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진은 서주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똑똑하고 무뚝뚝한 상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틀린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대표님 아리 저에게 주세요. 하리 씨가 저에게 맡겼습니다.”서주혁이 아리를 안은 채 한서진을 몇 번 훑어보았다.“그쪽이 어떻게 하리 씨 하리 집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까?”한 남자가 여자 집 열쇠를 소지하고 있고 게다가 둘 다 싱글이라는 점에서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한서진은 순간 실소를 터뜨리곤 대답했다.“대표님께서 무슨 자격으로 저에게 물어보는지 모르겠습니다.”방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인 듯 냉랭해졌다.서주혁은 아리를 껴안은 채 가차 없이 말을 내뱉었다.“나가세요.”한서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경호원히 달려오는 소리였다.서주혁과 강하게 맞선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한서진 쪽이었다.결국 한서진이 자리를 비켰고 아파트 밖에서 기다렸다. 이때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우산을 챙기지 않았으므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차로 돌아갔다.30분 후 몇 사람이 아파트 단지에서 나왔고 단지 입구의 불빛은 비 오는 밤에 더 몽롱하게 느껴졌다.서주혁은 검은 우산을 쓰고 한 손으로는 아리를 안은 채 한정판 고급 차를 향해 걸어갔다.그의 키가 너무 컸으므로 경호원 몇 명 중에서도 눈에 띄었고 그의 트렌치코트는 비정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서주혁은 차 앞으로 가서 아리를 먼저 차에 태웠고 그제야 우산을 걷어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건네주었다.경호원이 공손히 받아 든 후 앞으로 가서 운전석에 앉았다.서주혁이 차에 올라탔고 문이 닫히며 빗속의 흙냄새를 차단했다. 차 안의 온도는 매우 높았고 아리는 가죽 의자에 엎드려 누웠다.배불리 먹었기에 아리는 점점 잠에 들었다.서주혁은 아리를 품에 안고 손끝으로 배를 만지작거렸다.강아지는 따뜻하고 말랑했고 곧 잠에 들었다.조금 바보 같았다.앞좌석의 운전자가 물었다.“대표님 바로 집에 가시는 겁니까?”예전이었
서주혁은 혼인신고서를 잘 보관해 둔 후 아리에게 먹이를 줄 것을 당부했다.그는 아리를 위해 특별히 영양사를 청했다. 집에는 아리 말고도 다른 강아지가 한 마리 더 있었는데, 장하리에게 보내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그 강아지였다. 마침 아리를 데려왔으니 친구가 생긴 셈이다.차를 타고 회사로 가는 길에 명희정이 전화를 걸어왔다.“주혁아, 수연이는 어디로 보냈니?”서주혁은 가족들과의 상의 없이 서수연을 보내버렸다. 핸드폰 번호도 없애버렸기에 그 말고는 서수연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정신과의사한테 보냈어요. 전문적인 선생님께서 돌봐주고 계세요.”“주혁아, 비록 우리가 어화둥둥 키우긴 했지만 그래도 네 친동생인데.”서주혁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수연이 치어죽인 여자애 고작 19살이에요. 막 대학교에 들어간 새내기였다고요. 오빠는 10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이 일로 부모가 40세에 시험관으로 겨우 낳은 아이였어요. 그런데 서수연이 세 번이나 짓뭉개서 죽여버렸어요. 원래대로라면 서수연은 감방에 있어야 했어요. 이런 가정에 돈이 자식들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서주혁은 상대하기도 싫어 바로 전화를 끊고 싶어졌다.이에 명희정이 멋쩍게 화제를 돌렸다.“참, 요즘 네 나이대에 맞는 아이들을 찾아두었으니 틈틈이 만나보려무나.”“됐어요.”“너도 이 나이가 되었는데 사람 좀 만나야지. 네 할아버지께서 그저께 너한테 물어보기까지 했잖아.”“엄마, 저 이미 혼인신고 했어요.”명희정의 심장이 바닥까지 쿵 떨어졌다.”“혼인신고를 했다고? 누구? 어느 집안 애니?”“나중에 다시 알려드릴게요.”명희정은 서주혁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계면쩍게 전화를 끊었다.서주혁은 핸드폰을 한쪽에 던져두고 등을 뒤로 기대었다.괜히 성가시고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가족의 연락에도 대답해 주기가 싫어졌다....하룻밤을 휴식하니 정신이 좀 들었고 성혜인은 강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강민지의 집안일에 관해 묻지 않았
강민지는 이제 전화를 끊고 성혜인과 채팅으로 대화를 나눴다.다행인 것은 성혜인이 그녀에게 강씨 가문에 관한 일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녀 역시 알지 못했다.성혜인은 이제 설우현의 말에 납득했다. 친구들이 도움을 청한다면 무조건 도울 것이고 침묵을 선택한다면 제삼자로서 도울 수는 없었다.모두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어른들이었다.그녀는 강민지의 마지막 메시지에 답장한 후 소파에 기대어 쉬었다.집안의 온도는 쾌적했고 겨울이는 곁에서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혜인은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하지만 설우현이 어찌나 조심스러워하던지 성혜인더러 동물조차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다.하여 성혜인도 어쩔 수 없이 둘째 오빠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강아지들과 거리를 두었다.흰둥이는 여전히 도도했고 덤덤했다.겨울이는 흰둥이를 높은 서열로 인식하고 배를 보이며 꼬리를 흔들었다.성혜인은 베개를 안고 창가에 앉았다. 땅에는 캐시미어 카펫이 깔려 있었다.이 며칠 동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고 밖에서는 큰 눈송이가 휘날렸다. 그녀는 더 이상 반승제의 소식을 묻고 싶지 않았다. 물을 때마다 듣는 소식은 항상 실망스러웠기 때문에.이제 설까지 한 달이 남았다. 그녀는 머리를 베개에 묻고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한편 H국 국경에서는 원진이 배 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서는 총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있다. 이번 화물은 생각보다 운송이 어려웠다.감히 원진을 건드리다니, 범인들은 살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다 죽여.”그가 총알을 장전하려고 하는 찰나, 발밑에 큰 진동이 울렸다.“부르릉, 부르릉”두 번의 폭발 이후 배는 바로 박살 났고 원진은 그대로 바닷속으로 떨어졌다.의식을 차리자 가슴 통증이 강하게 느껴졌다.“움직이지 마요.”누군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며 말을 덧붙였다.“겨우 지혈했어요. 함부로 움직이면 상처가 벌어질 거예요.”원진은 그 사람의 손을 홱 뿌리치고 벽을 짚
“동현아.”김상아가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끌고 나왔다.“우리 집엔 왜 왔니?”동현의 시선은 여전히 침대 위에 있는 남자에게 향했다.남자의 부상은 심각했다. 자기 집에 있는 형보다 훨씬 심해 보였다. 하지만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하리만치 잘생겨서 눈을 뜬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상아 누나, 이 형은 누구예요?”사실 상아 누나와도 5년 만에 만난 것이었다. 김상아는 동현이 6살 되던 해에 해외로 나갔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유학한 대학생이었으며 외국에서 석사도 따냈으므로 마을의 영광이었다.“내 친구야. 동현아. 형이 우리 집에 있는 거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우리 사이의 비밀이야. 알겠지?”동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형이 상아 누나 남자 친구예요?”김상아의 볼이 발그레해졌다.“아직은 잘 몰라.”동현이 웃으며 대답했다.“누나가 형 좋아하는구나! 알겠어요. 함부로 말 안 할게요.”“왜 온 건지 아직 말 안 했어.”“우리 집에 있던 형 상처가 벌어졌어요. 빨리 가서 봐주세요!”김상아가 동현을 문밖으로 밀어내며 대답했다.“알겠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얼른 나갈게.”김상아는 문을 닫고 안방으로 돌아왔다.안방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남성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다.그를 아는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가 반승제임을 모두 알 것이다.김성아가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검사했다.열은 이미 내렸으므로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곧이어 그녀는 반승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를 싣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정말 심장이 쿵쾅대고 짜릿했다.연구기지의 스크린에 반승제의 얼굴이 비쳤을 때, 그녀는 첫눈에 그에게 반해버렸다.그가 8번 실험체와 싸우게 되었을 때 그녀는 줄곧 먼발치에서 묵묵히 지켜보았다.지진이 닥치자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반승제는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고 당황했지만 밀어낼 겨를도 없었다.산사태가 덮쳐 두 사람이 멀리 떠내려갔지만 다행히 김상
원진은 똑똑하고 영민했다. 그는 김상아를 몇 번 훑어보다가 가볍게 시선을 돌렸다.“혹시 휴대전화 있어요? 친구한테 연락하고 싶은데.”김상아는 연구기지에 들어갈 때부터 외부와 연계가 아예 차단 되었다. 그러니 휴대전화도 있을 리가 만무했다.곁에 있던 동현이 제 머리를 콩콩 쳤다.“아빠한테 있는데 고기 잡으러 갔어요. 내일 아침이 되어야 돌아올 거예요.”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고맙다.”동현이 겸연쩍게 머리를 만지작거렸다.“괜찮아요. 형 배 안 고파요? 집에 생선 죽도 있어요! 가져다드릴게요.”원진이 또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친근하게 지낼 줄 몰랐기에 두 마디를 하고는 바로 눈을 감았다.상처를 소독한 김상아가 자리를 떠나려 할 때 동현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누나, 집에 있는 잘생긴 형한테도 생선 죽 주지 않을래요?”김상아는 무의식적으로 원진을 힐끗 보고는 나지막이 대답했다.“동현이. 누나가 다른 사람 앞에서 형 말하지 말랬지? 그 사람은 잊은 셈 쳐.”동현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김상아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떠났다.원진은 주변 환경을 관찰하는 데에 능숙했다.낯선 곳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이 위험하지 않은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었다.이 의사는 분명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보기에 연약해 보이지만 어딘가 이상했다.동현은 원진의 의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생선 죽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형, 드셔요.”“방금 의사 선생님 집에 사람이 있다고? 아는 사람이니?”동현은 겨우 열한 살이고 아직 어린애였기에 숨길 줄 몰랐다.김상아와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기 센 원진에게 밀려 저도 모르게 우물쭈물하게 되었다.“아니... 아니요.”“모르는 사람이라고?”원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자 동현이 대답했다.“네. 마을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잘생겼어요. 형처럼 잘생겼어요. 상아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제 더 묻지 마세요. 상아 누나가 말하지
김상아는 아무 말 없이 항아리 속의 약을 달였다.상훈은 화가 나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너 대답 안 하냐?”상아가 여전히 대답이 없자 그는 반승제가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래. 네가 나랑 이야기하지 않겠다면 안에 있는 그놈이랑 말해봐야겠다. 말하지 않으면 밖에 우물에 처넣어 버릴 테다.”상훈은 집에서 난리를 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내도 그의 가정폭력 때문에 도망간 것이었다. 당시에 학교에서 상아를 돕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도 평생 매를 맞을 운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상아는 집에서 키우는 돼지만도 못하게 아버지를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상아가 그 옛날 제 앞에서 설설 기던 딸이라 생각했다.그가 반승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뒤통수로 나무 의자가 날아왔다.그의 몸이 움찔하더니 그대로 꼿꼿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너... 너...”김상훈은 몸을 부르르 떨며 놀란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상아는 바늘을 꺼내 재빠르게 그의 머리에 꽂았고, 상훈은 순식간에 숨이 끊어졌다.상아는 부뚜막으로 올라가 계속 불을 지피고 약을 달였고 반승제에게 먹인 후에야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김상훈은 마을에서 평판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집에서는 여자를 폭행해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의리를 지켰다.그리고 때로는 밖에서 괴로움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남자들은 특히 체면을 중요히 생각하곤 했다.김상훈과 친한 친구 몇 명이 와서 함께 장례 준비를 돕고 상아를 위로했다.“상아야. 괜찮은 거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상아는 곁에 서서 한숨을 내쉬며 울먹였다.“아빠가 지붕 위에서 떨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그녀의 말에 따르면 상훈은 지붕 기와가 무너져 고치려다가 떨어져 그 자리에 죽었다고 했다.마을에서는 모두 상아가 진료를 해줬으면 해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게다가 엄마가 도망갔고 아빠는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으니 모두 그녀를
넋을 놓고 있던 동현이 알아차리고 대답했다.“네, 네. 그런데 상아 누나가 더 말하지 말라 했어요.”원진이 눈썹을 추켜세우고는 지팡이를 짚고 현장을 돌아다녔다.도와주러 온 사람들은 모두 마을의 원주민이었다. 마을이 너무 외진 곳이었기에 인접한 읍내에 가려 해도 오후 내내 차를 타야 했다.이곳 사람들은 모두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잡은 물고기를 건어로 말려 팔았다.비교적 희귀한 생선이라면 가까운 읍내로 달려가 현지 식당에 판매했다.읍내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여행을 오고 있었으며 이 비싼 해산물은 관광객들에게 특별히 판매되었다.원진의 덩치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다녔다.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동현에게 정체를 물었다.그들 중 대개는 원진의 결혼 여부를 물었는데 그의 기세를 보았을 때 한눈에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동현아, 너희 집에 언제 이렇게 잘생긴 친척이 있었냐?”“우리 집 친척이 아니라 아빠가 물고기 잡으러 갔다가 구해온 사람이에요. 상하 언니 덕분에 살았어요.원진이 상아의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곧바로 상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몸이 아직 좋지 않으시니 당분간 돌아다니지 마세요.”집 내부의 물건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내부는 한눈에 들어왔다.가장 안쪽에는 닫힌 문이 있었는데 동현이 말한 형이 바로 그 안에 있을 것이었다.원진의 생각은 간단했다.그가 이 어촌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부하들도 누군가 구했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그는 아직도 자신을 배신한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만약 방 안에 누워있는 사람이 그의 사람이라면 그는 이 사람에게 일 처리를 맡겨야 했다.하지만 김상아는 아직 숨기고 싶어 했다. 반승제의 몸이 아직 회복 기간이었으므로 당분간 경솔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동현이 집에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산책하러 나왔습니다.”그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러자 동네 아줌마들이 몰려와 결혼은 했
반승제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성혜인뿐이었다.성혜인은 임신한 몸으로 호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하지만 방의 구조로 봤을 때 이곳은 칸다의 단층집 같지 않았다.혹시 귀국한 건가?그는 억지로 몸을 버티고 일어나 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모두 국내 고유의 가구들에 국내 로고였다.확실히 귀국한 듯했다.김상아의 눈빛이 악랄하게 번뜩였고 이때 집 밖에 또 한 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반승제는 점점 이곳이 국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절 국내로 데려왔다고요?”연구기지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귀국을 시키다니 이 사람은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다.마음속으로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겉으로는 차분한 얼굴을 유지했다.“네. 여기는 제 고향이에요. 어촌입니다.”반승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또 물었다.“밖은 무슨 일이에요?”“제 아빠가 지붕에서 떨어져서 돌아가셨어요. 마을 사람들이 장례식 준비를 돕느라 그럽니다. 시끄러워요?”“아니요. 괜찮아요.”보통 사람이라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텐데 그녀의 얼굴은 너무 냉정했다.심지어 시끄러운 것이 아니냐고 물어봤다.보통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새가 있을까?반승제는 한쪽 침대에 기대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아파졌다.“혹시 휴대전화 있어요?”그는 반드시 설기웅에게 연락해야 했다. 혹은 서주혁에라도.반승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낙후된 마을이라도 국내에서 휴대전화 하나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아무래도 이곳이 구금섬처럼 세상과 단절된 곳은 아니니까.사람이 생존하려면 무역 거래를 해야 한다. 무역 거래를 해야 한다면, 휴대전화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그는 억지로 지탱하여 한쪽 벽에 기대고 있었는데, 밖에 사람 소리가 들리자 나가보려 했다.“밖의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있을까요?”김상아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수많은 광경을 상상했다.그러나 반승제가 이미 문 앞에까지 걸어갔기 때문에 더 어찌하지 못했다. 그녀는 옆에 있던 몽둥이를 들고 서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