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방.만약 연유성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강하랑은 진짜 잊을 뻔했다.강하랑은 머리를 들어 침실을 둘러봤다. 대부분 디테일은 기억 속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아주 선명했다.방안에는 전에는 없었던 드레스룸이 있었다. 옆방과 통하는 벽을 아예 뚫어서 만든 모양이다. 그뿐만 아니라 침대 가에 있는 카펫이 베란다까지 향했다는 것을 커튼이 가리고 있던 탓에 강하랑은 이제야 발견했다.강하랑의 방에는 드레스룸도 없었고 베란다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야 이 방은 그녀가 지내던 방이 아닌, 그녀가 쓰던 물건
두 사람 사이에는 또다시 정적이 맴돌았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강하랑이 먼저 말했다.“진짜 없어? 약간 두꺼워도 상관없는데...”계절은 이미 초여름에 들어섰지만 밤이 되면 아직도 쌀쌀했다. 더구나 연씨 가문의 본가는 산속에 있었기에 저녁에는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했다. 그러니 겨울 잠옷이라도 편하게 입을 수 있을 것이다.‘무엇이든 이 천 쪼가리보다는 낫겠지...’연유성은 침묵에 잠겼다. 그러다 잠시 후 천천히 입을 뗐다.“찾을 수 있는 덴 다 찾아봤어. 안 그러면 그 젖은 옷이라도 입고 나와서 직접 찾아보든가.”연유성은
강하랑은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번쩍이던 번개가 마치 끝나기라도 한 듯이 잠잠해질 무렵 다시 입을 열었다.“강세미 번개 무서워하잖아.”강하랑의 한 마디는 오래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그날은 연성철의 생일, 모두가 연씨 가문의 본가에 모인 날이었다.연성철은 강세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생일 찬지를 여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은 친한 사람만 불러서 짧게 식사만 하고 끝내는 자리였다. 강하랑도 물론 초대받았다.그때 강세미와 연유성은 서로 정식으로 만나기로 한 상황이었다. 하
연유성은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본가의 오래된 전기 시스템은 진작 번개를 이기지 못하고 정전됐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베란다를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었다.창밖의 희미한 빛이 방안을 비추자 연유성은 그나마 방안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강하랑은 이불 안에 몸을 숨긴 채 우렛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흠칫 떨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편히 잠든 모습은 아니었다.“강하랑...”연유성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불을 들어 올렸다. 강하랑이 그대로 질식사하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불 안의 상황을 목격한 순간 그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강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유성의 팔을 더욱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그를 자신의 곁에 눕힐 기세로 말이다.어느덧 창밖의 우렛소리가 잦아들고 빗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연유성은 몸을 비스듬히 기운 채 강하랑을 바라봤다. 그러다 그녀의 흉터를 차마 계속 볼 수가 없어서 손을 뻗어 셔츠를 올려줬다.따듯한 손길이 어깨에 닿은 순간 강하랑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새에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뭐 하는 짓이에요?!”연유성의 손은 아직도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대로 강하랑과 시선이 마주친 그는
연유성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못 믿겠으면 여기 좀 봐봐. 네가 지내던 방이잖아? 여기에는 나쁜 사람이 없어.”강하랑은 연유성의 말에 따라 주변을 빙 둘러봤다. 그리고 잔뜩 힘을 줬던 몸에 드디어 힘을 약간 풀었다. 하지만 경계 태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보다는 나아졌을 뿐이다.“내가 지내던 방...”강하랑은 영혼 없는 목소리로 연유성의 말을 반복하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연유성도 약간은 마음을 놓으면서 말했다.“그래, 네가 지내던 방. 나쁜 사람은 없어, 너를 때릴 사람
연유성은 그대로 침대 아래에 떨어졌다. 다행히 그가 어젯밤 펴놓은 이불이 있었던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가 깜짝 놀란 그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어젯밤 일어났던 일을 인지하지 못한 강하랑은 당당하게 언성을 높였다.“연유성, 너 진짜 미쳤어? 바닥에서 못 자겠으면 그냥 말하지, 왜 몰래 기어 올라와?”연유성은 고개를 들어 강하랑을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기어 올라갔다고? 강하랑, 너 또 필름 끊겼냐?”화가 났던 연유성은 강하랑과 말도 섞기 싫어서 그냥 욕실에 들어가 버렸다.
“오른손 조심하라고 했지. 혹시 손을 절단하고 싶은 거면 그냥 못 들은 거로 하고.”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강하랑은 연유성의 오른손을 잡고 내렸다. 그러고는 서랍을 힐끗 보다가 청색 넥타이를 꺼냈다.“이거로 해.”연유성의 정장은 아주 기본적인 디자인의 정장이었다. 그래서 넥타이도 화려한 것이 아닌 기본적인 것이 어울렸다.연유성은 강하랑이 고른 넥타이를 살짝 만져봤다. 그리고 촉감이 꽤 좋아서 흔쾌히 받아 들었다. 하지만 곧장 강하랑에게 다시 건네줬다.강하랑은 이해가 안 가는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왜?”“오른손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