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 동네의 모든 건물이 다 강하랑이 찍은 사진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지승현과 같이 한 건물을 통째로 점해 세력을 키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저 예전에 비해 해가 들어오는 곳이 많아졌다는 뜻이다.아무리 해가 잘 들어오는 곳이라도 그늘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늘이 필요한 사람은 기가 막히게 그런 곳을 찾아다닌다. 지승현도 마찬가지다.지승현이 이끄는 집안 사업이 서해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그의 능력에 달렸다. 지금의 상황 또한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잘 몰랐다. 그의 친동생인 지승우도 포함해서
뭐랄까...4년 동안, 연바다와 앨런은 강하랑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물질적으로 한 번도 모자란 적 없이 풍족하게 지내기도 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항상 한 목소리가 말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다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라고 말이다.어쩌면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서 미리 치른 대가일 지도 모르겠다.마음이 불편했던 그녀는 비슷한 경우가 있나 인터넷을 뒤져본 적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부모에게 용돈 받기가 미안하다는 식의 문장뿐이었다.그녀도 집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기는 했다. 연바다에게 고백했다가 차였
“왜? 무슨 문제 있어?”단시혁은 먼저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줬다. 그리고 급하게 그녀를 내리게 하는 것이 아닌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혹시 6층으로는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럴 리가요!”욕심쟁이로 오해받고 싶지 않았던 강하랑은 손사래를 치면서 설명했다.“그, 그냥 놀라서 그래요!”차에서 내린 그녀는 주변을 빙 둘러봤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이번 생에 자가를 마련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한 채가 통으로 제 것이라고 생각하니 약간 비현실적이라서...”“이게 다 뭐라고
“하지만...”강하랑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단시혁이 끼어들었다.“사랑아, 네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 하지만 우리한테는 열쇠를 네 손에 넘겨줄 의무가 있어. 그 열쇠를 다시 우리한테 줄지 말지는 그다음에 선택할 문제야. 중간 과정을 건너뛰는 건 절대 안 돼.”단시혁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도 거절하지 못할 힘이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절대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그의 말을 들은 강하랑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굳이 그래야겠어요?”강하랑은 비
단시혁이 건넨 약품 상자를 보고 강하랑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상자를 받아서 들더니 진지하게 단시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진짜 고마워요.”단시혁이 싫어하는 말이라고 해도, 오늘 이미 감사 인사를 충분히 했다고 해도, 그녀는 꼭 말하고 싶었다. 힘 없는 한마디뿐이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이번에 단시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상자를 건네고 난 빈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씻으러 가.”말을 마친 그는 바로 몸을 돌려서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 더 이상 남아 있는 건 틀
병원에서 나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강하랑의 기분은 줄곧 업된 상태였다.자신의 방이 생겨서, 병원에서 정희월과 깊은 대화를 나눠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상쾌하고 편안했다.이런 감정은 입원 병동에서 막 병원 로비로 내려왔을 때 확 사라졌다.연바다를 만나게 된 것이다.두 사람은 한참 서로 마주 보았다.마침 연바다도 누군가의 병문안을 왔다가 내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다른 엘리베이터를 탄 강하랑과 마주치게 되었다.각자가 탄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1층에 도착하면서 문이 열렸다.걸음
바람은 점점 더 세게 불었다. 어깨에 둘린 겉옷이 당연하게 느껴지게.나오기 전에 단시혁이 그녀에게 물었었다. 겉옷을 하나 챙기지 않겠냐고 말이다. 귀찮았던 그녀는 입원 병동 건물과 주차장 사이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며 그냥 가자고 했다.곰곰이 생각하던 단시혁은 일리가 있음을 느끼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했다.다만 그 누구도 연바다를 여기서 마주쳐 시간을 지체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더군다나 상대는 이미 겉옷을 벗어 강하랑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지금 당장 겉옷을 벗는다면, 그건 연바다에게 꼴을 주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당
한때 시어스를 장악하던 사람이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해서 뭐하겠는가.더군다나 연바다가 말했다시피 그 동네에 지승현이 심어둔 사람이 있다면 도둑으로 몰려 쫓겨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가 아무리 비싼 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오래된 동네의 사람들은 애초에 그게 어느 브랜드 옷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백화점에 입장을 해도 유명한 브랜드가 맞는지도 모를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들은 그저 옷감과 디자인이 일반 옷과 다르다고 느낄 뿐이다.어쩐지.연바다가 그 낡은 동네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머릿속에 상상해보니 강하랑은 저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