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목소리에 강세미는 몸을 흠칫 떨었다. 조금 전의 기세는 진작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아 감히 문 쪽을 바라보지도 못했다.그녀는 남자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연유성과 결혼하지 못한다면 그녀의 결말은... 죽음밖에 없었다.그날 밤, 남자에게 숨통이 조여질 때의 질식감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숨을 헐떡이게 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어...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나?”가면남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강세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강세미는 스스로 뺨을 때렸다.‘아파!’그리고 황급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가면남이 놓고 간 서류봉투를 확인했다. 서류의 내용을 대충 훑어보고 난 그녀는 청순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표독한 표정을 지었다. 눈빛에도 서서히 독기가 서리기 시작했다.‘강하랑! 역시 강하랑이었어! 강하랑 그년이 내 결혼식을 망친 거야! 한주시를 떠나서도 날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거야!’강세미는 서류를 힘껏 쥐어서 구겨버렸다. 마치 그 종잇장이 강하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강세미가
단씨 가문의 본가도 연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유명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한주와 영호의 역사가 다른 관계로 완전히 다른 특징을 띄고 있었다.산속에 있는 연씨 가문의 본가와 다르게 단씨 가문의 본가는 강가에 있었다. 넝쿨로 장식된 담장 안의 정원에는 오래된 과일나무들이 가득 찼다.언뜻 보면 숲과 같은 정원을 지나면 고풍스러운 별장이 보였다. 하지만 속은 겉과 다르게 모던한 스타일로 인테리어 되었다.정희월과 영상 통화할 때 배경으로만 보던 별장 내부를 직접 보게 되자, 강하랑은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인테리
“오늘은 일단 돌아가세요. 작은 도련님을 찾으면 이나 씨한테도 알려드릴게요. 괜히 여기에 있다가 사모님이랑 만나기라도 하면 두 번 다시 못 올 수도 있어요.”장이나는 잔뜩 서러운 표정으로 걷다가 강하랑이 있는 쪽을 힐끗 봤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뜨면서 우뚝 멈춰 섰다.장이나와 눈이 마주친 강하랑은 당황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단씨 가문의 본가에서 한주시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과 마주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장이나, 그녀는 강세미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장이서의 이복언니 되는 사람이다. 재벌가는 하나같이 사정이 복잡해서 장씨 가
단이혁은 장이나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순간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말했다.“미쳤으면 정신병원에 가든가. 꼴사납게 무슨 짓이야? 그리고 내 어머니는 장 씨가 아닌 정 씨야. 사촌 행세도 정도껏 하고 빨리 비켜. 아주머니, 손님을 보내죠.”말을 마친 단이혁은 강하랑을 데리고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장이나의 체면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장이나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가 또다시 단이혁을 따라가려는데 손목희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면서 말했다.“이나 씨, 이만 나가주세요.”정희월은 장이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
오늘의 저녁 식사 준비에 쓰다 남은 닭고기는 먹기 좋게 손질한다. 닭을 한 마리밖에 사지 않았는지 남은 양이 적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닭도리탕의 영혼은 감자라는 것을...!강하랑은 한참 달그락거리다가 냄비를 꺼내 들더니 고소한 냄새를 제대로 풍기기 시작했다. 단이혁은 가까이 가지 않고 문턱에 기대어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다.‘막내가 한 음식을 계속 먹기만 했지, 이렇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건 또 처음이네. 저 얇은 손목으로 어떻게 무거운 조리 기구들을 드는 거지? 집안에서
올리브유를 한껏 몸에 바른 채 유혹적인 열기를 풍기는 감바스 앞에서 단홍우의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작 배가 고프기 시작했던 꼬맹이가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큰 유혹이었기 때문이다.단홍우는 군침을 꿀꺽 삼키더니 새우를 받아서 들려는 듯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금세 다시 손을 내리면서 티 없이 맑은 눈빛으로 진지하게 말했다.“식사는 다 같이 식탁에서 하는 거라고 아빠가 그랬어. 주방에서 몰래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침을 흘리면서 진지하게 말하는 단홍우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만약 손이 올리브유 범벅이
단홍우가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은 잠깐 멈칫하던 것도 잠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단이혁과 단유혁도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정희월과 만난 뒤로 안색이 좋은 적 없었던 그 단이혁 말이다. 단유혁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항상 포커페이스였던 사람이다.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 이유는 강하랑을 엄마로 삼으려는 단홍우의 천진난만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나게 웃고 나니 가슴이 뭉클한 것도 있었다. 만약 그가 엄마와 함께 자랐다면 어린 나이에 벌써 철들 일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단홍우는 한창 다른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고 뛰어다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