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선재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경찰관님, 제 전처는 예전에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앓았고 해외에서 오래 치료받았었어요. 빨리 병원에 데려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입으로는 연민을 담은 말을 했지만 구지윤을 바라보는 눈빛은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으나 구지윤은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두고 봐, 내가 어떻게 너를 망가뜨리는지!’공포가 마치 붉은 개미 떼처럼 사방에서 기어와 구지윤의 온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그녀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갔고 마치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육선재의 사악한 이미지가 구지윤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허리띠를 만지작거리며 육선재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계속해서 작은 행동들로 그녀를 자극하며 도발하고 있었다.“쨍그랑!”구지윤의 손에 들려 있던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그녀는 칼을 떨어뜨린 채 손을 들어 올리며 육선재의 의아한 표정을 바라보다가 비참하게 울음을 터뜨렸다.“경찰관님, 제 전남편은 가정폭력 전력이 있어요. 해외에서 이미 접근금지 명령을 신청한 적도 있습니다. 저 사람이 방금 저를 위협했어요. 제가 칼을 든 건 자기방어를 위해서였어요. 정말 다행히도 제때 오셨네요...”비록 슬피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구지윤은 논리적이고도 뚜렷하게 중요한 요점을 명확히 전했다.그러자 순식간에 육선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구지윤이 이렇게 똑똑해질 줄은 몰랐고 이전에 해외에서 자주 써먹던 수법이 전혀 통하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를 악물더니 육선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감히 날 고발해? 간땡이가 부었구나?!”“아아아!!!”구지윤은 크게 소리쳤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무엇인가 두려운 것을 본 것 같았고 충격에 휩싸인 듯 몸을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러고는 머리를 감싸 쥐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때리지 마요. 제발 때리지 마요...”그 모습은 명백히 오랜 시간 학대를 당한 사람의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이 모습에 더
구지윤은 몸에 전해지는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곽경천은 복잡한 심정이 담긴 표정으로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차갑지만 어딘가 미묘한 표정이었다.곧 그가 경찰관에게 말했다.“제 여동생입니다. 제가 함께 병원에 가서 상처를 확인하겠습니다.”서류에 사인을 한 후, 그는 구지윤에게 손을 내밀었다.구지윤은 잠시 당황한 듯 그 손을 바라보았다.그녀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곽경천은 허리를 살짝 굽혀 구지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곧 구지윤의 목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붉은 자국에 시선이 닿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걸을 수 있겠어?”구지윤은 작은 손이 곽경천의 손에 감싸 쥐어 있어 그 온기를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대답했다.“걸을 수 있어요.”그러자 곽경천은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의 옷을 단정히 해주며 서서히 코트의 단추를 잠가 주었다.차 안에서 병원으로 가는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차 안을 감쌌다.병원에서 상처를 검사받고 나온 후, 곽경천은 결과 자료를 들고 자신의 비서에게 넘기며 말했다.“최고의 변호사를 구해. 반드시 그 사람이 저지른 일에 대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니까.”그 말을 듣고 나서야 구지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던 두려움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그리고 마음도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비서가 떠난 후, 곽경천은 차 안의 온도를 조절한 후 구지윤에게 따뜻한 설탕물을 건넸다.그렇게 구지윤은 몇 모금 마시면서 조금씩 진정되었다.이때, 곽경천이 말했다. “혜인이가 너한테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작업실의 전화를 받고 나한테 전화해서 네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어.”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설명해 주었다.구지윤이 묻기도 전에 곽경천은 그녀가 궁금해할 일을 이미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육씨 가문 어르신이 돌아가셨어. 그래서 육선재가 서울에 올 수 있었던 거야.”육씨
육선재가 순찰하던 경찰관에게 제압당해 땅에 눕혀졌을 때 구지윤을 향한 그의 시선은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였다.마치 그녀를 인간쓰레기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듯한 차갑고 잔인한 눈빛이었다.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사방에서 구지윤을 에워싸며 압박해왔고 구지윤은 다시는 그 끔찍한 느낌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곽경천은 그녀를 말없이 안고 있었다. 구지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그러한 조용한 감정 표현이 오히려 사람을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곽경천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위로했다.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단향은 고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고 구지윤은 마치 곽경천이 그녀 인생에서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빛처럼 꼭 안고 있었다.차는 구지윤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고 곽경천의 개인 별장으로 향했다. 차가 멈추자 구지윤은 차창 밖의 집을 바라보았지만 쉽게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 순간, 곽경천이 차 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몸을 숙여 그녀를 들어 올렸다.하지만 허리를 감싸는 대신 등을 감싸며 예의를 지켰다.따뜻하고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구지윤은 곽경천이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곽경천은 그녀를 침실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내가 물 받아줄게. 목욕하고 내려와서 저녁 먹어.”그러자 구지윤은 그의 셔츠를 살짝 잡아당기며 불안한 듯 말했다.“그래도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러나 곽경천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육선재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내 집에서 지내. 네 집은 안전하지 않아.”그렇게 물을 받은 후, 곽경천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깨끗한 옷을 챙겨왔다.이는 방금 비서에게 부탁해 준비한 여벌 옷이었다.옷을 욕실 옆 옷걸이에 걸어두고 곽경천은 문을 닫고 나갔다.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구지윤은 한결 나아진 듯한 기분이었다.저녁은 별장 안의 가정부가 준비한 것이었고 건강에 좋은 담백한 요리들이 주를 이루었다.구지윤은 조금밖에 먹지 않았지만 곽경천이 지켜보는 동안 억지로 몇 숟가락
”축하해요. 임신하셨습니다!”멍 때리고 있던 윤혜인 머릿속에는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만 계속 떠올랐다.그때, 조용하게 다가온 이준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한참 뒤, 이준혁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와 글썽이는 눈망울은 조금 전에 많이 힘들었음을 설명해 주었다.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서랍을 열어 임신 검사 보고서를 꺼냈다.요즘따라 계속 위에 통증을 느꼈던 윤혜인은 오늘 오후 병원에 찾아갔고 피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5주 차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매번 안전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는데.다시 돌이켜보니 저번 달에 딱 한 번, 술자리를 마친 이준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한마디 물었었다.“지금 안전하지?”그런데 안전기에도 임신할 수 있는 거구나…욕실 안에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남자는 2년 전에 윤혜인과 아무도 몰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의 상사이기도 한 이산 그룹 대표 이준혁이다.그때 당시 술이 많이 취한 윤혜인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 이준혁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이준혁은 그녀에게 가짜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이준혁 할아버지의 최대 소원이 손자가 하루 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 대외적 비밀 결혼으로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가짜 결혼이었다.그때 당시 윤혜인은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짝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동의했던 것이다.결혼한 뒤에도 이준혁은 매일 너무 바빴다. 한달 동안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2년 동안
윤혜인은 우유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연예 뉴스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그 기사를 클릭하게 되었다.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 속에서 임세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흐릿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몸매 비율은 완벽했다.사진을 확대한 윤혜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사진 속 실루엣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준혁이다!그럼 오후에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외출을 했던 게, 그의 전 여자친구인 임세희를 데리러 공항에 간 거란 말인가?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 박힌 듯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의도치 않게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다급하게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너무나도 깜짝 놀란 윤혜인은 바로 핸드폰을 던져버렸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한참 뒤, 날이 밝아오자 윤혜인은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이준혁과 가짜 결혼을 한 뒤, 이준혁은 그녀가 집에 있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이준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가 아닌 이산 그룹에 취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 곁에 비서로 남아 물을 따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소일거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비서 일은 이준혁의 수행 비서인 주훈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회사에 윤혜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훈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산 그룹의 이준혁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남자 비서만 채용했고 2년 동안 여자 비서는 윤혜인 한 명밖에 없었기에 다들 윤혜인과 회사 대표가 특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김성훈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려는 듯했다.윤혜인은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숨긴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그러고는 김성훈을 지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준혁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윤혜인은 단번에 이 옷이 어젯밤 그가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마케팅 보고서입니다. 결재해 주세요.”이준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류에 사인한 뒤 윤혜인에게 건넸고 서류를 받은 윤혜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보니 김성훈이 여전히 사무실 입구에 서있었다.그녀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혜인 씨가 우리 대화를 들은 거 아니야?”이준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는 김성훈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윤혜인은 질투 같은 걸 절대 안 한다. 그녀가 계속 지금처럼 조용하게 살아준다면 이준혁은 앞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걸 해줄 것이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윤혜인은 최대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높이 들었지만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여자친구의 복귀에는 역부족이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윤혜인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가눈 채,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로 정신을 좀 맑게 하고 싶었다. 탕비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기사 봤어? 임세희 귀국했대.”“응? 그게 누군데?”“너 몰라? 임세희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잖아. 본인도 유명한 탑급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맨날 머리 치켜들고 다니는 거야? 다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 부모도 없는 잡종 주제에…”팍!송소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송소미는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윤혜인이 감히 그녀에게 손찌검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한참 뒤, 송소미가 이를 꽉 깨물며 소리를 질렀다.“너, 너 지금 감히 날 때린 거야?!”“당신에게 예의를 가르친 겁니다.”윤혜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소미를 보며 대답했다. 윤혜인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나 그녀의 부모님을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송소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의 사촌 여동생인 그녀는 늘 타인의 아부를 받아왔기에 이렇게 대놓고 그녀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윤혜인이 처음이었다.“이 나쁜 계집애!”송소미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윤혜인에게 달려들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했지만 반응 속도가 빠른 윤혜인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은 채 송소미를 꿈쩍도 못하게 만들었다.윤혜인보다 체구가 작은 송소미는 어떻게든 윤혜인을 때리려고 발버둥을 쳤고 그 모습은 매우 추했다.화가 잔뜩 난 송소미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네가 뭐라도 되는것 같아? 넌 단지 우리 준혁 오빠가 침대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라고! 넌 몸 파는 여자보다 더 천박해!”송소미는 갈수록 심한 욕을 입 밖에 꺼냈고 모여드는 직원도 점점 많아졌다.“지금 뭐 하는 거야!”낮게 깔린 이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난동을 부리고 있는 송소미를 발견했던 것이다.그의 등장에 순식간에 탕비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준혁 오빠?”송소미는 평소에도 이준혁을 조금 무서워했다. 이 사촌 오빠는 가차없는 성격이라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에게 이준혁 앞에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뺨을 맞은 게 생각나자 송소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송소미는 지금 이 순간, 윤혜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준혁 오빠, 저 나쁜 계집애가 하는 말 좀 들어봐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감히 계속 건방을 떨다니. 준혁 오빠, 저 여자 다시 불러와요! 난 오늘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여자를 때려야겠어요!”이준혁은 가녀린 윤혜인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적당히 해.”이준혁이 차갑게 대꾸했다.평소에도 독하기로 소문난 송소미는 이준혁이 조금 전에도 윤혜인의 편을 들지 않았기에 이준혁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윤혜인의 뒷모습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다음에는 사람 불러서 저 여자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예요!”“송소미!”이준혁이 실눈을 살짝 뜬 채 송소미를 쳐다보았고 송소미는 그 눈빛에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딱 한 번만 얘기할게. 네 머릿속에 있는 꿍꿍이를 접어. 저 여자 건드리지 마.”송소미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기에 마음속에서 들끓던 복수심을 도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요…”이준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송소미를 힐끗 쳐다보다가 탕비실을 떠나면서 곁에 있던 주훈에게 명령을 내렸다.“앞으로 연관 없는 외부인은 회사에 들이지 못하게 해.”이준혁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송소미는 그의 뒤에서 계속 아부를 떨었다.“준혁 오빠 이렇게 큰 회사에 그런 명확한 규칙은 있어야 돼요.” 하지만 잠시뒤, 주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송소미 씨, 이만 나가주세요.”송소미는 그제야 그녀가 바로 그 연관 없는 외부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단호하게 떠나는 이준혁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주훈이 부른 경호원에게 잡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송소미가 아무리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경호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한편, 자리로 돌아온 윤혜인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고 차가운 이준혁의 얼굴이 생각나자 마음이 아팠다.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회사를 나서려던 윤혜인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