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현이 내밀어진 손수건으로 손을 닦기 시작했다.진영웅은 그 모습을 보면서 박태준을 떠올렸다. 박태준도 깔끔한 편이긴 했지만, 육정현처럼 사람 손 한 번 닿았다고 마디마디 닦을 정도로 결벽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그제야 진영웅도 육정현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확실히 박태준과 많이 닮아 있었지만,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며, 걸음걸이, 스타일 모두 박태준과 달랐다."...."신은지는 복잡한 시선으로 연회장을 떠나는 육정현을 바라봤다. 그는 박태준과 닮았을 뿐, 육씨 가문의 막내아들이자, 재경그룹의 경쟁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도플갱어도 아니고, 닮아도 이렇게 닮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언제 기회가 된다면, 박태준에게 일란성 쌍둥이가 없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연회장을 나가던 육정현이 갑자기 멈춰서, 말없이 연회장 안을 바라봤다.시혁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방시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시선에 신은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대표님, 혹시 신은지 씨가 마음에 드셨어요?"그 말을 들은 육정현이 방시혁을 바라봤다."이건 또 무슨 신박한 헛소리일까?""제가 잘못 생각했나요?"육정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당연한 소리를 자꾸 하게 만들래? 그리고 비서면 비서답게, 열심히 일이나 해. 왜 이렇게 쓸데없는 질문이 많아?"육정현이 화난 모습에 방시혁은 얼른 입을 닫았다. 하지만 시선은 육정현 손에 들린 손수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육정현이 연회장을 떠나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육정현이면, 육씨 가문의 그 막내아들 아닌가요?""맞아요. 그런데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박태준 대표 판박이네요. 설마 박 이사가 밖에서 바람피운 건 아니겠죠?"사람들이 신은지를 힐끔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에이, 말도 안 돼요. 박 이사 부부, 얼마나 사이 좋은데요. 그나저나 참 대단하네요. 무너져가던 가문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다들 노리고 있던 대형 프로젝트 두 개나 가져잖아요."오늘 육정현이 임 할머니 팔순
이 건물은 사실 1층 커피숍을 제외하곤 육영 그룹의 소유가 아니었다. 1년 전 빚 때문에 나머지 층들을 모두 매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 육영 그룹은 외딴곳으로 이사한 상태였다. 육정현은 커피숍 가장 눈에 띄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은지는 먼저 도착한 그를 발견하곤 허겁지겁 달려갔다."신은지 씨, 지각하셨어요. 절 만나러 오면서, 쇼핑까지 한 거예요?"그가 손목시계를 두드리며, 신은지 손에 들린 남성 브랜드 쇼핑백을 쳐다보고는 불만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가 늦은 데는 나름 사정이 있었다. "이건 쇼핑하던 도중에 연락을 받아서, 얼떨결에 들고 온 것뿐이에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신은지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저 얼굴을 보고 박태준이 아닌 육정현이라 불러야 한다니, 정말 고역이었다. 계속 그를 보고 있기 힘들었던 신은지는 얼른 화재를 다른 데로 돌렸다."여기 커피라떼 하나 주세요."신은지가 마침 다가오고 있던 커피숍 직원을 보며 말했다. "아니요. 그거 말고 따뜻한 우유로 가져다주세요."갑자기 육정현이 끼어들며 주문을 변경했다. 직원은 그의 기세에 눌려 후딱 알겠다고 한 뒤,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왜 제 주문을 마음대로 바꿔요?"신은지가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커피가 임산부한테 안 좋다는 거 몰라요? 괜히 이따가 문제 생기면 제 책임 묻지 마시고, 우유로 만족하세요""...."실제로 임신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신은지는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음료수가 중요한 건 아니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대표님, 혹시 저희 재경 그룹에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나요?"신은지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니요.""그럼 왜 사사건건 회방을 놓으시나요?"육정현이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몸을 소파에 기댔다."전에 문화재 복원하는 일을 하셨다고 했죠? 신은지 씨는 사업자질이 없으신 것 같아요. 다시 원래 직업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네요. 사업하는
방금 신은지는 진영웅에게 아래층에서 기다리라고 말했고, 그는 줄곧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진영웅은 육정현이 갈 때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작은 사모님, 육 사장님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이라도 하셨나요?” 신은지는 지친 듯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지러운 테이블 위는 이미 종업원이 정리했다. "그럴 리가요, 저는 두 가문의 오래된 원한을 풀 목적으로 나왔는걸요. 그에게 선물까지 주었어요. 그는 아마 제가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줄 몰랐을 거예요. 기뻐 죽었을 걸요.” "……” 진영웅은 말이 없었다. 왜 그는 신은지의 말을 믿지 않을까? "입찰에 대한 육 사장은 어떤 태도는 어때요?” "끝까지 해보겠다는 태도예요.” 진영웅은 신은지를 힐끗 쳐다보다가 몇 번 망설인 끝에 말했다. “육 사장님은 정말 박 대표님 아니에요? 비록 둘의 성격과 옷차림, 일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견적서를 제출하는 것을 보면 재경 그룹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획안을 제시하는 것도 그래요. 한두 번도 아니고 지난 두 달 협력하는 내내 이렇다고요.” 너무 많은 우연이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경 그룹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생김새도 비슷하고, 실종과 출현 시점까지 정확하게 일치했기에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신은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진영웅은 몇 가지 더 묻고 싶었지만 괜히 신은지를 우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화제를 돌렸다. ”서씨 가문에서 저녁 식사에 초대했어요. 장소는 봄의 향기예요.”신은지는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저녁이요?” 신은지가 가고 싶어 하지 않은 내색을 하자 진영웅은 말했다. "지금 두 가문은 지금 협력 단계에 있으니 예의상이라도 가야 해요.” "선물 하나 준비해 줄 수 있어요? 오늘 유성이 생일이라서요.” 많은 사람들이 봄의 향기로 오라고 초대받았고 그중 그와 친하지 않은 진유라도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직접 그에게 선물을 주고 가지 않을 생각이었
이 목소리는 오후에 들었던 목소리였다. 비록 바로 목소리를 인지할 수는 없었지만, 신은지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육정현이라고 확신했다. "육정현?” 그 순간, 연한 색상의 캐주얼 차림에 삐죽삐죽 앞머리에 부드러운 이목구비의 육정현이 복도 모퉁이에서 나왔다. 그가 박태준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신은지는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육정현을 처음 본 나유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준?” 육정현은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었다. "나유성 씨, 저는 육정현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육정현 씨?” 최근에 격동의 경인시 상업계에 다크호스처럼 나타난 육정현에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많은 일을 비서를 통해 진행했기에, 그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에 대해 언급할 때면 모두들 조심스러워했다. 육정현의 얼굴을 마주한 나유성은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지도 않았다. 육정현은 개의치 않고 손을 거둬들여 옆에서 담담한 태도로 있는 신은지를 보았다. "신은지 씨, 당신이 준 팬티 사이즈가 너무 작던데요.” "??” 신은지는 육정현의 말에 당혹스러워 바늘로 그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육정현은 어떻게 그런 말을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지? 그리고 신은지는 분명히...... 신은지는 갑자기 얼음물이 가득한 대야를 머리에 쏟아부은 듯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팬티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말은 육정현이 박태준이 아니라는 뜻인가? 하지만 육정현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선물한 속옷을 입어보지 않았다.당시 신은지는 2층에서 육정현이 자신의 비서에게 그 속옷을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한 것을 똑똑히 보았다."그래요? 그럼 육정현 씨가 살이 너무 쪘다는 말인데요. 저는 정 사이즈로 샀어요.”나유성은 여전히 육정현을 보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방금 마신 술이 인생의 쓴맛으로 변해 그의 오장육
나유성과 헤어진 후 육정현은 봄의 향기에서 떠났다. 차 안. 방시혁은 차를 몰며 백미러로 육정현의 안색을 살폈다. 육정현은 눈을 감은 채 잠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무표정이었다. 방시혁은 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육 대표님, 오늘은 나유성 씨의 생일이었으니 신은지 씨가 선물한 그 속옷은 아마 나유성 씨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었을 것 같은데요.” 뒷자리에서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육정현은 뒤늦게 눈을 뜨며 말했다. "여자에게 생일선물로 속옷을 주면서 포장도 안 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준다고? 방 비서 변태야?” 육정현의 목젖이 움직였다. "난 신은지 씨한테 관심 없어. 방 비서가 재경 그룹 사람에게 전화해. 입찰 건은 말할 필요도 없어. 경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야. 이런 수작을 부리는 것 자체가 수준 미달이라고.” 육정현이 말을 하는 동안 방시혁은 줄곧 내색을 하지 않고 그를 훑어보았다. 육정현은 미간을 좁히며 짜증 낼뿐 다른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제가 그쪽에 한번 말해 볼까요? 신은지 씨가 성희롱 했다고?” 속옷과 같은 민감한 것을 선물하는 것은 직장 내 성희롱에 적용된다. "방 비서, 네가 왜 여자친구한테 차였는지 알아?” “?? 왜요?” "입이 싸.”"……" 방시혁은 육정현이 한 말을 알아듣는 데 2초가 걸렸다. 육정현은 방시혁이 그가 신사답지 못하게 여자에게 시시콜콜 따지고 여자에게 창피를 주고 명예를 훼손한다고 비꼬는 것이었다. 자신의 임무를 생각한 방시혁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육 대표님은 신은지 씨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 "나는 원래 여자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네가 날 그렇게 보는 건 네가 모든 여자에게 감정이 있기 때문 아니야?” 육정현은 깊고 검은 눈빛으로 방시혁을 보며 말했다. "방시혁, 내 곁에 남으려면 맡은 일만 잘해. 하루 종일 내부 첩자처럼 내 속내나 캐지 말고.” …… 이튿날.
신은지는 심랑회에서 매년 풀 파티를 개최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명칭은 파티였지만 사실은 상류층 자녀들을 위한 소개팅 파티였다. 신은지가 말했다. "내가 직접 초대장을 들고 풀 파티에 같이 가자고 하라고? 그렇게 하면 육정현은 날 그의 몸을 탐내는 변태로 생각할지도 몰라.” "뭐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진유라는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네 목적은 그저 그 사람 바지를 벗는 거 아니야? 풀 파티라고 해서 다 수영복을 입는 건 아니잖아. 일단 아무 핑계 대서 그를 풀 파티에 오게 하고 기회를 봐서 수영장에 빠뜨리면 되는 거 아니야? 혹시 흉터가 튀어나와 있어? 정 안 되면 네가 직접 만져 봐.” 진유라의 말에 신은지는 어이가 없었다. "너랑 곽 변호사가 이렇게 진도 나간 거야?” 진유라는 요 며칠 동안 잘 쉬지 못한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다가 곽동건 이야기를 듣자 머리가 더욱 아팠다. 진유라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제발, 그 남자 얘기는 꺼내지 마. 나랑 곽동건은 그런 사이 아니야.” 진유라는 예전에 그에게 당한 일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녀는 정말 다시는 곽동건을 붙잡고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검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의젓한 표정으로 말했다. "곽 변호사는 사람들을 잘 사귀는 스타일도 아니고 사생활도 너무 깔끔해서 이런 세속적인 일에는 흥미가 없을 거야.” 신은지도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진유라가 이렇게 강력히 부인하는 걸 보고 웃으면서 이 주제를 넘겼다.진유라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몇 분도 안 되어 초대장을 받았다. 동시에 그녀들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 통화 중이었는데 듣자 하니 전화를 하고, 목소리가 설렁설렁한 것이 부잣집 도련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안 올 거야?” "방금 어떤 아가씨가 넌 안 된다고 하던데, 너 쓰레기냐?” 진유라는 눈살을 찌푸리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신은지에게 말했다. “이 사람 정말 좀 그런 것 같아. 이런 얘기를 공공
신은지는 초대장이 버려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파티 당일 진유라는 그녀를 데리러 왔다. "이따가 파티에서 2분 정도 점등 시간이 있을 거야. 그때 기회를 봐서 손을 뻗어 엉덩이에 흉터가 있는지 만져봐. 만약 박태준이 아니어도 어색하지 않을 거야. 어두워서 누가 자기를 만졌는지 모를 거야.” “……” 신은지가 말했다. "흉터는 평평해서 만져도 알 수 없어. 봐야 알 수 있어.” "아, 그럼 됐어. 물에 들어가지 말고 기회를 봐서 달래서 방에 들어가서 바지를 벗겨.” "파티가 너무 야한 거 아니야?” 신은지는 한 번도 풀 파티에 참석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머뭇거렸다. 그녀는 파티에서 육정현의 머리카락을 뽑아오고 파티에 참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중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보통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네가 수영복을 입지 않고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도 너한테 집적거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파티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야. 설사 양아치 짓을 하고 싶어 한들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거야.” 목적지에 도착한 신은지는 진유라가 파티에 온 사람들의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다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파티에 입장하기 위해 입장료로 1억을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진유라는 카드를 긁으면서 말했다. "이 비용에는 오늘 밤 파티에서 사용하는 것들에 대한 지불이야. 성공적인 소개팅 대가를 포함해서 말이야.” 신은지는 어이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진유라를 바라보았다. "전에 다른 친구를 한 번 데리고 왔었어.” 파티장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이 무너뜨릴 듯한 강한 비트의 음악이 들렸다. 공기 중에는 습한 물기가 돌았고, 이따금 비키니 차림의 사람들이 그녀들의 곁을 지나갔다.바깥의 야외 정원에는 술과 디저트 그리고 간단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따뜻한 조명 아래 정성스럽게 차려입은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근처 전망대에는
신은지와 육정현은 마주 섰다. 신은지는 육정현에게서 은은한 머스크향의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박태준은 향수를 뿌린 적이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육정현의 높은 시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육정현이 박태준과 7~80%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가까이 보니 옷차림과 성격을 제외하고 이목구비는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은지는 육정현의 이마를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걷어올리기 위해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그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육정현에게 잡혔다. ”신은지 씨.” 육정현의 목젖이 움직이며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육정현입니다.” 육정현이라는 이름을 들은 신은지의 눈동자는 점차 혼란스러워지는 듯했다. 맑은 그녀의 눈동자에 흐린 안개가 속수무책으로 드리워졌다. "내가 고인이 된 박 대표와 약간 닮았다는 것을 알아요. 신은지 씨가 나를 그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육정현은 육정현이고 박태준은 박태준입니다. 난 누구를 대신할 수 없어요." 육정현의 손이 곡선이 살짝 생긴 신은지의 배 위에 닿았다. 하지만 신은지는 육정현의 말에 귀가 쏠려 있어 그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신은지 씨가 귀신도 홀릴 수 있는 미녀라 해도 저는 임산부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신은지는 얼굴을 쳐들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눈에 거만을 숨기지 않았다. "정말 육씨 가문의 막내아들이에요?” "신은지 씨가 믿지 못하면 사람을 시켜서 조사해 봐도 좋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양평군에서 살았어요. 양평군 10킬로미터 반경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저를 알아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모두 양평군에서 다녔고 몇몇 친구들은 아직 그곳에 살고 있어 증언해 줄 수도 있어요.” "고등학교와 대학은요?” 신은지는 만약 지금 거리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들을 스쳐 지나간다 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까막눈이라 학교 생활 내내 꼴찌를 했어요. 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