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주위로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모두 선명한 색감을 한 고급진 비단이었다.주인이 얼마나 아끼고 공을 들였는지 알리는 장식이었다.원진우는 다정한 눈빛으로 소아를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그녀의 머리칼을 넘겨주었다.그때 누군가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와.”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흰색 가운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는 원씨 가문 주치의 진우희였다.진우희는 침대 옆에 앉아있는 원진우를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사모님 침은 지금 놔드릴까요, 아니면 나중에 할까요?”“지금 해.”“네.”원진우가 자리를 비켜주자 진우희는 침 치료를 위한 수건부터 깔고 머리 안마를 시작했다.진우희의 손길은 세심했고 조심스러웠다.윤아름에게 이 안마를 해준지도 오래되었는데 진우희는 아직도 윤아름의 미모에 아찔해 났다.정말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오는 얼굴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더 성숙해져 우아해 보이는 얼굴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홀릴 만한 미모였다.이렇게 예쁘니 원진우가 지하 성에 몇 년 동안 가둬만 두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진우희는 천천히 침을 정수리 두피에 꽂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정확히 혈 자리에 꽂아 넣고 있었다.진우희가 이 일을 해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원진우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사실 원진우는 윤아름을 그 누구에게 맡겨도 다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30분쯤 지나고 진우희가 침을 빼기 시작할 때 원진우의 핸드폰이 울렸다.“삼촌.”원지민의 전화였다.“응.”원진우는 전화를 받을 때도 시선만은 윤아름에게 고정하고 있었다.“전에 침 치료하면 얼마나 간다고 했었죠?”“사람마다 달라. 한 달인 사람도 있고 세 달인 사람도 있어.”“마지막 하나까지 다 넣으면 정말 삼촌이 말한 대로 그렇게 돼요?”원진우는 가소롭다는 듯 얕게 웃고는 말했다.“너는 아직도 너무 여려. 역시 여자라 이건가.”“나는 그냥...”인내심이 크지 않았던 원진우는 원지민의 말을 끊었다.“됐어, 나는 네 아빠처럼 널 하나하나 가
진우희는 갑자기 전에 경호원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원진우에게 두 번째 경고를 받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었는데 얼마 뒤에 한 낚시꾼에 의해 몸의 절반이 잘려나간 채로 발견됐다는 소문.얼굴에도 물집이 가득 올라와 신원 확인도 겨우 했는데 확인하고 보니 발견된 시체가 원진우 집에서 사라진 사람이었다는 끔찍한 소문이 하필 지금 떠올랐다.그걸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경호원들이 결국 절반 짜리 시체를 사서 묻어주었다고 했었다.지금 원진우가 진우희를 향해 저런 말을 했다는 건 두 번째는 경고로 끝나지 않을 거란 소리였다.그 공포에 아까 하려던 말도 다 잊어버린 진우희는 몸을 떨어대며 감히 원진우를 올려다보지도 못했다.“나가 당장.”나가라는 원진우의 명령에 다급히 일어나 뛰쳐나가던 진우희는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하며 보는 사람까지 안쓰럽게 했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진우희는 문을 닫는 건 잊지 않았다.문이 닫히자 원진우는 바로 바닥에 꿇어앉아 윤아름의 손을 무슨 보물이라도 된 양 끌어안고는 이미 다 말라버린 핏자국에 입을 맞췄다.원진우의 그 다정하면서도 우울한 표정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상했다.한편 지하실을 빠져나온 진우희는 아직도 아까의 상황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아까 진우희가 침을 뺄 때 분명 윤아름의 손가락이 움직였었다.5년 전 베란다에서의 추락사고 이후 원진우가 중의 서의 다 부르며 온갖 치료를 해보아도 전혀 깨어날 기미가 안 보여 이번에는 원진우가 진우희에게 침 치료를 부탁한 것이었다.물론 진우희가 치료를 시작한 뒤에도 상태가 딱히 나아지진 않았지만 원진우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그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본 건가 싶었지만 진우희는 이 사실을 바로 원진우에게 알릴 수가 없었다.만약 그냥 잘못 본 걸 사실처럼 말했다가 마지막 기회도 날려버리고 그 남자처럼 물고기 밥이 되긴 싫었기 때문이다....회사 안.자신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소원은 아직도 육경한이 보낸 사람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었다.그때 커피
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 바로 치마 단추 위에 손을 얹었다. 마치 다음 순간 바로 치마를 벗어 낼듯한 모양새였다.경호원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이마, 등 할 것 없이 온몸에서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감히 어떻게 육 대표의 여인에게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팔이 잘려 나가도 할 말이 없게 될 거다.이미 대표가 놀다 만 여자는 물론, 놀다 망가져 버린 여자라 하더라도 쉬이 손을 댈 수는 없었다.육 대표의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경호원은 소원이 치마를 벗어 던지기 전에 당장 도망치듯 ‘쿵’ 하고 문을 닫았다.소원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그녀는 흐르는 물에 대충 몇 번 몸을 적시고 수건을 두른 채 바로 벽 사이에 감춰진 스위치를 눌렀다.그러자 눈앞의 벽이 천천히 뒤로 회전했다.비스듬히 몸을 틀어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에는 한 칠판과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엮인 관계망, 수 없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소원은 들고 있던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았다.오늘 아침 육경한의 별장에서는 급한 나머지 타이틀밖에 확인하지 못했기에, 다른 내용은 그대로 카피해 온 것이었다.USB 메모리가 열리고 그 안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시원 그룹 이사 아들의 음란한 사생활이 찍힌 사진과 영상이 여럿 들어있었다.‘그와 몇몇 여인의 사진, 같이 찍힌 것도…’소원은 육경한이 신중한 성격이라는 것을 쭉 알고 있었다.그가 타인에 대한 불신을 생각하면, 깊은 협력관계인 상대와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꼭 몇 가지 약점을 잡아두었을 것이다.보다시피 이것들은 그가 모은 스캔들임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그가 직접 기획한 것일지도 모른다.이 사진들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상대 가문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주식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이미지에도 영향 있을 게 분명하다. 특히 방씨 가문의 둘째 할아버지는 정부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니, 집안에 이러한 스캔들이 일어나는 것을 가만 놔둘 수 없을 것이다.소원은 좋은
“고를 건 없지, 네가 만든 거라면 다 좋아.”“그럼, 언제 드실 건데요?”이준혁은 혜인이 브로콜리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모습에 시선이 뺏겼다.“내일 밤, 괜찮아?”내일 아침의 회의만 아니었어도 지금 당장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정말, 정말, 빨리 보고 싶었다.혜인은 고민했다. 내일 오후에는 약속대로 정해진 시간에 약을 전해주러 가야 한다.금오구는 북쪽의 한 동떨어진 곳이다. 오가는 데에 대략 한 시간 조금 더 되는 시간이 든다.오후 안에는 문제없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일 저녁에 봬요.”이준혁은 기분이 들떴다.그는 혜인의 작은 입을 보며 말했다.“너 입…”“왜요?”윤혜인은 입에 뭔가 묻었나 싶어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살폈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귀 이쪽에 대봐. 알려 줄게.”혜인은 정말로 자신의 입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긴장하면서 핸드폰에 귀를 갖다 댔다.그러자 남자의 박하 맛 사탕이 녹아내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입 맞추고 싶게 생겼어…”혜인은 단숨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곁에 사람도 많은데 이게 무슨 꼴인가!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상황이, 둘은 지금 열애 중인 커플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혜인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여기 사람도 많은데…”이준혁이 웃음기를 감추지 못한 채 대답했다.“그래서 너에게만 들려줬잖아.”남자의 얼굴은 스크린 속에서도 이미 홀릴 만큼 보기 좋았다.혜인은 심장이 쿵쿵거렸다.노루처럼 날뛰는 심장에, 어디선가 달콤한 느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이제 일 하러 가야 돼요.”혜인이 급히 말을 돌렸다.이준혁은 얼굴을 붉힌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팔 그쪽은 그래도 조심해야 하니까…”무의식중의 관심이 입 밖으로 나왔다.혜인이 순간 멍해졌다.이준혁도 순간 놀란 기색이었다.이윽고, 그는 깊은 눈빛으로 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더 키스하고 싶어졌어.”“…”
차에 펑크가 난 것이었다!충격에 차 머리가 바로 미끄러졌다.혜인은 깜짝 놀랐지만, 곧바로 예전에 면허 준비를 할 때, 이준혁이 가르쳐 줬던 내용을 기억해 냈다.브레이크를 확 밟으면 위험하다.핸들을 꽉 잡고, 살짝씩 브레이크를 밟아가면 차가 서서히 멈출 것이다.혜인은 이준혁이 가르쳐줬던 대처법을 기억 해내며, 3분도 안 되어 차를 멈추는 데에 성공했다.하지만 제동한 뒤에도 여전히 놀란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윤혜인의 차 타이어는 쉽게 펑크가 나지 않도록 특수 처리 되어있다. 이렇게 간단히 터질 리가 없었다.혜인은 진정하고 나, 차에서 내려 주변을 확인했다.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 지나 온 길의 맨홀 뚜껑이 튀어나와 있는 것 아닌가! 그 옆에는 튼튼해 보이는 쇠못까지 놓여있었다.누군가가 고의로 놓은 게 분명하다!대체 누가 이런 양심도 없는 짓을 한 것인가.경험이 없었더라면 차가 뒤집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때, 멀리서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뛰어왔다.“아이고, 아가씨! 이게 어쩐 일이래, 차 바퀴에 펑크 난 거야?”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아주머니가 바로 말을 이어갔다.“마침, 좋네, 우리 아들이 10년을 넘게 자동차 수리를 하는데, 새 타이어를 가져오라고 해볼까?”혜인은 아주머니의 지나치게 과도해 보이는 열정에 머리를 저었다.“괜찮아요.”윤혜인은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불러 수리하고, 새 차도 같기 마련시킬 예정이었다.시간이 조금 빠듯한 게 유일한 흠이었다.아주머니는 여전히 곁에 딱 붙어서 타이어 교환을 시키려 했다.혜인은 머리를 가로저은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끝나고 난 뒤, 돌아선 그녀는 자신의 차가 이미 리프트에 들려있는 것을 보았다.30대 되는 온몸이 먼지투성이인 아저씨가 차 타이어를 빼고 있었다.혜인은 앞으로 나서, 진지한 투로 말했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아주머니가 멋쩍게 웃었다.“아가씨, 너무 조급해하지 마. 지금 교체해 주고 있잖아.”혜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큰 키의 남자는 명령을 듣고 바로 앞으로 두 걸음 나와 우뚝 섰다.그녀를 바라보며 입에서 침을 흘리면서 더듬더듬 말했다.“예쁜… 여자…”그러며 손을 뻗어 그녀를 만지려 했다.혜인은 급히 한발 물러나 피했다.그 과정에서 실수로 휴대전화를 떨어뜨렸고, 남자는 바로 주워 채갔다.아주머니는 동시에 번개처럼 혜인의 차로 올라가 열쇠를 가져가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돈 안 주면 오늘 못 가.”정신 나간 아들은 계속 침을 흘리며 외쳤다.“예쁜 여자… 예쁜 여자…”혜인은 아주머니 앞에 다가가 손을 뻗어 열쇠를 되찾으려 했다.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차 앞에 누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나 죽어요…!”“……”일련의 과정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혜인은 이제야 알았다. 이 두 사람은 틀림없이 이 근방에서 사기를 치는 상습범이다!주변을 둘러보니, 앞뒤로 마을도 없고, 가게도 없고, 감시 카메라 같은 건 더더욱 없었다.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알 만했다.혜인은 차분하게 말했다.“아주머니, 저 지금 돈 없고 카드도 정지됐어요. 집에 전화해서 돈 좀 보내 달라고 할게요.”아주머니는 반신반의하며 말했다.“거짓말하는 거 아니지?”“설마요. 제가 비싼 차를 몰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등록증도 제 이름이 아니고 그냥 빌린 거예요. 잘난 척해보고 싶었거든요.게다가 타이어를 터뜨렸다고 알려지면 곤란해졌을 거예요. 아주머니가 바꿔주셔서 마침 좋았어요.”혜인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아주머니가 말했다.“아이고, 내가 이 다리를 다쳐서 너무 아프네, 이젠 타이어값만으로는 안 돼!”혜인이 되물었다.“그럼, 얼마나 원하세요?”그러자 아주머니의 눈이 반짝였다.“최소한 4, 50만 원 요양비는 줘야지!”거기에만 오천 원의 타이어값까지.‘와, 정말 뻔뻔하게 요구하네!’혜인은 생각했다. 사기꾼은 신중하니, 바로 승낙해버리면 도리어 의심을 살 수도 있다.그녀는 성실하게 말했다.“아주머니, 정말 그 정도 돈은
손에 든 돌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 정신이 나간 아들은 누군가에게 허리를 끌어안겨 뒤로 넘어졌다.그는 누군가의 어깨너머로 힘껏 땅에 내팽개쳤다.혜인은 그 사람이 바로 배남준이라는 것을 알아챘다.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 세상에 자기 아들이 맞는 것을 보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어머니는 없었다. 아주머니는 즉시 배남준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해댔다.배남준은 남자를 상대하는 데에는 가차 없었지만, 여자를 상대로는 함부로 손을 쓸 수는 없었는지, 별수 없이 아주머니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혜인은 이 상황을 보고, 급히 차창을 내려 그에게 소리쳤다. “남준 오빠, 그냥 내버려두세요!”아주머니는 혜인이 창문을 내리자, 자신이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래서 쏜살같이 달려들어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그 모습에 남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로 아주머니를 끌어내 땅에 내동댕이쳤다.아주머니는 땅을 구르며 크게 울부짖었다. “아이고, 사람 목숨 귀중한 줄도 모르고 사람을 죽이려 드네!”배남준은 얼굴을 찌푸렸다.그는 이렇게 무식하게 떠들며 길바닥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그때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땅에서 일어나 혜인을 노려보았다.“독한 년, 네가 신고했구나!”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조금 전 전화로 했어요.”아주머니는 분노에 몸이 덜덜 떨렸다.혜인이 부른 ‘언니’는 경찰을 부른 것이었다!어쩐지 계속 “응, 응” 거리기만 하더니, 경찰과 신호를 주고받고 있은 것이었다.아주머니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그녀와 아들은 여러 번 사기를 쳐왔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실패를 맛본 것이다.그들의 목표는 항상 고급스러워 보이는 차였고, 아주머니는 이를 위해 어떤 차가 비싼 차인지 알아보는 공부까지 했다.게다가 대부분의 고급 외제 차 주인들은 이 정도 돈 때문에 번거롭게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아주머니는 독설
혜인도 그 말에 동의했다. 방금 일이 있고 난 뒤다. 혼자 이곳에 남아 기다리는 건 솔직히 무서웠다.그러나 둘이 한참 동안 기다려도 기사는 오지 않았다.혜인은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이 깨져서 켜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배남준의 휴대전화를 빌려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기사는 주소를 잘못 들어 엉뚱한 곳에 가버렸던 것이었다.혜인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 당황해 있던 참이었다.기사에게 현재 위치를 물어보니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배남준은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입 모양으로 “내가 데려다줄게”라고 속삭였다.윤혜인은 더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고, 기사에게 다시 차를 집에 돌려놓으라고 지시했다.차에서 검은 가방을 꺼내고 배남준에게 말했다.“그럼 죄송하지만 부탁 좀 할게요, 남준 오빠.”남준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나도 이제 별다른 일 없으니까 괜찮아.”차에 탄 후, 혜인이 목적지를 알려주었다.큰길로 나오고, 혜인은 남준에게 적당한 곳에 세워 달라고 했다.“남준 오빠, 잠시만 다녀올게요.”그녀는 소원과 약속한 비밀을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무리 배남준이라 하더라도, 지금 무엇을 하러 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배남준은 혜인에게 굳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곁에서 자신의 비상용 휴대전화를 꺼내 주며 말했다.“필요하면 전화해.”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혜인은 소원이 말한 골목길로 들어가, 붉은 벽돌집을 찾았다.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상당히 은밀한 곳이었다.마당 입구에 도착하자, 닭이 푸드덕 날아오르고 개가 울부짖는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급히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남자가 땅에 누운 아이를 질질 끌고 있는 것이었다.그는 입에 담배를 물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악을 쓰며 말했다.“빌어먹을 늙은것들, 돈을 안 내놓으면 이 꼬맹이를 팔아먹을 거다!”노란 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아이를 꼭 껴안고 찢어지는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육연주는 다짜고짜 소원의 머리채를 붙잡아 탁자 위로 내리눌렀다.힘껏 눌러대며 외쳤다.“오늘 반드시 내가 그날 느낀 굴욕과 분노를 똑같이 느끼게 해줄 거야!”하지만 소원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이 정도의 고통쯤은 감내할 수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방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약속은 지키셔야죠. 우리가 한 대로 이행해주세요.”방민아는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한 말은 꼭 지킵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이 거론될 일을 피하려고 애써 돌려서 말했다.소원은 방민아가 무슨 꾀를 부리든 상관하지 않았다. 약속만 지켜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렇지 않다면 육연주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었다.육연주는 샴페인과 맥주를 들고 소원의 머리 위로 들이부었다.그러고는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다.“술 좋아한다며? 아니어도 괜찮아. 내가 좋아하게 만들어 줄 테니 잘 마셔 봐!”알코올이 따갑게 소원의 머리와 얼굴을 적셨다.소원은 눈을 꼭 감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육연주는 더욱 흥분하며 소원의 뺨을 두 차례나 세게 때렸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술병을 집어 들어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려고까지 했다.그 순간, 방민아가 육연주의 손목을 꽉 잡아 멈췄다.“연주야, 내가 뭐라고 했어? 겉으로 티 나는 상처는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면 너한테도 안 좋아.”그들의 관심은 소원의 안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벌가 자제 이미지가 더러워질까 하는 것이었다.그렇게 육연주는 힘없이 손을 풀었고 술병은 바닥으로 떨어져 몇 번 굴러갔다.방민아는 처음부터 이렇게 경고했다. 목숨을 앗아가선 안 되고 모욕하고 짓밟는 건 가능하지만 눈에 띄는 외상은 절대 안 된다고.처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육연주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소원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그날 결혼식에서 소원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 됐는지, 모든 사람들에
“네, 괜찮아질 거예요...”잠시 충전한 덕에 상태가 많이 나아진 소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언니, 이제 가서 일 봐요. 저도 제 일하러 갈게요.”“응.”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갔다.소원은 방민아가 말한 그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민아가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고 옆에 육연주가 함께 앉아 있었다.소원은 무표정하게 다가가 물었다.“방민아 씨, 제가 뭘 하면 되죠?”방민아는 입술을 가리며 웃었다.“무슨 일이 있어서 그쪽을 부른 게 아니에요. 연주가 보고 싶다고 해서요.”소원은 육연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갑자기 육연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들어 소원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며칠 못 봤더니 눈이 멀었나 봐? 나 못 봤어?”소원의 얼굴은 한쪽으로 젖혀졌고 귀가 웅웅거릴 정도로 아팠다.이 뺨 한 대를 때리기 위해 육연주는 며칠 동안이나 참아왔던 것이다.지난번 그녀가 결혼식에 난동을 부렸을 때 이미 목이라도 졸라 죽이고 싶었다. 당시 육경한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소원은 이미 서씨 가문 사람들에게 반쯤 죽도록 맞았을 것이다.그런데 육경한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소문에 따르면 그는 소원을 구하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고 했다. 북쪽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들은 칼날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육연주와 같은 재벌 2세는 그들에게 단지 걸어 다니는 금고와 같았다.그런 사람들을 적으로 돌린 육경한이 앞으로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북쪽 사람들은 원한을 잊지 않고 반드시 갚는다고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결혼식 후, 육연주는 소원을 제대로 혼내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소원이 육경한의 사람들에게 데려가져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그녀는 부모도 두렵지 않고 세상 무엇도 겁내지 않았지만 육경한만큼은 무서웠다.육경한은 냉혹하게 행동할 때 진정으로 냉혹했으며 혈연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다행히 방민아가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사실 크게 다친 것도 없었고요.”그러나 사실 그녀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육경한만큼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녀도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각한 일을 겪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숙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작은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영숙은 소원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래도 여기 왜 온 건지 말해봐.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봐도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같은데?”“오늘은 일이 있어서 왔어요. 제가 아는 단골 손님이 요청해서요.”소원이 답했다.“단골 손님?”영숙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누군데?”소원은 이곳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그녀의 손님은 대부분 영숙이 직접 배정해준 사람들이었다.때문에 소원이 말하는 ‘단골 손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영숙은 알 수 없었다.영숙의 걱정은 진심이었다.소원은 왜 영숙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영숙이 굳이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하지만 소원은 이번 일의 진실을 영숙에게 말할 수 없었다.방민아가 오늘 밤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밖에 흘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이를 어기면 아이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었다.“괜찮아요, 언니. 정말 아는 손님이라니까요.”소원은 모호하게 대답하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그러자 영숙은 ‘그래’라고 짧게 대답하며 비웃듯 말했다.“넌 이제 네 멋대로 하는구나. 내가 상관할 수 없겠네.”소원은 피식 웃었다.“그럴 리가요. 언니가 저를 이 일로 이끌어주셨잖아요. 하루라도 스승이면 영원히 스승인데 제가 언제 영숙 언니 말 안 들은 적 있나요?”이 말을 듣고 영숙은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 이렇게 말재간이 좋은 애인 줄 몰랐네.”“스승이니 뭐니 하지 마. 내 밑에 평생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조금 안정되면 얼른 나가.”사실 영숙은 방민아와 관련된 일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래서 그는 방민아가 나중에 유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유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방민아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그녀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 믿었다.“필요 없어. 임 교수님에게 빨리 수술 일정 잡아달라고 해줘.”육경한이 결혼을 위해 결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속임수에 휘말려 또 다른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그는 다른 사람이 낳지 않은 아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소종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육경한은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는 이미 그의 마음이 완전히 굳었다는 것을 의미했다.육경한이 결정한 일은 아무도 바꿀 수 없었다.다만 소종은 이런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은 소종조차도 대를 이을 아이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별을 떠나 건강한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었다.어쩌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하지만 육경한의 방식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그럼에도 소종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전화를 걸기 위해 소종이 막 나가려다가 육경한이 불러 세웠다.“잠깐.”“무슨 일이세요?”육경한은 말했다.“이 소식을 민아 씨에게 알려.”소종은 잠시 멍해졌다.‘정관 수술 한다는 걸 예비 신부에게 알리라고? 이건 결혼하기 전에 도망가라고 부추기는 일 아닌가?’그러나 육경한의 목적은 방민아를 시험해보기 위함이었다.이전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 말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방민아더러 함께하자고 했다.그러자 방민아는 주저 없이 동의했다.육경한이 방민아에게 난관 수술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건 이것이 신체에 손상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결혼을 약속한 상대라면 충분한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스스로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이번에 소종을 통해 이 소식을 흘린 건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고 표정조차 변화가 없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소종이 입을 열었다.“소원 씨가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습니다. 작은 도련님이 간신히 밝아졌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육경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소종의 말을 묵인하는 듯 말이다.이제 됐다 싶어 소종은 긴 숨을 내쉬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육경한이 이번에 얻은 상처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친 그가 이제는 소원에 대해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지금과 같이 냉정한 사람은 마음이 다치면 자신을 철저히 닫아버린다.육경한의 모습은 그야말로 심장이 죽은듯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남자는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소원은 이제 마음도 몸도 여기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붙잡는 건 양쪽 모두를 아프게 할 뿐이었다.소원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서현재 역시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육경한이 많이 참은 셈이었다.육경한이 물어보지 않았기에 소종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소종이 대신 육경한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여러 번 말을 해봤지만 소원은 전혀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그게 진정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일이었다.소종은 소원이 방민아가 유진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유진의 상태를 더 꼼꼼히 살피고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방민아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다만 소종은 방민아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잠시 좋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다.오래도록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방민아 씨가 과연 유진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대할 수 있을까? 자기 아이를 갖게 되면 유진이에 대한 태도가 변하진 않을까?’소종이 이런저런 생
소원은 방민아와 이런 복잡한 말싸움을 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연기를 하듯 감정을 숨기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었다.“방민아 씨, 아주머니를 만나볼 수는 없나요?”“그건... 방금 경한 씨한테 전화했잖아요? 경한 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소원 씨.”방민아는 곤란하고 미안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사실 소원이 대문 앞에서 보인 모든 행동을 방민아는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소원이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끝내 허락받지 못한 모습을 보며 방민아는 확신했다.이제 자신이 육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완전히 굳혔다고.방민아는 속으로 생각했다.‘다행히 연주의 말을 믿고 소원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어. 그냥 현명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처럼 행동했더니 효과가 좋네. 경한 씨도 이제 나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어. 소원? 이제 별로 두려워할 존재도 아니지.’소원은 한숨을 삼키며 자세를 낮추어 물었다.“그럼... 유진이랑 통화라도 할 수 있을까요?”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대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방민아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소원 씨, 그건 저도 힘들 것 같네요. 경한 씨가 소원 씨가 유진이와 접촉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거절당한 소원은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했다.방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소원 씨, 제가 기회를 드리지 않는 건 아니에요. 오늘 밤 일하러 가세요. 기분이 좋으면 유진이를 만나게 해줄 수도 있죠.”이 말에 놀란 소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정말인가요?”“그럼요.”방민아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결국 경한 씨가 없을 땐 이 육씨 가문내 일이 다 제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소원은 방민아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육경한은 집안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내부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좋아요. 하라는 대로 할게요. 하지만 유진이를 반드시 만나게 해줘야 해
소원은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렸지만 두 명의 건장한 보안요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보안요원은 그녀를 끌고 가면서 말했다.“저희도 이러고 싶진 않습니다. 저희는 월급 받는 대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누구도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제발 좀 협조해 주세요.”소원은 필사적으로 외쳤다.“제 아이가 위험해요!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 부를 거라고요!”그러자 보안요원은 피식 비웃었다.“지금 농담하세요? 작은 도련님은 매일 베란다에서 뛰어놀 만큼 건강해 보이는데 뭐가 위험하다는 겁니까? 혹시 망상증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에요?”이 말을 듣고 소원은 잠시 안도했지만 마음속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보안요원은 이어서 말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찰이 이런 걸 받아주지도 않을 겁니다. 신고해 보세요. 아마 처음에 잡혀갈 사람은 그쪽일 겁니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갈지도 모르겠네요. 작은 도련님은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방민아 씨는 정말 좋은 새엄마예요. 얼마나 세심한지 매일 작은 도련님을 돌보러 오신다니까요.”소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방민아는 결혼 전까지는 유진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후라면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지금 아주머니를 건드린 것도 육경한의 반응을 떠보는 일환이라 확신했다.육경한이 아주머니의 병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유진이의 위험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아니, 육경한이 아주머니를 걱정하더라도 방민아의 속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물론 이 모든 것은 소원의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사란 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만약의 가능성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갑자기 소원이 크게 외쳤다.“방민아 씨! 나와요! 방민아 씨, 당장 나와요!”보안요원이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소원은 두 보안요원의 손길을 뿌리치며 대문 앞으로 달려가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며 계속 외쳤다.“방민아 씨! 방민아 씨!”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소원은 일부러 유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혹여 유진이가 자극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유진이는 보통 아이들과 달랐고 소원은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해 항상 신중했다.소원은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백씨 아주머니! 백씨 아주머니, 계세요?”몇 번 부르지 않았는데 보안요원이 달려와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이렇게 소리치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주거 지역이에요. 계속 그러시면 강제로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보안요원의 말투는 점점 공손함을 잃어가고 있었다.상대가 까다로운 사람이든 아니든 겁낼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행동을 보니 그녀가 육 대표님과 친분이 깊을 리는 없어 보였다.만약 친분이 있었다면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테고 육경한이 이미 문을 열어줬을 것이다.그러나 소원은 보안요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말했다.“오늘은 반드시 아주머니를 만나야 합니다. 아주머니 이름 부르는 게 싫다면 백해란 아주머니가 여기 계신지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 확인만 해 주면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보안요원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런 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는 저택 안에 들어가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계속 소리 지르시면 지금 당장 내보낼 겁니다.”보안요원의 태도는 한층 강경해졌고 소원은 이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아주머니와 연락이 끊겼어요. 걱정돼서 왔습니다. 오늘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하면 저는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쪽들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렇게 하죠. 아주머니가 계신지 확인하고 그분이 저에게 전화만 주시면 저는 바로 떠나겠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어때요?”소원의 이 말은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타협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보안요원들은 상황을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안으로 들어가 관리인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건 큰일이 아니었지만 이 여자를 억지로 끌어내렸다가 경찰에 신고라도
소원이 침묵할수록 소종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그에게 소원은 냉혹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입장이 다르니 소종은 당연히 소원의 관점에서 이 일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그는 답답함에 목소리를 높였다.“알겠습니까? 모든 더러운 일은 내가 했습니다. 대표님은 저에게 너무 폭력적이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사업 세계는 깊은 수렁 같아서 독하지 않으면 발붙일 수 없어요! 그래서 전 자발적으로 대표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누군가 칼로 저를 찔러도 대표님의 미래를 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갑자기 소종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제가 소원 씨가 대표님을 해치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보리라고 생각합니까?”소원은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소 비서님, 제가 육경한을 찾는 건 유진이 때문이에요.”지금 그녀는 육경한을 무너뜨릴 생각도 없었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그녀의 마음에는 오직 유진이의 안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소종은 이 말을 듣고도 비웃으며 말했다.“소원 씨, 이제 와서 아들을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아들을 위한다면 아이의 친아버지를 그렇게 대했으면 안 됐죠.”“우리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다른 남자였으면 그쪽은 벌써 백번은 죽었을 겁니다.”소원은 다급히 물었다.“소 비서님, 요즘 유진이는 누가 돌보고 있습니까?”그녀는 소종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든 개의치 않았다.소종이 육경한에게 충성하는 만큼 유진이에게 해를 끼치도록 방치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소종은 잠시 찡그리며 대답했다.“방민아 씨가 돌보고 있습니다.”이 말에 소원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저는 유진이를 만나야 합니다. 지금 저 경원 저택 앞에 있습니다. 육경한에게 연락해서 제가 유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유진이가 걱정돼요.”소종은 콧방귀를 뀌었다.“뭐가 걱정된다는 거죠?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어제는 유진이를 데리고 대표님을 보러 오기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