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 가서 내가 준비한 서프라이즈가 뭔지 확인해야지.”연바다는 입가를 닦고 난 뒤 고개를 들어맞은 편에 앉은 여자를 보며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강하랑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두 눈으로 직접 황소연의 안전을 확인하지 못했던 터라 불안하기도 했다.그래서 남자가 입을 열자마자 시간을 더 지체할 것도 없이 얼른 직원을 불러 계산을 했다.심지어 ‘사죄'하러 온 연바다에게 음식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았다. 급했던 강하랑은 자신의 카드로 결제를 한 뒤 겉옷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자!”“하랑이 뭐가 그렇게 급한 거야?”연바다는
진심 어린 사과처럼 들렸다.만약 황소연을 만났더라면 강하랑은 그 진심 어린 사과를 믿고 용서해주었을 것이다.그러나 연바다는 그저 입으로만 사과의 말을 내뱉을 뿐 영원히 행동으로 그녀를 협박하고 있었다.그녀가 지금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의 입에서 또 어떤 위협적인 말이 나오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그가 원하는 대로 하면서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다.강하랑은 연바다를 따라가 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어디인지 모르지만 차는 빠르게 달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이 아닌 번화한 도시로 향했다.두어 걸음만 걸어도 언제 어떻게 위험이 닥칠
폭죽이 연속적으로 터질 때 강하랑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하랑아, 나랑 결혼해 줄래?”그녀의 눈앞에 서 있던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어디선가 가져온 꽃다발과 예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내밀었다. 공중에선 여전히 아름다운 폭죽이 터지고 있었고 어느새 몰려든 구경꾼들은 호응하고 있었다.연바다가 준비한 사람들 외에 길거리를 구경하던 사람들도 몰려와 두 사람을 구경하고 있었고 저마다 웃는 얼굴로 환호하면서 ‘결혼해', ‘받아줘' 같은 말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었다.공중에선 여전히 폭죽이 터지고 있었고 심지어 드론도
“내 약혼녀 하랑아, 앞으로 잘 부탁해.”마지막인 듯한 폭죽이 공중에서 아주 크고 아름답게 터지고 있을 때 남자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강하랑은 역겨움을 꾹꾹 참으며 억지 미소를 짓곤 연바다와 시선을 맞추었다.“나도 같아. 앞으로 잘 부탁해 내 약혼자.”연바다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강하랑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피해버렸다.그가 억지로 그녀의 고개를 돌려버렸을 때 그녀의 표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언제 돌아갈 건데? 서프라이즈도 봤고, 반지도 꼈잖아. 난 계속 이렇게 서서 사
‘집으로 들어갈 거냐고?'강하랑의 눈썹이 살짝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에 펼쳐진 크고 화려한 별장을 보았다.그녀의 집은 이곳이 아니었다.방금 도심 한복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언론에 기사가 어떻게 났을지 보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아마도 연바다의 프러포즈는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을 것이다.옆에 앉은 남자 때문에 그녀의 가문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방금 가방에서 끊임없이 울려대던 핸드폰만 떠올려 봐도 강하랑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그녀는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가
연바다는 여전히 턱을 괸 채 그녀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뒤 결국 참지 못한 강하랑이 다시 입을 열었다.“연바다, 네 사죄가 이런 거라면 정말 너무 성의 없다는 생각은 안 들어?!”그녀의 말에 연바다는 갑자기 웃어버렸다.“하랑아, 누군가에게 부탁하려면 부탁하는 태도를 보여.”강하랑은 입술을 틀어 물었다.연바다는 몸을 일으키더니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아주 느긋하게 말이다. 그는 꼭 우리에 갇힌 작은 짐승이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눈빛으로 그
강하랑은 영상의 댓글창을 눌러 보기도 귀찮았다.영상뿐 아니라 사실과 다른 썸네일과 멘트만 봐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기분이었다.핸드폰을 가방에 넣은 뒤 강하랑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 안은 아주 조용해 엔진 소리만 들려왔다.가끔 눈을 떠 뒤로 휙휙 지나가는 가로등을 보았다.익숙한 동네가 눈에 들어오자 짜증이 솟구쳤던 강하랑의 마음도 점차 진정되었다.꼭 길 잃은 아이가 드디어 집을 찾은 것처럼 집 근처 익숙한 토스트 가게가 보이자 그녀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집으로 돌아가면 돼.'‘집으로 돌아가
황소연의 입술은 거의 색이 없었다. 발랐던 립스틱은 어느새 지워지고 없었고 더 창백하고 가련해 보였다.황소연은 강하랑의 부축에 따라 소파에 앉았다. 원래는 강하랑의 말에 괜찮다며 대답할 생각이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창고로 끌려간 것만 떠올리면 몸이 떨려와 구역질할 것 같았다.그녀는 얼른 머릿속에서 그때의 장면을 지우려고 했다.강하랑은 그녀에게 물 한잔 떠다 주었다.옆 거실에 있었던 단원혁과 단유혁은 인기척을 듣게 되었다.익숙한 강하랑의 얼굴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단원혁은 바삐 움직이는 강하랑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