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우고 새벽 5시에 해 먹는 김치볶음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잘 익은 묵은지의 새콤함과 기름에 볶아진 밥의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요리 솜씨 점점 늘어나는데?"신은지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볶음밥을 조심스레 입으로 넣으며 감탄했다. 그 말을 들은 진유라가 흥하며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요즘 밖에서 사 먹으면 얼마인 줄 알아? 아주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요. 그런데 급여는 그대로지, 이러다가 밥만 퍼먹고 살게 생겼다니까? 정말 젊은이는 살기 힘든 세상이 됐어. 우리 세대는 죽으면 아마 자식한테 물려줄 것도 없을 거야. 아니지, 출산율이 세계 최악인데 물려줄 필요 없겠구나? 정말 말세야, 말세."그녀의 말을 들은 신은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네가 그 젊은이에 속하는 줄 알겠다."진유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나도 뭐 다를 줄 알아? 요즘 세대면 다 비슷하지 뭐."이때, 소란스럽게 울리던 구급차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잠시 뒤, 누군가가 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진유라와 신은지의 눈동자가 동시에 동그랗게 떠졌다."쓸데없는 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너. 이번에야말로 좋게 넘어갈 생각하지 마.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해."진유라는 습관적으로 현관 외시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기다리던 육정현은 온데간데없고 병원 구급대원 모습만 보였다. 그제야 진유라는 아까부터 울렸던 구급차 소리를 떠올렸다."...."뜻밖의 등장에 진유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 찾으세요?""저희는 구급대원입니다. 좀 전에 임산부가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신고를 받아서요. 신고자분이실까요? 임산부는 어디에 있어요?"육정현이 직접 오는 대신, 구급차를 부른 모양이었다. 진유라는 속으로 그를 향해 욕설을 날리며, 겉으론 미안한 미소를 지은 채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아, 죄송해요. 아까 다른
육정현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고연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올드한 인테리어를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취향이 참...."육정현이 육영 그룹의 대표가 되기 전까지 이 자리를 지킨 사람은 공식적으로 그의 아버지인 육명선이었다. 육명선의 취향대로 꾸며진 사무실은 전체적으로 아저씨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고연우 씨, 투자하러 오셨다고요?"육정현의 억양은 박태준과 상당히 달랐다. 살짝 외국에서 오래 산 교포 느낌이 났다. 고연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유심히 육정현을 살펴보았다. 고연우와 박태준은 가족끼리 친했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거의 형제처럼 붙어서 지냈다. 그래서 고연우는 박태준의 아내인 신은지보다도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잘 안다고 자부했다.박태준이 외동인 건 확실한데,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고서야 이 정도로 똑같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고연우는 심각하게 고민됐다."설마 육명선 전 대표가 낚시하다 널 낚은 건 아니겠지?"육명선은 바다낚시를 매우 좋아했다. 육영 그룹이 빚 때문에 막다른 길목에 몰려 집과 차, 심지어 딸까지 늙은 남자에게 팔아치우면서도 낚시 장비만큼은 건드리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딸을 시집보낼 때, 대외적으로는 자발적인 의사로 결혼한다고 공표했었다. 실제로 그의 딸은 큰 소란 없이 결혼까지 골인했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진실로 알고 있었다.하지만 고연우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정민아에게 웨딩드레스를 주문하던 날, 그도 사무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연우는 본의 아니게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됐었다.그 여자는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정민아에게 얘기를 꺼낸 것이었겠지만, 정민아의 성격상 그것을 받아줄 위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정민아는 자신의 웨딩드레스에 행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걸 참아 줄 리 없었다. 정민아는 그 여자에게 그럴 시간에 스스로 운명을 개조할 용기를 가지거나, 자신의 웨딩드레스 브랜드에 누가 되지 않도록 불만을 티 내지
신은지가 대기실에 십여 분을 기다렸을까? 드디어 고연우가 모습을 들어냈다. "가요."그가 대기실 문턱에 서서 신은지에게 외쳤다. 신은지는 말없이 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확인했어요? 태준이 맞아요?"그리고 잠시 후, 차에 올라탄 뒤에야 그에게 질문했다. 육정현이 박태준일 거라는 확신이 80, 90프로는 들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은 사람한테 확인을 받는 편이 힘이 됐다. "확실히 똑같게 생긴 건 맞더라고요."질문을 받은 고연우가 덤덤히 답했다."...."신은지는 긴장된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말 대신 신은지 앞에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거기엔 막 뽑힌 듯, 뿌리가 생생한 머리카락 한 움큼이 놓여 있었다. "맞는지 아닌지, 이걸로 직접 확인해보면 되죠."신은지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박태준의 죽마고우는 달라도 뭐가 달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 머리카락들을 받을 수가 없었다. "제가 직접 의뢰를 맡기면 중간에서 또 누군가가 수작을 부릴 수도 있으니까, 일단 아버님이 내일 출장에서 돌아오시는 걸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아직 기민욱의 일도 박용선에게 말하지 못한 상태였다. 강혜정한테 샘플을 받아도 되긴 하지만, 그 과정에 누군가가 개입할 수도 있었다. 그 말을 들은 고연우는 조용히 차 서랍 안에서 봉투를 꺼내 머리카락을 담았다."결과 나오면 알려줄게요."그는 신은지를 재경그룹에 데려다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그런데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중, 한 여자가 갑자기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신은지 씨."이 여자는 재무부에서 일하고 있는 이름모를 주주의 조카였다. 삼촌백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전공은 확실히 재무 쪽이였다. 아마 그 주주의 지시로 신은지를 매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은지가 냉담한 표정으로 가볍게 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자도 인사하는 척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의 평평한 배에 시선을 고정했다. "신은지 씨, 임신 4개월 아닌가요? 그런 것치고는 배가 너무 밋밋한
와이프라니, 실종 전에도 그는 신은지한테 그저 남자 친구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젠 박태준의 신분도 아니니, 그마저도 아니었다. 신은지의 선을 긋는 태도에, 육정현은 커다란 비수가 심장에 내리꽂히는 기분이 들었다."저 미혼이에요. 임신한 약혼녀도 없고요."그러자 옆에 있던 진유라가 또다시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참 인연이네요. 은지가 마침 유아용품을 사러 왔는데, 그쪽도 이유 없이 유아용품을 사러 왔다니... 설마 처음부터 은지한테 사주려고 온 건 아니겠죠?"육정현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진유라의 아픈 곳을 콕하고 찔렀다."그러게요. 인연이 참 묘하긴 하네요. 진유라 씨도 곽 변호사님이랑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저한테도 청첩장 보내주실 건가요?"진유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 되지도 않는 위협을, 곽동건과 결혼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은 또 어디서? 진유라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막상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이때 직원이 포장해 놓은 물건을 가져오며 친절한 미소로 물었다."다른 것도 보시겠어요? 저희 가게 임부복도 아주 예쁘고 품질이 좋아요. 저희 제품은 모두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임산부의 민감해진 피부에도 자극 주지 않으며, 세탁하기도 용이하게 만들어졌어요."신은지는 임산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했다."괜찮아요. 감사해요."하지만 옆에 있던 육정현은 달랐다."그것도 포장해 주세요."그는 빠르게 진열대에서 옷 몇 벌과 분유 등, 전에 한번 구매했던 적이 있던 제품들로 골랐다. 비록 그때 보낸 물건들은 모두 나유성이 기부해 버렸지만, 이번에야말로 신은지에게 이 물건들을 성공적으로 전해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육정현이 계산을 마치자, 신은지와 진유라는 가계를 나선 뒤였다. 진유라가 베개를 신은지 배에다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건... 너무 티 날 것 같은데. 실수로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가짜 임신이라는 거 단번
신은지는 눈을 크게 떴다."육 대표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열쇠를 사용해요? 지금은 다 지문으로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육정현은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심리 컨트롤을 잘해서 그런지 거짓말을 해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미안해요. 저는 시골에서 살다 왔어요. 산에서 장을 보러 가려면 한나절이나 걸어야 하죠.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물건을 접하기 힘들어 비교적 전통적이에요.” 육정현은 엘리베이터가 35층에 멈추는 것을 보았다. "신은지 씨, 그럼 오늘 밤은......” 신은지는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했다. "저한테 열쇠 가게 전화번호가 있는데, 육 대표님이 필요하시면 보내드릴 수 있어요.” “……” 육정현이 대답하지 않자 신은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뒤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육정현이 황급히 따라 내리며 말했다. "신은지 씨, 열쇠 가에게서 사람이 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날씨도 추운데 신은지 씨 집으로 가서 차 한 잔 마시죠. 열쇠 가게 사람이 오면 내려갈게요.” 육정현은 정말 솔직하게 말했다. "……” 육정현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우가 신은지 얼굴 앞에서 대놓고 꼬리를 치고 있다. 신은지는 문 앞에 멈춰 서서 현관 도어록을 열었지만 바로 문을 열지 않고 큰 가방과 작은 가방을 익살맞게 들고 있는 육정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육 대표님을 집에 초대하기 싫은 게 아니라, 남편이 얼마 전에 죽고 혼자 사는 여자라서 조금 불편도 하고 뱃속에 아이가 있어서...…” 신은지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듯 말하다가 곧 감정을 조절했다. 신은지는 속으로 자신이 배우가 되지 않은 것이 연예계의 손해라 생각했다. "이 아이는 공교롭게도, 제 전 남편이 사라지고 나서야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어요.사람들은 제가 이미 이혼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지금 모두들 이 아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신은지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이 너무 오해를 한 것인지 잠시 헷갈렸지만 신은지는 뒤늦게 육정현의 말을 이해하며 말했다. "안 돼요.” 육정현은 실망하며 자신도 모르게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저는 이미 여기에 들어왔어요. 지금 제가 다시 나가도 그 사람들은 여전히 함부로 혀를 놀릴 거예요. 그리고 복도는 너무 추워요. 열쇠 가게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면 안 될까요?” "지금 나가시면 다른 사람들은 별생각 없을 것 같은데요.” 3분이면 옷을 벗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오해할 것이 뭐 있겠나? 육정현은 손을 뻗어 신은지의 손등을 만졌다. 그의 손가락은 차가웠고, 그가 만진 곳은 순식간에 소름이 돋았다. ”밖은 너무 추워요.” 아직 11월도 되지 않아, 저녁 최저 기온이 모두 영상 8, 9도 이상이고 춥다고 해도 덜덜 떨 정도는 아니었다. 신은지의 마음은 철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육정현을 힐끗 본 후 거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소파 위에 얇은 담요가 있어요. 들고 복도 비상구 통로로 가세요. 거긴 바람도 안 불어서 춥지 않아요.” 육정현은 신은지를 뒤따라 거실로 들어오며 탁자 위에 놓인 액자를 보았다. 강혜정이 고택 서재에 두었던 것인데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다.신은지는 정수기로 걸어가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다가 고개를 돌려 육정현이 그 액자를 들고 있는 걸 보며 말했다 "내려놔요. 만지지 말아요.” 육정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박 대표님인가요?” “……” 신은지는 육정현이 들고 있는 액자를 보았다. 사진 속 박태준은 검은 셔츠에 바지를 입은 채 차갑고 도도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육정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녀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나쁜 놈, 어떻게 연기하나 보자. "네, 죽은 귀신같은 전남편이에요. 생긴 건 귀신같이 생겨서 명은 짧았어요.” 신은지는 낙담한 표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육정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박 대표님도 이름이 있죠?” 말끝마다 죽은
신은지는 그가 진지하게 다가오자 급히 제지하며 말했다. "육 대표님, 아무리 목이 말라도 임산부인 저에게 마음을 쓸 정도는 아니시겠죠” “……” 육정현은 그녀의 배를 잠시 바라보다가 결국 동작을 멈추고 허탈한 표정으로 소파 앞에 가서 앉았다. "지난번에 넘어졌을 때도 배가 아파했는데 지금도 아파요?” 당시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구급차를 불렀지만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병원에는 가지 않았었다. 육정현의 말투에서 걱정과 긴장감을 알아챈 신은지는 몇 초간 묵묵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 아이가 신경 쓰이나요?” “……” 육정현은 아이보다 신은지가 더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육정현의 신분이었다. 육정현이 걱정된다고 하면 그녀는 뛰어다니지 않을까? 그리고 걱정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신은지는 또 화를 낼 것이다. 게다가, 이 아이는 그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존재인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시험이다. 육정현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신은지는 이미 그를 내쫓으며 말했다. "어차피 당신 아이도 아니고 육 대표님이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그녀는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 나가면 경비원을 부를 거예요.” 육정현은 시선을 내리며 애처롭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싫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육정현이 머뭇거린 이유는 어떻게 대답해야 만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육정현은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여기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신은지가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육정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를 좋아해요. 당신 아이를 좋아해요.” 신은지는 육정현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휴대전화를 꺼내서 그의 면전 앞에서 대놓고 관리실 전화를 찾고 있었다. 육정현은 뒤늦게 입술을 오므리고 마지못해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 육정현은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신은지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는 현관 앞에 서서 답답한 듯 숨을
다음날 아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사무실에서 기민욱을 본 육정현은 말없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재빨리 감정을 감추었다.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그는 기민욱이 맞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호영과 점심약속을 잡았다. 이것은 기민욱의 일었기에 본인이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기민욱이 말했다. "병원에 있는 것도 심심하고 형이랑 같이 가고 싶었어. 의사가 퇴원해도 된다고 했고 기다렸다가 깁스를 풀러 병원으로 오면 된다고 했어.” 육정현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켜며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며 물었다. ”아침은 먹었어?” "아직,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여기로 바로 왔어.” 육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꾸짖었다. "의사의 당부가 기억나지 않으면 사람을 붙여서 의사의 말을 네 옆에서 상기시켜 주라고 시킬게." "형, 화내지 마. 왕 비서님께 사다 달라고 부탁했어.” 기민욱은 어제 육정현이 신은지와 또 함께 했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매우 초초하고 불안했다. 기민욱은 무언가가 서서히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조금씩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형, 어젯밤에 왜 병원에 안 갔어?” "공적인 일이 좀 있었어.” 기민욱의 천진난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다. 그의 눈에 어둡고 불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박씨 가문과 관련된 일이야? 두 가문은 이미 완전히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어? 또 무슨 할 말이 있어?” 육정현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기민욱이 말했다. "어제 내 친구가 길에서 형이 신은지 씨랑 임신부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우연히 보고, 나와 얘기하면서 나에게 형 결혼했냐고 물었어.” "협력업체 직원 아이가 이틀 뒤 백일잔치를 하는데 마침 임신부 가게를 지나다가 적당한 게 있으면 사려고 들었했는데 거기서 우연히 신은지 씨를 만났어.” 육정현이 대충 얼버무리자 기민욱은 화가 났다. "그럼 신은지 씨를 데려다주고 그 집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도 우연이야?" 기민욱의 얼굴 표정은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