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민지 씨는 지금, 이 상황이 조금도 두렵지 않나 봐? 오늘 밤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있었나 보네.”강민지는 눈썹을 추켜올리고 오히려 한가로운 자태에 몸을 살짝 뒤로 기울이기까지 했다.“누가 시킨 겁니까?”“또 누가 있겠어요? 당연히 우리 신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일이지. 이젠 당신을 갖고 놀기도 지겨우니 우리도 한번 놀아보라고 보내오셨네요.”“그래요?”강민지는 사색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선두에 선 남자는 참다못해 그녀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강민지는 급히 옆으로 몸을 피하다가 책상 위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순간 눈앞이 하얘지고 머리가 어질거렸다.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시 낚아채며 으름장을 놓았다.“네 이년, 어딜 도망가!”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페 문이 발길질에 거세게 열리더니 경호원 몇 명이 뛰어 들어왔다.강민지는 피가 흐르는 이마를 애써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경호원이 들이닥치고 그 남자 몇 명은 순식간에 경호원에 의해 전부 제압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강민지는 옆에 있던 컵을 집어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유리 조각 하나를 들고 자신의 손목을 세게 베었다.붉은 피가 고운 피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자 경호원은 화들짝 놀라 그녀를 말렸다.“아가씨?”그러나 강민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리를 절뚝이며 밖으로 나가더니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이 사람들 전부 데려가요. 그리고 제대로 교육해서 입막음해요. 신예준이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도록.”“알겠습니다.”사실 이곳에 오기 전, 강민지는 이미 반승제에게 소식을 전했다.강민지는 바보가 아니다. 신예준은 줄곧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합의서 얘기를 먼저 꺼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강민지가 먼저 합의서 얘기를 꺼내면 불같이 화를 내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이리도 쉽게 합의서를 내놓는단 말인가?그러니 이 메시지는 큰 확률로 조희서가 보낸 것이다. 신예준이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두 사람은 현재 함께 있을 테니까.하여 강민지는 미리 반
“성 대표님, 이 정도면 충분합니까?”연거푸 조희서에게 공격을 퍼부은 후, 유해은이 물었다.어느새 배가 더욱 불러온 성혜인은 자신의 배를 잡고 자리에 앉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반승제가 다급하게 그녀의 팔을 부축해주며 말을 거들었다.“그러니까 이번 일에는 관여하지 말라고 했잖아.”“당신이 말할 자격이 있어요? 만약 민지가 승제 씨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민지가 이 여자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도 모른 채 태평하게 잘살고 있었겠죠.”신예준이 강민지를 괴롭히는 건 그나마 참아줄 수 있다. 그건 강민지가 자초한 일이니까.괴롭히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의 장단이 그렇게 잘 맞는데 제삼자인 그녀가 무어라 끼어들 수 없는 상황이다.그런데 조희서는?조희서가 뭐라고 감히 강민지의 머리 위로 기어 올라가려 한단 말인가.성혜인을 말리던 반승제는 순식간에 잠잠해졌고 그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애써 상황을 설명해주었다.“어젯밤 메시지가 도착했을 땐 시간이 너무 늦어서 말하지 않은 거야. 하지만 경호원을 보내 보호해줬잖아.”물론 반승제가 그녀를 생각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는 건 성혜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마음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반승제는 조심스럽게 성혜인의 어깨를 쓰다듬어주며 그녀를 다독여주었다.“됐어, 됐어. 결국, 큰일은 없었잖아. 애 조심해야지. 자,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여전히 화가 났지만 막상 그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반승제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그 정도는 아니에요.”그렇게 화냈으면서 그 정도는 아니라니.이따가 신예준이 오면 또 한바탕하겠네.성혜인의 시선이 다시 조희서에게로 향했다. 어젯밤 반승제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강민지가 무슨 일을 당했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강민지가 정말 똑똑해서 이번 일은 순조롭게 넘어갔지만 다음에는?다다음은?두 눈이 퉁퉁 부은 조희서는 눈앞에서 오가는 대화에 눈치를 살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중 한 명은 그녀도
곧이어 성혜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냉정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신 대표님, 저희는 조희서의 합의서뿐만 아니라 당신의 합의서도 필요합니다.”“저는 결코 합의해줄 마음이 없습니다.”신예준이 무거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영원히.”합의를 해주면 강민지가 그의 곁에 남을 이유도 더 이상 없다.그러면 강민지는 망설임 없이 그를 버리고 강상원을 데리고 영원히 떠날 것이다.한쪽에 늘어뜨렸던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이대로 끝내자고? 내가 왜?그 순간, 성혜인은 눈을 찌푸리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신 대표님께서 조희서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당신의 합의서 때문에 우리가 조희서 씨를 죽일까 두렵진 않으세요?”“성혜인 씨, 그렇게 되면 강민지는 죽을 때까지 합의서를 못 받게 될 거고 강씨 가문의 모든 걸 배상해야 할 겁니다. 그래도 지금은 아직 개명되지 않아 강상원 대표님도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일사불란한 말, 차분한 말투, 눈앞의 그는 정말 무섭도록 강한 사람이다.다시 조희서를 바라보자 신예준의 뒤에 숨어버린 조희서는 갑자기 다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흥미진진해진 성혜인은 눈썹을 치켜들고 유해은을 불렀다.“유해은 씨.”눈치가 빠른 유해은은 곧바로 그녀의 뜻을 깨닫고 조희서의 뺨을 몇 차례 더 내리쳤다.갑자기 또 뺨을 맞은 조희서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신예준이 이 자리에 있는데도 감히 그녀에게 손을 대다니.“오빠... 흑흑흑. 오빠, 이 사람들 좀 봐...”그러나 신예준은 조희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희서야, 합의해줘.”신예준의 말에 조희서는 그제야 깨달았다. 성혜인 그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합의를 해주지 않으면 그들은 정말 조희서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땐 신예준도 그녀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분이 난 조희서는 입술을 짓이기며 소매를 부여잡고 다급히 말을 꺼냈다.“합의할게. 한다고.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데리고 가줘.
그러자 신예준은 담담한 얼굴로 핸들을 잡았다가 다시 천천히 놓았다.“희서야, 너 자꾸 밖에 나돌아다니면 그 사람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그래.”조희서의 울음소리가 멈추고 그녀는 순식간에 신예준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알고 보니 신예준은 그녀를 보호해주고 있다.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강민지에게 그런 짓까지 했는데 신예준은 그녀를 탓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눈시울이 붉어지며 조희서는 천천히 신예준의 팔을 잡았다.“오빠, 이번에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이런 방법을 택한 거야. 다음부터는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화내지 마, 알겠지?”“그만 내려. 난 다시 병원 가봐야 해.”여전히 강민지를 챙기는 신예준에 조희서는 뿌득뿌득 이를 갈았지만 뭐라 하기도 애매한 타이밍이었다.*신예준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강민지는 이미 의식을 회복하여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그는 가져온 죽을 옆에 내려놓고는 특별히 강민지를 위해 침대 머리맡의 각도를 조절해 주었다.그러나 강민지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의 눈을 피했고 안색은 조금 하얗게 질려있었다.곧이어 신예준은 가져온 도시락을 열어 그녀에게 죽을 먹여주었다.강민지도 순순히 죽을 받아먹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근 3일 동안 신예준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병상 앞에서 그녀를 보살폈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는 시간 외에는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간혹 한밤중에 깨어나면 회의를 하는 신예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혹여나 강민지가 잠에서 깰까 봐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회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의사가 다시 한번 검사를 하러 왔을 때, 그녀는 비로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집에 돌아가기 위해 신예준의 차 조수석에 올라타자 물씬 풍기는 조희서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조희서가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의 향은 확연했다.강민지는 순간 메스꺼움을 느꼈지만 눈살을 찌푸리고 애써 창밖을 내다보았다.곧이어 차는 강씨네 별장
신예준은 강민지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천천히 몸을 기울이고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려 손을 들어 올렸다.“두 달 동안은 밖에 나오지 않을 거야.”마치 이것이 그의 처리 방법인 것처럼 신예준의 태도는 매우 당당했다.그러나 강민지는 그저 우스울 뿐이다. 이건 그냥 조희서를 보호해주려는 방법 아닌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혜인에게 시달렸으니 조희서가 계속 나대면 그쪽에서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조희서는 반드시 잘 숨어있어야 한다. 괜히 다음에 누구와 부딪혀서 또 다른 사람에게 뺨을 맞지 않도록 말이다.신예준의 뻔한 마음에 강민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기 귀찮아서 계속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서민규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새우 먹고 싶어요. 왕새우.]그녀의 메시지라면 서민규는 매번 칼답이었다.그리고 그런 서민규를 대하는 강민지에게 장난기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여 요즘 밤잠을 설친 날에도 계속하여 서민규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려 애썼다.그러나 언제 문자를 보내도 서민규는 항상 칼답이었다.이에 강민지는 심지어 혹시 그녀의 소식만을 기다리며 눈 한 번 꿈쩍이지 않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하지만 놀리는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바라던 바가 있을 뿐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금방 가서 사 올게요. 민지 씨 몸보신시켜주려고 닭 한 마리 더 삶았는데 그럼 언제 오실래요?][바로 출발할게요.]문자를 보낸 후, 강민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걸려있는 가방에 핸드폰을 넣고 외출준비를 하였다.그러자 신예준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며 물었다.“어디가?”“혜인이랑 놀려고.”그녀의 말에 신예준은 천천히 손을 떼고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말을 꺼냈다.“주방에 너 몸보신 좀 시키려고 음식을 시켜뒀어.”“괜찮아. 그쪽에서 먹고 올 거야.”그러나 신예준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뒤에서 느릿느릿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았다.순간 심장이 쿡쿡 쑤셔오는 감각에 강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너 화난 거 알아
서민규 표 저녁 식사는 곧 준비되었고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기도 전에 강민지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조희서가 보낸 문자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지난번에 찍은 신예준과 조희서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장면이었다.심지어 입술이 닿는 디테일까지 매우 또렷했다.순간 입맛이 뚝 떨어진 강민지는 묵묵히 대화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희서가 보내온 메시지는 전부 그녀의 구질구질한 혼잣말이었다.예를 들어, 오늘 신예준이 그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든지, 아니면 그녀와 함께 쇼핑하고 그녀와 키스하는 등등 이야깃거리였다.물론 강민지는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지만 단지 신예준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연락처를 삭제하지 않은 것이다.그때, 조희서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또 도착했다.[지난번에 당신을 죽이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빠는 여전히 날 선택했어.]갑자기 재미가 없어진 강민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결국, 조희서가 보내온 메시지는 아무리 뒤적여도 전부 비슷한 내용이었다신예준이 얼마나 잘해주고 조희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내용에 불과했다.조희서는 눈앞에 있는 새우를 보며 아무렇게나 두 마리를 입에 집어넣고 닭고기 수프를 조금 들이켰다.아직 배가 차지도 않았는데 강민지는 입맛이 없어 수저를 내려놓고 갈 준비를 했다.그러자 서민규는 그녀를 배웅해주기 위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들이 막 떠난 지 10분이 지났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서민규가 돌아왔다고 생각한 서예나가 휠체어를 타고 문을 열러 갔는데 문밖에는 뜻밖에도 신예준이 서 있었다.“오빠 안 계셔?”그녀는 멍해 있다가 상대방이 묻는 말에 화들짝 놀라 답했다.“오빠는 잠깐 외출했어요. 아니면 먼저 들어와 앉아 있을래요?”신예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었다. 그의 손에는 선물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들을 위해 준비한 이사선물이었다.지난 며칠 동안 강민지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 이제야 시간을 낸 것이다.선물을 옆에 내려놓
뭐, 정말 착각일지도 모르겠다.신예준은 그대로 차를 몰고 회사로 돌아왔는데 차에서 내릴 때 참지 못하고 또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봤다.새로운 소식은 없었다.페이지는 여전히 강민지에게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에 머물러 있었다.“다 먹었어?” 다시 위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대부분 신예준이 강민지에게 물음을 던지고 강민지는 거의 답해주지 않았다.찬바람 속에서 신예준은 참지 못하고 계속 위로 거슬러 올라가 예전의 채팅 기록을 뒤져냈다.지금 보니 구구절절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이 그의 마음을 후벼팠다.[예준 씨, 오늘 퇴근길에 이상한 구름 봤는데 뭔가 고래 같지 않아?][하하하, 이 고양이 좀 봐, 개처럼 생겼어. 왜 이렇게 뚱뚱하지?][길가에서 한 커플이 싸우고 있는데 싸움 구경 좀 해보겠다고 옆에 서 있으니 다리 아파죽을 것 같아. 근데 듣기로는 남자가 바람을 피운 거래.][오늘 옷가게 주인한테 4만 원 떼었어. 아 짜증 나.][예준 씨, 퇴근했어? 집에 언제 돌아와? 비 엄청 세게 오는데 우산이 없어.][오늘 어떤 손님이 가게 안에서 술주정을 부리는데 자꾸 의자를 들고 사람을 때리려는 거야. 어떡해? 나 또 월급 반납하게 생겼어.]그리고 신예준은 자학이라도 하는 듯 자꾸만 채팅 기록을 위로 올려다보았다.손가락의 담배가 거의 다 타버려 살갗이 타들어 가서야 그는 비로소 깜짝 놀라며 바로 담배를 버렸다.곧이어 신예준은 또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새로운 메시지를 전송했다.[곧 12시야.]아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어버린 것 같아 미리 일깨워준 것이다.같은 시각, 강민지는 집에 와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메시지가 알림창에 떴지만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그렇게 한 시까지 놀았더니 너무 졸려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들었다.한편, 신예준은 회사에서 2시까지 야근을 했지만 휴대폰은 항상 고요하기만 했다.심지어 마지막에 도착한 알림은 은행에서 보내준 축하 메시지였다.책상 위의 노트북을 덮고 일어나려는데 그때 새 우편물 하나가 더
대화가 끊기고 인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탕비실로 쏠렸다.신예준도 덩달아 탕비실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손에 든 데이터를 바라보았다.“당장 수정하세요. 더 듣고 싶지 않습니다.”“알겠습니다.”기세가 너무 강한지라 상대도 더 이상 반박할 수 없게 되었다.신예준은 손에 든 서류를 다시 건네주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 층에서 회의를 할 시간이다.그렇게 신예준은 회의실로 유유히 사라졌고 같은 시각, 탕비실 안, 서민규는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커피잔을 바라보았다.우유가 섞인 커피가 여기저기 흘러내리고 강민지는 그의 옷깃을 끌어당겨 그대로 입술을 서민규의 뺨에 들이받았다.서민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완전히 고장 나버렸고 강민지는 뒤로 물러서 바닥에 쏟아진 커피를 바라보며 못내 아쉬워했다.“못 마시겠네요. 아쉽다.”“저, 제가 한 잔 더 타드릴게요. 금방, 금방이면 돼요.”서민규는 달달 떨리는 손가락으로 정신없이 옆에 있는 커피머신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강민지는 오늘 연한 색 립스틱을 바르고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등 무심하지만 여유로운 기색이 역력했다.반면, 서민규는 마침내 커피 한 잔을 더 챙겨 전전긍긍하며 그녀의 손에 가져다주었다.“먼저 마셔요. 오늘 우리 층에서 회의가 있어서 저도 참석해야 해요.”곧이어 서민규는 옆에 있는 걸레를 잡고 바닥에 있는 커피 얼룩을 깨끗이 정리했다.한편, 강민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그의 설명을 들어주었다.“여긴 원두가 별로인 데다 커피 머신도 반자동이라 커피 맛이 좋진 않을 거예요. 혹시 손으로 간 원두커피를 좋아한다면 집에 도구를 갖춰둘게요.”강민지는 확실히 이런 원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슬쩍 물어보았다.“와인 만들 줄 알아요?”“네.”“그럼 다음에 와인 만들어요. 사과와 귤껍질을 넣어서요.”“그래요.”같은 시각, 서민규의 머릿속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버렸는데 한쪽에는 꽃이 만발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그는 또 대걸레를 끌고 다른 한쪽으로 가서 옆에서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