜리 차를 받았을 때 회사에서 여직원들이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그 덕에 몇 번 잠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그 여자들은 곧 서민규가 다른 사치품을 살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멀리했다.그 후에 그는 반승제에 의해 서천으로 발령이 났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승진하고 월급도 크게 올랐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절친한 친구인 신예준이 제이엔 쥬얼리를 손에 넣으며 서민규를 팀장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월급은 그야말로 수직으로 상승했고 지금은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고 있었다.그는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좋은 상사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변명으로 자신을 위로해 왔다.물론 그는 신예준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신예준은 이미 그렇게 많은 것을 얻었으니, 강민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내버려두는 게 맞지 않을까?서민규는 강민지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강씨 집안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자신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남자가 강민지 같은 예쁜 재벌가의 딸과 엮일 일은 없었을
서민규는 비록 신예준을 약간 질투했지만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특히 사람들과 협상할 때 신예준의 기세는 전혀 강상원에게 뒤지지 않았다.서민규는 예전에 신예준이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조희서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신예준은 무엇이든 시도했었고 매번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다.지금은 제이엔 쥬얼리라는 거대한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여전히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비록 바쁘긴 했지만 모든 일을 질서 정연하게 처리해 내고 있었다.이 생각에 서민규는 다시 한번 기가 죽었다.강민지가 신예준을 좋아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반면, 자신은 능력이 괜찮다고 해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나 통할 뿐이었다.“민규야, 나중에 강민지가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절대 말하지 마.”서민규는 의아해했다. 강민지가 자신에게 뭘 물어본다는 말인가?“전에 예나한테 보낸 선물들, 내가 나중에 가서 챙겨올 거야. 예나한테는 더 좋은 걸로 줄게.”서민규는 그 선물들이 강민지가 보낸 것임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강민지가 그의 집에 있는데, 신예준이 저녁에 여길 온다고?그는 순간 더욱 큰 불안감에 휩싸였다.“대략 언제쯤 올 거야?”“새벽쯤. 그때까지 회의가 있어.”서민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어. 내가 먼저 그 물건들 챙겨둘게. 그런데 그걸 강민지한테 돌려줄 생각이야? 너 지금 강민지와 거리를 두는 게 좋아 보여. 예준아, 희서는 항상 너만 기다리고 있어. 희서를 실망시키지 마.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부모님께도 설명하기 어려울 거야.”과거 신예준의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투신하기 전 신예준에게 조희서를 잘 돌보고 행복하게 해주라고 당부했었다. 신씨 집안이 조씨 집안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며 말이다.신예준은 부모님을 대신해 조씨 집안에 대한 빚을 갚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희서에게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게다가 그는 조희서를 좋아했다. 자신이 조희서와 결혼할 거라고 늘 생각해 왔었다.하지만 서민규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