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주절주절 설명하던 강하랑은 혁이들이 또 삐질까 봐 이곳이 어릴 적 지낸 적 있는 곳이기에 강세미를 피해 몰래 숨겨둔 물건들을 보고 싶어서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산길이 위험한 안전적인 이유도 있다고 말을 보탰다.혁이들이 절대 트집 잡을 수 없는 완벽한 설명에 강하랑은 피식 웃었다. 장문의 설명글을 타자하는 데 집중한 그녀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이 열린 다음에야 이상함을 눈치채고 머리를 들었다.예고 없이 시선에 들어온 사람을 보고 강하랑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연유
연유성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강하랑을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말했다.“알았어. 네가 문을 열 수 있으면 당장 꺼져줄게.”이 말을 들은 강하랑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단이혁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을 때 문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도 떠올랐다. 그때는 연유성이 욕실에 있는 줄 몰랐던 때라 그다지 마음에 두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설마... 에이 설마...’강하랑은 머리를 들어 웃음기 서린 연유성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러고는 이를 꽉 악물면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역시나 문은 밖에서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잠시 후 드라이기 소리가 끝나자 강하랑은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던지고 소파에 쓰러졌다. 그러자 욕실에서 나온 연유성의 눈에는 이런 장면이 펼쳐졌다.강하랑은 머리를 소파의 구석에 박은 채 상체를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하체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정말이지 우스운 동작이었다.하지만 연유성은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와 같은 방을 쓰는 것이 그렇게도 싫은지 잔뜩 처져 있는 강하랑의 모습을 보니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장난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연유성은 욕실 문 앞에 잠깐 서 있다가 서서히 강하랑을 향해 걸어갔다.“이만 씻으
신혼 방.만약 연유성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강하랑은 진짜 잊을 뻔했다.강하랑은 머리를 들어 침실을 둘러봤다. 대부분 디테일은 기억 속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아주 선명했다.방안에는 전에는 없었던 드레스룸이 있었다. 옆방과 통하는 벽을 아예 뚫어서 만든 모양이다. 그뿐만 아니라 침대 가에 있는 카펫이 베란다까지 향했다는 것을 커튼이 가리고 있던 탓에 강하랑은 이제야 발견했다.강하랑의 방에는 드레스룸도 없었고 베란다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야 이 방은 그녀가 지내던 방이 아닌, 그녀가 쓰던 물건
두 사람 사이에는 또다시 정적이 맴돌았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강하랑이 먼저 말했다.“진짜 없어? 약간 두꺼워도 상관없는데...”계절은 이미 초여름에 들어섰지만 밤이 되면 아직도 쌀쌀했다. 더구나 연씨 가문의 본가는 산속에 있었기에 저녁에는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했다. 그러니 겨울 잠옷이라도 편하게 입을 수 있을 것이다.‘무엇이든 이 천 쪼가리보다는 낫겠지...’연유성은 침묵에 잠겼다. 그러다 잠시 후 천천히 입을 뗐다.“찾을 수 있는 덴 다 찾아봤어. 안 그러면 그 젖은 옷이라도 입고 나와서 직접 찾아보든가.”연유성은
강하랑은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번쩍이던 번개가 마치 끝나기라도 한 듯이 잠잠해질 무렵 다시 입을 열었다.“강세미 번개 무서워하잖아.”강하랑의 한 마디는 오래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그날은 연성철의 생일, 모두가 연씨 가문의 본가에 모인 날이었다.연성철은 강세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생일 찬지를 여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은 친한 사람만 불러서 짧게 식사만 하고 끝내는 자리였다. 강하랑도 물론 초대받았다.그때 강세미와 연유성은 서로 정식으로 만나기로 한 상황이었다. 하
연유성은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본가의 오래된 전기 시스템은 진작 번개를 이기지 못하고 정전됐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베란다를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었다.창밖의 희미한 빛이 방안을 비추자 연유성은 그나마 방안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강하랑은 이불 안에 몸을 숨긴 채 우렛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흠칫 떨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편히 잠든 모습은 아니었다.“강하랑...”연유성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불을 들어 올렸다. 강하랑이 그대로 질식사하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불 안의 상황을 목격한 순간 그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강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유성의 팔을 더욱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그를 자신의 곁에 눕힐 기세로 말이다.어느덧 창밖의 우렛소리가 잦아들고 빗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연유성은 몸을 비스듬히 기운 채 강하랑을 바라봤다. 그러다 그녀의 흉터를 차마 계속 볼 수가 없어서 손을 뻗어 셔츠를 올려줬다.따듯한 손길이 어깨에 닿은 순간 강하랑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새에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뭐 하는 짓이에요?!”연유성의 손은 아직도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대로 강하랑과 시선이 마주친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