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정선아가 수년간 힘들게 쌓아왔던 착한 딸 이미지가 망가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그녀는 정민아의 말에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넌 염치도 없어? 엄마 아빠의 호의를 무시할 때는 언제고, 이런 사소한 일로 고자질을 하겠다고? 겉과 속이 다른 너의 모습이 너무 역겨워.”그러나 정민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태연하게 답했다.“설마 내가 칼이라도 들고 너와 맞서 싸울 줄 알았어? 꿈 깨, 법치 사회에서 내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이유는 없잖아.”“...”정선아는 법치 사회라는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고 휴대폰을 꺼내 드는 그녀에게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안돼!”...병원.정철진과 주소월이 병원에 도착하자, 정선아는 서럽게 울었고 연신 시멘트 바닥에 넘어지면서 상처 난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엄마, 아빠, 언니한테 해코지하려고 간 게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간 것뿐이에요. 저 정말 너무 억울해요!”주소월도 정선아의 가련한 모습에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주다가 곧 뜨거운 시선을 느껴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는 정민아가 그들을 비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주소월은 정선아를 가볍게 밀어내면서 물었다.“말해 봐, 왜 이렇게 된 거야?”정선아는 자기의 상처 난 손을 급하게 뒤로 감추면서 답했다.“언니와는 상관없어요, 제가 중심을 잃고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정민아는 그저 조용히 정선아의 가식적인 연기를 지켜보면서 정철진의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반응에 따라 앞으로 최씨 가문과의 대적에서 그녀가 집안에 얼마나 기댈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예전 같았으면 주소월도 정선아의 말을 무조건 믿었겠지만, 며칠 전 쓰러진 척 연기를 하던 정선아가 생각나서 ‘엄마는 너를 믿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그리고 정선아는 자기가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 눈치를 살피는 법을 배웠기에 곧장 주소월
서은혁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정민아가 자기의 양복바지를 정리해 주는 모습과 거대한 창문을 통해 행인들이 흩날리는 눈송이를 맞으며 바쁘게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왠지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그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홀린 듯이 감상하면서 말했다.“너무 예뻐요.”그러나 정민아는 감정 없는 돈벌이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카드로 할래요? 아니면 카카오 페이로 할래요?”서은혁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당신...”이때 가게 입구에서 고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민아.”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정민아는 인상을 찌푸렸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무슨 일이야?”고연우의 안색도 까칠한 그녀의 태도에 덩달아 어두워졌다.정민아는 고연우에게 이혼을 제안한 후로는 한 번도 부드러운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방금처럼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행동은 두 사람 사이에 더욱 있을 수 없었다.고연우는 그 장면이 질투가 났는지 허스키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서은혁 씨가 손이 없는 것도 아닌데 네가 옷매무새를 정리해 줄 필요가 있어?”“나한테 그만한 돈을 냈냈으니까.”정민아는 짧게 대답한 후, 고개를 돌려 서은혁에게 물었다.“입고 온 옷은 포장해 줄까요?”“그래요, 가게에 다른 옷도 있어요? 중요한 날에 입어야 할 양복을 눈 오는 날에 입어서 더럽히면 안 되니까요.”고연우는 두 사람의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더욱 까칠한 목소리로 물었다.“난 너한테 돈을 안 줬어? 그런데 내 옷매무새는 한 번도 정리해 주지 않는 거지?”그러나 정민아는 그에게 똑같은 말로 되갚아 주었다.“넌 손이 없어?”서은혁이 말하려는 순간, 공민찬이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은혁 도련님, 제가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드리고 깔끔하게 다려 줄게요. 기성복이 한 벌 더 필요하다고 하셨죠? 제가 골라 드릴게요. 남자의 옷 취향은 남자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니까 분명히 마음에 들 거예요.”
공민찬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칸막이를 올렸다.‘이게 무슨 소리지? 대표님께서 그쪽으로 증명까지 해야 한다는 건가? 밤 생활이 능하지 못한 남자들이 대부분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더니 어쩐지 대표님도...’고연우는 정민아를 매섭게 노려보면서 물었다.“내 스킬이 마음에 안 들어?”정민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하게 반문했다.“열 번 중 여덟 번은 누워 있는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있어?”“내가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어? 누가 침대에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쳤었지? 또 혼자 만족했다면서 매정하게 나가던 사람이 누구였지? 정민아, 앞으로 가만 안 둬.”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고연우가 말했다.“내려.”“왜?”정민아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되묻자, 고연우가 차 밖에 서서 내려보면서 답했다.“네 병을 고쳐주려고, 그래야 네가 모든 남자가 너한테 관심 있다는 생각을 버릴 거 아니야...”고연우가 일부러 서은혁을 겨냥해서 한 말이었지만, 애당초 두 사람을 싫어하는 정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고연우는 정민재를 데리러 호텔에 온 거였고 그녀가 계속 차에 앉아 있는 걸 보더니 몸을 돌려 호텔로 들어갔다.정민아는 그의 훤칠한 뒷모습을 보다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려고 뒤따라갔다.고연우는 8503호 앞에 서서 노크했고 정민아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몰래 그 광경을 지켜봤다.곧이어 방문이 열리더니 소년미 넘치는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연우 형, 그 여자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정민아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정민재라는 걸 알고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시각, 정민재는 화난 새처럼 털을 바짝 세우면서 말을 쏟아냈다.“늦게 입양된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선아 누나를 집에서 쫓아내요? 솔직히 말해서 나가야 할 사람은 그 여자잖아요! 우리 가족 모두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안 나가는 이유가 뭐죠? 매일 밖에서 남자를 유혹하고 선아 누나와 부모님 사이를 이간질하더니
주소월은 지금 죄책감으로 인해 말할 때마다 정민아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평소 애지중지하던 정민재도 돌 볼 겨를이 없었다.그러나 주소월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정민재는 말도 안 되는 그녀의 변명에 눈을 부릅뜨면서 격분했다.“엄마, 정민아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 상황에서 그녀의 편을 드는 거죠? 제 얼굴에 난 상처를 봐요, 이게 그냥 시험한 거라고요?”그는 허리를 굽혀 자기의 멍든 얼굴을 주소월 앞에 들이대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정민아한테 맞아서 아들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반응일 수 있어요!”이때, 거실에서 정철진의 언짢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닥쳐! 사내놈이 조금 다친 걸로 무슨 호들갑이야!”정철진은 이내 퍼렇게 멍든 정민재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한마디 더 했다.“여자한테 맞아서 얼굴이 멍들고도 무슨 낯짝으로 떠들어!”“그러면 제가 어떡할까요? 아버지께서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고 교육하셨는데 맞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어요?”“...”“아버지도 왜 정민아의 편을 드시는 거죠? 시골뜨기 때문에 선아 누나를 쫓아내더니 이제는 저까지 집에서 쫓아내려고요?”정민재는 분노와 증오의 눈빛으로 정민아를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정민아가 사생아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어요, 아니면 왜 이렇게까지...”편애라는 두 글자가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재떨이가 그의 광대뼈를 스치고 지나가 벽에 부딪히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정철진은 화가 치밀어 올라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이놈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쓸데없는 말을 더 하면 나한테 맞을 줄 알아!”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정민아가 옆에서 담담하게 말했다.“참아요, 정민재를 때려죽이면 정씨 가문의 피를 이을 사람이 없어지잖아요.”그 순간, 주소월은 붉어진 눈시울로 정민아를 바라보면서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민아야, 너 우리가 그렇게도 미워?”정씨 가문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없는 정민아는 그녀의 물음에 화제를 돌렸다.“오늘 내로 밥은 먹을 수
정민아는 서은혁만 만나면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기에 그의 부름에도 계속 멈추지 않고 휠체어를 밀면서 앞으로 갔다.서은혁은 무슨 일인지 쫓아가던 걸음을 멈추고 손수건을 꺼내 사진에 묻은 먼지를 꼼꼼하게 닦으면서 말했다.“누나, 저 왔어요.”그와 서현란은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아주 친했다. 그는 갑자기 뒤돌아 묘비의 중앙에 놓인 해바라기꽃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서은혁이 정민아를 다시 쫓아갔을 때, 그녀는 이미 산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민아 씨, 깁스는 언제 풀었어요?”“나한테 할 말이 있다더니, 설마 이거예요?”“아니요, 나랑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물으려던 참이었어요.”정민아는 휠체어를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서은혁 씨, 당신 나 좋아해요?”서은혁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직설적인 물음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답했다.“네, 저...”“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나한테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네요.”그 순간, 서은혁이 실소를 터뜨렸다.“늘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고백을 거절했어요?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하면 내가 못 알아들을까 봐, 아니면 내가 완전히 포기 못 할까 봐 이러는 건가요?’“내가 혼자 착각하고 도를 넘을까 봐서요.”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서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날 거절하는 이유가 내가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유부녀라서인가요?”“이 정도로 내 내연남이 되고 싶어요?”“당신이 먼저 그 사람이랑 이혼할 수도 있죠.”서은혁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몇 번 터치하더니 정민아에게 내밀었고 그녀 또한 한참 동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한편, 엔조이 클럽, 방 안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최민영의 친구들은 그녀와 고연우를 부추기기 시작했다.“민영 언니, 연우 도련님이랑 러브샷 해요!”“러브샷! 러브샷!”비록 다들 고연우가 유부남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정민아와
패션 디자이너한테 옷차림이 못생겼다고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정민아가 고연우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그의 옷 스타일에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됐어, 내가 너한테 화내서 뭐 하겠어. 최민영처럼 수준이 떨어지는 여자와 약혼하겠다던 네 수준은 안 봐도 훤해.”정민아의 얼굴에는 조롱과 풍자가 가득했고, 고연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짜증을 억누르면서 침착하게 말했다.“약혼한 적은 없어. 그저 두 집 어른 사이에 그런 얘기만 오갔을 뿐이야.”그녀가 고연우와 최민영을 알았을 때부터, 두 사람은 모두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한 쌍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누구도 옆에 다가갈 수 없었다.“넌 정말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졌네.”고연우는 정민아가 속으로 도대체 무슨 음탕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쁜 생각임이 틀림없다고 판단하고는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왜 최민영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지금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건 이미 확정된 사실이니까 사고 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네가 사고를 친다고 해서 내가 뒷수습을 해주리라 기대하지 마.”“그럴 일 없어.”고연우의 얼굴은 홀가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욱 무거워졌다.“화장실 좀 다녀올 테니까 입구에서 기다려.”얼마 지나지 않아, 최민영이 정민아에게 다가왔고 클럽 불빛 아래에서 팔짱을 끼고 도도한 표정으로 물었다.“연우랑 이혼한다며?”정민아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자, 갑자기 오래전 아무도 없던 골목길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해졌다.“고연우가 너한테 말했어?”아직 두 사람이 이혼한다는 소식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최민영이 귀국 첫날에 모든 걸 알고 있다니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런 쓸데없는 건 왜 묻지?”“글쎄, 이제 보니까 고연우도 내 청춘을 허비할 만한 가치가 없더라고. 내가 버린 쓰레기를 네가 주워서 쓰려고?”최민영은 자기가 오랫동안 사랑한 남자가 수모를 받는 걸 견딜 수
차 안.고연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사물함 속의 담배에 몇 번이나 향했지만 꾹 참으면서 담담하게 먼저 말을 건넸다.“최민영이랑 다시 만나지 마.”정민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등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최씨 가문을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말고 최민영도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고연우는 그녀가 비록 말은 하지 않아도 완고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좀 났다.“그때 가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마.”최씨 가문이 오늘의 이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제야 일을 막 시작한 정민아가 패기만으로 대항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정민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창밖만 바라보면서 무시했고, 신림동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차에서 내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송씨 아주머니는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 급히 하던 일을 멈추고 맞이했다.“아가씨, 당신...”정민아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송씨 아주머니는 정민아가 평소 온화한 성격은 아니더라도 예의가 발랐기에 처음 보는 낯선 모습에 조금 당황했고 뒤따라 들어오는 고연우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대표님, 아가씨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오는 내내 냉대를 받은 고연우도 기분이 상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계단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신경 쓰지 마요.”송씨 아주머니는 두 사람이 또 싸웠다는 것을 눈치채고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섰다....욕실 안.정민아는 물이 가득 찬 욕조 속에 천천히 몸을 담갔고 따뜻한 물을 만끽하면서 입술, 코, 눈, 머리까지 온몸을 물속에 집어넣었다.그녀는 물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아까 최민영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서현란이 정말로 하늘에서 날 원망할까?’그러나 곧장 머릿속에 스치는 잡생각들을 집어던지고 살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처럼 물속에서 입을
고연우는 정민아의 움직이는 입술을 유심히 보려고 했지만, 물이 거세게 출렁이면서 자기가 잘못 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스쳐 지나갔다.그러나 그는 정민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자기의 목을 짓누르는 손에 힘을 주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정말로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연우는 강렬한 통증이 점점 더 밀려오자, 정민아의 손을 덥석 잡고 그녀의 위로 몸을 빠르게 돌려 한쪽 다리로 그녀의 다리를 단단히 짓누르면서 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아 버렸다.“이 정도로 날 죽이고 싶어?”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고연우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정민아의 눈에 들어가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곧이어 그는 희롱하듯 손으로 그녀의 귀 뒤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고연우의 움직임에 따라 공기 중의 자욱한 물안개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정민아가 눈을 뜨는 순간,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정민아는 부드러운 그의 혀가 자기의 입속으로 파고들려고 하자,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이내 저항하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그러나 고연우는 그녀의 끊임없는 반항에도 오랫동안 참아온 욕구가 폭발하듯 그녀의 턱을 잡고 더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오늘이 서현란의 기일이었기에 정민아는 고연우에 대한 혐오감이 정절에 달했고 그의 손길이 더욱 역겨웠다.그녀가 몸부림칠수록 욕조 안의 물이 사방으로 흘러넘쳤고, 곧이어 고연우의 손을 할퀴어 상처를 냈지만, 강압적인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렇게 얼마 동안 시간이 흐르자, 고연우는 계속되는 몸부림에 정민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사라졌고 그녀를 압박하던 동작을 멈추더니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귀 뒤로 부드럽게 넘겨주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아는 모양인데, 혹시 사람을 시켜서 날 미행이라도 했어?”정민아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네가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미행할 일도 없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