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찬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칸막이를 올렸다.‘이게 무슨 소리지? 대표님께서 그쪽으로 증명까지 해야 한다는 건가? 밤 생활이 능하지 못한 남자들이 대부분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더니 어쩐지 대표님도...’고연우는 정민아를 매섭게 노려보면서 물었다.“내 스킬이 마음에 안 들어?”정민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하게 반문했다.“열 번 중 여덟 번은 누워 있는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있어?”“내가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어? 누가 침대에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쳤었지? 또 혼자 만족했다면서 매정하게 나가던 사람이 누구였지? 정민아, 앞으로 가만 안 둬.”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고연우가 말했다.“내려.”“왜?”정민아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되묻자, 고연우가 차 밖에 서서 내려보면서 답했다.“네 병을 고쳐주려고, 그래야 네가 모든 남자가 너한테 관심 있다는 생각을 버릴 거 아니야...”고연우가 일부러 서은혁을 겨냥해서 한 말이었지만, 애당초 두 사람을 싫어하는 정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고연우는 정민재를 데리러 호텔에 온 거였고 그녀가 계속 차에 앉아 있는 걸 보더니 몸을 돌려 호텔로 들어갔다.정민아는 그의 훤칠한 뒷모습을 보다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려고 뒤따라갔다.고연우는 8503호 앞에 서서 노크했고 정민아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몰래 그 광경을 지켜봤다.곧이어 방문이 열리더니 소년미 넘치는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연우 형, 그 여자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정민아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정민재라는 걸 알고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시각, 정민재는 화난 새처럼 털을 바짝 세우면서 말을 쏟아냈다.“늦게 입양된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선아 누나를 집에서 쫓아내요? 솔직히 말해서 나가야 할 사람은 그 여자잖아요! 우리 가족 모두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안 나가는 이유가 뭐죠? 매일 밖에서 남자를 유혹하고 선아 누나와 부모님 사이를 이간질하더니
주소월은 지금 죄책감으로 인해 말할 때마다 정민아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평소 애지중지하던 정민재도 돌 볼 겨를이 없었다.그러나 주소월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정민재는 말도 안 되는 그녀의 변명에 눈을 부릅뜨면서 격분했다.“엄마, 정민아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 상황에서 그녀의 편을 드는 거죠? 제 얼굴에 난 상처를 봐요, 이게 그냥 시험한 거라고요?”그는 허리를 굽혀 자기의 멍든 얼굴을 주소월 앞에 들이대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정민아한테 맞아서 아들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반응일 수 있어요!”이때, 거실에서 정철진의 언짢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닥쳐! 사내놈이 조금 다친 걸로 무슨 호들갑이야!”정철진은 이내 퍼렇게 멍든 정민재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한마디 더 했다.“여자한테 맞아서 얼굴이 멍들고도 무슨 낯짝으로 떠들어!”“그러면 제가 어떡할까요? 아버지께서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고 교육하셨는데 맞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어요?”“...”“아버지도 왜 정민아의 편을 드시는 거죠? 시골뜨기 때문에 선아 누나를 쫓아내더니 이제는 저까지 집에서 쫓아내려고요?”정민재는 분노와 증오의 눈빛으로 정민아를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정민아가 사생아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어요, 아니면 왜 이렇게까지...”편애라는 두 글자가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재떨이가 그의 광대뼈를 스치고 지나가 벽에 부딪히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정철진은 화가 치밀어 올라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이놈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쓸데없는 말을 더 하면 나한테 맞을 줄 알아!”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정민아가 옆에서 담담하게 말했다.“참아요, 정민재를 때려죽이면 정씨 가문의 피를 이을 사람이 없어지잖아요.”그 순간, 주소월은 붉어진 눈시울로 정민아를 바라보면서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민아야, 너 우리가 그렇게도 미워?”정씨 가문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없는 정민아는 그녀의 물음에 화제를 돌렸다.“오늘 내로 밥은 먹을 수
정민아는 서은혁만 만나면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기에 그의 부름에도 계속 멈추지 않고 휠체어를 밀면서 앞으로 갔다.서은혁은 무슨 일인지 쫓아가던 걸음을 멈추고 손수건을 꺼내 사진에 묻은 먼지를 꼼꼼하게 닦으면서 말했다.“누나, 저 왔어요.”그와 서현란은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아주 친했다. 그는 갑자기 뒤돌아 묘비의 중앙에 놓인 해바라기꽃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서은혁이 정민아를 다시 쫓아갔을 때, 그녀는 이미 산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민아 씨, 깁스는 언제 풀었어요?”“나한테 할 말이 있다더니, 설마 이거예요?”“아니요, 나랑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물으려던 참이었어요.”정민아는 휠체어를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서은혁 씨, 당신 나 좋아해요?”서은혁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직설적인 물음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답했다.“네, 저...”“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나한테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네요.”그 순간, 서은혁이 실소를 터뜨렸다.“늘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고백을 거절했어요?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하면 내가 못 알아들을까 봐, 아니면 내가 완전히 포기 못 할까 봐 이러는 건가요?’“내가 혼자 착각하고 도를 넘을까 봐서요.”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서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날 거절하는 이유가 내가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유부녀라서인가요?”“이 정도로 내 내연남이 되고 싶어요?”“당신이 먼저 그 사람이랑 이혼할 수도 있죠.”서은혁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몇 번 터치하더니 정민아에게 내밀었고 그녀 또한 한참 동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한편, 엔조이 클럽, 방 안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최민영의 친구들은 그녀와 고연우를 부추기기 시작했다.“민영 언니, 연우 도련님이랑 러브샷 해요!”“러브샷! 러브샷!”비록 다들 고연우가 유부남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정민아와
패션 디자이너한테 옷차림이 못생겼다고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정민아가 고연우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그의 옷 스타일에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됐어, 내가 너한테 화내서 뭐 하겠어. 최민영처럼 수준이 떨어지는 여자와 약혼하겠다던 네 수준은 안 봐도 훤해.”정민아의 얼굴에는 조롱과 풍자가 가득했고, 고연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짜증을 억누르면서 침착하게 말했다.“약혼한 적은 없어. 그저 두 집 어른 사이에 그런 얘기만 오갔을 뿐이야.”그녀가 고연우와 최민영을 알았을 때부터, 두 사람은 모두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한 쌍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누구도 옆에 다가갈 수 없었다.“넌 정말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졌네.”고연우는 정민아가 속으로 도대체 무슨 음탕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쁜 생각임이 틀림없다고 판단하고는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왜 최민영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지금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건 이미 확정된 사실이니까 사고 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네가 사고를 친다고 해서 내가 뒷수습을 해주리라 기대하지 마.”“그럴 일 없어.”고연우의 얼굴은 홀가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욱 무거워졌다.“화장실 좀 다녀올 테니까 입구에서 기다려.”얼마 지나지 않아, 최민영이 정민아에게 다가왔고 클럽 불빛 아래에서 팔짱을 끼고 도도한 표정으로 물었다.“연우랑 이혼한다며?”정민아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자, 갑자기 오래전 아무도 없던 골목길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해졌다.“고연우가 너한테 말했어?”아직 두 사람이 이혼한다는 소식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최민영이 귀국 첫날에 모든 걸 알고 있다니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런 쓸데없는 건 왜 묻지?”“글쎄, 이제 보니까 고연우도 내 청춘을 허비할 만한 가치가 없더라고. 내가 버린 쓰레기를 네가 주워서 쓰려고?”최민영은 자기가 오랫동안 사랑한 남자가 수모를 받는 걸 견딜 수
차 안.고연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사물함 속의 담배에 몇 번이나 향했지만 꾹 참으면서 담담하게 먼저 말을 건넸다.“최민영이랑 다시 만나지 마.”정민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등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최씨 가문을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말고 최민영도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고연우는 그녀가 비록 말은 하지 않아도 완고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좀 났다.“그때 가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마.”최씨 가문이 오늘의 이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제야 일을 막 시작한 정민아가 패기만으로 대항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정민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창밖만 바라보면서 무시했고, 신림동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차에서 내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송씨 아주머니는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 급히 하던 일을 멈추고 맞이했다.“아가씨, 당신...”정민아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송씨 아주머니는 정민아가 평소 온화한 성격은 아니더라도 예의가 발랐기에 처음 보는 낯선 모습에 조금 당황했고 뒤따라 들어오는 고연우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대표님, 아가씨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오는 내내 냉대를 받은 고연우도 기분이 상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계단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신경 쓰지 마요.”송씨 아주머니는 두 사람이 또 싸웠다는 것을 눈치채고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섰다....욕실 안.정민아는 물이 가득 찬 욕조 속에 천천히 몸을 담갔고 따뜻한 물을 만끽하면서 입술, 코, 눈, 머리까지 온몸을 물속에 집어넣었다.그녀는 물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아까 최민영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서현란이 정말로 하늘에서 날 원망할까?’그러나 곧장 머릿속에 스치는 잡생각들을 집어던지고 살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처럼 물속에서 입을
고연우는 정민아의 움직이는 입술을 유심히 보려고 했지만, 물이 거세게 출렁이면서 자기가 잘못 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스쳐 지나갔다.그러나 그는 정민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자기의 목을 짓누르는 손에 힘을 주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정말로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연우는 강렬한 통증이 점점 더 밀려오자, 정민아의 손을 덥석 잡고 그녀의 위로 몸을 빠르게 돌려 한쪽 다리로 그녀의 다리를 단단히 짓누르면서 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아 버렸다.“이 정도로 날 죽이고 싶어?”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고연우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정민아의 눈에 들어가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곧이어 그는 희롱하듯 손으로 그녀의 귀 뒤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고연우의 움직임에 따라 공기 중의 자욱한 물안개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정민아가 눈을 뜨는 순간,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정민아는 부드러운 그의 혀가 자기의 입속으로 파고들려고 하자,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이내 저항하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그러나 고연우는 그녀의 끊임없는 반항에도 오랫동안 참아온 욕구가 폭발하듯 그녀의 턱을 잡고 더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오늘이 서현란의 기일이었기에 정민아는 고연우에 대한 혐오감이 정절에 달했고 그의 손길이 더욱 역겨웠다.그녀가 몸부림칠수록 욕조 안의 물이 사방으로 흘러넘쳤고, 곧이어 고연우의 손을 할퀴어 상처를 냈지만, 강압적인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렇게 얼마 동안 시간이 흐르자, 고연우는 계속되는 몸부림에 정민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사라졌고 그녀를 압박하던 동작을 멈추더니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귀 뒤로 부드럽게 넘겨주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아는 모양인데, 혹시 사람을 시켜서 날 미행이라도 했어?”정민아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네가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미행할 일도 없었겠지?”
자기 딸한테 살해당한 사람의 이름을 뻔뻔하게 입에 올리면서 협박하는 건 최씨 가문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정민아는 극도로 냉소적인 웃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당신이 이렇게 그리워한다는 걸 현란이가 알면 밤에 당신을 찾아올 수도 있을 텐데, 두렵지 않아요?”“...”수화기 너머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화가 났는지 호흡이 거칠어졌다.“그래서 어디서 만날래요?”정민아는 사람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최씨 가문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보다는, 서현란이 하늘나라에서 누명을 쓴 채 평안하게 지내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오늘 섣달그믐날이니까 그냥 우리 집에 와서 얘기하죠, 주소를 불러주면 기사를 보내줄게요...”고연우는 정민아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자, 짜증 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밥 먹을 거면 먹는 데에만 집중해. 좀 있다가 부모님 집에도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 지금 어디 가겠다는 거야?”최민영의 엄마는 고연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하려던 말을 얼른 멈추더니 이내 부드럽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을 바꿨다.“내가 생각이 짧았네요, 미안해요! 오늘 섣달그믐날이라 당신이 연우와 함께 시댁에 가봐야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민영이의 일이 급한 건 아니니까 다시 시간을 정해서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방해하지 않을게요.”그녀는 정민아가 답을 하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연우는 곧이어 냉소적으로 웃으면서 정민아에게 따져 물었다.“그쪽에서 오라고 하면 넌 진짜로 가? 머리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는 거야? 최씨 가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직도 몰라? 혼자 그 집에 들어간다는 건 그냥 시체도 없이 죽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 걸 몰라?”그러나 정민아는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투로 답했다.“내가 죽으면 첫사랑이랑 잘 될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니야?”“내가 말했지, 최민영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매일 첫사랑이니, 전 약혼녀니, 연적이냐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고씨 가문은 몇 년 전 조
가족끼리 모이는 명절에 특별히 만나러 가는 사람이라면 분명 중요한 사람일 것이다. 그 생각에 고연우의 마음속 답답함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고연우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고 목소리에도 기분 좋은 느낌이 배어났다.“응.”정원의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마치 고즈넉한 고궁의 풍경을 담은 듯한 품격과 웅장함이 경복궁의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정민아는 옆에 있는 기둥에 기대어 물었다.“담배 있어?”고연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없어.”정민아는 담배에 중독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생각나서 물어본 것이었다. 고연우가 없다 말하자 정민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 이튿날에 만나려는 사람 누구야? 내가 선물 준비할게.”"필요 없어."“...”고연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때론 정말 정민아의 목을 조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그때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최민영 부친께서 고연우를 찾는다고 전했다.“어즌 거실로 들어가.”비록 이미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햇살 아래에서 몸을 담가도 전혀 따뜻해지지 않았다.“친척들 상대하는 게 싫으면 상대하지 않아도 돼.”고연우가 막 몸을 돌려 걸어가려던 순간에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최민영이었다. 발신자 이름을 본 고연우는 무의식적으로 정민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민아도 고연우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입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고연우는 잠시 멈칫했다가 무의식적으로 내디딘 발을 주춤하며 되돌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정민아 앞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무슨 일이야?”“연우 씨, 새해 복 많이 받아요.”“응.”“막 귀국해서 아직 어른들께 인사를 못 드렸어요. 집에 계신가요? 지금 찾아뵙고 인사드릴까요?”최민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금 어머니가 정민아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옆에 있었기에 고연우가 정민아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너무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에 일부러 전화를 늦게 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