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진은 서주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똑똑하고 무뚝뚝한 상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틀린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대표님 아리 저에게 주세요. 하리 씨가 저에게 맡겼습니다.”서주혁이 아리를 안은 채 한서진을 몇 번 훑어보았다.“그쪽이 어떻게 하리 씨 하리 집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까?”한 남자가 여자 집 열쇠를 소지하고 있고 게다가 둘 다 싱글이라는 점에서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한서진은 순간 실소를 터뜨리곤 대답했다.“대표님께서 무슨 자격으로 저에게 물어보는지 모르겠습니다.”방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인 듯 냉랭해졌다.서주혁은 아리를 껴안은 채 가차 없이 말을 내뱉었다.“나가세요.”한서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경호원히 달려오는 소리였다.서주혁과 강하게 맞선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한서진 쪽이었다.결국 한서진이 자리를 비켰고 아파트 밖에서 기다렸다. 이때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우산을 챙기지 않았으므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차로 돌아갔다.30분 후 몇 사람이 아파트 단지에서 나왔고 단지 입구의 불빛은 비 오는 밤에 더 몽롱하게 느껴졌다.서주혁은 검은 우산을 쓰고 한 손으로는 아리를 안은 채 한정판 고급 차를 향해 걸어갔다.그의 키가 너무 컸으므로 경호원 몇 명 중에서도 눈에 띄었고 그의 트렌치코트는 비정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서주혁은 차 앞으로 가서 아리를 먼저 차에 태웠고 그제야 우산을 걷어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건네주었다.경호원이 공손히 받아 든 후 앞으로 가서 운전석에 앉았다.서주혁이 차에 올라탔고 문이 닫히며 빗속의 흙냄새를 차단했다. 차 안의 온도는 매우 높았고 아리는 가죽 의자에 엎드려 누웠다.배불리 먹었기에 아리는 점점 잠에 들었다.서주혁은 아리를 품에 안고 손끝으로 배를 만지작거렸다.강아지는 따뜻하고 말랑했고 곧 잠에 들었다.조금 바보 같았다.앞좌석의 운전자가 물었다.“대표님 바로 집에 가시는 겁니까?”예전이었
서주혁은 혼인신고서를 잘 보관해 둔 후 아리에게 먹이를 줄 것을 당부했다.그는 아리를 위해 특별히 영양사를 청했다. 집에는 아리 말고도 다른 강아지가 한 마리 더 있었는데, 장하리에게 보내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그 강아지였다. 마침 아리를 데려왔으니 친구가 생긴 셈이다.차를 타고 회사로 가는 길에 명희정이 전화를 걸어왔다.“주혁아, 수연이는 어디로 보냈니?”서주혁은 가족들과의 상의 없이 서수연을 보내버렸다. 핸드폰 번호도 없애버렸기에 그 말고는 서수연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정신과의사한테 보냈어요. 전문적인 선생님께서 돌봐주고 계세요.”“주혁아, 비록 우리가 어화둥둥 키우긴 했지만 그래도 네 친동생인데.”서주혁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수연이 치어죽인 여자애 고작 19살이에요. 막 대학교에 들어간 새내기였다고요. 오빠는 10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이 일로 부모가 40세에 시험관으로 겨우 낳은 아이였어요. 그런데 서수연이 세 번이나 짓뭉개서 죽여버렸어요. 원래대로라면 서수연은 감방에 있어야 했어요. 이런 가정에 돈이 자식들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서주혁은 상대하기도 싫어 바로 전화를 끊고 싶어졌다.이에 명희정이 멋쩍게 화제를 돌렸다.“참, 요즘 네 나이대에 맞는 아이들을 찾아두었으니 틈틈이 만나보려무나.”“됐어요.”“너도 이 나이가 되었는데 사람 좀 만나야지. 네 할아버지께서 그저께 너한테 물어보기까지 했잖아.”“엄마, 저 이미 혼인신고 했어요.”명희정의 심장이 바닥까지 쿵 떨어졌다.”“혼인신고를 했다고? 누구? 어느 집안 애니?”“나중에 다시 알려드릴게요.”명희정은 서주혁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계면쩍게 전화를 끊었다.서주혁은 핸드폰을 한쪽에 던져두고 등을 뒤로 기대었다.괜히 성가시고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가족의 연락에도 대답해 주기가 싫어졌다....하룻밤을 휴식하니 정신이 좀 들었고 성혜인은 강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강민지의 집안일에 관해 묻지 않았
강민지는 이제 전화를 끊고 성혜인과 채팅으로 대화를 나눴다.다행인 것은 성혜인이 그녀에게 강씨 가문에 관한 일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녀 역시 알지 못했다.성혜인은 이제 설우현의 말에 납득했다. 친구들이 도움을 청한다면 무조건 도울 것이고 침묵을 선택한다면 제삼자로서 도울 수는 없었다.모두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어른들이었다.그녀는 강민지의 마지막 메시지에 답장한 후 소파에 기대어 쉬었다.집안의 온도는 쾌적했고 겨울이는 곁에서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혜인은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하지만 설우현이 어찌나 조심스러워하던지 성혜인더러 동물조차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다.하여 성혜인도 어쩔 수 없이 둘째 오빠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강아지들과 거리를 두었다.흰둥이는 여전히 도도했고 덤덤했다.겨울이는 흰둥이를 높은 서열로 인식하고 배를 보이며 꼬리를 흔들었다.성혜인은 베개를 안고 창가에 앉았다. 땅에는 캐시미어 카펫이 깔려 있었다.이 며칠 동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고 밖에서는 큰 눈송이가 휘날렸다. 그녀는 더 이상 반승제의 소식을 묻고 싶지 않았다. 물을 때마다 듣는 소식은 항상 실망스러웠기 때문에.이제 설까지 한 달이 남았다. 그녀는 머리를 베개에 묻고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한편 H국 국경에서는 원진이 배 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서는 총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있다. 이번 화물은 생각보다 운송이 어려웠다.감히 원진을 건드리다니, 범인들은 살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다 죽여.”그가 총알을 장전하려고 하는 찰나, 발밑에 큰 진동이 울렸다.“부르릉, 부르릉”두 번의 폭발 이후 배는 바로 박살 났고 원진은 그대로 바닷속으로 떨어졌다.의식을 차리자 가슴 통증이 강하게 느껴졌다.“움직이지 마요.”누군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며 말을 덧붙였다.“겨우 지혈했어요. 함부로 움직이면 상처가 벌어질 거예요.”원진은 그 사람의 손을 홱 뿌리치고 벽을 짚
“동현아.”김상아가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끌고 나왔다.“우리 집엔 왜 왔니?”동현의 시선은 여전히 침대 위에 있는 남자에게 향했다.남자의 부상은 심각했다. 자기 집에 있는 형보다 훨씬 심해 보였다. 하지만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하리만치 잘생겨서 눈을 뜬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상아 누나, 이 형은 누구예요?”사실 상아 누나와도 5년 만에 만난 것이었다. 김상아는 동현이 6살 되던 해에 해외로 나갔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유학한 대학생이었으며 외국에서 석사도 따냈으므로 마을의 영광이었다.“내 친구야. 동현아. 형이 우리 집에 있는 거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우리 사이의 비밀이야. 알겠지?”동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형이 상아 누나 남자 친구예요?”김상아의 볼이 발그레해졌다.“아직은 잘 몰라.”동현이 웃으며 대답했다.“누나가 형 좋아하는구나! 알겠어요. 함부로 말 안 할게요.”“왜 온 건지 아직 말 안 했어.”“우리 집에 있던 형 상처가 벌어졌어요. 빨리 가서 봐주세요!”김상아가 동현을 문밖으로 밀어내며 대답했다.“알겠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얼른 나갈게.”김상아는 문을 닫고 안방으로 돌아왔다.안방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남성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다.그를 아는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가 반승제임을 모두 알 것이다.김성아가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검사했다.열은 이미 내렸으므로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곧이어 그녀는 반승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를 싣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정말 심장이 쿵쾅대고 짜릿했다.연구기지의 스크린에 반승제의 얼굴이 비쳤을 때, 그녀는 첫눈에 그에게 반해버렸다.그가 8번 실험체와 싸우게 되었을 때 그녀는 줄곧 먼발치에서 묵묵히 지켜보았다.지진이 닥치자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반승제는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고 당황했지만 밀어낼 겨를도 없었다.산사태가 덮쳐 두 사람이 멀리 떠내려갔지만 다행히 김상
원진은 똑똑하고 영민했다. 그는 김상아를 몇 번 훑어보다가 가볍게 시선을 돌렸다.“혹시 휴대전화 있어요? 친구한테 연락하고 싶은데.”김상아는 연구기지에 들어갈 때부터 외부와 연계가 아예 차단 되었다. 그러니 휴대전화도 있을 리가 만무했다.곁에 있던 동현이 제 머리를 콩콩 쳤다.“아빠한테 있는데 고기 잡으러 갔어요. 내일 아침이 되어야 돌아올 거예요.”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고맙다.”동현이 겸연쩍게 머리를 만지작거렸다.“괜찮아요. 형 배 안 고파요? 집에 생선 죽도 있어요! 가져다드릴게요.”원진이 또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친근하게 지낼 줄 몰랐기에 두 마디를 하고는 바로 눈을 감았다.상처를 소독한 김상아가 자리를 떠나려 할 때 동현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누나, 집에 있는 잘생긴 형한테도 생선 죽 주지 않을래요?”김상아는 무의식적으로 원진을 힐끗 보고는 나지막이 대답했다.“동현이. 누나가 다른 사람 앞에서 형 말하지 말랬지? 그 사람은 잊은 셈 쳐.”동현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김상아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떠났다.원진은 주변 환경을 관찰하는 데에 능숙했다.낯선 곳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이 위험하지 않은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었다.이 의사는 분명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보기에 연약해 보이지만 어딘가 이상했다.동현은 원진의 의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생선 죽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형, 드셔요.”“방금 의사 선생님 집에 사람이 있다고? 아는 사람이니?”동현은 겨우 열한 살이고 아직 어린애였기에 숨길 줄 몰랐다.김상아와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기 센 원진에게 밀려 저도 모르게 우물쭈물하게 되었다.“아니... 아니요.”“모르는 사람이라고?”원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자 동현이 대답했다.“네. 마을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잘생겼어요. 형처럼 잘생겼어요. 상아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제 더 묻지 마세요. 상아 누나가 말하지
김상아는 아무 말 없이 항아리 속의 약을 달였다.상훈은 화가 나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너 대답 안 하냐?”상아가 여전히 대답이 없자 그는 반승제가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래. 네가 나랑 이야기하지 않겠다면 안에 있는 그놈이랑 말해봐야겠다. 말하지 않으면 밖에 우물에 처넣어 버릴 테다.”상훈은 집에서 난리를 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내도 그의 가정폭력 때문에 도망간 것이었다. 당시에 학교에서 상아를 돕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도 평생 매를 맞을 운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상아는 집에서 키우는 돼지만도 못하게 아버지를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상아가 그 옛날 제 앞에서 설설 기던 딸이라 생각했다.그가 반승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뒤통수로 나무 의자가 날아왔다.그의 몸이 움찔하더니 그대로 꼿꼿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너... 너...”김상훈은 몸을 부르르 떨며 놀란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상아는 바늘을 꺼내 재빠르게 그의 머리에 꽂았고, 상훈은 순식간에 숨이 끊어졌다.상아는 부뚜막으로 올라가 계속 불을 지피고 약을 달였고 반승제에게 먹인 후에야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김상훈은 마을에서 평판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집에서는 여자를 폭행해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의리를 지켰다.그리고 때로는 밖에서 괴로움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남자들은 특히 체면을 중요히 생각하곤 했다.김상훈과 친한 친구 몇 명이 와서 함께 장례 준비를 돕고 상아를 위로했다.“상아야. 괜찮은 거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상아는 곁에 서서 한숨을 내쉬며 울먹였다.“아빠가 지붕 위에서 떨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그녀의 말에 따르면 상훈은 지붕 기와가 무너져 고치려다가 떨어져 그 자리에 죽었다고 했다.마을에서는 모두 상아가 진료를 해줬으면 해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게다가 엄마가 도망갔고 아빠는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으니 모두 그녀를
넋을 놓고 있던 동현이 알아차리고 대답했다.“네, 네. 그런데 상아 누나가 더 말하지 말라 했어요.”원진이 눈썹을 추켜세우고는 지팡이를 짚고 현장을 돌아다녔다.도와주러 온 사람들은 모두 마을의 원주민이었다. 마을이 너무 외진 곳이었기에 인접한 읍내에 가려 해도 오후 내내 차를 타야 했다.이곳 사람들은 모두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잡은 물고기를 건어로 말려 팔았다.비교적 희귀한 생선이라면 가까운 읍내로 달려가 현지 식당에 판매했다.읍내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여행을 오고 있었으며 이 비싼 해산물은 관광객들에게 특별히 판매되었다.원진의 덩치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다녔다.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동현에게 정체를 물었다.그들 중 대개는 원진의 결혼 여부를 물었는데 그의 기세를 보았을 때 한눈에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동현아, 너희 집에 언제 이렇게 잘생긴 친척이 있었냐?”“우리 집 친척이 아니라 아빠가 물고기 잡으러 갔다가 구해온 사람이에요. 상하 언니 덕분에 살았어요.원진이 상아의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곧바로 상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몸이 아직 좋지 않으시니 당분간 돌아다니지 마세요.”집 내부의 물건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내부는 한눈에 들어왔다.가장 안쪽에는 닫힌 문이 있었는데 동현이 말한 형이 바로 그 안에 있을 것이었다.원진의 생각은 간단했다.그가 이 어촌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부하들도 누군가 구했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그는 아직도 자신을 배신한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만약 방 안에 누워있는 사람이 그의 사람이라면 그는 이 사람에게 일 처리를 맡겨야 했다.하지만 김상아는 아직 숨기고 싶어 했다. 반승제의 몸이 아직 회복 기간이었으므로 당분간 경솔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동현이 집에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산책하러 나왔습니다.”그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러자 동네 아줌마들이 몰려와 결혼은 했
반승제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성혜인뿐이었다.성혜인은 임신한 몸으로 호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하지만 방의 구조로 봤을 때 이곳은 칸다의 단층집 같지 않았다.혹시 귀국한 건가?그는 억지로 몸을 버티고 일어나 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모두 국내 고유의 가구들에 국내 로고였다.확실히 귀국한 듯했다.김상아의 눈빛이 악랄하게 번뜩였고 이때 집 밖에 또 한 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반승제는 점점 이곳이 국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절 국내로 데려왔다고요?”연구기지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귀국을 시키다니 이 사람은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다.마음속으로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겉으로는 차분한 얼굴을 유지했다.“네. 여기는 제 고향이에요. 어촌입니다.”반승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또 물었다.“밖은 무슨 일이에요?”“제 아빠가 지붕에서 떨어져서 돌아가셨어요. 마을 사람들이 장례식 준비를 돕느라 그럽니다. 시끄러워요?”“아니요. 괜찮아요.”보통 사람이라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텐데 그녀의 얼굴은 너무 냉정했다.심지어 시끄러운 것이 아니냐고 물어봤다.보통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새가 있을까?반승제는 한쪽 침대에 기대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아파졌다.“혹시 휴대전화 있어요?”그는 반드시 설기웅에게 연락해야 했다. 혹은 서주혁에라도.반승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낙후된 마을이라도 국내에서 휴대전화 하나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아무래도 이곳이 구금섬처럼 세상과 단절된 곳은 아니니까.사람이 생존하려면 무역 거래를 해야 한다. 무역 거래를 해야 한다면, 휴대전화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그는 억지로 지탱하여 한쪽 벽에 기대고 있었는데, 밖에 사람 소리가 들리자 나가보려 했다.“밖의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있을까요?”김상아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수많은 광경을 상상했다.그러나 반승제가 이미 문 앞에까지 걸어갔기 때문에 더 어찌하지 못했다. 그녀는 옆에 있던 몽둥이를 들고 서슴지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