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랑은 지금의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럽다는 것만 알았다.강세미가 돌아온 후로부터 그녀는 겉으로만 강씨 가문의 딸이었지, 뒤에서는 얼마나 구박받았는지 모른다. 심지어 부모였던 사람들도 더러운 핏줄을 타고난 재수 없는 년이라고 그녀를 불렀었다.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슬픈 마음은 친부모와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하면서 달래고는 했다. 그런데 그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가족이 진짜로 나타난 것이다.‘나한테 아빠 엄마도 있고, 오빠들도 있었구나.’놀란 건
강하랑은 침묵에 잠겼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말이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빠, 엄마, 오빠 등과 같은 호칭은 그녀의 상상 속에만 존재했었다.그녀의 상상 속에는 강태호보다 좋은 아버지도, 임서화보다 좋은 어머니도 있었다. 물론 마음씨 좋게 그녀를 데려가 풍족하지는 못하더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해준 양부모도 있었다.그러나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했다. 상상이 끝나고 찾아오는 현실이 너무 고달파서 그녀는 언제부턴가 상상도 그만뒀다. 언제든지 깰 수 있는 허망한 상상에 갇혀 고통을 늘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
식사는 아주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계속되었다. 단이혁과 단유혁은 남은 음식을 전부 비운 후 하도 배가 불러서 한참 더 얘기를 나눴다.강하랑은 굳이 집안 상황을 묻지 않고서도 두 사람의 얘기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도 있고, 오빠들도 있고, 친척들도 있었다.물론 그녀를 찾기 위해 가장 바쁘게 돌아친 사람은 단이혁과 단유혁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서해까지 따라온 걸 보면 말이다. 그녀 자신도 가족을 찾기 위해 이토록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을 것 같았다.강하랑뿐만
단유혁은 침묵에 잠겼다. 단이혁이 한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어젯밤 그는 단이혁과 교대로 창가를 지키기로 했다. 혹시라도 연바다가 강하랑을 데리고 야반도주할까 봐서 말이다.하지만 피곤함에 찌든 몸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느덧 단이혁이 강하랑을 찾았다고 문자 보냈을 때였다.비록 그도 꽤 일찍 깨어난 편이지만, 단이혁 혼자 창가를 밤새워 지켰다는 생각에 죄책감부터 들었다. 만약 단이혁이 없었다면 강하랑을 무사히 찾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강하랑이 말이 맞는다고 해도 그가 입
‘우리는 너 혼자 납치범을 만나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이 한마디는 마치 커다란 돌멩이처럼 강하랑의 가슴속에 박혔다. 너무 아파서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잠깐 침묵하다가 힘들게 말을 꺼냈다.“우리... 그냥 떠날까요?”그녀의 시선에는 얼굴에 피멍이 든 지배인이 보였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으면서 조식을 추천하던 그 사람이 말이다.잠깐 사이에 바닥에 엎어져서 원래의 모습은 알아볼 수도 없게 된 그를 보고 그녀는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단이혁과 단유혁의 설득이 없더라도 말이다.‘오빠들이랑
어느덧 기분 좋게 불던 살랑 바람이 멈추고, 짹짹거리면서 지저귀던 새들도 날아갔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연바다는 강하랑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하랑이는 내가 누구이길 바라?”연바다의 목소리는 단이혁에게 말할 때와 달리 한없이 다정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이 연유성이기를 바란다면 그냥 연유성으로 살 것 같은 모습이었다.반대로 강하랑은 정답을 알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자신만 우습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이 황당한 현실을 웃는 것인지, 자신의
단유혁의 말이 맞았다. 단유혁의 말이 없더라도 고개만 숙이면 연바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강하랑이 돌아간다고 해서 단이혁과 단유혁이 무사할 거라는 보장은 당연히 없었다. 연유성의 이름으로 그녀를 기만할 정도로 거짓말에 능할 사람을 어떻게 믿겠는가?그녀는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단이혁이 곧바로 말을 보탰다.“단사랑, 유혁이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절대 우리의 걸림돌이 아니야. 우리한테도 너 하나 지켜줄 능력은 있으니까 이쪽으로 와.”운학산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한 번이면 족했다. 단이혁은 강하랑이
“들어가자, 경호원도 전부 데려갈게.”연바다는 다정한 자세로 강하랑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이번에는 장난이 아니야, 믿어줘.”강하랑은 연바다가 그녀의 손을 잡도록 가만히 내버려뒀다. 반항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분고분한 그녀의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연바다는 손을 들어 단이혁과 단유혁을 가로막은 경호원들은 물러나게 했다. 이제는 연바다와 그녀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선 경호원밖에 없었다.머리를 돌리지 않고도 부산스러운 발걸음 소리를 들은 강하랑은 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