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혁은 반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어린이와 어른이들을 데리고 북적북적 단시혁의 별장에 도착했다.단홍우가 도착했다는 말에 강하랑은 한창 재미있는 얘기를 주고받던 온마음도 뒷전인 채 부랴부랴 마중 나갔다. 단홍우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려서 그녀의 품에 쏙 안겼다.“우리 단무 너무 사랑스러운 거 아니야? 분유 냄새 나는 걸 보면 아직도 아기네, 아기야~”“단무 아니고 홍우야!”“홍우는 홍당무같이 귀여우니까 홍단무라고 부르게 해줘~”한때 강하랑도 어린 인간을 극혐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대여섯 살짜리 유딩
강하랑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아까 한참이나 훔쳐본 것이 이제야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어색하지 않은 척 밝게 말했다.“하나도 안 무거워. 나 운동 엄청 열심히 해서 홍단무 정도는 가뿐하게 들 수 있어.”단시혁의 말을 들은 단홍우는 무의식적으로 강하랑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가 그녀를 밀어내면서 말했다.“고모, 나 이제 혼자 걸을래. 나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고모는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어. 이제는 홍우가 지켜줘야 해. 어리다고 투정 부리면 안 돼.’단홍우는 이
한주시.저녁 사이 계속된 폭우에 창문은 타닥타닥 빗물에 맞으며 흔들리고 있었다.폭우 속에서 연유성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막연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창가로 가서 야경을 바라봤다.강하랑과 이혼한 후로부터 그는 회사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가끔 본가에 가서 이틀 정도 지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시간을 일하는 데 썼다.꿈속에서 그는 또다시 그녀를 만났다.강하랑.진작 잊어야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하필이면 밤마다 꿈에 찾아와서 그를 이렇듯 괴롭히고는 했다.‘도대체 왜 이
만약 그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생로병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됐든 상대는 가족이었으니 말이다.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어차피 사랑받지 못할 운명이기에 자신의 재력이라도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런데도 밤이 되면 이혼한 아내를 그리워하고는 한다.연유성은 시선을 떨궈 핸드폰을 바라봤다. 핸드폰을 켰다가 끄고, 다시 켰다가 끄고 했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다.‘이런 게 바로 그리움이라는 거야?’그는 유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갖은 핑계를 찾아 한남정에 갈 때, 그리고 더 오래 전 해외에 있던 강하랑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지승우는 문을 열자마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평소 언제나 깔끔한 정장 차림만 보여주던 남자가 오늘은 넋이라도 나간 표정으로 앉아서 산산이 조각난 핸드폰만 오매불망 바라봤기 때문이다.손바닥은 또 언제 다쳤는지 원래의 흉터 위로 다른 상처가 생겼다. 이미 마른 피딱지는 손바닥 가득 붙어있어서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졌다.지승우는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잠깐 주저하더니 지정석으로 가는 게 아닌 연유성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 책상을 똑똑 두드리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괜찮아?”“...”연유성은 아무런
“나도... 나도 몰라.”지승우도 알 길이 없었다. 행여나 연유성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할까 봐 강하랑과의 카톡을 증거로 보여주기도 했다.“이거 봐. 나도 그동안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했는데, 사랑 씨가 전혀 안 속아.”연유성은 그의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갑자기 피식 웃으며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너랑은 말 많이 하네.”그와 하는 대화는 매번 욕이 아니면 선을 긋는 말들이었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면서도 깔끔하게 선을 긋는 말.지승우는 빈정대며 웃는 자신의 친구에 핸드폰을 다시 넣었다.“나도 심심
한식도 있고 서양식 요리도 가득했다. 어떤 음식은 재료 밀키트만 사서 만든 것이었고, 또 어떤 것은 그녀가 아침에 손수 만든 것도 있었다.오빠들이 기상하는 시간대가 제각각이었던 터라 강하랑은 직접 그들의 방으로 올라가 깨우지 않았고 전부 주방 식탁 위에 차려놓곤 그들이 알아서 내려와 먹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리고 지금은 식탁엔 그녀와 단홍우 두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단원혁은 이미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한 상태였기에 그녀는 귀여운 조카 단홍우를 직접 학교까지 데려다줄 생각이었다.단원혁은 일전에 그녀에게 이미 매일 학교 데려다주는
핸드폰 너머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정적이 흘렀다.강하랑은 미간을 찌푸리며 새우만두를 입에 물고는 발신자를 확인했다.아주 익숙한 번호였지만 누구의 번호였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누구세요? 대답 안 하시면 끊겠습니다~”인내심을 잃은 강하랑이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드디어 상대는 입을 열었다.“나야...”낮게 깔린 목소리에선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그럼에도 강하랑은 바로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녀는 믿기지 않았고 이해가 가지도 않았다.오래전에 이미 연유성의 연락처를 삭제했었다. 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