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자신의 귀도 점점 더 뜨거워졌다.그녀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것을!몸이 저릿저릿해서 날아갈 것 같았다.남아있는 한 줌의 이성으로, 윤혜인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그녀는 당황스럽게 말했다.“준혁 씨, 이러지 마요...”이준혁의 아름다운 손가락은 여전히 그녀의 부드러운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놓고 싶지 않아 했다.“어떻게... 하지 말라고?” 남자의 목소리는 쉬어있고 욕망으로 가득 찼다.이 사람, 어쩜 또 이렇게 나쁜 거야!윤혜인은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그를 상기시켰다, “여긴 밖이에요.”이준혁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집이라면, 할 수 있는 거야?”“...”윤혜인은 그의 말에 놀라 멍해져서, 잠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이준혁은 그녀의 멍한 표정을 보고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이때, 김성훈이 안에서 나왔다.“문제 없어...”그가 보고서를 들고 말을 하다 말고, 눈앞의 광경을 보고 갑자기 멈춰 섰다.그리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두, 두 사람 계속해요!”김성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윤혜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얼굴이 새빨개졌다!“다, 당신 이 손 놔요!”그녀는 남자의 단단한 가슴을 한 번 때리고는 부끄러워 울 것 같았다.이준혁은 그녀가 특히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놀리지 않고 손을 놓아 그녀가 똑바로 서게 했다.윤혜인은 얼굴이 빨개져서 화가 나 말했다. “여기서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여기서 하지 말라고요!”그녀는 방금 전 김성훈의 표정을 생각하니 너무 창피했다!앞으로 어떻게 김성훈을 마주치나...“미안해, 내 잘못이야. 다음에는 꼭 주의할게.” 이준혁이 약속하자, 윤혜인의 눈꺼풀이 떨렸다.“무슨 다음이에요!”남자는 바로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이후, 윤혜인은 정말 김성훈을 다시 볼 면목이 없었다.이준혁이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물어보는 동안, 윤혜인은 차에 올라
윤혜인은 그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았지만, 왜 화가 났는지는 몰랐다.그녀는 조용히 물었다.“왜 화가 났어요?”이준혁은 어이없어 웃었다.자신이 한참 화가 나 있었는데, 주범은 왜인지도 모르고 있다니!“넌 항상 우리 사이를 부정하잖아!”윤혜인은 조금 이해가 갔다.“5억 원을 돌려드려서인가요?”“그래, 우린 부부잖아. 내가 네 삼촌에게 얼마를 주든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윤혜인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뒤로 물러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감정이 무겁게 담겨 있었다.“난 적어도 내일까지는 널 보지 않고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해도 지기 전에 이미 견디기 힘들었어. 회의가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도 내 한계를 넘어섰지.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약하다는 걸 깨달았어.”남자는 살짝 웃었다. 마치 자신의 나약함을 비웃는 것 같았다.이런 고백에 윤혜인의 눈꺼풀이 떨렸다.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또한 이렇게 부드러우면서도 강압적인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다.잠시 침묵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밤, 고마웠어요.”그가 그녀를 도왔고, 심지어 상처까지 입었으니 그에게 감사를 표해야 했다.이준혁의 열렬한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어떻게 감사할 거야?”“네?”이준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눈 속에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나한테 고맙다며.”윤혜인은 그의 시선에 심장이 한 박자 뛰었다.“뭘 원해요?”이준혁이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빛은 매우 뜨겁고 강렬했다.보기만 해도 그런 의미였다...윤혜인의 얼굴이 순간 새빨개졌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그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이준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한테 밥 해줘.”“뭐라고요?”“네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싶어.”윤혜인은 그의 요구가 이렇게 간단할 줄 몰랐다.그녀는 거의 믿기지 않았다.그가 이 기회를 이용해 부끄러운 요구를 할 줄 알았는데.“그게 다예요?”
부족하단 말도 안 했는데 꼭 제가 뭘 더 바라는 것처럼 충분하냐 물어오는 이준혁에 윤혜인이 대답했다.“됐다고요!”어이없는 감정을 담아 소리치려고 했는데 이미 감각이 사라져버린 입술에 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아 오히려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이준혁은 빨개진 윤혜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했다.“이 제안이 별로 맘에 안 드나 봐?”뒤에 놓인 의자 등받이에 더 피할 것도 없었던 윤혜인은 그냥 가만히 이준혁이 다가오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여기서 할 수 있는 대답도 하나밖에 없었다. 싫단 말을 했다가는 또 다리가 풀릴 때까지 입술을 맞춰 올 이준혁을 알기에 윤혜인은 고집을 꺾고 울먹이며 말했다.“좋아요, 좋다고요...”“좋아도 더는 안 돼, 내가 무섭거든.”이준혁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윤혜인의 귓볼을 살짝 깨물었다.“내가 널 집어삼켜 버릴까 봐.”“...”차는 마침내 서호 별장에 도착했다.불어대는 바람에도 윤혜인의 얼굴은 계속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이준혁이 말로는 더 안 한다고 했지만 그 뒤에도 자신이 한 말은 까맣게 잊은 채 오래도록 입을 맞춰온 탓이었다.그리고 그의 몸도 덩달아 반응하고 있었기에 윤혜인은 부끄러워서 이준혁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하지만 윤혜인과 달리 이준혁은 기분이 아주 좋았고 마음도 너무 편했다.별장 앞에 도착한 이준혁은 차에서 내려 윤혜인을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는 낮게 말했다.“혜인아, 이제 나 밀어내지 말아줘...”“나는...”윤혜인이 대답을 망설이자 이준혁은 그녀를 재촉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천천히 생각해보고 대답해도 돼.”자신이 원하지 않는 대답을 듣게 될까 두려워서였다.저녁에 침대에 누운 윤혜인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지금 둘 사이가 화해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너무 헷갈렸다.화해했다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화해를 안 했다기엔 안고 키스하고 연인 사이에서 할 법한 일들은 다 한 것 같았다.그렇게
침대 주위로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모두 선명한 색감을 한 고급진 비단이었다.주인이 얼마나 아끼고 공을 들였는지 알리는 장식이었다.원진우는 다정한 눈빛으로 소아를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그녀의 머리칼을 넘겨주었다.그때 누군가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와.”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흰색 가운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는 원씨 가문 주치의 진우희였다.진우희는 침대 옆에 앉아있는 원진우를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사모님 침은 지금 놔드릴까요, 아니면 나중에 할까요?”“지금 해.”“네.”원진우가 자리를 비켜주자 진우희는 침 치료를 위한 수건부터 깔고 머리 안마를 시작했다.진우희의 손길은 세심했고 조심스러웠다.윤아름에게 이 안마를 해준지도 오래되었는데 진우희는 아직도 윤아름의 미모에 아찔해 났다.정말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오는 얼굴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더 성숙해져 우아해 보이는 얼굴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홀릴 만한 미모였다.이렇게 예쁘니 원진우가 지하 성에 몇 년 동안 가둬만 두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진우희는 천천히 침을 정수리 두피에 꽂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정확히 혈 자리에 꽂아 넣고 있었다.진우희가 이 일을 해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원진우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사실 원진우는 윤아름을 그 누구에게 맡겨도 다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30분쯤 지나고 진우희가 침을 빼기 시작할 때 원진우의 핸드폰이 울렸다.“삼촌.”원지민의 전화였다.“응.”원진우는 전화를 받을 때도 시선만은 윤아름에게 고정하고 있었다.“전에 침 치료하면 얼마나 간다고 했었죠?”“사람마다 달라. 한 달인 사람도 있고 세 달인 사람도 있어.”“마지막 하나까지 다 넣으면 정말 삼촌이 말한 대로 그렇게 돼요?”원진우는 가소롭다는 듯 얕게 웃고는 말했다.“너는 아직도 너무 여려. 역시 여자라 이건가.”“나는 그냥...”인내심이 크지 않았던 원진우는 원지민의 말을 끊었다.“됐어, 나는 네 아빠처럼 널 하나하나 가
진우희는 갑자기 전에 경호원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원진우에게 두 번째 경고를 받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었는데 얼마 뒤에 한 낚시꾼에 의해 몸의 절반이 잘려나간 채로 발견됐다는 소문.얼굴에도 물집이 가득 올라와 신원 확인도 겨우 했는데 확인하고 보니 발견된 시체가 원진우 집에서 사라진 사람이었다는 끔찍한 소문이 하필 지금 떠올랐다.그걸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경호원들이 결국 절반 짜리 시체를 사서 묻어주었다고 했었다.지금 원진우가 진우희를 향해 저런 말을 했다는 건 두 번째는 경고로 끝나지 않을 거란 소리였다.그 공포에 아까 하려던 말도 다 잊어버린 진우희는 몸을 떨어대며 감히 원진우를 올려다보지도 못했다.“나가 당장.”나가라는 원진우의 명령에 다급히 일어나 뛰쳐나가던 진우희는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하며 보는 사람까지 안쓰럽게 했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진우희는 문을 닫는 건 잊지 않았다.문이 닫히자 원진우는 바로 바닥에 꿇어앉아 윤아름의 손을 무슨 보물이라도 된 양 끌어안고는 이미 다 말라버린 핏자국에 입을 맞췄다.원진우의 그 다정하면서도 우울한 표정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상했다.한편 지하실을 빠져나온 진우희는 아직도 아까의 상황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아까 진우희가 침을 뺄 때 분명 윤아름의 손가락이 움직였었다.5년 전 베란다에서의 추락사고 이후 원진우가 중의 서의 다 부르며 온갖 치료를 해보아도 전혀 깨어날 기미가 안 보여 이번에는 원진우가 진우희에게 침 치료를 부탁한 것이었다.물론 진우희가 치료를 시작한 뒤에도 상태가 딱히 나아지진 않았지만 원진우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그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본 건가 싶었지만 진우희는 이 사실을 바로 원진우에게 알릴 수가 없었다.만약 그냥 잘못 본 걸 사실처럼 말했다가 마지막 기회도 날려버리고 그 남자처럼 물고기 밥이 되긴 싫었기 때문이다....회사 안.자신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소원은 아직도 육경한이 보낸 사람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었다.그때 커피
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 바로 치마 단추 위에 손을 얹었다. 마치 다음 순간 바로 치마를 벗어 낼듯한 모양새였다.경호원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이마, 등 할 것 없이 온몸에서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감히 어떻게 육 대표의 여인에게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팔이 잘려 나가도 할 말이 없게 될 거다.이미 대표가 놀다 만 여자는 물론, 놀다 망가져 버린 여자라 하더라도 쉬이 손을 댈 수는 없었다.육 대표의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경호원은 소원이 치마를 벗어 던지기 전에 당장 도망치듯 ‘쿵’ 하고 문을 닫았다.소원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그녀는 흐르는 물에 대충 몇 번 몸을 적시고 수건을 두른 채 바로 벽 사이에 감춰진 스위치를 눌렀다.그러자 눈앞의 벽이 천천히 뒤로 회전했다.비스듬히 몸을 틀어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에는 한 칠판과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엮인 관계망, 수 없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소원은 들고 있던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았다.오늘 아침 육경한의 별장에서는 급한 나머지 타이틀밖에 확인하지 못했기에, 다른 내용은 그대로 카피해 온 것이었다.USB 메모리가 열리고 그 안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시원 그룹 이사 아들의 음란한 사생활이 찍힌 사진과 영상이 여럿 들어있었다.‘그와 몇몇 여인의 사진, 같이 찍힌 것도…’소원은 육경한이 신중한 성격이라는 것을 쭉 알고 있었다.그가 타인에 대한 불신을 생각하면, 깊은 협력관계인 상대와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꼭 몇 가지 약점을 잡아두었을 것이다.보다시피 이것들은 그가 모은 스캔들임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그가 직접 기획한 것일지도 모른다.이 사진들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상대 가문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주식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이미지에도 영향 있을 게 분명하다. 특히 방씨 가문의 둘째 할아버지는 정부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니, 집안에 이러한 스캔들이 일어나는 것을 가만 놔둘 수 없을 것이다.소원은 좋은
“고를 건 없지, 네가 만든 거라면 다 좋아.”“그럼, 언제 드실 건데요?”이준혁은 혜인이 브로콜리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모습에 시선이 뺏겼다.“내일 밤, 괜찮아?”내일 아침의 회의만 아니었어도 지금 당장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정말, 정말, 빨리 보고 싶었다.혜인은 고민했다. 내일 오후에는 약속대로 정해진 시간에 약을 전해주러 가야 한다.금오구는 북쪽의 한 동떨어진 곳이다. 오가는 데에 대략 한 시간 조금 더 되는 시간이 든다.오후 안에는 문제없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일 저녁에 봬요.”이준혁은 기분이 들떴다.그는 혜인의 작은 입을 보며 말했다.“너 입…”“왜요?”윤혜인은 입에 뭔가 묻었나 싶어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살폈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귀 이쪽에 대봐. 알려 줄게.”혜인은 정말로 자신의 입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긴장하면서 핸드폰에 귀를 갖다 댔다.그러자 남자의 박하 맛 사탕이 녹아내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입 맞추고 싶게 생겼어…”혜인은 단숨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곁에 사람도 많은데 이게 무슨 꼴인가!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상황이, 둘은 지금 열애 중인 커플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혜인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여기 사람도 많은데…”이준혁이 웃음기를 감추지 못한 채 대답했다.“그래서 너에게만 들려줬잖아.”남자의 얼굴은 스크린 속에서도 이미 홀릴 만큼 보기 좋았다.혜인은 심장이 쿵쿵거렸다.노루처럼 날뛰는 심장에, 어디선가 달콤한 느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이제 일 하러 가야 돼요.”혜인이 급히 말을 돌렸다.이준혁은 얼굴을 붉힌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팔 그쪽은 그래도 조심해야 하니까…”무의식중의 관심이 입 밖으로 나왔다.혜인이 순간 멍해졌다.이준혁도 순간 놀란 기색이었다.이윽고, 그는 깊은 눈빛으로 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더 키스하고 싶어졌어.”“…”
차에 펑크가 난 것이었다!충격에 차 머리가 바로 미끄러졌다.혜인은 깜짝 놀랐지만, 곧바로 예전에 면허 준비를 할 때, 이준혁이 가르쳐 줬던 내용을 기억해 냈다.브레이크를 확 밟으면 위험하다.핸들을 꽉 잡고, 살짝씩 브레이크를 밟아가면 차가 서서히 멈출 것이다.혜인은 이준혁이 가르쳐줬던 대처법을 기억 해내며, 3분도 안 되어 차를 멈추는 데에 성공했다.하지만 제동한 뒤에도 여전히 놀란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윤혜인의 차 타이어는 쉽게 펑크가 나지 않도록 특수 처리 되어있다. 이렇게 간단히 터질 리가 없었다.혜인은 진정하고 나, 차에서 내려 주변을 확인했다.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 지나 온 길의 맨홀 뚜껑이 튀어나와 있는 것 아닌가! 그 옆에는 튼튼해 보이는 쇠못까지 놓여있었다.누군가가 고의로 놓은 게 분명하다!대체 누가 이런 양심도 없는 짓을 한 것인가.경험이 없었더라면 차가 뒤집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때, 멀리서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뛰어왔다.“아이고, 아가씨! 이게 어쩐 일이래, 차 바퀴에 펑크 난 거야?”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아주머니가 바로 말을 이어갔다.“마침, 좋네, 우리 아들이 10년을 넘게 자동차 수리를 하는데, 새 타이어를 가져오라고 해볼까?”혜인은 아주머니의 지나치게 과도해 보이는 열정에 머리를 저었다.“괜찮아요.”윤혜인은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불러 수리하고, 새 차도 같기 마련시킬 예정이었다.시간이 조금 빠듯한 게 유일한 흠이었다.아주머니는 여전히 곁에 딱 붙어서 타이어 교환을 시키려 했다.혜인은 머리를 가로저은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끝나고 난 뒤, 돌아선 그녀는 자신의 차가 이미 리프트에 들려있는 것을 보았다.30대 되는 온몸이 먼지투성이인 아저씨가 차 타이어를 빼고 있었다.혜인은 앞으로 나서, 진지한 투로 말했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아주머니가 멋쩍게 웃었다.“아가씨, 너무 조급해하지 마. 지금 교체해 주고 있잖아.”혜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