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규는 신예준을 언급하면서 강민지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강민지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을 뿐, 아무런 말 없이 국 한 그릇을 마셨다. 옆에서 서예나가 계속 강민지에게 권했다.“언니, 이거 정말 맛있어요. 오빠가 말하길 미용에도 좋대요.”서민규는 비록 외모나 성격이 눈에 띄지 않고 여자 앞에서는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했지만 그동안 동생에게는 꽤 잘해준 편이었다.강민지는 서민규가 요리한 고기를 한 입 먹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문득 집에 돌아가기 싫어졌다. 하지만 그때 전화가 울렸다. 신예준이었다. 강민지는 이마를 찌푸리며 귀찮은 듯 전화를 받았다.“어디야?”요즘 들어 신예준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은 ‘어디야? 어디가?’였다. 강민지는 시계를 보았다. 이미 밤 8시가 넘었다. 설날에 서민규의 집에서 이렇게 늦게까지 머물러 있었다니.“밖에 있어.”“집에 와서 밥 먹어.”“이미 먹었으니까, 신 대표님 혼자 드세요.”신예준의 목소리가 순간 차가워졌다.“강민지, 내가 말했지? 나를 화나게 하지 말라고.”강민지는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신예준이 화를 내면 곤란해지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조금 있다가 갈게.”“9시 전에 와.”그 말을 듣고 강민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두 사람의 통화를 들은 서민규는 그녀가 곧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아쉬움이 밀려왔다. 강민지는 일어나 옆에 있던 가방을 집었다.“오늘 고마웠어요.”서민규는 얼른 따라나섰다.“제가 태워다 줄게요.”강민지는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차에 오를 때 강민지는 발목을 살짝 삐끗했고 서민규는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정말 부드러웠다. 그는 참지 못하고 살짝 주물렀다. 강민지는 손을 빼고 차에 올라탔다.“집 가까운 곳까지만 태워줘요. 거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갈게요.”서민규는 조금 아쉬웠다. 그 손을 잡고 있었던 시간이 겨우 2초 남짓이었다.“네, 알았어요.”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30분쯤 지났을 때 신호등에
서민규는 긴장한 나머지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하지만 강민지는 그저 그에게 다가왔을 뿐이었다.“유혹하는 게 아니에요. 난 그저 신예준에게 복수하고 싶을 뿐이에요. 솔직히 말해봐요. 그 약은 당신이 먼저 추천한 거예요? 아니면 신예준이 먼저 원한 거예요?”“당연히 예준이가 먼저 원했죠! 민지 씨에게 아무 감정도 없다고 말했거든요.”“그렇군요. 그럼 내가 복수하는 게 맞겠죠? 참 역겨운 사람이네요. 그렇지 않나요?”서민규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감각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그는 모든 걸 잊고 키스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강민지 같은 여자를 자신이 더럽힐 수 있을까? 하지만 신예준은 어떻게 감히 그랬을까?강민지의 손끝이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민규 씨 지금 제이엔 쥬얼리에서 일하고 있죠? 신예준과의 관계는 괜찮나요?”“괜찮아요.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예요.”사실 신예준이 강씨 회사를 차지할 때 서민규도 뒤에서 부추긴 공이 있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린 사람은 결국 신예준이었다. 그가 강민지를 좋아하지 않고 복수하려 한 것이었다. 서민규는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강민지의 손끝은 여전히 그의 손등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마저 갈라졌다.“민지 씨는 저를 이용해 예준이에게 복수하려는 거죠?”강민지는 대답하지 않고 그의 손을 뿌리치며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이미 충분히 신호를 보냈는데 더 이상 눈치 없는 척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남자를 찾으려면 모델도 고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서민규의 평범한 얼굴도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그저 못생기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서민규가 그녀를 붙잡았다.“민지 씨와 자고 싶어요.”강민지는 그 말에 너무 역겨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서민규도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를
신예준은 전화를 끊고 강민지를 더 이상 보지 않은 채 문밖으로 나갔다. 조희서의 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소파에 앉아 울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오빠...”조희서는 그를 보자마자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신예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집으로 불렀다.“무슨 일이야?”“흑흑. 방금 사과 깎다가 손을 다쳤어. 너무 아파. 그리고 오빠가 강민지랑 결혼한다는 생각만 하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 이제 오빠가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숨도 못 쉴 만큼 힘들어.”조희서는 속으로 독기를 품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결혼을 깨버려야 했다. 신예준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신경 쓴다면 그녀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주치의가 도착해 조희서의 상처를 확인하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상처는 깊지 않았다. 꿰매지 않아도 되지만 피가 나서 보기에 좀 심해 보일 뿐이었다.의사가 떠난 후 조희서는 신예준의 소매를 붙잡았다.“오빠, 오늘 여기서 쉬고 가. 나 너무 어지러워. 당장 쓰러질 것 같아.”신예준은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열이 나고 있었다.“해열제를 가져올게.”그러나 조희서는 그에게 기대며 말했다.“해열제 말고, 침대에 데려다줘. 눈도 너무 아파.”신예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부축해 2층 침실로 데려갔다.이 별장은 신예준이 조희서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왜 강씨 저택 옆에 별장을 사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사버린 뒤였다.위층에 올라간 후 조희서는 침대에 누워 다시 신예준의 소매를 붙잡았다.“오빠, 나 너무 더워. 옷 좀 벗겨줘. 진짜 너무 더워.”조희서는 정신이 흐릿해졌다. 이번 기회에 절대 신예준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그를 붙잡아두고 사진을 찍어 강민지에게 보여줄 계획이었다.‘강민지는 고고한 재벌가의 딸이니, 남자가 밖에서 바람피우는 걸 못 견디겠지?’조희서는 마음속으로 온통 더러운 생각들을 품고 있었다. 특히 강민지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더 큰
강민지가 잠에 들려던 순간 조희서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신예준의 사진이었다. 신예준은 침대 옆 소파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잘생겼다. 그 얼굴은 한때 강민지를 단번에 사로잡았던 이유이기도 했다.[오늘 밤 오빠는 안 돌아갈 거야. 나랑 여기 있을 거거든. 강민지, 넌 참 한심해. 네가 오빠랑 결혼해도 오빠는 계속 나한테 올 거라는 걸 생각해 봐. 오빠가 나한테 사준 이 별장이 네 집 바로 옆에 있다는 것도. 내가 너라면 정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우리 예전에 이미 다 했어. 그리고 한 가지 말해줄까? 오빠는 너랑 할 때만 약을 먹었어.]강민지는 예전에 조희서가 보낸 도발적인 메시지를 신예준에게 보여주곤 했다. 처음 몇 번은 신예준이 냉담하게 말했다.“희서는 우울증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을 때가 많아. 게다가 몇 년 동안 병으로 누워 있었으니까, 네가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몇 번을 반복해도 똑같은 대답을 듣자 강민지는 더 이상 쓸모없는 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지금은 신예준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조희서가 보낸 메시지가 여전히 역겹긴 했지만 예전만큼 크게 불쾌하지는 않았다.차라리 그들이 평생 서로 얽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예준이 결혼을 포기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강민지는 진정으로 신예준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모든 일을 겪고도 그와 결혼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스스로 모욕을 자초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눈을 감고 잠에 들려던 찰나 조희서에게서 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오빠가 깼어. 방금 나한테 키스했어. 우리 시작하려고 해. 라이브로 보여줄까, 민지 씨?]강민지는 조희서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번 만나본 결과 그녀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강민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꾼 후 베개 옆에 놓았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신예준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것도 아니었다.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강민지는 메시지를 보내고 곧 잠에 빠져들었다. 신기하게도 오랜 불면증 끝에 처음으로 깊이 잠들었다. 그녀는 항상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병원에서 조희서가 진실을 폭로하던 그날이 떠오르곤 했다. 그날 이후 강민지는 겁쟁이처럼 도망치듯 교외의 별장에 혼자 숨어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씨 집안의 회사가 넘어가고 강상원이 과거에 일으킨 교통사고가 매스컴에 대서특필되었으며 신예준은 미지의 신흥 재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이 모든 일이 떠오를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시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서민규와 대화를 나누고 난 후 강민지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다. 아침 6시까지 깨지 않고 자던 그녀는 몸을 뒤척이다가 침대에 누군가 있는 것을 느꼈다.눈을 떠보니 신예준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방금 막 집에 돌아온 듯한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강민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설명하려는 듯했지만 강민지는 눈을 뜨자마자 3초도 안 돼 다시 감아버렸다. 신예준은 슈트를 입은 후 갑자기 이불을 걷어내더니 강민지를 힘껏 누르며 거칠게 입을 맞췄다.강민지는 신예준의 입술이 점점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거친 키스에 입술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아파서 미간을 찌푸렸지만 신예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듯 더욱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물고 늘어졌다. 숨이 막혀서 본능적으로 밀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신예준은 잠시 멈추고는 그녀를 응시하더니 이번에는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가 몇 번이나 세게 빨아 자국을 남겼다. 선명한 흔적들이 그녀의 목에 또렷하게 새겨졌다.강민지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신예준은 그녀의 두 손목을 억지로 끌어올려 침대 머리맡에 고정했다.“놔!”강민지는 힘겹게 외쳤다. 최근 들어 신예준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은 ‘어디야? 어디 가?’였고, 그녀가 가장 많이 외친 말은 ‘놔!’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놓아준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자기 욕구를 채우는 데만 급급했을 뿐이었다.신예준은 뼛속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신예준은 먼저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점심 무렵 서민규를 만났다.서민규는 신예준을 보자 잠시 멈칫했다. 오늘따라 신예준의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최근 회사에 올 때마다 늘 어두운 표정이었는데, 오늘은 눈가에 미소가 서려 있었다. 서민규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아니, 별거 없어.”“희서랑 관련된 거지? 어젯밤에 희서가 SNS에 올렸더라. 네가 자기를 돌봐줬다고 말이야. 희서는 여전히 한결같던데, 너만 옆에 있으면 항상 쉽게 만족하는 것 같아.”신예준의 눈가에 서려 있던 미소가 점차 희미해졌다.“어젯밤에 희서가 손을 다쳤어.”“그렇구나. 의사 말로는 희서가 우울증이 있다고 하니까, 네가 신경 좀 써야 할 거야. 희서는 네 말밖에 듣지 않잖아. 내가 전화해도 제대로 대답도 안 하더라고. 전부 네가 너무 애지중지했기 때문이야.”서민규가 매번 조희서를 언급할 때마다 신예준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신예준은 그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서민규의 기분도 좋아 보였다.“여자 생겼어?”서민규는 바짝 긴장하며 잠시 당황했다. 곧 강민지와 드라이브를 하러 갈 생각에 너무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심결에 자신의 기분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었다.“아니야.”“회사 사람이야?”신예준은 담담한 목소리로 물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서민규는 더욱 불안해졌지만 문득 강민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당신은 너무 겁이 많고 배짱이 없어요.’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계속 신예준에게 눌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용기가 갑자기 폭발했다.“아니,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야. 그쪽에서 고민 중이거든.”“어디까지 갔어? 손은 잡았어?”“응.”“손도 잡았는데 사귀지 않았다니, 혹시 널 갖고 노는 거 아니야?”신예준은 서민규와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예전 많은
“그래요. 정말 너무 지나치죠.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어요.”강민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서민규는 강민지의 입장에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만약 자신이 강민지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감옥에 갇혀 있는 강상원은 신예준의 합의서가 꼭 필요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강상원이 얼마나 더 그 안에 있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서민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운전했다. 새로 생긴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차에서 내려 길을 확인했다. 얼마 전 내린 눈 때문에 땅이 조금 젖어 있었지만 다행히도 오전 내내 쨍쨍하게 내리쬔 햇살 덕분에 지금은 이미 마른 상태였다.“민지 씨, 내려오세요.”강민지는 하이힐을 신고 공원 바닥에 발을 디디며 잠시 새 공원을 둘러봤다. 여기가 개발된다는 소식을 미처 알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꽤 잘 꾸며져 있어서 놀라웠다.서민규는 앞장서서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마다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15분쯤 걷다가 강민지는 지친 듯 공원 한쪽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목말라요.”서민규는 근처를 둘러보더니 재빨리 말했다.“내가 가서 물 사 올게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그는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지도를 켜서 근처에 매점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강민지는 그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눈가에 약간의 비웃음이 서렸다.진심은 짓밟히고 가식은 오히려 칭송받는 상황이 어쩐지 얄궂었다.입가에 서린 비웃음은 점점 더 짙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지며 왠지 모르게 울고 싶었다.강민지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빈 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을 보니 울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20분 후 서민규가 돌아왔다. 손에는 물이 몇 병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가격이 비싼 순서대로 물을 산 것 같았다. 비록 이런 매점에서 파는 물이 비싸 봐야 3천 원 정도겠지만 말이다.강민지는 물 한 병을 집어 들고 병뚜껑을 열려 했다. 그러자 서
“좋아요. 민지 씨가 와 준다면 나야 좋죠!”서민규는 이 말을 반복하며 뜨거운 시선으로 강민지를 바라보았다.“신예준한테 들킬까 봐 두렵지 않아요?”“민지 씨.”서민규의 눈빛은 더욱 결연해졌다. 아름다운 여자의 품에서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솔직히 말할까요? 민지 씨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예준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강민지는 말없이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 신예준은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친구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줄은. 게다가 그 여자가 신예준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자라니. 강민지는 웃음이 났다.서민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을 들어 천천히 그녀의 머리 위에 얹었다. 강민지의 머리카락은 정말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완벽했다. 그러니 신예준이 한 번 잠자리를 가지고 잊지 못할 만했다.서민규는 예전에는 신예준을 그리 심하게 질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지가 신예준의 곁에 나타난 이후 그 질투는 마치 광란의 잡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다.서민규는 멍청하지 않았다. 강민지가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예전에 BK사에서 일할 때 서민규는 멀리서 강민지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성혜인의 곁에 서 있었고 눈빛은 환하게 빛났다. 강민지의 존재는 태양처럼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이 그녀 같은 여자를 평생 만나볼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며 피할 뿐이었다.사실 그보다 훨씬 전에도 강민지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도 굴욕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당시 팀장은 서민규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기 좋아했고 그의 학력을 비하하며 조롱하곤 했다. 그날도 그는 술에 완전히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상사와 동료들은 계단 위에서 그를 비웃었다.“저 자식은 평생 저기 들어갈 자격도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