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랑은 오래 놀라지 않았다.연바다와 시선을 주고받던 그녀는 갑자기 소파에서 일어났다. 모든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랬다. 그저 사무적인 말투만 남았다.“그러면 어떤 옷으로 바꿔야 하는데.”연바다가 강하랑을 보면서 입을 열려고 할 때,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동안 그들과 함께 한 진정석이었다.연바다는 문을 잘 닫지 않았다. 게다가 꼭대기 층이니 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문이 닫히지 않아서 그저 몸을 약간만 돌리면 문 앞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착각인지 아닌지, 강하랑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침실 문 앞에 선 강하랑은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가장 간단한 예복이었는데 평소에 입어도 우아해 보이는 드레스였다.게다가 강하랑의 얼굴이 원래 이목구비가 또렷한 스타일이어서 이런 긴 드레스는 더욱 잘 어울렸다.어제저녁에 본 초록색 드레스는 마치 푸른 잔디를 누비는 요정 같았고 오늘의 붉은 드레스는 마치 산속에 우뚝 서 있는 공주 같았다. 화장기 없이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급하게 옷을 갈아입느라 머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인지, 강하랑은 묶었던 머리를 풀고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눈
강하랑은 빠르게 방에서 다시 나왔다.그녀는 몸매가 좋았다. 블루 화이트 드레스는 그녀의 싱그러운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퍼프 슬리브는 마침 그녀의 어깨와 팔에 있는 흉터를 가려주어 남들이 보면 깜짝 놀랄 끔찍한 흉터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안방에서 나왔을 때는 진정석이 이미 떠난 후였다. 연바다만 탁자 옆에 서서 붉은 와인을 글라스에 얕게 따라 흔들고 있었다.방안에서의 대화 때문인가. 강하랑이 연바다를 보는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인상을 썼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말투도 좋게 나가지 않았다.“나 다 갈
“딱히 좋은 일이 없다라...”연바다는 그녀의 말을 다시 입안에서 굴려보고는 별안간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그는 눈동자를 다시 그녀에게 돌렸다.“그 뜻은, 단하랑 씨는 나랑 있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뜻이야?”당연한 일 아닌가?그 누구라도 아무 때나 발작하는 미친놈과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만약 조선시대였다면 폭군이라는 칭호가 딱 맞는 사람이다.이런 사람과 같이 있으면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게 당연지사다.게다가 두 시간 전에 그는 그녀의 오빠와 낯선 사람으로 그녀를 협박했었다.다른 사소한 일들은 더
“맞다, 진 교수님은요?”강하랑은 그제야 자기가 음식을 거의 다 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젓가락을 들지 않은 연바다에 비하면, 강하랑은 너무 잘 먹은 것이었다.어색해하면서 강하랑은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다.연바다는 이 레스토랑의 음료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강하랑이 밥을 먹는 사이에 어느새 잔을 절반이나 비워버렸다.강하랑의 말을 들은 그는 시선을 올렸다.“왜, 하랑아. 진 교수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서해시에 온 후, 항상 두 사람이 놀러 다녔다.요 며칠에도 어젯밤만 같이 밥을 먹었을 뿐이었다. 강하랑이
“몸이 안 좋으면 일찍 얘기하지.”연바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깨끗한 손수건을 건네주었다.강하랑의 대답을 듣기 전에 그는 이미 모든 쇼핑백을 내려놓고 옆의 상점에 가서 물 두 개를 사와 뚜껑을 열고 강하랑에게 건네주었다. 강하랑은 생수를 받고 고맙다고 대답했다. 물을 한 병을 다 쓴 후에야 좀 나아진 것 같았다.하지만 토하고 나니 몸이 더욱 허약해져 순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지러워했다.연바다가 건네준 손수건을 꽉 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의식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이 작은 손수건은 그녀가 음식점에서 열심히 알바를 해도 살 수
강하랑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은 여전히 희미했다. 마치 눈 위에 무언가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하지만 정신이 점차 돌아오고 주변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진정석의 목소리 같았다.“위장염 감기예요. 일단 링거부터 맞고 봅시다. 열이 내리면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휴식하면서 맵고 자극적인 음식만 피하면 됩니다.”“언제 나을 수 있는데요?”이건 연바다의 목소리다.강하랑은 눈을 뜨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욕을 읊조리고 싶었다.누구는 아프고 싶어서 아프나. 언제 낫냐고 묻는 건
그 말에 비웃음이 너무 강해서, 강하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가 난 듯 연바다를 쏘아보았다.“나는 그저 열이 났을 뿐이야. 팔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그녀가 이런 어투로 싸울 힘이 있다는 것을 본 연바다는 눈썹을 까딱이고 얘기했다.“지금 네 모습을 봐. 팔다리가 부러진 거랑 뭐가 달라?”“...”강하랑은 침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하여튼, 혼자 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어.”“그래.”연바다는 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드러났다.“그럼 이렇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