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신예준은 먼저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점심 무렵 서민규를 만났다.서민규는 신예준을 보자 잠시 멈칫했다. 오늘따라 신예준의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최근 회사에 올 때마다 늘 어두운 표정이었는데, 오늘은 눈가에 미소가 서려 있었다. 서민규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아니, 별거 없어.”“희서랑 관련된 거지? 어젯밤에 희서가 SNS에 올렸더라. 네가 자기를 돌봐줬다고 말이야. 희서는 여전히 한결같던데, 너만 옆에 있으면 항상 쉽게 만족하는 것 같아.”신예준의 눈가에 서려 있던 미소가 점차 희미해졌다.“어젯밤에 희서가 손을 다쳤어.”“그렇구나. 의사 말로는 희서가 우울증이 있다고 하니까, 네가 신경 좀 써야 할 거야. 희서는 네 말밖에 듣지 않잖아. 내가 전화해도 제대로 대답도 안 하더라고. 전부 네가 너무 애지중지했기 때문이야.”서민규가 매번 조희서를 언급할 때마다 신예준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신예준은 그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서민규의 기분도 좋아 보였다.“여자 생겼어?”서민규는 바짝 긴장하며 잠시 당황했다. 곧 강민지와 드라이브를 하러 갈 생각에 너무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심결에 자신의 기분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었다.“아니야.”“회사 사람이야?”신예준은 담담한 목소리로 물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서민규는 더욱 불안해졌지만 문득 강민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당신은 너무 겁이 많고 배짱이 없어요.’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계속 신예준에게 눌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용기가 갑자기 폭발했다.“아니,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야. 그쪽에서 고민 중이거든.”“어디까지 갔어? 손은 잡았어?”“응.”“손도 잡았는데 사귀지 않았다니, 혹시 널 갖고 노는 거 아니야?”신예준은 서민규와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예전 많은
“그래요. 정말 너무 지나치죠.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어요.”강민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서민규는 강민지의 입장에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만약 자신이 강민지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감옥에 갇혀 있는 강상원은 신예준의 합의서가 꼭 필요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강상원이 얼마나 더 그 안에 있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서민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운전했다. 새로 생긴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차에서 내려 길을 확인했다. 얼마 전 내린 눈 때문에 땅이 조금 젖어 있었지만 다행히도 오전 내내 쨍쨍하게 내리쬔 햇살 덕분에 지금은 이미 마른 상태였다.“민지 씨, 내려오세요.”강민지는 하이힐을 신고 공원 바닥에 발을 디디며 잠시 새 공원을 둘러봤다. 여기가 개발된다는 소식을 미처 알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꽤 잘 꾸며져 있어서 놀라웠다.서민규는 앞장서서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마다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15분쯤 걷다가 강민지는 지친 듯 공원 한쪽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목말라요.”서민규는 근처를 둘러보더니 재빨리 말했다.“내가 가서 물 사 올게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그는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지도를 켜서 근처에 매점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강민지는 그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눈가에 약간의 비웃음이 서렸다.진심은 짓밟히고 가식은 오히려 칭송받는 상황이 어쩐지 얄궂었다.입가에 서린 비웃음은 점점 더 짙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지며 왠지 모르게 울고 싶었다.강민지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빈 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을 보니 울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20분 후 서민규가 돌아왔다. 손에는 물이 몇 병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가격이 비싼 순서대로 물을 산 것 같았다. 비록 이런 매점에서 파는 물이 비싸 봐야 3천 원 정도겠지만 말이다.강민지는 물 한 병을 집어 들고 병뚜껑을 열려 했다. 그러자 서
“좋아요. 민지 씨가 와 준다면 나야 좋죠!”서민규는 이 말을 반복하며 뜨거운 시선으로 강민지를 바라보았다.“신예준한테 들킬까 봐 두렵지 않아요?”“민지 씨.”서민규의 눈빛은 더욱 결연해졌다. 아름다운 여자의 품에서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솔직히 말할까요? 민지 씨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예준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강민지는 말없이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 신예준은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친구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줄은. 게다가 그 여자가 신예준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자라니. 강민지는 웃음이 났다.서민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을 들어 천천히 그녀의 머리 위에 얹었다. 강민지의 머리카락은 정말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완벽했다. 그러니 신예준이 한 번 잠자리를 가지고 잊지 못할 만했다.서민규는 예전에는 신예준을 그리 심하게 질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지가 신예준의 곁에 나타난 이후 그 질투는 마치 광란의 잡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다.서민규는 멍청하지 않았다. 강민지가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예전에 BK사에서 일할 때 서민규는 멀리서 강민지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성혜인의 곁에 서 있었고 눈빛은 환하게 빛났다. 강민지의 존재는 태양처럼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이 그녀 같은 여자를 평생 만나볼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며 피할 뿐이었다.사실 그보다 훨씬 전에도 강민지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도 굴욕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당시 팀장은 서민규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기 좋아했고 그의 학력을 비하하며 조롱하곤 했다. 그날도 그는 술에 완전히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상사와 동료들은 계단 위에서 그를 비웃었다.“저 자식은 평생 저기 들어갈 자격도 없을
강민지가 다음날 서민규를 찾으러 간다고 한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그날 밤 서민규의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강민지는 여전히 서민규더러 500m 떨어진 곳에 멈추게 하고 혼자 걸어가려 했다.그러나 서민규는 잠깐 사색에 잠기더니 결국 곱게 포장된 케이크를 옆에서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심지어 그 케이크는 그녀가 평소에 먹는 것보다도 훨씬 싼 케이크였다. 강민지는 단 한 번도 개인이 제작한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었고 애초에 강상원이 이것들을 입에 대지도 못하게 했었다.하지만 막상 정교하게 만들어진 케이크를 보고 나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강민지는 결국 그 케이크를 받아들였다.“감사합니다.”“내일 몇 시에 올 거예요?”“민규 씨는 정말 조금도 무섭지 않나 봐요.”전에는 그렇게 무서워했으면서 지금은 오히려 기대하는 것 같은 서민규의 모습에 강민지는 조금 어리둥절해졌다.“무섭죠. 저도 예준이와 그렇게 오래 알고 지내면서 예준이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애초에 예준이와 비교조차 할 수 없어요.”강민지는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다시 천천히 자리에 걸터앉으며 물었다.“그래요? 그럼 민규 씨가 예준이 옛날얘기 좀 많이 해줘요.”그 말에 서민규는 입술을 약간 오므리더니 맥이 빠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저와 예준이는 그 집에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돼 알게 됐는데 그해 예준이는 희서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어요. 저에게도 여동생이 한 명 있었고 똑같이 그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득바득 노력하고 있었는데 전 예준이에게서 우리에겐 없는 야망을 보아냈어요. 한밤중에 일어나 보니 강의들을 들으면서 필기를 하질 않나... 그래서 알게 됐어요. 신예준은 우리와 다르다는 걸.”이야기를 들으며 강민지는 서민규의 손에 끼워져 있는 담배를 가져다가 불을 붙이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곧이어 그녀의 행동은 서민규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안돼요. 이 담배는 싸구려 담배라 냄새가 좀 심해요. 다음에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강민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막 밀어내려 하자 신예준은 오히려 자발적으로 순순히 그녀를 풀어주었다.입맛이 뚝 떨어진 강민지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신예준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예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매서운 카리스마가 한순간에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었다.“신예준 씨, 우리 얘기 좀 해.”신예준은 여전히 입꼬리를 가볍게 치켜든 채, 여유롭게 옷소매를 정리하며 담담하게 답했다.“나 지금은 기분 괜찮아. 그래서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결혼식을 취소하고 당신이 합의서 하나만 써줘. 그러면 앞으로 영원히 당신의 세계에서 사라져줄게. 강씨 집안이 가진 모든 재산과 권력은 이제 당신의 소유가 될 거고 조희서와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어. 결혼만 취소해준다면 앞으로 절대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 거야. 영원히 외국에서 살 수도 있어.”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예준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고 당장이라도 폭풍우가 휘몰아칠 듯한 긴장감이 맴돌았다.“당신 조희서 씨와 함께 많은 일을 겪었잖아. 두 사람 잘 어울려. 전에 조희서 씨가 당신 약혼녀인 줄 모르고 섣불리 당신과 관계를 발전시킨 건 내 잘못이야. 인정할게.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다시 돌아왔으니 우리도 서로 더 이상 싸우지 말자. 서로에게 빚진 것도 없잖아. 당신 생각은 어때?”하지만 말할수록 분위기는 더 싸늘해질 뿐이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신예준에 강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이것이야말로 신예준이 가장 원하던 결과 아닌가?문득 강민지는 신예준이 그녀를 놓아주기를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 복수할까, 합의서를 받고 다른 사람들을 불러모아 그를 상대할까 두려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신예준은 워낙 생각이 깊은 사람이기에 그는 결코 자신의 앞날에 그 어떤 폐해도 남겨두지 않는다.“맹세할게. 아버지를 모시고 바로 출국할 거야. 당신이 나타날 수 있는 장소라면 최대한 멀리 피해있을 거야.”강민지의 말이
그 순간, 신예준은 자신의 가슴팍을 강민지의 등에 찰싹 달라붙였다.강민지는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숨을 몰아쉬는 신예준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분노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숨결이었다.신예준은 당장이라도 강민지를 물어뜯어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그리고 신예준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강민지는 그저 더욱 고통스러울 뿐이다. 스카이웨어에서 보았던 신예준은 얼마나 맑고 순진한 남자아이였단 말인가.주변에는 더러운 진흙탕이 널려 있는데도 신예준은 먼지 하나 물들지 않고 자랐다. 일부러 꾸민 상황이라지만 생각만 해도 여전히 설레기 마련이다.그러나 지금 그녀의 등에 기대고 있는 묵직한 남자는 그녀가 첫눈에 반했던 그 사람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과 같이 느껴졌다.강민지는 순간 속상한 마음에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눈물을 펑펑 흘렸지만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신예준은 욕망을 다 채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더러워진 강민지의 몸조차 치우지 않고 떠나버렸다.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에 이어 샤워를 마친 듯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샤워를 마치고 신예준의 발걸음은 드레스룸으로 향했고 그는 옷장을 열고 깨끗한 양복을 꺼냈다.그렇게 신예준은 순식간에 집을 나섰고 바깥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아마도 조희서를 만나러 갔을 것이다.강민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피곤함에 절인 상태였다.그녀는 느릿느릿 욕실로 가서 조금 전의 흔적을 지우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름 아닌 조희서가 보내온 메시지였다. 들은 바로는 신예준이 함께 별을 보러 가자며 조희서를 초대했다는 것이다.하지만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기 귀찮았던 강민지는 바로 눈을 감아버렸다.한밤중에 그녀의 휴대폰이 또다시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감옥 측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강상원이 갑자기 많이 아파 급하게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내용에 강민지는 곧바로 옷을 단정히
강씨 가문의 재산을 모조리 빼앗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강씨 가문의 조상들에게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네가 뒤끝이 심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누가 널 기분 나쁘게 하면 너도 반드시 갚아주곤 했지.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아빠는 네가 괴로워하는 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때 일이라면 다 아빠 잘못이다. 그 돈이 피해자의 손에 들어가는 걸 끝까지 지켜봤어야 하는 건데. 그랬다면 그 사람들도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것도 운명인 걸 어떡하겠냐. 그러니 우리도 이만 그만두자.”강상원은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죽은 후 그는 혼자서 딸을 키우며 재혼은 꿈도 꾸지 않았고 부족할 것 없이 강민지를 키워주었다.아버지의 만류에도 강민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오므릴 뿐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신예준은 조희서와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생각을 하니 강민지의 마음속에는 말로 이룰 수 없는 혐오와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민지야, 내 말 들었어?”“들었어요, 아빠.”강민지의 표정을 보니 그의 말을 들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내가 나오는 그날까지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꼭 그럴게요.”하지만 강상원의 몸이 정말 그가 출소하는 그 날까지 버틸 수 있을까?신예준이 위에서 모든 걸 조종하고 있는 탓에 지금은 치료도 신청할 수 없는 꼴이다.한쪽에 늘어뜨려 있던 강민지의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같은 시각, JM그룹 꼭대기 층.대표 사무실의 불은 아직도 환히 켜져 있었다. 신예준은 혼자 안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이미 다음 한 달의 서류까지 전부 처리했기에 가까운 시일 내에는 일찍 돌아갈 수 있다.그러나 신예준이 아무리 일찍 돌아가도 강민지는 집에 없었다.그 생각에 서류를 쥐고 있던 신예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때, 직원 한 명이 새로운 서류를 손에 들고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아마 그가 아직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직원
생각을 마친 조희서는 신예준을 만나러 가기 위해 위층으로 발걸음을 돌렸다.하지만 1층 로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카드가 필요했고 조희서는 어쩔 수 없이 신예준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오빠, 나 지금 오빠 회사 앞에 있는데 데리러 와 주면 안 돼?”조희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신예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새벽 두 시야. 여긴 왜 왔어?”“오빠 먹으라고 국 끓여왔어.”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과연 입구에 서 있는 조희서가 눈에 보였다.그녀는 흰색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건 신예준이 전에 그녀에게 사줬던 옷이다.당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모아 사준 건데 조희서도 처음으로 40만 원 이상의 옷을 입어보는지라 설레는 마음에 한참을 신예준의 팔을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모든 것이 그토록 순수했고 이젠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조희서는 신예준을 따라 회사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며 입김을 불었다.“오늘 밤 기온이 더 내려갔나 봐. 좀 춥네.”조희서의 손가락은 꽁꽁 얼어서 빨갛게 되어버렸다.“내 사무실에 히터 있어. 가면 괜찮아질 거야.”“그래. 그럼 오빠 사무실로 가자. 오빠, 나도 이제 사람 만나러 밖에 다녀봐야 할 것 같아. 계속 집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 오빠가 회사에 내 일자리 하나 마련해 주면 안 돼?”말을 이어가며 조희서가 팔짱을 끼려고 하자 신예준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피해버렸다.조희서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일부러 티는 내지 않았다.“내 병도 이제 극복해야지. 나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나중에 회복될지도 모르잖아. 나 혼자 있다가 더 우울해지면 어떡해?”생각해보니 회사에 한 명 더 두는 것 뿐인데 안될 것도 없었다.“그럼 내일부터 나와.”“역시 오빠가 최고야.”조희서는 신예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애교를 부리며 아양을 떨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신예준의 말대로 그의 사무실은 매우 따뜻했다.“이건 내가 끓여온 수프야. 마셔봐. 하... 다크써클 좀 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