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우는 정민아를 쳐다보면서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1년 동안 가겟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옷 가게에 비서가 필요해?”“...”아까의 악몽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던 그녀는 비수를 꽂는 말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정민아는 풀린 눈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어루만졌다. 코끝에 스치는 고연우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면서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으나 도무지 뭐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이때, 공민찬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들어와.”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고연우를 보다가 문득 자기가 느낀 이상함이 무엇인지 알고는 물었다.“근데 네가 왜 소파에 앉아 있어?”“네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잠꼬대했잖아, 내가 깨우지 않았다면 회사 전 직원이 너의 잠꼬대를 들었을 거야.”“내가 잠꼬대했다고?”정민아는 자기가 잠꼬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고연우가 그런 걸로 그녀를 속일 이유가 없었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설마 잠든 틈을 타서 널 몰래 지켜봤다고 생각해? 네가 천사 같은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내가 널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널 염탐하겠어?”그녀도 지지 않으려고 비꼬는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네가 날 죽이려고 했는지 누가 알아, 싫어하는 나와 결혼하게 된 것도 모자라 약이 들어간 술을 마시고 나랑 하룻밤을 보내서 네 몸까지 더러워졌다고 생각하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야?”고연우는 불쾌한 듯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왜 너 때문에 내 손을 더럽히겠어.”그 순간, 바지 안에 넣었던 그의 셔츠가 위로 올라온 데다가 구깃구깃해진 것이 정민아의 눈에 들어왔다. “옷이 엉망이 됐네.”그녀는 갑자기 손을 뻗어 고연우의 셔츠를 잡아당기더니 능숙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해 줬다.고연우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치는 듯 쉰 목소리로 물었다.“얼마나 많은 남자의 옷매무새를 정리했길래 이렇게 능숙해?”“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몇백 명은 아니더라도 몇십 명은 되지 않을까?”사실 주위에서는 정민아의 사생활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더럽고
공민찬이 난처한 표정으로 두 여자의 뒤에 서 있었고, 그의 옆에는 냉랭한 얼굴을 한 고연우도 있었다.연신 훌쩍거리는 정선아와 달리 카리스마를 내뿜는 정민아의 모습만 보면, 정민아가 정선아를 괴롭힌다고 오해하기 쉬웠다. 그러나 정민아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오해하든지 상관하지 않았고 그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숨 막힐 듯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공민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고 대표님은 약속이 있어서 나가려던 참에...”“알겠어요, 공 비서님.”그녀의 갑작스러운 온화한 말투에 고연우의 얼굴이 더 어두워지면서 한마디 했다.“너 여자 맞아? 어떻게 입에서 그 정도로 독한 말이 나올 수 있지?”고연우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굳이 안 해도 되는 설명까지 한 공민찬은 자기의 노력이 수포가 된 것 같아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후, 정민아의 휴대폰 알람음이 몇 번 울렸다.그건 바로 이가림이 지금 당장은 배상금 전액을 낼 여건이 안 되니 할부해도 되냐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온 거였다.정민아는 그녀의 제안을 동의할 수 없었기에 문자를 보고 나서 답장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네 사람이 회사 문을 나가려는 순간, 정선아가 고연우를 불러세웠다.“연우 오빠, 미안해요. 내가 방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자들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우르르 몰려왔다.“거봐, 그 양심 없는 디자이너가 맞지!”정선아가 짧은 비명을 지르더니 곧바로 고연우의 팔을 잡고 회사 로비로 끌어당겼다.기자들이 꽤 오랫동안 회사 밑에서 정민아가 나오기를 기다린 게 분명했다. “당신 때문에 손님들의 결혼식이 연기되었는데, 어떻게 배상할 계획입니까?”“맞춤 제작이라고 하던데 왜 고객의 요구를 존중하지 않았습니까?””자기의 취향을 손님에게 강요하면서 디자이너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그들의 입에서 가시 돋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정민아는 뒤를 돌아 사람들 틈에 있는 정선아를 노려보았다.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오자,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았고 젊은 간호사는 붉어진 얼굴로 혈압을 재면서 정민아를 힐끔힐끔 쳐다봤다.정민아는 단번에 간호사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담담하게 충고했다.“아가씨, 남자의 외모에 속으면 안 돼요,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같이 살기에는 별로예요. 2년의 결혼 생활 동안 밖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지 절 직접 찾아온 내연녀만 해도 3명이라니까요.”고연우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었고, 간호사가 무안한 듯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오해하셨어요, 저는 남편분을 보고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언니가 너무 예뻐서 쳐다본 거예요. 혹시... 카톡을 추가해도 될까요?”생각지도 못한 간호사의 발언에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정민아는 젊은 간호사가 맑은 두 눈을 크게 뜨면서 간절하게 자기를 바라보자, 차마 매정하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녀의 카톡을 추가한 간호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병실을 나갔다.“언니 고마워요, 다시 말하지만 정말 너무 예뻐요!”고연우가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그녀가 눈을 치켜뜨면서 비아냥거렸다.“너도 카톡을 추가하려고?”고연우는 눈을 감고 무시했다. 그는 단지 자기 앞에서는 언제나 때리고 싶을 정도로 비아냥거리는 태도인 정민아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친절한지 이해되지 않았다.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정민아는 시간을 보더니 저녁을 배달시켯다.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고연우가 입을 열었다.“누가 널 찾아갔어?”잠시 어리둥절하던 정민아가 그의 물음의 뜻을 이해하고 물었다.“무슨 귀염둥이, 아기라고 하던데, 너 누군지 몰라?”“...”...한편, 정선아는 운전석에 손을 올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탁했다.“공 비서님, 저 병원에 데려다주실래요? 아무래도 연우 오빠가 걱정돼서 못 견디겠어요. 언니는 사람을 돌본 적도 없는 데다가 예전에 부모님께서 아프셨을 때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분명히 지금쯤 오빠를 혼자 버려두고 갔을 거예요.”“고 대표님께서
가게는 정민아와 사연희가 같이 투자해서 일군 가게였기에 개인적인 원한으로 망하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다.오늘 하루 그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라 배달 음식을 먹은 후, 긴장이 풀리는 탓인지 졸음이 밀려와 이내 잘 준비했다. 고연우가 갑자기 말을 건넸다.“어디 아파?”정민아는 이불을 들추는 손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면서 반문했다.“뭐라고?”“아까 오후에 사무실에서 계속 아프다고 소리쳤잖아.”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붉은빛이 돌아서 오후에 눈을 감고 아프다고 중얼거릴 때의 여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연우는 사무실에서 정민아가 눈을 뜬 채 그를 향해 아프다고 낮게 소리치는 걸 눈앞에서 보았기에 악몽을 꿨다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행동들이 어리석고 무모하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비웃기까지 했다.정민아는 머릿속에 오후의 악몽이 다시 떠올라 기분이 나빠져서 답하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이때 고연우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면서 다시 물었다.“나한테 오후의 일을 설명해야 하지 않겠어?”“당신을 내 앞에 끌어당겨 세우지 않았다면 그 유리잔이 날 가격했을 거 아니야.”그녀는 뻔한 일을 캐묻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퉁명하게 답했고, 몇 초 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 정선아가 좋아? 여자로서 좋아하든 아니면 여동생으로 예뻐하든지 상관없어.”정민아의 황당한 물음에 고연우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변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이번 일은 정선아가 꾸민 짓이야, 게다가 기자와 이가림한테 내가 네 회사에 있다는 것까지 알려줬어. 네가 이뻐하는 귀염둥이를 대신해서 맞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억울한 것도 아니지?”사실 공민찬이 정민아의 가게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보고했지만, 고연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더 깊게 조사하지 않아서 그 배후에 정선아가 있는지 몰랐다.게다가 사람들은 악명높은 난봉꾼이라는 소문을 가진 정민아의 말보다는 정씨 가
고연우는 눈을 치켜뜨면서 공민찬에게 차갑게 말했다.“공 비서, 당신 누구 비서지? 누구한테서 월급을 받지? 정민아가 그렇게 신경 쓰이면 차라리 내 비서를 그만두고 그녀의 비서를 하는 게 어때?”공민찬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사모님을 정말로 싫어하세요? 연예계에 진출하더라도 1등을 차지할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셨잖아요.”공민찬의 말 속에서 고연우의 안목에 대한 의구심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자기가 만약 정민아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자와 결혼한다면 모든 돈과 사랑을 그녀에게 줄 거라고 믿었기에, 고연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공 비서, 저 길가의 협죽도도 예쁜데 꺾어서 집에 가져가지 그래?”공민찬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협죽도는 독이 있어서 가까이 가면 죽을 수도 있어요... 전 사모님께서 아름다운 외모에 마음씨도 착하시고 말도 예쁘게 하셔서...”고연우가 갑자기 쌀쌀맞은 태도로 비웃자, 공민찬은 얼른 하려던 말을 멈췄다....세차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정민아는 정선아에게서 온 연락을 받았다. “언니, 나 방금 뉴스 봤어! 어떻게 돈을 뜯어내려고 사람을 모함할 수 있어?”정민아는 그녀가 매번 이런 태도를 보일 때마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시간 낭비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그냥 해.”“사건의 진상도 밝혀졌고 가게에 관한 나쁜 여론도 잠잠해졌으니까, 기사를 내리는 게 어때? 네티즌들이 혹시나 엄마, 아빠의 신상을 파헤치면 피곤하잖아!”“부모님께 피해가 갈까 봐 걱정되는 것보다 그 두 사람이 널 찾아가서 협박할까 봐 두려운 거 아니야? 정선아, 넌 어떻게 사람을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정선아는 비꼬는 말투 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무슨 말이야?”정민아는 가차 없이 연락을 끊어버렸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틈을 타서 정선아가 이가림을 시켜서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증거 영상을 기자한테 보냈다.CCTV 영상 아래
송씨 아주머니는 고연우가 주동적으로 정민아를 찾자, 마음속으로 기뻤지만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돌아오자마자 저녁도 안 드시고 올라가셨어요,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던데요.”정민아가 계속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송씨 아주머니는 그녀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지 못했다.고연우가 눈살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송씨 아주머니가 그의 안색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께서 올라가시는 김에 아가씨한테 저녁을 가져다주실래요?”“어린애도 아니고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죠.”“위가 안 좋아서 끼니를 건드리면 안 되거든요...”고연우는 밥을 먹다가 멈칫했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한 끼를 덜 먹는다고 굶어 죽지는 않아요.”“...”송씨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없이 부엌으로 가서 정민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얼마 뒤, 비몽사몽인 상태의 정민아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송씨 아주머니가 우유를 가져다주러 온 줄 알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아주머니, 오늘 저녁에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눈을 뜬 정민아는 고연우가 자기의 앞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네가 왜 여기 있어?”고연우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음식을 그녀의 침대 옆 수납장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일어나서 밥 먹어.”아직 잠이 덜 깬 정민아는 그에게 나가라고 베개를 던지고 싶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포기하고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당겼다.“먹고 싶지 않아, 그냥 나가줘.”“그러다가 위가 아프면 방에 숨어서 배를 움켜쥐고 끙끙대려고?”“내가 하루빨리 죽어버리면 너한테도 좋은 일 아니야?”고연우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더니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답했다.“그렇게 되면 내가 널 학대해서 죽었다는 소문이 돌겠지?”정민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자, 고연우는 더 짜증을 냈다.“빨리 일어나서 먹어.”정민아도 더 이상
경계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고연우는 동작을 멈추고 피씩 웃었다.“뭘 하려는 줄 알았어? 성폭행?”“...”남자는 거짓 웃음을 거두더니 조롱 섞인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수 있지?”과격한 말이나 감정은 없었지만 하찮게 여긴다는 느낌이 너무 뚜렷해서 무시할 수 없었다.정민아는 그의 도도하고 냉소적인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14살 때 양딸 신분으로 정씨 집안에 들어온 이후 제일 많이 본 것이 이런 눈빛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고연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여기가 왜 고씨 저택인지 알아? 정씨가 아니고 고씨.”정민아가 바로잡았다.“집문서는 내 명의로 돼 있어.”여기는 원래 이름이 고씨 저택이 아니다. 고연우가 살아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뿐이다.그녀는 고연우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며느리가 아니지만 양가의 실력이 비슷해 통혼한 것이므로 겉치레는 충분히 해야 한다. 그래서 결혼이 확정된 후 이 집을 정민아 명의로 해주었다.“그래서? 당당해? 나를 쫓아내고 싶어?”고연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내가 없으면 노동자들의 월급은커녕 관리비도 내지 못할걸.”“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남자의 새까만 눈동자에 분노의 기색이 감돌더니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정민아, 가끔은 정말 너를 목 졸라 죽이고 싶어.”“그럼 졸라.”“내가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것 같아?”고연우는 뒤어금니를 깨물며 ‘헉’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정민아, 나 그런 생각 했었어.”“...”그는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가지 않고 굳어진 표정으로 접시를 여자 입에 가져다 댔다.“밥 먹어.”정민아가 입맛이 없다는 것을 알고 송씨 아주머니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했다. 아까는 너무 졸려서 배고프지 않았지만 지금 음식 냄새를 맡으니 배에서 때마침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녀는 손해를 보더라도 체면을 차리는 그런 바보 같은 성격이 아니다. 몸에서 배고프다는 신호를
이튿날 정민아는 정철진의 전화를 받고 집에 불려 갔다.어젯밤에 푹 자려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 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부재중 전화와 읽지 않은 카톡 알림이 가득 들어와 있었다. 대부분 정선아와 주소월 이름이었는데, 뒤지다가 뜻밖에 정철진의 이름이 보였다.정철진은 가부장적이고 일을 1순위에 두고, 집안의 사소한 일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겨 그를 찾으면, 몽둥이를 휘두르고 막무가내로 진압했다. 그래서 자녀와의 관계도 깊지 않았는데, 만나면 근황 몇 마디 묻는 것 외에 평소에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그녀는 퇴근 후에야 친정으로 갔다. 문 앞에 도착하니 안에서 정선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아버지,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화내지 마세요.”정철진은 목소리가 높아 화를 내면 성난 사자처럼 기세가 압도적이었다.“너와 민아는 자매이고 가족이야. 이게 무슨 행위인지 알아? 등에 비수를 꽂는 것이고 배신이고 행동거지가 잘못된 거야. 군대에서 이러면 파면되고, 심각하면 군사 법정에 서야 해.”“흑흑!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정선아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었다.“의사가 제 이마에 흉터가 남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잠깐 어떻게 됐었나 봐요. 그 두 사람이 언니한테서 돈을 뜯어내고, 라이브 방송을 열어 언니의 명성을 깎아내릴 줄은 몰랐어요.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그녀가 얼마나 애처롭게 울고, 얼마나 성의 있게 사과하는지 정민아가 조금이라도 착했다면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오죽하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겠는가. 정씨 집안에서 정철진이 가장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은 간난신고 끝에 태어난 남동생도, 어릴 때부터 그들과 떨어져 지낸 친딸도 아닌, 말을 잘하고 애교가 많은 정선아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울자 ‘엄격한 아버지’ 정철진의 말투는 누그러졌다.“가족은 뒤에서 수작을 부려 모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마음을 합쳐야 해.”문 앞에서 정민아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인스타를 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