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도 그 말에 동의했다. 방금 일이 있고 난 뒤다. 혼자 이곳에 남아 기다리는 건 솔직히 무서웠다.그러나 둘이 한참 동안 기다려도 기사는 오지 않았다.혜인은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이 깨져서 켜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배남준의 휴대전화를 빌려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기사는 주소를 잘못 들어 엉뚱한 곳에 가버렸던 것이었다.혜인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 당황해 있던 참이었다.기사에게 현재 위치를 물어보니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배남준은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입 모양으로 “내가 데려다줄게”라고 속삭였다.윤혜인은 더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고, 기사에게 다시 차를 집에 돌려놓으라고 지시했다.차에서 검은 가방을 꺼내고 배남준에게 말했다.“그럼 죄송하지만 부탁 좀 할게요, 남준 오빠.”남준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나도 이제 별다른 일 없으니까 괜찮아.”차에 탄 후, 혜인이 목적지를 알려주었다.큰길로 나오고, 혜인은 남준에게 적당한 곳에 세워 달라고 했다.“남준 오빠, 잠시만 다녀올게요.”그녀는 소원과 약속한 비밀을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무리 배남준이라 하더라도, 지금 무엇을 하러 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배남준은 혜인에게 굳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곁에서 자신의 비상용 휴대전화를 꺼내 주며 말했다.“필요하면 전화해.”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혜인은 소원이 말한 골목길로 들어가, 붉은 벽돌집을 찾았다.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상당히 은밀한 곳이었다.마당 입구에 도착하자, 닭이 푸드덕 날아오르고 개가 울부짖는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급히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남자가 땅에 누운 아이를 질질 끌고 있는 것이었다.그는 입에 담배를 물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악을 쓰며 말했다.“빌어먹을 늙은것들, 돈을 안 내놓으면 이 꼬맹이를 팔아먹을 거다!”노란 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아이를 꼭 껴안고 찢어지는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윤혜인은 온 힘을 다해 발로 힘껏 밟았다.아주머니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지만 여전히 그녀를 놓지 않고 꽉 붙잡고 있었다.윤혜인은 상황이 급박하다고 판단하고 아이와 함께 있는 이모님의 귀에 대고 말했다.“앞쪽 교차로에 차가 있어요!”그 말을 마치고 나서, 이모님과 어린 남자아이를 밖으로 밀어냈다.그러자 이모님은 빠르게 반응하며 아이를 안고 달아나기 시작했다.이를 가만둘 수 없었던 둘째는 발걸음을 옮겨 그들을 뒤따라갔다.아주머니는 뒤에서 크게 소리쳤다.“둘째야, 빨리 와서 날 도와줘! 이 여자가 네 형을 잡아넣었어!”둘째는 이 말을 듣자마자 추격을 멈추고 대문을 잠갔다.윤혜인은 아주머니를 떼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한번 무겁게 발을 내리찍었다.아주머니는 아파서 이를 갈며 울부짖었지만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둘째야, 빨리 와! 이렇게 예쁜 여자는 놓치면 안 되지. 네 형이 나오면 이제 이 여자를 네 형 아내로 삼을 거야!”차마 믿을 수 없는 말에 윤혜인은 경악했다.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지시할 수 있단 말인가.둘째는 그제야 진지하게 윤혜인을 살펴보았다.‘정말 좀 예쁜데? 분홍빛이 도는 게... 꼭 신선한 복숭아처럼 생겼어. 한 입 베어 물면 과즙이 튀어나올 것 같아.’윤혜인은 그가 음흉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긴장했다.곧이어 남자는 뒤에서 접근해 윤혜인의 허리를 움켜잡고 꽉 눌렀다.그런 다음 그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엄마, 먼저 가서 그 여편네랑 아이 찾아봐요. 난 여기서 좀 즐기고 있을 테니까!”둘째와 그의 엄마, 그리고 형은 늘 고정적인 거처가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그래서인지 진즉 결혼할 나이가 되었어도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가끔 ‘홍등가'에서 욕망을 해결하곤 했지만 그런 여자는 눈앞의 윤혜인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손에 넣기 힘든 여자를 탐하는 거야말로 재밌지!’아주머니는 잠시 망설였다.‘우리 첫째한테 남겨 주려고 했던 여자인데...’둘째는 조금 비뚤어졌지만 지능은 정상
둘째는 머리가 몹시 아프고 아랫배는 죽을 것처럼 아팠다.그는 자신이 이렇게 한 여자의 손에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윤혜인은 배남준의 예비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를 마쳤다.그녀는 남자가 다쳤다는 것을 확신했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고 경찰에 맡기려고 했다.하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으며 소리쳤다.“이 더러운 년, 너 같은 것들은 모조리 다 죽여버리겠어!”항상 질 나쁜 사람들과 어울려 다닌 탓인지 그의 욕은 윤혜인이 들어본 적 없는 아주 저속하고 역겨운 것이었다.그는 더욱더 심한 말을 내뱉었다.“네 엄마도 너 같은 것을 낳았으니 더러운 년일 거야. 내가 네 엄마까지 같이...”윤혜인은 이 말을 듣고 문 앞에서 냉소를 지으며 바닥에 있는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그리고는 이내 남자의 얼굴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퍽!”둘째는 얼굴에 빗자루를 맞고 코피를 쏟았다.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지만 그는 차마 일어서지는 못하고 윤혜인에게 다가가면서 계속 욕을 했다.“이 더러운 년, 감히 날 때려? 내가 오늘 너 가만 안 둬...”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질렀다.윤혜인의 그의 다섯 손가락을 강하게 밟고 있는 것이었다.“아아아!”남자는 고통 속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질렀다.그러자 윤혜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네 엄마가 도대체 어떻게 너를 교육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그 더러운 입 씻어줄게.”말을 마치고 그녀는 옆에 있는 걸레통에서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걸레를 집어 들었다.걸레의 물은 더럽다 못해 흙이 섞여 있었으며 모든 종류의 세균이 가득했다.둘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윤혜인은 그를 더 강하게 눌렀다.걸레 머리는 둥글고 많은 면직물이 묶여 있어 보통 사람의 입에 들어가지 않는다.그러나 윤혜인은 억지로 그것을 남자의 입에 밀어 넣었고 마침내 그가 그 더러운 물을 삼켰다.곧이어 윤혜인이 걸레를 빼내자 둘째는 얼굴이 검게 변
윤혜인은 남자를 뒤집어놓고 걸레통을 들어 그의 입을 벌려 강제로 물을 부었다.“꿀꺽꿀꺽... 안 돼... 꿀꺽꿀꺽...”그때 대문에서 ‘쿵'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혜인아!”배남준은 얼굴에 다급한 표정을 하고 들어와 윤혜인의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잔뜩 긴장한 듯한 목소리였다.“괜찮아? 어디 다쳤어?”조금 전 그는 윤혜인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하는 이모님의 설명을 들었다.그러고 나서 그는 이모님과 아이에게 차 안에서 절대 나오지도, 문을 열어주지도 말라고 부탁한 뒤, 자신은 서둘러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윤혜인은 배남준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머쓱하게 말했다.“오빠, 나 괜찮아요.”배남준은 그제야 윤혜인이 손에 더러운 물통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괜찮다니 다행이다.”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는 물을 많이 마셔 숨을 고르기도 어려운 상태였다.그는 비참하게 신음하며 말했다.“감히 날 밟아...”배남준은 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를 보며 눈빛에 순간적으로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동정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그는 일어나서 윤혜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가자, 여긴 경찰에게 맡기고.”“네.”곧이어 윤혜인이 더러운 물통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밖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아들!”방금 도망쳤던 아주머니가 아이와 이모님을 찾으려고 했으나 차 문을 열지 못해 다시 돌아와 둘째 아들을 찾는 것이었다.하지만 아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그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우리 첫째, 둘째 아들 모두 이년 때문에 다쳤다고?!’아주머니는 분노에 차서 옆에 있던 철삽을 집어 들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이 나쁜 년놈들아, 감히 대낮에 내 아들을 해쳐? 죽여버리고 말 거야!”긴박한 순간이었다.반사적으로 배남준은 윤혜인을 자신의 뒤로 숨겨 보호하려고 했다.그러나 윤혜인은 그를 밀어내고 더러운 물통을 들어 아주머니에게 쏟아부었다.“쾅!”물이 눈에 들어가 앞이 안 보였던 아주머니는 두 사
경험이 풍부했던 이모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좀 이따 해열제 먹으면 돼요. 유진이는 몸이 약해서 병원에 가면 오히려 감염되기 쉽거든요.”얼마 후, 그들은 호텔에 도착했다. 이모님은 유진이에게 마스크와 야구 모자를 씌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윤혜인은 눈에 띄지 않도록 큰 스위트룸을 잡고 이모님과 함께 들어갔다.배남준은 약국에 약을 사러 갔다.유진이의 고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지만 이모님은 병원에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그녀는 유진이가 고열로 병원에 갔다가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하는 수 없이 윤혜인은 두려움에 떨며 이모님과 함께 유진이를 간호했다.밤이 깊어지자 유진이의 열은 조금씩 내려갔고 그들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이모님은 윤혜인에게 잠시 쉬라고 권했다.곧이어 밖으로 나온 윤혜인은 배남준이 여전히 떠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 태블릿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남준 오빠, 신세를 너무 많이 졌네요.”배남준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나 졸리지도 않아. 넌 잠 좀 자둬. 내가 내일 아침에 운전해서 데려다줄게.”집 문제에 관해서 윤혜인은 이미 곽경천에게 맡겨둔 뒤였다.그가 서울 외곽에 많은 집들을 소유하고 있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을 찾는데 비교적 수월할 테니 말이다.윤혜인은 소원이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육경한은 미친 사람이었고 유진이를 발견하면 아이를 협박할 가능성이 있었다.그렇다. 육경한은 혈연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윤혜인은 너무 피곤했지만 늦은 시간에 배남준을 보내기 역시 어려웠다.하지만 배남준은 신사적으로 눈치껏 옷을 챙기며 말했다.“옆방에 예약해놨으니까 필요하면 불러.”그리고 나가기 전, 그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맞다, 네가 찾아달라고 했던 사람.”배남준은 핸드폰에서 사진을 꺼내 윤혜인에게 보여주었다.“이 사람 맞지?”사진 속 남자는 음산한 표정으로 늑대
전화기 속에서 다시 침묵이 흘렀다.윤혜인은 오늘 밤 이준혁이 이상하게 군다고 느끼며 멍하게 있었다.그래서 뭐라 물어보려는 찰나, 안에서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유진이가 기침을 하는 소리인 것 같았다.그러자 윤혜인은 깜짝 놀라 수화기를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만 쉬어야겠어요. 무슨 할 말 있으면 내일 해요.”그러고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뚜뚜뚜...”끊임없이 울리는 바쁜 신호음이 마치 한 곡의 노래처럼 그를 조롱하는 듯했다.이준혁은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회의를 일찍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게 아니었는데... 혜인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안절부절못하며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게 아니었는데... 혜인이의 행방을 알고 금오구에 찾아온 것도 그리 좋은 결정은 아니었던 거야.’조금 전까지 그는 자신을 다독이고 있었다.윤혜인과 배남준이 함께 호텔에 있는 건 단지 일이 있어서일 거라고.배남준이 약 봉투를 들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이준혁은 심지어 윤혜인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는 여전히 차에 앉아 윤혜인의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윤혜인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전화를 받기 전까지도 이준혁은 자신을 타이르고 있었다.윤혜인이 배남준과 함께 있다고만 말해준다면 그저 윤혜인을 믿겠다고, 괜히 질투하지 말고 그녀를 화나게 하지 말자며 말이다.하지만 윤혜인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모르는 사람’이라니.이준혁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가 놓았다.“돌아가자.”주훈은 놀라며 물었다.“대표님, 돌아가자고요?”그는 윤혜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기에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주훈은 이준혁이 회의를 줄이고 남청에서 서울로 다시 서울에서 금오구로 급히 돌아오며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직 윤혜인을 한 번 보기 위해서 말이다.‘왜
윤혜인은 잠시 생각한 후 이준혁에게 문자를 보냈다.[나 돌아왔어요.]문자를 보내고 나서 그녀는 도지훈에게 채소 슈퍼마켓에 잠시 들러 달라고 부탁했다.어제 하지 못했던 저녁 식사 준비를 오늘로써 보충하려는 것이었다.슈퍼마켓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고르고 나서야 그들은 모든 재료를 구입했다.집에 돌아온 후, 그녀는 주방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직접 손질하고 세심하게 준비했다.모든 준비가 끝난 후, 윤혜인은 다시 한번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다.아무런 답장이 없었다.그러자 윤혜인은 조금 실망감을 느꼈다.‘정말 바쁜가 보네...’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했지만, 이준혁이 회의 중일까 봐 망설였다.그렇게 곰곰이 생각 끝에 윤혜인은 주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주훈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혜인 씨, 무슨 일인가요?”“주 비서님, 준혁 씨... 지금 바쁜가요?”“네, 대표님은 지금 회의 중입니다. 전해드릴 말씀이 있으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오늘 저녁 잊지 말고 저녁 식사에 오라고 전해주세요.”주훈은 사무실에서 이준혁이 코트를 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주저하며 말했다.“혜인 씨, 대표님께서 오늘 밤에는 늦게까지 바쁘실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윤혜인은 주훈의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괜찮아요. 기다릴게요.”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아름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윤혜인은 말했다.“주 비서님, 그럼 일 보세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주훈은 급히 이준혁을 따라가 헐떡이며 말했다.“사모...”그러나 이준혁의 차가운 안색을 보고 주훈은 즉시 말을 바꿨다.“혜인 씨께서 오늘 저녁 식사를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이준혁은 그 말을 들었지만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비로소 그는 감정을 드러냈다.윤혜인이 이준혁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것은 단지 그의 호의에 대한 보답이었다.우스운 것은 이준혁이 그 일로 기뻐했었다는 것이다.‘나도 참... 어리석어
윤혜인은 저녁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모든 요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거의 7시가 되었다.그녀는 요리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았고 자동으로 온도를 유지해 주는 식탁이라 한 시간 정도는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그렇게 윤혜인은 아름이와 함께 식탁에 앉아 이준혁이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기를 기다렸다.그 순간,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예전에도 윤혜인은 이렇게 집에서 이준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곤 했다.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지금 아기가 하나 더 생겼다.시간이 점점 흘러갔고 아름이의 배에서는 꾸르륵 소리가 났다.아름이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엄마, 대디 언제 와요?”“엄마도 잘 모르겠어.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전화해서 물어볼게.”곧 윤혜인은 핸드폰을 들어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전화가 연결음이 한창 울려도 누구도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오늘 밤에는 오지 않으려나... 근데 왜? 왜 오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도 없어?’아름이는 윤혜인이 핸드폰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대디 왜 전화를 안 받아요?”윤혜인은 억지로 웃으며 아름이를 달랬다.“대디는 아마 바쁘실 거야. 우리 먼저 먹자.”그러나 아름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싫어요, 대디랑 같이 먹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대디랑 같이 나누고 싶어요.”윤혜인은 아름이를 설득하려 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했다.“그럼 아름아, 새우죽 좀 먹어서 속 따뜻하게 할래?”마침내 설득된 아름이는 죽을 먹기로 했다.작은 아이는 한 그릇의 죽을 먹었으면 거의 배가 찬 것이나 다름없었다.아름이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 윤혜인과 함께 기다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평소 8시 반에는 잠자리에 드는 아이가 지금은 이미 9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했다.윤혜인은 홍 아줌마에게 아름이를 씻기고 재워 달라고 부탁한 뒤, 자신은 식탁을 정리하려 했다.그러나 접시를 집어 들자마자 실수로 떨어뜨렸다.그녀는 급히 주
육연주는 다짜고짜 소원의 머리채를 붙잡아 탁자 위로 내리눌렀다.힘껏 눌러대며 외쳤다.“오늘 반드시 내가 그날 느낀 굴욕과 분노를 똑같이 느끼게 해줄 거야!”하지만 소원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이 정도의 고통쯤은 감내할 수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방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약속은 지키셔야죠. 우리가 한 대로 이행해주세요.”방민아는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한 말은 꼭 지킵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이 거론될 일을 피하려고 애써 돌려서 말했다.소원은 방민아가 무슨 꾀를 부리든 상관하지 않았다. 약속만 지켜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렇지 않다면 육연주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었다.육연주는 샴페인과 맥주를 들고 소원의 머리 위로 들이부었다.그러고는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다.“술 좋아한다며? 아니어도 괜찮아. 내가 좋아하게 만들어 줄 테니 잘 마셔 봐!”알코올이 따갑게 소원의 머리와 얼굴을 적셨다.소원은 눈을 꼭 감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육연주는 더욱 흥분하며 소원의 뺨을 두 차례나 세게 때렸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술병을 집어 들어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려고까지 했다.그 순간, 방민아가 육연주의 손목을 꽉 잡아 멈췄다.“연주야, 내가 뭐라고 했어? 겉으로 티 나는 상처는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면 너한테도 안 좋아.”그들의 관심은 소원의 안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벌가 자제 이미지가 더러워질까 하는 것이었다.그렇게 육연주는 힘없이 손을 풀었고 술병은 바닥으로 떨어져 몇 번 굴러갔다.방민아는 처음부터 이렇게 경고했다. 목숨을 앗아가선 안 되고 모욕하고 짓밟는 건 가능하지만 눈에 띄는 외상은 절대 안 된다고.처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육연주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소원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그날 결혼식에서 소원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 됐는지, 모든 사람들에
“네, 괜찮아질 거예요...”잠시 충전한 덕에 상태가 많이 나아진 소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언니, 이제 가서 일 봐요. 저도 제 일하러 갈게요.”“응.”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갔다.소원은 방민아가 말한 그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민아가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고 옆에 육연주가 함께 앉아 있었다.소원은 무표정하게 다가가 물었다.“방민아 씨, 제가 뭘 하면 되죠?”방민아는 입술을 가리며 웃었다.“무슨 일이 있어서 그쪽을 부른 게 아니에요. 연주가 보고 싶다고 해서요.”소원은 육연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갑자기 육연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들어 소원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며칠 못 봤더니 눈이 멀었나 봐? 나 못 봤어?”소원의 얼굴은 한쪽으로 젖혀졌고 귀가 웅웅거릴 정도로 아팠다.이 뺨 한 대를 때리기 위해 육연주는 며칠 동안이나 참아왔던 것이다.지난번 그녀가 결혼식에 난동을 부렸을 때 이미 목이라도 졸라 죽이고 싶었다. 당시 육경한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소원은 이미 서씨 가문 사람들에게 반쯤 죽도록 맞았을 것이다.그런데 육경한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소문에 따르면 그는 소원을 구하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고 했다. 북쪽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들은 칼날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육연주와 같은 재벌 2세는 그들에게 단지 걸어 다니는 금고와 같았다.그런 사람들을 적으로 돌린 육경한이 앞으로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북쪽 사람들은 원한을 잊지 않고 반드시 갚는다고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결혼식 후, 육연주는 소원을 제대로 혼내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소원이 육경한의 사람들에게 데려가져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그녀는 부모도 두렵지 않고 세상 무엇도 겁내지 않았지만 육경한만큼은 무서웠다.육경한은 냉혹하게 행동할 때 진정으로 냉혹했으며 혈연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다행히 방민아가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사실 크게 다친 것도 없었고요.”그러나 사실 그녀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육경한만큼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녀도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각한 일을 겪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숙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작은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영숙은 소원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래도 여기 왜 온 건지 말해봐.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봐도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같은데?”“오늘은 일이 있어서 왔어요. 제가 아는 단골 손님이 요청해서요.”소원이 답했다.“단골 손님?”영숙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누군데?”소원은 이곳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그녀의 손님은 대부분 영숙이 직접 배정해준 사람들이었다.때문에 소원이 말하는 ‘단골 손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영숙은 알 수 없었다.영숙의 걱정은 진심이었다.소원은 왜 영숙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영숙이 굳이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하지만 소원은 이번 일의 진실을 영숙에게 말할 수 없었다.방민아가 오늘 밤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밖에 흘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이를 어기면 아이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었다.“괜찮아요, 언니. 정말 아는 손님이라니까요.”소원은 모호하게 대답하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그러자 영숙은 ‘그래’라고 짧게 대답하며 비웃듯 말했다.“넌 이제 네 멋대로 하는구나. 내가 상관할 수 없겠네.”소원은 피식 웃었다.“그럴 리가요. 언니가 저를 이 일로 이끌어주셨잖아요. 하루라도 스승이면 영원히 스승인데 제가 언제 영숙 언니 말 안 들은 적 있나요?”이 말을 듣고 영숙은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 이렇게 말재간이 좋은 애인 줄 몰랐네.”“스승이니 뭐니 하지 마. 내 밑에 평생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조금 안정되면 얼른 나가.”사실 영숙은 방민아와 관련된 일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래서 그는 방민아가 나중에 유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유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방민아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그녀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 믿었다.“필요 없어. 임 교수님에게 빨리 수술 일정 잡아달라고 해줘.”육경한이 결혼을 위해 결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속임수에 휘말려 또 다른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그는 다른 사람이 낳지 않은 아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소종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육경한은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는 이미 그의 마음이 완전히 굳었다는 것을 의미했다.육경한이 결정한 일은 아무도 바꿀 수 없었다.다만 소종은 이런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은 소종조차도 대를 이을 아이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별을 떠나 건강한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었다.어쩌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하지만 육경한의 방식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그럼에도 소종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전화를 걸기 위해 소종이 막 나가려다가 육경한이 불러 세웠다.“잠깐.”“무슨 일이세요?”육경한은 말했다.“이 소식을 민아 씨에게 알려.”소종은 잠시 멍해졌다.‘정관 수술 한다는 걸 예비 신부에게 알리라고? 이건 결혼하기 전에 도망가라고 부추기는 일 아닌가?’그러나 육경한의 목적은 방민아를 시험해보기 위함이었다.이전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 말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방민아더러 함께하자고 했다.그러자 방민아는 주저 없이 동의했다.육경한이 방민아에게 난관 수술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건 이것이 신체에 손상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결혼을 약속한 상대라면 충분한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스스로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이번에 소종을 통해 이 소식을 흘린 건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고 표정조차 변화가 없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소종이 입을 열었다.“소원 씨가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습니다. 작은 도련님이 간신히 밝아졌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육경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소종의 말을 묵인하는 듯 말이다.이제 됐다 싶어 소종은 긴 숨을 내쉬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육경한이 이번에 얻은 상처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친 그가 이제는 소원에 대해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지금과 같이 냉정한 사람은 마음이 다치면 자신을 철저히 닫아버린다.육경한의 모습은 그야말로 심장이 죽은듯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남자는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소원은 이제 마음도 몸도 여기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붙잡는 건 양쪽 모두를 아프게 할 뿐이었다.소원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서현재 역시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육경한이 많이 참은 셈이었다.육경한이 물어보지 않았기에 소종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소종이 대신 육경한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여러 번 말을 해봤지만 소원은 전혀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그게 진정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일이었다.소종은 소원이 방민아가 유진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유진의 상태를 더 꼼꼼히 살피고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방민아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다만 소종은 방민아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잠시 좋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다.오래도록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방민아 씨가 과연 유진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대할 수 있을까? 자기 아이를 갖게 되면 유진이에 대한 태도가 변하진 않을까?’소종이 이런저런 생
소원은 방민아와 이런 복잡한 말싸움을 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연기를 하듯 감정을 숨기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었다.“방민아 씨, 아주머니를 만나볼 수는 없나요?”“그건... 방금 경한 씨한테 전화했잖아요? 경한 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소원 씨.”방민아는 곤란하고 미안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사실 소원이 대문 앞에서 보인 모든 행동을 방민아는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소원이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끝내 허락받지 못한 모습을 보며 방민아는 확신했다.이제 자신이 육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완전히 굳혔다고.방민아는 속으로 생각했다.‘다행히 연주의 말을 믿고 소원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어. 그냥 현명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처럼 행동했더니 효과가 좋네. 경한 씨도 이제 나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어. 소원? 이제 별로 두려워할 존재도 아니지.’소원은 한숨을 삼키며 자세를 낮추어 물었다.“그럼... 유진이랑 통화라도 할 수 있을까요?”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대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방민아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소원 씨, 그건 저도 힘들 것 같네요. 경한 씨가 소원 씨가 유진이와 접촉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거절당한 소원은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했다.방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소원 씨, 제가 기회를 드리지 않는 건 아니에요. 오늘 밤 일하러 가세요. 기분이 좋으면 유진이를 만나게 해줄 수도 있죠.”이 말에 놀란 소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정말인가요?”“그럼요.”방민아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결국 경한 씨가 없을 땐 이 육씨 가문내 일이 다 제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소원은 방민아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육경한은 집안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내부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좋아요. 하라는 대로 할게요. 하지만 유진이를 반드시 만나게 해줘야 해
소원은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렸지만 두 명의 건장한 보안요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보안요원은 그녀를 끌고 가면서 말했다.“저희도 이러고 싶진 않습니다. 저희는 월급 받는 대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누구도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제발 좀 협조해 주세요.”소원은 필사적으로 외쳤다.“제 아이가 위험해요!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 부를 거라고요!”그러자 보안요원은 피식 비웃었다.“지금 농담하세요? 작은 도련님은 매일 베란다에서 뛰어놀 만큼 건강해 보이는데 뭐가 위험하다는 겁니까? 혹시 망상증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에요?”이 말을 듣고 소원은 잠시 안도했지만 마음속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보안요원은 이어서 말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찰이 이런 걸 받아주지도 않을 겁니다. 신고해 보세요. 아마 처음에 잡혀갈 사람은 그쪽일 겁니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갈지도 모르겠네요. 작은 도련님은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방민아 씨는 정말 좋은 새엄마예요. 얼마나 세심한지 매일 작은 도련님을 돌보러 오신다니까요.”소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방민아는 결혼 전까지는 유진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후라면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지금 아주머니를 건드린 것도 육경한의 반응을 떠보는 일환이라 확신했다.육경한이 아주머니의 병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유진이의 위험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아니, 육경한이 아주머니를 걱정하더라도 방민아의 속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물론 이 모든 것은 소원의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사란 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만약의 가능성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갑자기 소원이 크게 외쳤다.“방민아 씨! 나와요! 방민아 씨, 당장 나와요!”보안요원이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소원은 두 보안요원의 손길을 뿌리치며 대문 앞으로 달려가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며 계속 외쳤다.“방민아 씨! 방민아 씨!”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소원은 일부러 유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혹여 유진이가 자극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유진이는 보통 아이들과 달랐고 소원은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해 항상 신중했다.소원은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백씨 아주머니! 백씨 아주머니, 계세요?”몇 번 부르지 않았는데 보안요원이 달려와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이렇게 소리치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주거 지역이에요. 계속 그러시면 강제로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보안요원의 말투는 점점 공손함을 잃어가고 있었다.상대가 까다로운 사람이든 아니든 겁낼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행동을 보니 그녀가 육 대표님과 친분이 깊을 리는 없어 보였다.만약 친분이 있었다면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테고 육경한이 이미 문을 열어줬을 것이다.그러나 소원은 보안요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말했다.“오늘은 반드시 아주머니를 만나야 합니다. 아주머니 이름 부르는 게 싫다면 백해란 아주머니가 여기 계신지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 확인만 해 주면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보안요원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런 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는 저택 안에 들어가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계속 소리 지르시면 지금 당장 내보낼 겁니다.”보안요원의 태도는 한층 강경해졌고 소원은 이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아주머니와 연락이 끊겼어요. 걱정돼서 왔습니다. 오늘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하면 저는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쪽들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렇게 하죠. 아주머니가 계신지 확인하고 그분이 저에게 전화만 주시면 저는 바로 떠나겠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어때요?”소원의 이 말은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타협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보안요원들은 상황을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안으로 들어가 관리인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건 큰일이 아니었지만 이 여자를 억지로 끌어내렸다가 경찰에 신고라도
소원이 침묵할수록 소종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그에게 소원은 냉혹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입장이 다르니 소종은 당연히 소원의 관점에서 이 일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그는 답답함에 목소리를 높였다.“알겠습니까? 모든 더러운 일은 내가 했습니다. 대표님은 저에게 너무 폭력적이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사업 세계는 깊은 수렁 같아서 독하지 않으면 발붙일 수 없어요! 그래서 전 자발적으로 대표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누군가 칼로 저를 찔러도 대표님의 미래를 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갑자기 소종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제가 소원 씨가 대표님을 해치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보리라고 생각합니까?”소원은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소 비서님, 제가 육경한을 찾는 건 유진이 때문이에요.”지금 그녀는 육경한을 무너뜨릴 생각도 없었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그녀의 마음에는 오직 유진이의 안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소종은 이 말을 듣고도 비웃으며 말했다.“소원 씨, 이제 와서 아들을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아들을 위한다면 아이의 친아버지를 그렇게 대했으면 안 됐죠.”“우리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다른 남자였으면 그쪽은 벌써 백번은 죽었을 겁니다.”소원은 다급히 물었다.“소 비서님, 요즘 유진이는 누가 돌보고 있습니까?”그녀는 소종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든 개의치 않았다.소종이 육경한에게 충성하는 만큼 유진이에게 해를 끼치도록 방치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소종은 잠시 찡그리며 대답했다.“방민아 씨가 돌보고 있습니다.”이 말에 소원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저는 유진이를 만나야 합니다. 지금 저 경원 저택 앞에 있습니다. 육경한에게 연락해서 제가 유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유진이가 걱정돼요.”소종은 콧방귀를 뀌었다.“뭐가 걱정된다는 거죠?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어제는 유진이를 데리고 대표님을 보러 오기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