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강하랑은 단원혁과 함께 정씨 가문으로 갔다.연바다의 일은 그녀가 간단하게 설명했었기에 단원혁과 단유혁은 그녀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연바다가 그녀를 데리고 갈까 봐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그저 지금 연바다가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인질로 잡고 있어서 두려운 것이었다.황소연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그러나 지금은 먼저 정수환을 만나 뵙는 일이었다.선물은 단원혁이 미리 준비해 두었다.강하랑은 원래 오후에 나가서 정수환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러 가려고 했었다
“가자.”정씨 가문 본가는 보일러를 틀고 있었기에 추운 바깥과 달리 집안은 아주 따듯했다.너무도 따듯하여 창문엔 뽀얀 김이 한층 생겼고 꼭 일부러 반투명한 유리를 설치한 것처럼 보였다.도우미는 얼른 달려 나와 그들의 겉옷을 받아들었다. 이내 거실에선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말이지 자기가 무슨 연예인인 줄 아나? 몇 년 동안 한 번도 오지 않다가 갑자기 찾아오고 말이야. 오랜만에 한 번 찾아왔다고 모든 집안사람이 움직이고. 허, 아주 대단한 인물 납셨네, 납셨어!”그러자 누군가가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오죽하
사실 강하랑은 약간 어색했다.방에 들어오기 전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 어색한 친척이라고 해도 예의는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비꼬는 말을 듣고 나니 잘 해보려는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렸다. 어차피 인사를 하더라도 맏이인 단원혁부터 하는 것이 맞았기에 그녀는 뒤에 가만히 숨어 있었다.‘하늘이 무너져도 키 큰 오빠가 막아줄 거야.’단원혁은 정희연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차에서 가져온 선물을 내려놓기 바쁘게 정희연을 힐끗 노려보더니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안에서 강하랑은 그를 따라가
정수환은 잠깐 강하랑을 바라보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나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더니 진짜 요리 안 한 지 한참 된 모양이구나. 괜찮아, 요리 솜씨는 안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가끔 주방에 들어가 보렴. 가족들이 좋아할 거다.”이렇게 말하며 정수환은 주방에 갔던 두 사람을 불러왔다.장이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정수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음식은 어디에 두고 와서 앉아?”“저도 할아버지 손녀예요. 이 자리에서는 손님이라고요. 손님한테 일 시키는 게 어디
이 말이 나온 순간 사람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지었다.정희연과 장이나는 당연히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밥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어른 먼저 먹기를 기다릴 예의 따위는 없었다.주영숙이 다 편을 들어주지 않았는가? 그런 이상 이번 일은 무조건 강하랑의 잘못이다. 명백히 출국 한 번 했다고 오만해져서 집안 어른을 무시한 강하랑의 잘못이다.다른 사람들의 안색은 전부 좋지 못했다. 특히 정시우가 가장 심했다. 그는 강하랑이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았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들으니 강하랑 본인보다도 기분이 나빴다.정
주영숙은 강하랑에게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금방 귀국한 데다가 서해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아무리 4년 동안 연락 없던 강하랑이라고 해도 피가 섞였는지라 밉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희연을 건드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정희연은 성격이 좋지 못한 데다가 이혼하고 자식까지 딸렸다. 그래도 정희월과 정하성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그녀는 부모와 함께 있을 줄 알았으니 말이다.정희월은 끝까지 고집 려 형편없는 집안에 시집가더니, 지금은 돈 좀 번다고 그녀를 대놓고 무시했다. 정하성은 기를 쓰고 분가하는 걸
정희연은 바로 입을 다물고 주영숙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이번에 주영숙은 급하게 끼어들지 않았다. 정희연이 말실수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정수환이 아직 이렇게 정정한데, 유산을 운운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정수환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은지 물건을 정리하고 멀어져갔다. 식탁에서 정희연은 주영숙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엄마...”정수환이 화난 것은 상관없었다. 그는 원래도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기분 좋을 때마다 용돈을 주는 주영숙이었다.하지만
기분 좋은 식사에 강하랑은 답답하던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다. 부정적인 생각과 기분도 웃음소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특히 칭찬을 하도 많이 들어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칭찬을 싫어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그게 허위적인 칭찬이라고 해도 말이다.더군다나 정하성과 송미현은 빈말 할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칭찬과 걱정은 모두 진심이었고, 밥 먹는 내내 그녀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표했다.아무리 어른 같은 단원혁이라도 해도 두 사람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혼날 때는 혼나고, 칭찬할 때는 칭찬했다.예를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