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요리가 완성되었든 아니든 북소리만 들리면 무조건 음식에서 손을 떼야 한다.무대 위에 있던 참가자들은 아우성을 지르며 조금이라도 남은 시간에 허둥지둥 음식을 플레이팅을 하면서 최대한 눈으로 보기엔 예쁜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러면 최소한 플레이팅 점수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그리고 어떤 참가자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북소리를 기다려 얼른 평가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마지막 북소리가 들려오고 강하랑의 닭볶음탕도 그릇에 예쁘게 담겼다.남은 세 가지 요리와 해물탕도 이미 그릇에 담겨 있
박재인은 빠르게 포인트를 캐치하였다. 그러자 정수환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젓가락을 계속 움직일 새도 없이 뒷짐을 하더니 재미를 느끼는 얼굴로 박재인을 보았다.“늙은이가 이젠 귀도 먹었어? 아니면 치매라도 걸린 거야? 내가 한 말도 이젠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 네 선배님이 내 외손녀라고. 알아들었어?”박재인은 그대로 굳어버리게 되었다.자동적으로 반박하던 그의 입도 어딘가 고장난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다소 상황을 파악하려는 얼굴로 정수환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강하랑을 보았다.강하랑은 이 순간이 그녀의 예
이덕환은 박재인이 일부러 분위기를 바꾸려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평소처럼 발끈하며 반박하지 않았다.그저 웃기만 했음에도 무언가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얼굴이었다.“예전에 내가 한주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였어. 난 어머니랑 본가에서 지냈었지. 그때 월급은 비록 많진 않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난 꽤 좋았거든. 게다가 어머니랑 같이 사니 매달 남는 돈도 꽤나 되었지. 어머니는 솜씨가 좋았어. 내가 바쁘게 일할 때면 밥 먹을 시간이 없었거든. 그래서 어머니는 번마다 새로운 요리를 해주시면서 도시락을 들고 병원으로
만약 이런 모습으로 죽어서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면 아마 사랑의 회초리를 다시 보게 되거나 십중팔구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이덕환의 감사 인사에 강하랑도 다소 가슴이 먹먹해졌다.그녀는 줄곧 기억 속 그 맛이 아니라는 이덕환의 말에 오기가 생겨 또 만든 것이지만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입술을 틀어 문 그녀는 진정된 듯한 이덕환을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할아버지, 이미 전부 지나간 일이잖아요. 살아 있는 사람은 잘살아야죠. 사람은 계속 과거에 머물고 살 수는 없잖아요. 때로는 앞도 봐야죠. 아닌가요? 할아버지께서 어머
주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평가단으로 참석한 연유성이었다.그리고 또 한 사람은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다.바로 두 달 전에 만난 적 있는 지승현이었다.지승우의 형이자 현재 안성 지씨 가문의 후계자였다.다만... 지승현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헐레벌떡 달려온 거야?”강하랑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정수환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 요리 콘테스트 주최 측은 바로 늘솜가였다. 만약 무언가 소란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신경을 써야 했다.강하랑도 따라 자리에서 일
지승현은 강하랑을 향해 보장했다.필요한 말을 마친 강하랑은 더는 주방에 머물지 않았고 정수환을 따라 나갔다.밖은 아수라장이었다.분명 관객석엔 불길이 없었지만 이미 사람들은 멘붕 상태였고 비명으로 가득했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선 여전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가연성 물질은 이미 다 치워둔 상태였기에 불길이 여기저기 번지진 않았다.카메라도 더는 대회 모습을 담지 않았다. 그저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돌리고 있을 뿐이다.흥미로운 요리 콘테스트는 어느새 속보로 보도되고 있었다.관찰력이 좋은 기자들은 정수환이 나온 것을
연유성의 말에 각종 카메라와 마이크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분명 불길이 활활 타올랐지만, 어느새 카메라를 돌렸을 땐 짙은 검은 연기만 남아 있었고 불길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타오르고 진압되기까지 족히 20분 정도가 걸렸다.20분 만에 불길이 사라진 것이다.심지어 소방대원도 도착하기 전이다.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느끼고 있을 때 강하랑의 부축을 받고 있던 정수환이 앞으로 나섰다.잔뜩 엄숙한 표정을 짓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카메라를 마주 보았다.그는 현장을 둘러보더니 이내
“강하랑, 너 미쳤어?”연유성은 그녀가 화재가 벌어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바로 무의식적으로 강하랑을 잡아당겼다.강하랑은 연유성에게 잡힌 팔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심지어 그 손이 역겹기도 했다.그녀는 팔을 빼내려고 버둥거렸지만, 남자의 힘을 뿌리치긴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가 끌고 가는 대로 질질 끌려갔다.“연유성, 이거 놔! 너야말로 미쳤어?!”그녀는 잡히지 않은 다른 한 손과 발을 움직이며 연유성을 향해 퍽퍽 찼다. 그가 입은 정장이 얼마나 비싼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여하튼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