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뱉은 다섯 글자에 연유성의 눈빛은 삽시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강하랑의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선을 지키자고? 강하랑, 우리는 같이 자랐어. 어릴 땐 침대도 같이 썼고, 바지도 같이 입었어. 근데 무슨 선을 지키자는 거야?”“그건 전부 어릴 때 일이잖아.”강하랑은 연유성을 향해 머리를 돌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우리는 이제 성인이야, 그것도 이혼한 성인. 남보다도 못한 사이라고.”“하... 우리가 같이 자라온 세월을 잘못된 3년 때문에 전부 부정하겠다, 이거야?”“연유성, 너 언제까지 이렇게
“강하랑, 너 혹시 나를 걱정하는 거야?”연유성은 차 문을 닫으려던 동작을 멈추더니 머리를 숙여 강하랑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을 얼버무렸다.“나는...”강하랑이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연유성은 피식 비웃으면서 말했다.“아까 선을 지키자고 했던 사람이 누구더라?”연유성은 차가운 표정으로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그 소리에 강하랑은 심장이 흠칫 떨리는 것 같아서 그를 픽 노려봤다.‘어이없어!’강하랑은 속으로 잠깐 투덜대더니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한 번도
진정훈의 아우성에도 병실 문은 매정하게 닫혔다. 그리고 연유성도 단호하게 나가버렸다.“야! 진짜 가는 거냐?!”강하랑은 진정훈의 뒤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강세미가 여기에 입원해 있다면서요. 유성이는 강세미 만나러 갔을 거예요.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서도 같이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요.”진정훈은 몸을 돌리더니 복잡한 눈빛으로 강하랑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태연하게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혹시 시간 있으면 파상풍 주사 좀 놓아줄 수 있을까요? 따로 간호사분한테 연락해줘도 괜찮아요. 내가 아직 할 일이
“회진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진정훈은 멍한 표정으로 강하랑을 바라보다가 만나서 처음으로 훨씬 진정된 말투로 물었다.“하랑 씨 진짜 유성이랑 결혼했다가... 이혼했어요?”“몰랐어요? 강세미 덕분에 다들 인터넷에서 아주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는 일인데 어떻게 몰랐지? 평소에 인터넷 별로 안 하죠?”강하랑과 연유성이 결혼할 때 진정훈은 해외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가십거리를 즐기지 않는 그의 성격으로는 둘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인터넷을 시끄
병원 복도.시끄럽게 울려대던 핸드폰 벨 소리는 어느 순간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끝인가 싶을 때 다시 한번 울리기 시작했다.얼마 후 통화가 드디어 연결되고 전화 건너편에서는 바로 고함이 들려왔다.“연유성!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너 지금 어디 있어? 전화는 왜 또 안 받아?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야. 네가 날 데리고 나와놓고 가게에 혼자 내버려두면 어떡해? 난 몰라, 결제는 네 VIP 카드로 했으니까 당장 데리러 와. 나 차도 없다고!”목소리만으로도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지승우는 언성을 높였다
이번에는 지승우가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머뭇거린 다음에야 말했다.“그게 아니라면 네가 왜 이러는 것 같은데? 사랑 씨만 보면 장난치고 싶다고? 네가 주인 기다리는 댕댕이냐?”“나도 모르니까 너한테 묻는 거 아니야. 넌 여자를 많이 만나봤잖아. 그 많은 경험 다 어디 갔어?”연유성은 실망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지승우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그건...”연유성의 말대로 지승우는 수많은 여자를 만나왔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범주에 있는 남자였기에 연유성의 속사정에 의견을 내기는 어려웠다.지승우가 마침
“누구?”핸드폰에 빠져있던 진정훈은 한참 후에야 그가 누굴 찾는지 알아차렸다.“아, 하랑 씨? 벌써 갔지. 주사 맞고 바로 갔어. 네가 강세미 보러 온 거라면서 나 대신 간다고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갔다고?”연유성의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다리를 다쳤는데 그냥 보냈다고?”진정훈은 연유성이 이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그게 설령 강세미의 이마에 구멍이 났다고 하더라도 연유성은 이런 표정을 지은 적 없었다.복잡한 얼굴로 연유성을 본 진정훈이 말했다.“하랑 씨 다리인데 내가 막을 수 있겠냐? 그리고 너도
“급한 건 아니에요. 그냥 여기 혼자 있으려니 심심해서요. 제가 사랑 씨 차를 몰고 가면 사랑 씨는 이따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시려고요? 차 키는 또 어떻게 돌려드리죠?”“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절 데리러 와주는 사람이 있거든요.”강하랑은 고민하는 그이 모습을 보며 핸드백을 들었다.“그리고 차 키는 말이죠. 혹시 귀찮으시면 퀵으로 보내주셔도 돼요. 제 연락처는 있으시니까요. 만약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여기로 몰고 오셔서 아무 곳에 주차해도 돼요. 다만 주차 딱지만 안 붙게 해주세요!”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차 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