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환은 잠깐 강하랑을 바라보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나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더니 진짜 요리 안 한 지 한참 된 모양이구나. 괜찮아, 요리 솜씨는 안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가끔 주방에 들어가 보렴. 가족들이 좋아할 거다.”이렇게 말하며 정수환은 주방에 갔던 두 사람을 불러왔다.장이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정수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음식은 어디에 두고 와서 앉아?”“저도 할아버지 손녀예요. 이 자리에서는 손님이라고요. 손님한테 일 시키는 게 어디
이 말이 나온 순간 사람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지었다.정희연과 장이나는 당연히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밥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어른 먼저 먹기를 기다릴 예의 따위는 없었다.주영숙이 다 편을 들어주지 않았는가? 그런 이상 이번 일은 무조건 강하랑의 잘못이다. 명백히 출국 한 번 했다고 오만해져서 집안 어른을 무시한 강하랑의 잘못이다.다른 사람들의 안색은 전부 좋지 못했다. 특히 정시우가 가장 심했다. 그는 강하랑이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았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들으니 강하랑 본인보다도 기분이 나빴다.정
주영숙은 강하랑에게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금방 귀국한 데다가 서해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아무리 4년 동안 연락 없던 강하랑이라고 해도 피가 섞였는지라 밉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희연을 건드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정희연은 성격이 좋지 못한 데다가 이혼하고 자식까지 딸렸다. 그래도 정희월과 정하성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그녀는 부모와 함께 있을 줄 알았으니 말이다.정희월은 끝까지 고집 려 형편없는 집안에 시집가더니, 지금은 돈 좀 번다고 그녀를 대놓고 무시했다. 정하성은 기를 쓰고 분가하는 걸
정희연은 바로 입을 다물고 주영숙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이번에 주영숙은 급하게 끼어들지 않았다. 정희연이 말실수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정수환이 아직 이렇게 정정한데, 유산을 운운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정수환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은지 물건을 정리하고 멀어져갔다. 식탁에서 정희연은 주영숙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엄마...”정수환이 화난 것은 상관없었다. 그는 원래도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기분 좋을 때마다 용돈을 주는 주영숙이었다.하지만
기분 좋은 식사에 강하랑은 답답하던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다. 부정적인 생각과 기분도 웃음소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특히 칭찬을 하도 많이 들어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칭찬을 싫어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그게 허위적인 칭찬이라고 해도 말이다.더군다나 정하성과 송미현은 빈말 할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칭찬과 걱정은 모두 진심이었고, 밥 먹는 내내 그녀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표했다.아무리 어른 같은 단원혁이라도 해도 두 사람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혼날 때는 혼나고, 칭찬할 때는 칭찬했다.예를 들어
강하랑은 평점이 꽤 괜찮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늘솜가와 달리 음식보다는 분위기가 포인트인 레스토랑이었다.음식은 맛있기는 하지만 양이 적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환경은 당연히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다워서 대충 찍어도 인생 사진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인플루언서들이 자주 방문하기도 했다.강하랑은 연바다가 도착하기 전에 음식을 주문했다. 양 적은 음식에 배불리 못 먹기는 싫었기 때문이다.메뉴판을 보니 괜히 인기 많은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디저트는 물론 음료수까지 콜라보로 예쁘게 디자인한 것이다. 미각만큼 시각적 충격도 중요한
“갈까? 가서 내가 준비한 서프라이즈가 뭔지 확인해야지.”연바다는 입가를 닦고 난 뒤 고개를 들어맞은 편에 앉은 여자를 보며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강하랑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두 눈으로 직접 황소연의 안전을 확인하지 못했던 터라 불안하기도 했다.그래서 남자가 입을 열자마자 시간을 더 지체할 것도 없이 얼른 직원을 불러 계산을 했다.심지어 ‘사죄'하러 온 연바다에게 음식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았다. 급했던 강하랑은 자신의 카드로 결제를 한 뒤 겉옷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자!”“하랑이 뭐가 그렇게 급한 거야?”연바다는
진심 어린 사과처럼 들렸다.만약 황소연을 만났더라면 강하랑은 그 진심 어린 사과를 믿고 용서해주었을 것이다.그러나 연바다는 그저 입으로만 사과의 말을 내뱉을 뿐 영원히 행동으로 그녀를 협박하고 있었다.그녀가 지금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의 입에서 또 어떤 위협적인 말이 나오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그가 원하는 대로 하면서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다.강하랑은 연바다를 따라가 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어디인지 모르지만 차는 빠르게 달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이 아닌 번화한 도시로 향했다.두어 걸음만 걸어도 언제 어떻게 위험이 닥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