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한테 옷차림이 못생겼다고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정민아가 고연우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그의 옷 스타일에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됐어, 내가 너한테 화내서 뭐 하겠어. 최민영처럼 수준이 떨어지는 여자와 약혼하겠다던 네 수준은 안 봐도 훤해.”정민아의 얼굴에는 조롱과 풍자가 가득했고, 고연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짜증을 억누르면서 침착하게 말했다.“약혼한 적은 없어. 그저 두 집 어른 사이에 그런 얘기만 오갔을 뿐이야.”그녀가 고연우와 최민영을 알았을 때부터, 두 사람은 모두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한 쌍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누구도 옆에 다가갈 수 없었다.“넌 정말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졌네.”고연우는 정민아가 속으로 도대체 무슨 음탕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쁜 생각임이 틀림없다고 판단하고는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왜 최민영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지금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건 이미 확정된 사실이니까 사고 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네가 사고를 친다고 해서 내가 뒷수습을 해주리라 기대하지 마.”“그럴 일 없어.”고연우의 얼굴은 홀가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욱 무거워졌다.“화장실 좀 다녀올 테니까 입구에서 기다려.”얼마 지나지 않아, 최민영이 정민아에게 다가왔고 클럽 불빛 아래에서 팔짱을 끼고 도도한 표정으로 물었다.“연우랑 이혼한다며?”정민아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자, 갑자기 오래전 아무도 없던 골목길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해졌다.“고연우가 너한테 말했어?”아직 두 사람이 이혼한다는 소식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최민영이 귀국 첫날에 모든 걸 알고 있다니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런 쓸데없는 건 왜 묻지?”“글쎄, 이제 보니까 고연우도 내 청춘을 허비할 만한 가치가 없더라고. 내가 버린 쓰레기를 네가 주워서 쓰려고?”최민영은 자기가 오랫동안 사랑한 남자가 수모를 받는 걸 견딜 수
차 안.고연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사물함 속의 담배에 몇 번이나 향했지만 꾹 참으면서 담담하게 먼저 말을 건넸다.“최민영이랑 다시 만나지 마.”정민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등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최씨 가문을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말고 최민영도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고연우는 그녀가 비록 말은 하지 않아도 완고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좀 났다.“그때 가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마.”최씨 가문이 오늘의 이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제야 일을 막 시작한 정민아가 패기만으로 대항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정민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창밖만 바라보면서 무시했고, 신림동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차에서 내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송씨 아주머니는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 급히 하던 일을 멈추고 맞이했다.“아가씨, 당신...”정민아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송씨 아주머니는 정민아가 평소 온화한 성격은 아니더라도 예의가 발랐기에 처음 보는 낯선 모습에 조금 당황했고 뒤따라 들어오는 고연우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대표님, 아가씨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오는 내내 냉대를 받은 고연우도 기분이 상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계단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신경 쓰지 마요.”송씨 아주머니는 두 사람이 또 싸웠다는 것을 눈치채고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섰다....욕실 안.정민아는 물이 가득 찬 욕조 속에 천천히 몸을 담갔고 따뜻한 물을 만끽하면서 입술, 코, 눈, 머리까지 온몸을 물속에 집어넣었다.그녀는 물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아까 최민영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서현란이 정말로 하늘에서 날 원망할까?’그러나 곧장 머릿속에 스치는 잡생각들을 집어던지고 살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처럼 물속에서 입을
고연우는 정민아의 움직이는 입술을 유심히 보려고 했지만, 물이 거세게 출렁이면서 자기가 잘못 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스쳐 지나갔다.그러나 그는 정민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자기의 목을 짓누르는 손에 힘을 주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정말로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연우는 강렬한 통증이 점점 더 밀려오자, 정민아의 손을 덥석 잡고 그녀의 위로 몸을 빠르게 돌려 한쪽 다리로 그녀의 다리를 단단히 짓누르면서 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아 버렸다.“이 정도로 날 죽이고 싶어?”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고연우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정민아의 눈에 들어가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곧이어 그는 희롱하듯 손으로 그녀의 귀 뒤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고연우의 움직임에 따라 공기 중의 자욱한 물안개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정민아가 눈을 뜨는 순간,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정민아는 부드러운 그의 혀가 자기의 입속으로 파고들려고 하자,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이내 저항하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그러나 고연우는 그녀의 끊임없는 반항에도 오랫동안 참아온 욕구가 폭발하듯 그녀의 턱을 잡고 더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오늘이 서현란의 기일이었기에 정민아는 고연우에 대한 혐오감이 정절에 달했고 그의 손길이 더욱 역겨웠다.그녀가 몸부림칠수록 욕조 안의 물이 사방으로 흘러넘쳤고, 곧이어 고연우의 손을 할퀴어 상처를 냈지만, 강압적인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렇게 얼마 동안 시간이 흐르자, 고연우는 계속되는 몸부림에 정민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사라졌고 그녀를 압박하던 동작을 멈추더니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귀 뒤로 부드럽게 넘겨주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아는 모양인데, 혹시 사람을 시켜서 날 미행이라도 했어?”정민아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네가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미행할 일도 없었겠지?”
자기 딸한테 살해당한 사람의 이름을 뻔뻔하게 입에 올리면서 협박하는 건 최씨 가문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정민아는 극도로 냉소적인 웃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당신이 이렇게 그리워한다는 걸 현란이가 알면 밤에 당신을 찾아올 수도 있을 텐데, 두렵지 않아요?”“...”수화기 너머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화가 났는지 호흡이 거칠어졌다.“그래서 어디서 만날래요?”정민아는 사람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최씨 가문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보다는, 서현란이 하늘나라에서 누명을 쓴 채 평안하게 지내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오늘 섣달그믐날이니까 그냥 우리 집에 와서 얘기하죠, 주소를 불러주면 기사를 보내줄게요...”고연우는 정민아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자, 짜증 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밥 먹을 거면 먹는 데에만 집중해. 좀 있다가 부모님 집에도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 지금 어디 가겠다는 거야?”최민영의 엄마는 고연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하려던 말을 얼른 멈추더니 이내 부드럽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을 바꿨다.“내가 생각이 짧았네요, 미안해요! 오늘 섣달그믐날이라 당신이 연우와 함께 시댁에 가봐야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민영이의 일이 급한 건 아니니까 다시 시간을 정해서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방해하지 않을게요.”그녀는 정민아가 답을 하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연우는 곧이어 냉소적으로 웃으면서 정민아에게 따져 물었다.“그쪽에서 오라고 하면 넌 진짜로 가? 머리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는 거야? 최씨 가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직도 몰라? 혼자 그 집에 들어간다는 건 그냥 시체도 없이 죽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 걸 몰라?”그러나 정민아는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투로 답했다.“내가 죽으면 첫사랑이랑 잘 될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니야?”“내가 말했지, 최민영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매일 첫사랑이니, 전 약혼녀니, 연적이냐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고씨 가문은 몇 년 전 조
가족끼리 모이는 명절에 특별히 만나러 가는 사람이라면 분명 중요한 사람일 것이다. 그 생각에 고연우의 마음속 답답함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고연우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고 목소리에도 기분 좋은 느낌이 배어났다.“응.”정원의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마치 고즈넉한 고궁의 풍경을 담은 듯한 품격과 웅장함이 경복궁의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정민아는 옆에 있는 기둥에 기대어 물었다.“담배 있어?”고연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없어.”정민아는 담배에 중독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생각나서 물어본 것이었다. 고연우가 없다 말하자 정민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 이튿날에 만나려는 사람 누구야? 내가 선물 준비할게.”"필요 없어."“...”고연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때론 정말 정민아의 목을 조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그때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최민영 부친께서 고연우를 찾는다고 전했다.“어즌 거실로 들어가.”비록 이미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햇살 아래에서 몸을 담가도 전혀 따뜻해지지 않았다.“친척들 상대하는 게 싫으면 상대하지 않아도 돼.”고연우가 막 몸을 돌려 걸어가려던 순간에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최민영이었다. 발신자 이름을 본 고연우는 무의식적으로 정민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민아도 고연우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입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고연우는 잠시 멈칫했다가 무의식적으로 내디딘 발을 주춤하며 되돌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정민아 앞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무슨 일이야?”“연우 씨, 새해 복 많이 받아요.”“응.”“막 귀국해서 아직 어른들께 인사를 못 드렸어요. 집에 계신가요? 지금 찾아뵙고 인사드릴까요?”최민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금 어머니가 정민아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옆에 있었기에 고연우가 정민아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너무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에 일부러 전화를 늦게 건 것
고연우는 정민아의 손에 든 선물을 힐끗 보고 정민아가 만나려는 사람의 정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정민아는 남포시에서 대학에 다녔고 선택한 선물도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종류였다. 아마도 정민아의 대학 교수님일 가능성이 컸다.비행기가 남포시 공항에 착륙하자 고연우가 미리 예약해둔 차량이 이미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공항을 나와 곧장 목적지로 향했다.정민아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흐릿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이것은 그들 사이에 항상 흐르던 익숙한 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고연우는 마음이 답답해 어디를 봐도 짜증이 밀려왔다. 고연우는 시선을 창밖의 눈에 띄는 건물에 고정하며 문득 물었다.“저긴 어디야?”정민아는 천천히 눈을 들어 고연우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았다.“몰라.”단 한마디만 더 했어도 이렇게 성의 없이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고연우는 속으로 불만을 삼키며 말했다.“네가 대학에서 4년을 보냈는데 한 번도 돌아다녀 본 적이 없단 말이야?”“없어.”의대생들은 본래 수업이 많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거의 여유가 없었고 주말과 저녁 시간에도 종종 수업이 있었다. 한가할 때는 도서관, 식당, 숙사만을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멀리 나가볼 시간은 당연히 없었다.고연우는 어이없었다.“...”차는 어느 아파트 단지 입구에 멈춰 섰다. 정민아가 선물을 꺼내려 하자 고연우가 먼저 손을 내밀며 말했다.“내가 들게.”정민아는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3동 1502호에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문틈 사이로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여보, 빨리 와서 채소 좀 정리해 줘요. 새우는 씻었어요?”“다 했어요. 도착하면 바로 요리할게요. 겨울에는 음식이 금방 식어버리니까요.”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 문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제가 내려가서 좀 보고 올게요. 아홉 시 비행기라면 이제쯤 도착했을 텐데요. 이 아이가 우리더러 마중 나가
정보량이 너무 많아 사모님의 머리가 멍해진 듯 보였고 손에 든 채소도 다듬는 것을 잊고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사모님은 담담하게 채소를 씻고 있는 정민아를 바라보다가 다시 거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일부러 남편을 데려와서 교수님의 잔소리를 들려주려고 한 거야?”“교수님과 사모님을 뵈러 온 것은 연초에 정해진 일이었고 고연우는 단지 함께 온 것뿐이에요.”밖에서는 교수님이 여전히 한숨을 쉬며 정민아의 재능을 낭비했다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고연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고연우가 정민아를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교수님의 끝없는 잔소리에 지쳐서 대꾸하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남편이 너를 안쓰럽게 생각하게 하려고 그런 건가?”사모님은 나이가 들면서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가기 어려워졌다. 정민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혼란스러웠다.“그런데 왜 직접 얘기하지 않았니? 네가 당사자이니 세부적인 상황을 설명하면 교수님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정민아는 손에 든 채소를 씻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어떤 일은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을 때 더 충격적일 때가 있어요.”자신이 직접 말하면 마치 하소연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사모님은 아무 말 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정민아를 바라보았다. 때때로 정민아의 손을 힐끗 보기도 했다. 사모님은 의사는 아니지만, 남편이 은퇴 전까지 훌륭한 외과의사였기 때문에 손이 그들의 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이렇게 재능 있는 아이가 손 부상 때문에 평생 의사가 되지 못하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정민아는 사모님이 자신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모님, 제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아니야.”사모님은 정민아가 오해할까 봐 급히 부정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망설이며 물었다.“혹시 네 손이 네 남편에 의해 다친 거야?”만약 그렇다면 정민아는 정말 불행한
정민아가 고연우에게 반박하지 않은 것은 드문 일이었다. 오늘 정민아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교수님 몰래 학업을 그만둔 일은 정민아의 마음속에 늘 걸림돌이 되어 있었다. 지난 두 해 동안 정민아는 교수님과 연락을 피하고 교수님을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교수님의 실망한 눈빛을 볼까 봐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이제야 정민아는 마음의 짐을 비로소 덜어낼 수 있었다.두 사람이 경인 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넘었다. 정민아는 일찍 일어난 데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차에 타자마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벼운 흔들림에도 통증이 있었다. 정민아는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고 환경에 예민했기에 익숙한 고씨 저택에서도 긴 시간이 필요했으며 차 안에서는 더욱 힘들었다.차 안에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몸의 피로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차가 고씨 저택에 도착하자 갑작스러운 불빛이 한 사람의 그림자를 비추었다. 운전사는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대표님, 최 씨네 아가씨입니다.”최민영은 저택 입구에 서서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머리 장식부터 옷차림까지 정성스럽게 꾸몄고 얼굴에도 화려한 메이크업을 했다. 최민영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코끝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정민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너와 생일을 함께하고 싶어 온 거겠지.”고연우는 얼굴을 굳히며 정민아를 쳐다보았다.“비꼬지 말고 제대로 말해.”차가 고씨 저택 앞에 멈추자 최민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고연우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서야 최민영의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추위에 떨었던 탓에 그 미소는 오히려 슬프게 보였다.고연우가 말했다.“오면 연락이라도 해야지”고연우의 태도는 냉담했고 고씨 그룹의 직원들에게 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최민영은 뜨거운 감정이 차가운 물에 식은 듯했다. 이미 추운 바람에 떨고 있던 최민영은 마음마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혹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고연우가 최민영에게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