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연유성과 지승우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 온서애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진영선의 도움을 받으며 식사하고 있었다.잔뜩 피곤한 기색의 온서애는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며 식사를 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진영선은 여전히 차분하게 숟가락을 들면서 말했다.“사모님, 조금이라도 드세요. 의사 선생님도 굶으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온서애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머리를 돌렸다.“지금은 입맛이 없어. 나를 신경 쓸 건 없으니까 그냥 치워줘.”금방 정신 차린 온서애는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머릿속에는 이명과 함께 쓰러지기 전에 일어난 일이
아쉽게도 온서애와 진영선은 임서화와 강세미처럼 뻔뻔하지 못했다. 그래서 화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온서애의 건강은 최근 2년 사이에 빠르게 악화하었다. 저혈당에 오래도록 그녀를 괴롭혀 온 출산 후유증 때문에 결국 이번에 화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그래도 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 그녀가 정신을 잃기 직전 강세미 모녀가 범인으로 지목이라도 받을까 봐서 부리나케 도망가던 모습을 말이다. 그런 인간들을 연씨 가문에 들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강진산과 연성철이 친구 사이만 아니었어도 그녀는 강씨 가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
연유성은 태연한 말투로 되물었다. 그리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면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어머니가 저를 위해 반평생을 희생했다는 거 잘 알아요. 그러니 앞으로의 시간은 어머니를 위해 쓰세요. 저한테 자꾸 집착하지 마시고요, 알겠어요? 세미를 집안에 들이는 게 걱정인 거라면 제가 알아서 조절할게요. 그리고 어머니와도 평생 만나지 못하게 할게요. 이 결혼에서 어머니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요. 저만 원하면 되니까요.”“너...!”“이렇게 소리를 지르시는 걸 보면 몸도 괜찮은 거죠? 저와 승우는 아직 저녁밥을 먹지 못해서 이만 돌아갈게
병실에서 나온 연유성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져 감히 그에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뿜어냈다.그는 가슴이 갑갑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이런 느낌은 그가 어릴 때 매번 처벌을 받을 때마다, 매번 하기 싫었던 일을 억지로 할 때마다 느끼던 것이었다.하지만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둡고 좁은 방에 하루 동안 갇히기 일쑤였고 그에겐 도망갈 곳조차도 없었다.억압당해 숨 막히는 느낌은 항상 온서애가 말을 꺼낼 때마다 더더욱 느껴졌고 어린 시절 어둠 속에 갇혔던 기억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더는 병실에 머물고 싶지 않았
그렇게 생각한 지승우는 더 마음이 답답해졌다.“연유성, 넌 애초에 그 여자를 사랑해서 결혼하려는 게 아니야! 난 전부터 이미 눈치채고 있었어. 만약 네가 정말로 그 여잘 사랑했다면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그 여자한테 손도 안 댈 수가 있어? 대체 네가 문제 있는 거냐, 아니면 손대기 싫은 거냐? 넌 그냥 그 여자한테 손끝도 대기 싫은 거야. 그런 결혼이 정말로 오래 유지될 거로 생각해? 제발 정신 차려! 그 여잔 목적이 있어서 너한테 접근하는 거고, 어떻게든 널 위험에 빠뜨리려는 거라고! 넌 정말 눈치를 밥 말아 먹은 거냐?!”
한편 강하랑 쪽.단이혁에 의해 신정동으로 돌아오게 된 강하랑은 이미 전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이미 저녁을 먹긴 했지만,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주는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연유성이 했던 말을 지워버린 그녀는 디저트를 행복하게 음미하고 있었다.물론 온서애가 정신을 잃고 입원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다.디저트를 깔끔하게 먹은 그녀는 바로 온서애에게 전화가 아닌 그저 카톡으로 몇 마디 문자를 보내곤 적지 않은 금액을 담아 계좌로 넣어주었다. 그리곤 급한 일이 생겨 온서애의 병문안을 가지 못한다며 핑계까지 둘러댔다
“이혁 오빠, 잠깐만 조용히 해줘. 전화 받아야 해!”단이혁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순간에 룸미러로 그녀를 다시 확인했다.강하랑은 당연히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손가락을 올려 눈 밑을 당기더니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전화를 받았다.그리고 전화를 받은 지 몇 초 만에 강하랑의 표정이 싸악 굳어지게 되었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이혁 오빠, 세혁 오빠가... 사고 났대...”단이혁은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뭐?”마이바흐의 뒤
강하랑은 입술을 틀어 문 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속상했기 때문이다.영호시로 가려던 계획은 당연히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단세혁의 매니저가 그녀에게 이미 연락을 한 상태였기에 그녀는 아무 일도 모른척 할수가 없었고 직접 두 눈으로 단세혁의 상태를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단이혁과 단유혁은 당연히 같은 생각이었다.어차피 그들은 예정일보다 일찍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기에 미리 연락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애초에 어젯밤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이었고 지금 바로 무영산으로 향해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박재인에겐 연락을 해둬야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