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은 반사적으로 이준혁을 바라보았다.남자가 그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즉시 이해했다.“우리는 경찰 쪽에서 알려준 소식을 논의하고 있었어요. 당시 바닥에 주사기가 있었는데, 우리는 임세희가 누군가를 해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추측했죠.”윤혜인은 반신반의하며 뭔가 더 물어보려 했지만, 이준혁은 김성훈에게 가라는 눈짓을 했다.그녀는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앞으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남자의 팔을 보니 붕대가 붙어있어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그때 꽤 많은 피가 흘렀던 것을 기억하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 “팔은 어때요, 아직 아파요?”이준혁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리며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날 걱정하는 거야?”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자성적이어서 듣기만 해도 귀가 임신할 것 같았다.윤혜인의 얼굴이 제어할 수 없이 약간 달아올랐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오늘 또 그녀를 도와줬으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이준혁은 마음속에서 만족감이 올라오며 갑자기 이 한 칼이 꽤 가치 있었다고 느꼈다!최소한 이 작은 여자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낮게 말했다.“괜찮아, 작은 상처일 뿐이야.”윤혜인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작은 상처라니, 그렇게 많은 피가 났는데......”“팔꿈치로 막아서 표피만 찢어졌어. 꿰맬 필요도 없고 상처가 아물기만 하면 돼.”이준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새하얗고 부드러운 볼을 꼬집었다. “더 이상 걱정하지 마.”윤혜인은 그가 꼬집는 바람에 귀가 뜨거워졌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피하며 얼굴을 붉히고 불편한 듯 말했다. “누가... 걱정했다고요.”이준혁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정말 걱정 안 해?”남자는 그녀를 꿰뚫어 본 듯한 말투였다!윤혜인은 약간 불쾌해하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네.”이준혁은 그녀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자신을 보지 않으려는 모습이 점점 더 귀여워 보였다.그는 손을 뻗어 여자의 턱을 살짝 잡고 자신
그리고 자신의 귀도 점점 더 뜨거워졌다.그녀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것을!몸이 저릿저릿해서 날아갈 것 같았다.남아있는 한 줌의 이성으로, 윤혜인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그녀는 당황스럽게 말했다.“준혁 씨, 이러지 마요...”이준혁의 아름다운 손가락은 여전히 그녀의 부드러운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놓고 싶지 않아 했다.“어떻게... 하지 말라고?” 남자의 목소리는 쉬어있고 욕망으로 가득 찼다.이 사람, 어쩜 또 이렇게 나쁜 거야!윤혜인은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그를 상기시켰다, “여긴 밖이에요.”이준혁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집이라면, 할 수 있는 거야?”“...”윤혜인은 그의 말에 놀라 멍해져서, 잠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이준혁은 그녀의 멍한 표정을 보고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이때, 김성훈이 안에서 나왔다.“문제 없어...”그가 보고서를 들고 말을 하다 말고, 눈앞의 광경을 보고 갑자기 멈춰 섰다.그리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두, 두 사람 계속해요!”김성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윤혜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얼굴이 새빨개졌다!“다, 당신 이 손 놔요!”그녀는 남자의 단단한 가슴을 한 번 때리고는 부끄러워 울 것 같았다.이준혁은 그녀가 특히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놀리지 않고 손을 놓아 그녀가 똑바로 서게 했다.윤혜인은 얼굴이 빨개져서 화가 나 말했다. “여기서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여기서 하지 말라고요!”그녀는 방금 전 김성훈의 표정을 생각하니 너무 창피했다!앞으로 어떻게 김성훈을 마주치나...“미안해, 내 잘못이야. 다음에는 꼭 주의할게.” 이준혁이 약속하자, 윤혜인의 눈꺼풀이 떨렸다.“무슨 다음이에요!”남자는 바로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이후, 윤혜인은 정말 김성훈을 다시 볼 면목이 없었다.이준혁이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물어보는 동안, 윤혜인은 차에 올라
윤혜인은 그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았지만, 왜 화가 났는지는 몰랐다.그녀는 조용히 물었다.“왜 화가 났어요?”이준혁은 어이없어 웃었다.자신이 한참 화가 나 있었는데, 주범은 왜인지도 모르고 있다니!“넌 항상 우리 사이를 부정하잖아!”윤혜인은 조금 이해가 갔다.“5억 원을 돌려드려서인가요?”“그래, 우린 부부잖아. 내가 네 삼촌에게 얼마를 주든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윤혜인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뒤로 물러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감정이 무겁게 담겨 있었다.“난 적어도 내일까지는 널 보지 않고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해도 지기 전에 이미 견디기 힘들었어. 회의가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도 내 한계를 넘어섰지.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약하다는 걸 깨달았어.”남자는 살짝 웃었다. 마치 자신의 나약함을 비웃는 것 같았다.이런 고백에 윤혜인의 눈꺼풀이 떨렸다.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또한 이렇게 부드러우면서도 강압적인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다.잠시 침묵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밤, 고마웠어요.”그가 그녀를 도왔고, 심지어 상처까지 입었으니 그에게 감사를 표해야 했다.이준혁의 열렬한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어떻게 감사할 거야?”“네?”이준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눈 속에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나한테 고맙다며.”윤혜인은 그의 시선에 심장이 한 박자 뛰었다.“뭘 원해요?”이준혁이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빛은 매우 뜨겁고 강렬했다.보기만 해도 그런 의미였다...윤혜인의 얼굴이 순간 새빨개졌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그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이준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한테 밥 해줘.”“뭐라고요?”“네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싶어.”윤혜인은 그의 요구가 이렇게 간단할 줄 몰랐다.그녀는 거의 믿기지 않았다.그가 이 기회를 이용해 부끄러운 요구를 할 줄 알았는데.“그게 다예요?”
부족하단 말도 안 했는데 꼭 제가 뭘 더 바라는 것처럼 충분하냐 물어오는 이준혁에 윤혜인이 대답했다.“됐다고요!”어이없는 감정을 담아 소리치려고 했는데 이미 감각이 사라져버린 입술에 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아 오히려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이준혁은 빨개진 윤혜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했다.“이 제안이 별로 맘에 안 드나 봐?”뒤에 놓인 의자 등받이에 더 피할 것도 없었던 윤혜인은 그냥 가만히 이준혁이 다가오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여기서 할 수 있는 대답도 하나밖에 없었다. 싫단 말을 했다가는 또 다리가 풀릴 때까지 입술을 맞춰 올 이준혁을 알기에 윤혜인은 고집을 꺾고 울먹이며 말했다.“좋아요, 좋다고요...”“좋아도 더는 안 돼, 내가 무섭거든.”이준혁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윤혜인의 귓볼을 살짝 깨물었다.“내가 널 집어삼켜 버릴까 봐.”“...”차는 마침내 서호 별장에 도착했다.불어대는 바람에도 윤혜인의 얼굴은 계속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이준혁이 말로는 더 안 한다고 했지만 그 뒤에도 자신이 한 말은 까맣게 잊은 채 오래도록 입을 맞춰온 탓이었다.그리고 그의 몸도 덩달아 반응하고 있었기에 윤혜인은 부끄러워서 이준혁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하지만 윤혜인과 달리 이준혁은 기분이 아주 좋았고 마음도 너무 편했다.별장 앞에 도착한 이준혁은 차에서 내려 윤혜인을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는 낮게 말했다.“혜인아, 이제 나 밀어내지 말아줘...”“나는...”윤혜인이 대답을 망설이자 이준혁은 그녀를 재촉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천천히 생각해보고 대답해도 돼.”자신이 원하지 않는 대답을 듣게 될까 두려워서였다.저녁에 침대에 누운 윤혜인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지금 둘 사이가 화해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너무 헷갈렸다.화해했다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화해를 안 했다기엔 안고 키스하고 연인 사이에서 할 법한 일들은 다 한 것 같았다.그렇게
침대 주위로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모두 선명한 색감을 한 고급진 비단이었다.주인이 얼마나 아끼고 공을 들였는지 알리는 장식이었다.원진우는 다정한 눈빛으로 소아를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그녀의 머리칼을 넘겨주었다.그때 누군가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와.”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흰색 가운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는 원씨 가문 주치의 진우희였다.진우희는 침대 옆에 앉아있는 원진우를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사모님 침은 지금 놔드릴까요, 아니면 나중에 할까요?”“지금 해.”“네.”원진우가 자리를 비켜주자 진우희는 침 치료를 위한 수건부터 깔고 머리 안마를 시작했다.진우희의 손길은 세심했고 조심스러웠다.윤아름에게 이 안마를 해준지도 오래되었는데 진우희는 아직도 윤아름의 미모에 아찔해 났다.정말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오는 얼굴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더 성숙해져 우아해 보이는 얼굴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홀릴 만한 미모였다.이렇게 예쁘니 원진우가 지하 성에 몇 년 동안 가둬만 두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진우희는 천천히 침을 정수리 두피에 꽂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정확히 혈 자리에 꽂아 넣고 있었다.진우희가 이 일을 해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원진우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사실 원진우는 윤아름을 그 누구에게 맡겨도 다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30분쯤 지나고 진우희가 침을 빼기 시작할 때 원진우의 핸드폰이 울렸다.“삼촌.”원지민의 전화였다.“응.”원진우는 전화를 받을 때도 시선만은 윤아름에게 고정하고 있었다.“전에 침 치료하면 얼마나 간다고 했었죠?”“사람마다 달라. 한 달인 사람도 있고 세 달인 사람도 있어.”“마지막 하나까지 다 넣으면 정말 삼촌이 말한 대로 그렇게 돼요?”원진우는 가소롭다는 듯 얕게 웃고는 말했다.“너는 아직도 너무 여려. 역시 여자라 이건가.”“나는 그냥...”인내심이 크지 않았던 원진우는 원지민의 말을 끊었다.“됐어, 나는 네 아빠처럼 널 하나하나 가
진우희는 갑자기 전에 경호원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원진우에게 두 번째 경고를 받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었는데 얼마 뒤에 한 낚시꾼에 의해 몸의 절반이 잘려나간 채로 발견됐다는 소문.얼굴에도 물집이 가득 올라와 신원 확인도 겨우 했는데 확인하고 보니 발견된 시체가 원진우 집에서 사라진 사람이었다는 끔찍한 소문이 하필 지금 떠올랐다.그걸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경호원들이 결국 절반 짜리 시체를 사서 묻어주었다고 했었다.지금 원진우가 진우희를 향해 저런 말을 했다는 건 두 번째는 경고로 끝나지 않을 거란 소리였다.그 공포에 아까 하려던 말도 다 잊어버린 진우희는 몸을 떨어대며 감히 원진우를 올려다보지도 못했다.“나가 당장.”나가라는 원진우의 명령에 다급히 일어나 뛰쳐나가던 진우희는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하며 보는 사람까지 안쓰럽게 했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진우희는 문을 닫는 건 잊지 않았다.문이 닫히자 원진우는 바로 바닥에 꿇어앉아 윤아름의 손을 무슨 보물이라도 된 양 끌어안고는 이미 다 말라버린 핏자국에 입을 맞췄다.원진우의 그 다정하면서도 우울한 표정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상했다.한편 지하실을 빠져나온 진우희는 아직도 아까의 상황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아까 진우희가 침을 뺄 때 분명 윤아름의 손가락이 움직였었다.5년 전 베란다에서의 추락사고 이후 원진우가 중의 서의 다 부르며 온갖 치료를 해보아도 전혀 깨어날 기미가 안 보여 이번에는 원진우가 진우희에게 침 치료를 부탁한 것이었다.물론 진우희가 치료를 시작한 뒤에도 상태가 딱히 나아지진 않았지만 원진우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그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본 건가 싶었지만 진우희는 이 사실을 바로 원진우에게 알릴 수가 없었다.만약 그냥 잘못 본 걸 사실처럼 말했다가 마지막 기회도 날려버리고 그 남자처럼 물고기 밥이 되긴 싫었기 때문이다....회사 안.자신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소원은 아직도 육경한이 보낸 사람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었다.그때 커피
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 바로 치마 단추 위에 손을 얹었다. 마치 다음 순간 바로 치마를 벗어 낼듯한 모양새였다.경호원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이마, 등 할 것 없이 온몸에서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감히 어떻게 육 대표의 여인에게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팔이 잘려 나가도 할 말이 없게 될 거다.이미 대표가 놀다 만 여자는 물론, 놀다 망가져 버린 여자라 하더라도 쉬이 손을 댈 수는 없었다.육 대표의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경호원은 소원이 치마를 벗어 던지기 전에 당장 도망치듯 ‘쿵’ 하고 문을 닫았다.소원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그녀는 흐르는 물에 대충 몇 번 몸을 적시고 수건을 두른 채 바로 벽 사이에 감춰진 스위치를 눌렀다.그러자 눈앞의 벽이 천천히 뒤로 회전했다.비스듬히 몸을 틀어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에는 한 칠판과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엮인 관계망, 수 없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소원은 들고 있던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았다.오늘 아침 육경한의 별장에서는 급한 나머지 타이틀밖에 확인하지 못했기에, 다른 내용은 그대로 카피해 온 것이었다.USB 메모리가 열리고 그 안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시원 그룹 이사 아들의 음란한 사생활이 찍힌 사진과 영상이 여럿 들어있었다.‘그와 몇몇 여인의 사진, 같이 찍힌 것도…’소원은 육경한이 신중한 성격이라는 것을 쭉 알고 있었다.그가 타인에 대한 불신을 생각하면, 깊은 협력관계인 상대와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꼭 몇 가지 약점을 잡아두었을 것이다.보다시피 이것들은 그가 모은 스캔들임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그가 직접 기획한 것일지도 모른다.이 사진들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상대 가문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주식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이미지에도 영향 있을 게 분명하다. 특히 방씨 가문의 둘째 할아버지는 정부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니, 집안에 이러한 스캔들이 일어나는 것을 가만 놔둘 수 없을 것이다.소원은 좋은
“고를 건 없지, 네가 만든 거라면 다 좋아.”“그럼, 언제 드실 건데요?”이준혁은 혜인이 브로콜리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모습에 시선이 뺏겼다.“내일 밤, 괜찮아?”내일 아침의 회의만 아니었어도 지금 당장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정말, 정말, 빨리 보고 싶었다.혜인은 고민했다. 내일 오후에는 약속대로 정해진 시간에 약을 전해주러 가야 한다.금오구는 북쪽의 한 동떨어진 곳이다. 오가는 데에 대략 한 시간 조금 더 되는 시간이 든다.오후 안에는 문제없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일 저녁에 봬요.”이준혁은 기분이 들떴다.그는 혜인의 작은 입을 보며 말했다.“너 입…”“왜요?”윤혜인은 입에 뭔가 묻었나 싶어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살폈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귀 이쪽에 대봐. 알려 줄게.”혜인은 정말로 자신의 입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긴장하면서 핸드폰에 귀를 갖다 댔다.그러자 남자의 박하 맛 사탕이 녹아내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입 맞추고 싶게 생겼어…”혜인은 단숨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곁에 사람도 많은데 이게 무슨 꼴인가!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상황이, 둘은 지금 열애 중인 커플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혜인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여기 사람도 많은데…”이준혁이 웃음기를 감추지 못한 채 대답했다.“그래서 너에게만 들려줬잖아.”남자의 얼굴은 스크린 속에서도 이미 홀릴 만큼 보기 좋았다.혜인은 심장이 쿵쿵거렸다.노루처럼 날뛰는 심장에, 어디선가 달콤한 느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이제 일 하러 가야 돼요.”혜인이 급히 말을 돌렸다.이준혁은 얼굴을 붉힌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팔 그쪽은 그래도 조심해야 하니까…”무의식중의 관심이 입 밖으로 나왔다.혜인이 순간 멍해졌다.이준혁도 순간 놀란 기색이었다.이윽고, 그는 깊은 눈빛으로 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더 키스하고 싶어졌어.”“…”
하지만 쉽게 인정할 이지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리어 육경한을 비난하며 말했다.“경한아, 우리 모녀를 돕지 않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를 모함하면 안 되지. 나는 너희 집에 빚진 게 없어.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그래서 그 여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여자를 위해 우리 연주를 희생시키면 안 돼. 너도 어릴 때부터 연주를 봐왔었잖니? 그런데 진짜로 감옥에 들어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거야?”이지애는 말을 빙빙 돌리며 돈을 빌린 것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다시 육경한의 탓을 하는 이지애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사실 이 돈은 조사하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그때 개업한 미용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엄마 돈으로 한 거잖아요. 누나,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육경한의 말에 이지애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일부러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경한아, 그때 미용원을 연 것은 네 엄마의 뜻이었어. 나는 단지 네 엄마를 도운 것뿐이야. 나중에 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도 큰 충격을 받았잖아. 그때 미용원도 파산 직전이었어. 그때는 네가 이 난장판을 처리할 겨를이 없어서 내가 대신 맡은 거야.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인데 너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니?”이지애의 임기응변 능력은 진짜로 일반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말에 속았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겪은 육경한은 이지애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사람은 역시 욕심에 눈이 먼 동물이었다.이지애의 현재 모습은 정말 탐욕스러웠다.하지만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지애는 육경한의 도움이 있어야만 육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경한아, 미용원을 돌려받고 싶으면 바로 줄게. 내가 여러 해 동안 운영해 왔지만 사실 다 네 엄마를 대신해서 한 거야
“경한아, 누나가 예전에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잊은 것은 아니지? 그때 너에게 돈을 준 것 때문에 네 형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너는 몰라. 그 자식이 죽을 때까지도 내가 친정에 돈을 준 일을 잊지 않고 있었어...”이지애가 끊임없이 과거의 일들을 들먹였지만 육경한은 그런 그녀가 단지 시끄럽다고 느껴졌다.원래부터 가족에 대한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지애가 그때 돈을 준 이유는 그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육경한이 냉정하게 말했다.“누나, 그동안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요. 그때 나에게 몇십만 원을 준 이유가 우리 엄마에게서 4억원을 빌렸기 때문에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나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우리 집에 와서 차용증을 찾아내 파기했잖아요.”육경한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줄 몰랐던 이지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마음속은 아주 불안했지만 절대 인정할 수 없었기에 급히 부인하며 말했다.“경한아,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네 엄마의 돈을 빌렸다고 그래? 네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내가 비록 잘 살지는 못하지만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야!”이 말을 들은 육경한은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육경한이 침묵하자 이지애는 육경한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웃으며 말했다.“경한아,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보아하니 일부러 우리 사촌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사람이 말한 것인가 본데 나는 너희 집 돈을 빌리고 안 갚은 적이 없어.”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육경한은 이지애에 대한 좋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얼마 전, 집안 하인이 청소를 하면서 다이어리를 하나 발견했다. 펼쳐보니 그 안에 육경한의 엄마가 쓴 채무 리스트가 있었고 그중에 이지애가 육씨 가문에서 4억원을 빌린 내역이 명확히 적혀 있었다. 그것은 육경한의 엄마가 겨우 모은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그리고 날짜도 기록되어 있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이지애가 미용원에 투자하여 금방 개
이 말은 육경한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차라리 묻지 말걸... 주석훈은 대체 무슨 친구란 말인가? 단지 몇 번 만난 사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새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육경한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발견한 황진수는 급히 말했다.“병원 간호사에게 물어봤더니 소원 씨가 병문안을 잠깐 왔다가 저녁에 바로 갔대요.”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육경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황진수도 더 이상 이것과 관련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업무 보고를 계속했다. 그런데 보고를 하던 중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육경한의 사촌 누나 이지애가 병문안을 온 것이다.“경한아, 우리 연주 좀 살려줘!”이지애는 육경한과 다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들어오자마자 울부짖었다.육경한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지애는 육경한에게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울부짖었다.“경한아, 오늘 아침에 연주를 보러 갔는데 애가 살이 쏙 빠졌어. 얼굴도 초췌해지고 말이야. 안에서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몸에는 상처투성이야. 안 그래도 괴롭힘을 당한 애인데 또 그런 곳에 들어갔으니 버틸 수 있겠니...”이지애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딸에 대한 애틋함에서 나온 눈물은 진심인 것 같았다.이번에는 육연주의 잘못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육연주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만 말하며 육경한의 동정을 얻으려고 했다.이 일로 육경한도 다쳤기 때문에 오늘 아침 이지애는 육연주를 욕하기도 했다. 건드려야 할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삼촌을 건드려 병원 신세 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가족에게 폐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 때문에 경찰서까지 끌려갔다.실제 피해자가 육경한이라면 육경한이 합의서를 써주면 육연주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육연주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소원의 진술 때문에 육연주는 고의 상해죄로 기소되었다.이 죄는 아주 무거운 죄로 변호사와 상담 후 최소 감옥에 몇 년은 있어야 하며 길면 5년에서 10년까지도 있을 수 있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전까지 유진은 이 내용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몇 달 더 있다가 유진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소원이 동화책을 내려놓고 물었다.“유진아, 엄마가 임신한 거 누가 말해줬어?”유진이 말했다.“아줌마가 말해줬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를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임신했으니 방해하면 안 된다고 아줌마가 그랬어요.”유진이 또 물었다.“임신했다는 것은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겼다는 거예요?”소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긴 거야.”“너무 좋아요.”그녀의 임신을 바로 받아들인 유진은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소원은 유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엄마는 3개월이 지난 후 너에게 말하려고 했어. 임신한 지 세 달이 되어야 말할 수 있다는 옛날 어르신들의 풍습이 있거든. 그래야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어.”유진이 말했다.“괜찮아요. 엄마, 아기는 분명히 건강하게 태어날 거예요.”소원이 미소를 지었다.“좋아?”“당연히 좋죠. 항상 같이 놀고 싶은 동생이 필요했는데... 동생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엄마는 너만 행복하면 돼.”소원이 유진을 꼭 안아주자 유진이 말했다.“엄마, 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 상관없어요. 엄마가 낳은 아기라면 다 좋아요. 나중에 내가 없어도 동생이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까 그러면 나도 안심할 수 있어요.”너무나 순수한 유진의 말에 마음이 아픈 소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유진아, 네가 왜 없어? 너는 항상 건강하게 있을 거야. 엄마 옆에서 이 아기를 지켜줘야지.”유진이 어른스럽게 말했다.“알겠어요. 엄마, 아기를 꼭 잘 돌볼게요.”유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소원은 녀석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옆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유진에게 약을 먹일 수 있지만 서현재의 연구 결과로 보면 그 약이 유진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시도해볼 수밖에 없었다.소원은 유진에게 약을
“네.”주석훈은 전화를 끊고 직원증의 사진을 꺼내 그 위에 있는 예쁜 여자를 깊게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사진을 얼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수정아, 봤지? 하늘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아. 아니면 네가 나를 돕는 거야?”사진 속의 여자를 보는 주석훈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고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이때 주석훈의 가방 안에 있던 또 다른 전화기가 울렸다.번호를 확인한 주석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공포에 질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제트 님, 제발 도와주세요...”주석훈이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상대방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저... 외국으로 보내 주세요.”“하하...”주석훈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사악해졌다.“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저... 저는 제트 님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트 님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요. 내가 잡히면 이 비밀을 지킬 수 없을 거예요.”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석훈이 한마디 했다..“많이 똑똑해졌네?”“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제트 님, 돈만 주시면 멀리 외국으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게요.”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긴 주석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얼마면 되는데?”“5천만 원이요.”전화기 너머로 금액을 말한 여자는 혹시라도 주석훈이 화낼까 봐 설명을 덧붙였다.“적어도 5천만 원은 있어야 외국에서 살 수 있어요.”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틀 동안은 시간이 없어. 모레 밤에 항구에서 보자.”“아니요, 제트 님!”상대방은 경계하며 말했다.“우린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트 님이 돈을 그곳에 두시면 제가 가서 가져갈게요.”주석훈이 코웃음을 친 뒤 말했다.“알았어. 항구에 둘게, 시간은 다시 알려주지.”“지금은 안 될까요...”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매우 급한 듯했다.“나와 흥정할 생각하지 마!”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알겠어요...”전화가 끊
황진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간 후 소원은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다가 병실로 돌아왔다.주석훈이 죽을 다 먹고 소원에게 말했다.“소원 씨, 이만 돌아가세요. 여기는 의사와 간호사가 많으니까 나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소원 씨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소원은 밤에 유진을 보러 갈 예정이었기에 진짜로 돌아가야 했다.주석훈을 위해 간병인을 구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간병인을 찾기 어려웠다. 감염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런 환자를 돌보려 하지 않았다.이제 막 열이 내린 주석훈은 소원의 고민을 알아채고 농담을 던졌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요. 이렇게 큰 병원에 있는데 설마 죽기라도 하겠어요?”소원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번 일, 여자친구에게 말씀하셨나요?”“여자친구요?”주석훈이 멍해 있자 소원이 급히 말했다.“방금 물컵을 들다가 변호사님의 직원증을 떨어뜨렸어요. 죄송해요, 일부러 본 건 아니에요. 여자친구 사진인 것 같아서...”소원의 말을 들은 주석훈은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지만 소원이 보기엔 약간 어두워진 것 같았다.평소 밝고 남을 잘 돕는 그의 얼굴과 조금 달랐지만 이내 평소와 같은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다.“여자친구 맞아요.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 없어요.”몇 초 동안 충격에 빠졌던 소원이 말을 이었다.“죄송해요. 몰랐어요.”“괜찮아요. 이미 오래된 일이니까.”주석훈의 말에 소원이 한마디 했다.“정말 예쁘더라고요.”그러자 주석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잘 웃고 또 성격도 좋았어요. 그리고 동물들도 정말 좋아했죠.”소원은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온화해 보이던 여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니...두 사람이 몇 마디 더 나눈 후, 주석훈이 소원에게 얼른 돌아가라고 재촉했다.주석훈의 말에 소원도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밤에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했다.주석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원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석훈의 전화벨 소리가
황진수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미우 그룹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은데 하나같이 대표님의 권한을 기다리고 있어요. 게다가 회의도 많아서 시시각각 대표님 곁을 지킬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표님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도 속이 바질바질 타요. 대표님이 빨리 업무 복귀하셨으면 좋겠어요.”황진수은 소원에게 왜 육경한을 보러 오지 않냐고 대놓고 질책하지 않고 월급쟁이로서 얼마나 난처한 상황인지만 얘기했다. 이렇게 되면 가스라이팅까지는 아니지만 누구든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수락하게 될 것이다.하지만 소원은 바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비서님, 수고하셨어요. 시간 되면 그때 찾아갈게요.”가겠다고 명확히 말하지 않고 시간 될 때 찾아간다고 말했다. 지금 바로 병원인데 시간이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황진수도 이 말까지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그러면 소원 씨, 일 보세요. 일 끝나면 대표님 좀 꼭 보러 오시고요.”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컵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수액실로 돌아와 보니 주석훈은 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소원은 딱히 깨우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주석훈 눈에 난 다크서클만 봐도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기 그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그 누구든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주석훈의 정서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이미 너무 안정적인 편이었다.침을 뺄 때가 되자 주석훈이 잠에서 깨 간호사를 불렀다.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는 역시나 중무장하고 들어왔다. 병원 측은 주석훈의 상황을 대비해 수액실도 단독으로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바늘을 뽑은 간호사들은 주석훈에게 오늘 밤 다시 열이 나는지 체크해야 하므로 밖에는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주석훈은 아직도 병실에 남아있는 소원을 보며 멋쩍게 말했다.“소원 씨, 정말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옆에서 있어 주기 힘든데.”“괜찮아요.”소원이 말했다.“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요.”소원이 물을 주석훈에게 건네주는데 핸드폰이 올렸다. 배달 기사가 걸어온 전
소원은 즉시 병원으로 향했다. 주석훈은 이번에 병원을 바꿔 제일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전문가들이 이런 유형의 감염류 질병에 더욱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소원이 도착하자 수액을 맞던 주석훈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소원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소원이 말했다.“마침 근처로 왔다가 얼굴이나 보려고 왔죠.”소원은 주석훈이 신세 지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주석훈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석훈의 창백해진 얼굴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목마르죠? 물 좀 마실래요?”주석훈은 목이 마르지 않았지만 목이 불편해 이렇게 말했다.“괜찮으면 소원 씨가 뜨거운 물 좀 따라줄래요?”“그래요.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소원이 말했다.“컵은 내 가방에 있어요. 움직이기 불편하니까 소원 씨가 좀 가져다줘요.”소원이 주석훈의 가방에서 컵을 꺼내다 주석훈의 사원증이 딸려 나왔다. 사원증 뒷면에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는데 보관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사진에 보이는 여자는 밝고 수수하고 웃음이 참 예쁜 사람이었다.소원은 그 사람이 주석훈의 여자 친구라고 생각했다. 본적도, 그렇다고 들어본 적도 없는 여자였지만 그래도 사진을 사원증 뒷면에 넣어두고 다닌다는 건 무척 사랑한다는 의미였다.주석훈은 머리가 흐리멍덩한 상태라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소원이 사원증을 다시 집어넣고는 뜨거운 물 받으러 갔다.뜨거운 물을 받고 왔던 길로 돌아가는데 마침 육경한의 비서 황진수가 보였다. 황진수는 소원을 보고 헤벌쭉 웃으며 물었다.“소원 씨, 혹시 대표님 보러 오셨어요?”소원은 황진수의 열정에 살짝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아니요.”황진수는 소원이 들고 있는 남성용 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친구가 홍콩에 있어서요.소원이 설명했다.“아 그래요?”황진수의 말투에서 실망이 묻어났다. 소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황진수가 입을 열었다.“소원 씨, 우리 대표님 좀 보러 가주실
소원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소원이 언짢은 표정으로 취객과 함께 온 사람을 바라봤다. 동행한 사람은 주석훈 손에 난 상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연신 이렇게 말했다.“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술에 취해서 그렇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주석훈은 동행자의 태도가 좋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됐어요. 얼른 데리고 올라가요.”취객이 여전히 중얼거리며 말했다.“음냐... 맛있다. 음냐...”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주석훈이 여전히 앞에 서서 그들이 떠나가길 기다렸다. 소원은 주석훈 손에 난 상처가 걱정되어 이렇게 말했다.“주 변호사님, 상처 아무래도 소독해야 될 것 같은데요.”주석훈이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성가실 필요는 없어요.”소원은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치료해요. 어차피 지금 병원이잖아요. 상처 처리하는데 뭐 얼마나 걸린다고.”주석훈은 소원의 권고에 치료하러 향했다. 간호사가 바쁘다 보니 한참 기다려서야 소독할 수 있었고 치료를 마쳤을 땐 이미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주석훈이 다시 휠체어를 밀어주려는데 소원이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주 변호사님, 저는 괜찮아요. 이제 휠체어 안 타도 돼요. 다 나았는데 앉아 있으려니까 낯 간지럽네요.”주석훈은 소원의 상태가 확실히 괜찮아 보이자 휠체어에 앉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다시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더니 나란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당황한 기색의 간호사 두 명이 토론하는 게 들렸다.“너 그거 알아? 큰일 났대.”“무슨 일?”“아까 실려 온 환자가 있는데 혈액 검사를 해보니 에이즈래. 그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전부 검사받아야 한다던데?”“뭐? 접촉한 사람은 다 받아야 한다고? 그런 병이 있다고 직접 밝히진 않았나 보지?”일반적으로 이런 유형의 환자는 병원에서도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소수의 환자가 병을 속여서 혈액으로 감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