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랑은 그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급한 표정의 남자는 그녀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남자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인파를 뚫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 몰랐다. 하지만 남자의 복잡한 눈빛과 마주하고는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그녀도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얼굴만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약간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부르신 건가요?”아침 햇살은 길가의 나무 사이로 남자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리고 강하랑의 목소리는
“그래서...”단이혁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강하랑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넌 지금 연유성이랑 같이 있다고 믿는 거야?”“...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강하랑은 끝까지 고집스럽게 단이혁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팔목을 빼내려고 버둥거리다가 결국 실패하고 몸집을 부풀리는 겁먹은 고양이처럼 말했다.“이거 당장 놔요! 내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요? 계속 안 놓으면 사람 부를 거예요!”강하랑의 반응에 단이혁은 웃음이 나올 따름이었다. 집 나간 잠깐 사이 연바다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바보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단이혁은 강하랑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녀는 무슨 생각하는지 막연한 표정으로 손목을 바라보고 있었다.“도망을 가려면 애초에 따라오지 않았겠지.”강하랑에게서 시선을 거둔 단이혁은 다시 메뉴판을 건네면서 말했다.“먹고 싶은 거 없어? 없으면 내가 알아서 주문한다?”강하랑은 메뉴판을 힐끗 봤다.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 그녀는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네, 알아서 해요.”주변을 쓱 둘러본 강하랑은 결국 단이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별다른 표정 없이 메뉴판을 펼쳐보고 있었다.“그러면 네가 좋아할 만한 거로 주문할게
강하랑은 지금의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럽다는 것만 알았다.강세미가 돌아온 후로부터 그녀는 겉으로만 강씨 가문의 딸이었지, 뒤에서는 얼마나 구박받았는지 모른다. 심지어 부모였던 사람들도 더러운 핏줄을 타고난 재수 없는 년이라고 그녀를 불렀었다.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슬픈 마음은 친부모와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하면서 달래고는 했다. 그런데 그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가족이 진짜로 나타난 것이다.‘나한테 아빠 엄마도 있고, 오빠들도 있었구나.’놀란 건
강하랑은 침묵에 잠겼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말이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빠, 엄마, 오빠 등과 같은 호칭은 그녀의 상상 속에만 존재했었다.그녀의 상상 속에는 강태호보다 좋은 아버지도, 임서화보다 좋은 어머니도 있었다. 물론 마음씨 좋게 그녀를 데려가 풍족하지는 못하더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해준 양부모도 있었다.그러나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했다. 상상이 끝나고 찾아오는 현실이 너무 고달파서 그녀는 언제부턴가 상상도 그만뒀다. 언제든지 깰 수 있는 허망한 상상에 갇혀 고통을 늘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
식사는 아주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계속되었다. 단이혁과 단유혁은 남은 음식을 전부 비운 후 하도 배가 불러서 한참 더 얘기를 나눴다.강하랑은 굳이 집안 상황을 묻지 않고서도 두 사람의 얘기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도 있고, 오빠들도 있고, 친척들도 있었다.물론 그녀를 찾기 위해 가장 바쁘게 돌아친 사람은 단이혁과 단유혁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서해까지 따라온 걸 보면 말이다. 그녀 자신도 가족을 찾기 위해 이토록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을 것 같았다.강하랑뿐만
단유혁은 침묵에 잠겼다. 단이혁이 한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어젯밤 그는 단이혁과 교대로 창가를 지키기로 했다. 혹시라도 연바다가 강하랑을 데리고 야반도주할까 봐서 말이다.하지만 피곤함에 찌든 몸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느덧 단이혁이 강하랑을 찾았다고 문자 보냈을 때였다.비록 그도 꽤 일찍 깨어난 편이지만, 단이혁 혼자 창가를 밤새워 지켰다는 생각에 죄책감부터 들었다. 만약 단이혁이 없었다면 강하랑을 무사히 찾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강하랑이 말이 맞는다고 해도 그가 입
‘우리는 너 혼자 납치범을 만나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이 한마디는 마치 커다란 돌멩이처럼 강하랑의 가슴속에 박혔다. 너무 아파서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잠깐 침묵하다가 힘들게 말을 꺼냈다.“우리... 그냥 떠날까요?”그녀의 시선에는 얼굴에 피멍이 든 지배인이 보였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으면서 조식을 추천하던 그 사람이 말이다.잠깐 사이에 바닥에 엎어져서 원래의 모습은 알아볼 수도 없게 된 그를 보고 그녀는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단이혁과 단유혁의 설득이 없더라도 말이다.‘오빠들이랑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