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직장 상사만 아니었어도 강하랑은 ‘알면 됐어요.’를 말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 손톱만큼의 이성이, 그리고 힘든 하루를 보냈을 연유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막아준 덕분에 그녀는 담담하게 한숨을 쉬고 나서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아까 음성 메시지도 보냈잖아요. 설마 누가 제 목소리까지 모방하겠어요?”그녀는 빗을 들고 한데 엉킨 머리카락을 그나마 볼만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남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냈다. 지금과 같은 날씨에서는 급하게 머리를 말리지 않아도 되었다.그녀의 말을 들은 연유성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러게
...이튿날, 연유성이 예상한 대로 대표이사실은 많이 변해 있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한 그의 눈앞에는 분주히 대표이사실을 리모델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원래 검은색 테이블이 있던 자리에는 하얀색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다른 물건들은 어디에 갔는지 벌써 사라져 버렸다.다행히 연유성은 단 한 번도 LC그룹을 자신의 회사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래서 사무실에 그의 물건도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회사 서류나 백 번 버려도 상관없는 일상용품뿐이었다.그래서 그는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이 장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연유성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연바다의 옷을 훑어보던 눈빛도 약간 어두워졌다.‘하랑이가 사준 거라... 어쩐지 갑자기 와서 자랑한다 했네.’그의 유치한 모습을 티 나지 않게 비웃은 연유성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당연하지, 하랑이 안목은 틀릴 일이 없으니까.”연바다는 연유성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연유성이 약간 흔들린 것을 발견하고는 안 그래도 위로 휘었던 입꼬리가 더욱 위로 치솟았다.안타까운 척 한숨을 쉬며 그는 연유성에게 말했다.“너도 참 불쌍하지. 이런 복을 놓쳤으니 말이야.”연유성은 머리를 들어 연바다를 바라봤다. 연바
강하랑은 침묵에 잠겼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물음표에 당황했던 것이다.다행히 그녀가 쓸데없는 생각을 시작하기 전에 연유성이 말을 이었다.[Y: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대화창을 열었는데, 사랑 씨가 타자 중이라고 해서 놀랐어요.]연유성의 문자를 보고 그녀는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말이지 얼굴을 마주한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그녀가 자칫 할 뻔했던 쓸데없는 생각은 연유성이 변태처럼 대화창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아... 또 아닌가? 데이트 신청
말을 마친 강하랑은 연유성이 대답하기도 전에 손을 휘적거리며 말을 보탰다.“아니에요! 아무것도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제발.”연유성은 눈썹을 튕겼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때 음식이 올라와서 두 사람 사이에 놓이고, 그는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얼른 먹을까요?”강하랑은 이때다 싶어서 화제를 돌렸다.식탁에는 스테이크와 새우튀김이 있었다. 냄새만으로도 군침이 돌게 하는 향기로운 음식들이었다.연유성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부리나케 새우튀김부터 집는 강하랑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이제야 느긋하게 자기 스테이크를 썰기
자신이 선택한 단어가 실례되는 것 같았는지 강하랑은 연유성이 입을 열기 전에 말을 보탰다.“제 뜻은 LC그룹도 대표님이 열심히 가꾼 회사인데, 기분이 이상하지는 않은지...”“괜찮아요.”강하랑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은 연유성은 그녀가 말을 마치기 전에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만 봐도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반대로 그녀는 연유성의 대답을 믿지 못했다. 공든 탑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빼앗겼는데, 그 속이 오죽하겠는가?아무리 해외에 있었다고 해도 그녀는 서해의 상황에 대해 조금 알았다. 서해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했는
강하랑의 크게 뜬 눈을 보고 연유성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새우회를 힐끗 보면서 대답했다.“회는 주식으로 먹으면 안 돼요. 전에 별로 먹어본 적 없으면 더 안 되고요. 그러다 탈이 날 수도 있어요. 사랑 씨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단 대표님이 저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오늘은 이것만 먹어요.”사실 단이혁은 핑계에 불과했고, 그저 연유성이 걱정돼서 못 먹게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가 병원에 가기를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감기 하나 걸려도 그렇게 힘든데,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 나면 더욱 힘들 것이다.연유성의 말이 맞았
그녀의 기분을 달래듯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차마 거부할 수 없게 했다. 얼굴도 순간 화르르 붉어졌다.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이 자리에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더라면, 아마 그 사람도 다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을 거라고.입을 벙긋거리던 강하랑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머뭇거리다가 헛기침을 내뱉은 뒤 말을 뱉어냈다.“저기... 그건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일단은 앞에 있는 음식부터 먹어요. 음식을 낭비하는 건 아주 나쁜 거라서요.”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머리를 푹 숙인 채 앞접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