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반쯤 몸을 굽힌 채 거즈로 그의 발을 감싸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박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길게 늘어진 그녀의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만이 보였다.상처가 가랑이 부분에 있었기에 속옷을 위로 올려야지만 상처 확인이 가능했다.두 개의 이빨 자국에는 아직도 피가 나오고 있었고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신은지: "흘러나온 피의 색이 정상이야. 그렇다는 건 뱀에게 독이 없다는 뜻이지 아닐까?""아니, 뱀이 독사인지 아닌지는 이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어."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심지어 박태준은 그녀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의 호흡은 자신도 모르게 가빠졌고,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려 했다.신은지의 피부는 아주 하얗고 부드러워서 조금만 힘을 줘도 손자국이 남았다.분위기가 매우 묘해졌다.박태준의 손이 닿기 직전, 신은지가 눈을 똑바로 마주본 채 소리를 내어 훈훈했던 분위기를 차가운 현실로 돌려놓았다. "속옷을 올리라 했더니 내 얼굴은 뭐 하러 만져?”박태준: “…”신은지는 소독된 메스를 들었다. "조금 아플 거야. 잘 참아 봐."그녀는 뱀에 물렸을 때의 기본적인 응급처치에 관해 책으로만 읽었을 뿐, 실전 경험은 전무했다. 그녀는 칼을 꼭 쥔 채 다른 손을 그의 상처 위에 얹었다. “이쪽에 큰 혈관이 있었나?"박태준은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입으로 빨아야 하는 거 아냐?"신은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해?” 아무리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자란 대표님이라고 해도, 이런 기본적인 생활 상식을 모르고 있을 수는 없다. 나유성이 전에 그들이 매년 여름 방학마다 전문 교관을 따라 훈련하며 생존 기술을 배웠다고 하지 않았나?“청춘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하던데.” 박태준은 능글맞게 농담을 건넸다."청춘 드라마에는 현실성이 없어. 모든 스토리가 로맨스로 흘러가잖아. 그저 남자가 잘생기고, 여자가이쁘고, 줄거리가
강태민은 현재 겨우겨우 박태준 그 어린놈에게 여자를 보내 준 상황이었기에, 분노를 꾹 참고 있었다. “누가 뱀에 물렸다는 거죠? 박태 이요?”신은지: “…”어째서인지 기뻐하는 눈치였다.강태민 역시 자신의 연기가 너무 티나고 어색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이가 있으니 감정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그는 마른 기침을 했다. "그럼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요 며칠 간은 그저 침대에 누워 요양을 해야 해요." 신은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어제는 황산을 뿌리고 오늘은 독사를 풀었어요. 어쩌면 내일에는 제 장례식에 초대되실 수도 있겠어요.”강태민: "뱀을 택배 상자에 넣었다고 했죠? 박태준에게 온 택배였나요?”그정도로 경계심이 없는 거라면 물려도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박씨 가문 저택으로 왔어요. 정확한 수취인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걸 본가로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어머니나 아버지 중 한 사람일 거예요." 그녀는 일어난 일의 핵심을 강조했다.강태민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나 그는 의심을 드러내지 않고 기회를 틈타 말했다. "당신을 해외로 보내줄게요." "저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세요?"“할 수 있어요. 육지한을 붙여 드릴게요. 그쪽에도 사람을 시켜 당신을 보호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 있어요. 누군가가 나타나 은지 씨를 해할 걱정은 안 해도 돼요.”신은지는 해외에 갈 계획이 없었고, 전화를 건 것도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며칠 후면 6월 16일이었고, 한씨 아주머니가 석류산에 기도를 드리러 갈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그가 그녀를 찾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강씨 가문에서의 그녀의 신분을 알고, 강씨 가문의 누구와 연관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강태민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비록 그녀는 강태민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엄마 쪽 사람이라고 할 수있으니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강태민은 어두운 목소리로 말
신은지는 욕조에 오일 몇 방울을 떨어뜨린 뒤 음악을 튼 채 목욕을 했다. 목욕 도중 강이연이 그녀에게 내일 쇼핑을 가자고 메시지를 보내왔다.그녀는 이를 보고는 그 번호를 차단했다.그녀는 강이연의 뻔뻔함에 감탄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까지 합세하였고, 오늘 박물관에서는 똥 씹은 표정을 마주한 뒤 떠났음에도 고작 몇 시간 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함께 쇼핑을 가자고 한 것이다.목욕을 마친 뒤, 신은지는 머리를 말리고 보습 로션을 발랐다.저택의 잠옷은 이전에 강혜정이 준비해 주었던 것과 동일했다. 섹시함이 가장 큰 특징이었지만 노출은 적었다. 가려야 할 부분은 가려졌음에도 노출한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보일 듯 말 듯한 것이 안개 속 여인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신은지가 이 옷을 입고 나가자 박태준은 순간 굳어버렸다.아예 돌이 되어버렸다.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신은지의 앞에서 그는 자제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지능이 있는 사람이었다.섹시한 잠옷을 입고 욕실에서 걸어나오는 여자를 봤을 때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그녀를 끌어 와 눕혀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의사가 내린 처방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말고, 격한 운동이나 하거나 감정적 자극을 주지 마라.그는 순간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기분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뱀에게 독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가 중독되지 않았다고 했으면 그녀는 긴 소매에 긴 면바지를 입고 있었을 것이다.신은지는 옷장에서 이불을 옮겨 소파 위에 올려두었다. 소파는 넓지는 않지만 길어서 자기에는 딱 좋았다.박태준은 한동안 뚱 해 있다가 신은지가 곧 잠들려는 듯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한테서 냄새 나.”신은지는 낮고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난 그래도 널 싫어하지 않아."이 말은 매우 성의가 없게 들렸다."...나를 싫어하지 않으면서 나랑 같이 자지 않겠다는 거지?" "..."방 안은 조용해졌다.
박태준은 "검은 맘바"라는 네 단어를 목구멍에서부터 짜내었다. 그가 현재 떠올릴 수 있는 오초사와 비슷한 뱀은 이 뱀뿐이었다. 그러자 나유성이 대답했다."그렇다면 넌 운이 매우 좋았네. 황금 코브라와 유사한 아프리카 독사에 물렸는데도 가정의가 혈청을 가져와 널 구하러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으니 말이야. 그런데 이 뱀은 아프리카에 서식하지 않나? 언제 경인 시까지 기어 온 거지?” "......"이렇게까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이만 끊을게." 그가 미련 없이 말했다. "그럼 푹 쉬어, 나랑 연우가 내일 보러 갈게.”그렇게 말한 후 그는 다시 잘 자라고 인사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신은지는 휴대폰을 들고 냉정한 표정을 한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저 뱀은 무슨 뱀이야?"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았기에, 박태준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오초사야.” 그러자 신은지가 인터넷에 검색을 해 설명을 보더니 차갑게 웃었다.“그 뱀이 네 다리를 물면 안 됐어.” "??" 박태준은 이런 일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신은지가 소파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목욕에 대한 일을 물어보기 껄끄러웠다.씻지 못하면 그런대로 있지 뭐, 아내가 도망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이야.그가 생각을 마친 뒤, 신은지가 이불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걸 보자 ‘허약한’ 박태준이 순식간에 치타처럼 침대로 빠르게 뛰어올라 그녀를 품에 안았다. “어딜 가려고? 부부가 싸워도 각방을 쓰는 경우가 어딨어? 이건 우리 관계에 좋지 않아.”그러자 신은지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 당신이 그렇게 몇 번이고 거짓말을 하면 우리는 백년해로하고 자손이 번창하겠지. 결국 거짓말은 다른 사람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속일 거고, 한 번 속이기 시작하면 몇 번이고 속일 테니까.”“당신이 다른 사람이랑 백년해로하고, 자손이 번창하겠지.”박태준은 자신을 정확하게 잘 알고 있었다.신은지는 이불을 껴안고 있었고, 박태준은 신은지가 도망
이튿날 주말. 신은지는 스스로 잠에서 깰 때까지 잠을 잤고, 눈을 뜨자마자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그녀는 누군가에게 안겨 있었으며, 등이 매우 따듯했고 남자의 팔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깨어 있었지만 머리는 아직 깨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처음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창밖의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허리가 무언가에 눌려지는 게 느껴지자 완전히 깨어날 수 있었다.“박태준, 언제 침대에 올라온 거야?”“아침에.”그는 방금 잠에서 깬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그가 말할 때 숨결이 그녀의 목에 전해졌다.“소파가 너무 작아서 바닥에 떨어졌어.”“……”그 소파는 신은지에게 딱 알맞은 크기였고, 박태준이 눕기에는 확실히 조금 작았다.그녀는 어제 박태준이 자신을 속인 거에 화가 나서 그를 소파로 쫓아낸 것이었지만, 하룻밤이 지나고 그의 설명으로 인해 화는 이미 풀린 상태였다.게다가 그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그의 상처도 걱정되었다.박태준은 감히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기에 사실대로 말했다.“조금 아파, 아니면 네가 좀 볼래? 나중에 내가 충분히 설명을 안 하면 또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테니까.”“꺼져.”신은지는 그를 노려보며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그녀의 하얀 피부는 햇빛 아래 밝게 비춰 약간의 분홍색을 띠고 있었고, 박태준의 얼굴도 점차 뜨거워지며 침을 몇 번이고 삼켰다.“은지야……”“쾅.”신은지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녀가 씻은 뒤 밥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왕 씨 아주머니가 이미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아침을 차려놓고 있었다.“아버지랑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박 선생님께서 부인을 데리고 기분 전환을 하러 나가셨어요. 부인께서 어제 많이 놀라셔서 계속 악몽을 꾸셨거든요. 아마 이틀 뒤에야 돌아오실 것 같아요. 부인께서 이틀 동안 도련님을 아가씨에게 부탁한다고 하셨어요.” “……그 사람 일어났어요. 왕 씨 아주머니, 아침 좀 그 사람한테 갖다주세요.”신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식사를 이층으로 가져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태준이 내려왔다. 그는 비록 다리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조금 걸음이 느릴 뿐이었다. 박태준이 물을 마시며 물었다.“좀 이따가 신당동으로 돌아갈 거지?”“추가 근무 있어.”매주 월요일마다 박물관에서는 감정사들이 민간인 소유의 문화재 진위를 판별하고 보존 방안을 제시하는 특별 행사가 열린다. 신은지도 이 행사에 초청된 감정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은 이 행사를 위해 관계자들과 회의와 식사 자리가 잡힌 날이었다.박태준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주말인데.”“그러니까, 추가 근무.”“….”잠시 고민하던 박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할래?”“안 돼. 오늘 다 같이 회식하기로 했단 말이야. 선배들도 오는데, 빠질 수 없어.”문화재 감정 이력이 아무리 많고 실력이 있다고 해도, 이 바닥은 좁은 사회였다. 어떻게든 서로 맞닿아 있는데, 이런 모임엔 빠지지 않는 편이 좋았다. “대신 아침은 같이 먹어줄 수 있어.”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11시였다.“아침은 무슨, 벌써 점심이야.”박태준은 이 상황이 불만스러웠지만, 그것을 신은지에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녀가 얼마나 자기 일에 진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어느 식당인데? 끝나면 데리러 갈게.”박태준이 다정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신은지는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챙김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위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모르겠어. 이따가 나오면 연락할 게.”신은지가 반사적으로 거절할 뻔한 것을 참으며 말했다.대답을 들은 박태준은 만족스러운 기분에 괜히 상처도 덜 아픈 듯한 느낌이 들었다.아직 약속된 시간은 아니었지만, 식사를 마친 신은지는 곧바로 떠나기 위해 채비를 했다. 오늘은 주말이라 차가 막힐 수도 있었고, 게다가 그녀는
강이연이 코웃음치며 말했다.“신은지면 모를까, 내가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뭔데? 신지연, 우리 다 성인이야. 사람 두드려 팬다고 뭐가 해결돼? 설마 내가 그렇게 머리 없는 짓을 했겠어? 어른인데, 우리 좀 성숙하게 생각하자.”절호의 기회였는데, 강이연은 그때만 떠올리면 배가 아팠다. 머리 채를 잡을 거면, 그럴 만한 상황을 만들어야 할 거 아닌가? 바보도 아니고, 느닷없이 머리 채를 잡으면, 누가 의심하지 않겠는가? 그때 미리 심어 놨던 사람이 찍어 보내온 사진을 보고 얼마나 기겁을 했던가? 강이연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강이연은 당시 남포시에 있었기 때문에, 신은지의 DNA를 얻기 위해 필수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을 보내면 신은지의 의심을 살 게 뻔했기에 진유라와 신지연을 떠올렸다. 고심 끝에 강이연은 신은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신지연을 선택했다. 당시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진유라를 등돌리게 만들기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신지연과 신은지는 한때 같은 집에 살기도 했고, 오랜 시간 대립해 왔기에 이 상황에 더 적절히 녹아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 없이 일을 저질렀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강이연의 말을 들은 신지연은 경계가 조금 풀렸으나, 완전히 방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왜 그렇게 으쓱한 곳에 돈을 뒀어? 그냥 이체해 주면 될 것을.”그때 상황을 떠올린 신지연은 볼멘소리를 냈다. 그렇게 고립된 장소만 아니었다면, 그 험한 꼴을 당할 일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데도 누구 하나 신고해 주는 사람이 없을 수가 있지? 범인이 떠나고 나서야, 신지연은 직접 경찰에 신고를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고를 넣으면 뭐 하는가? 카메라 하나 없는 곳인데. 결국 지금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체하라고? 그리고 사이 좋게 남의 공모죄로 경찰서에 잡혀가게? 아니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 돈가방을 던져주길 바랐어? 현장 체포가 네 소
박태준은 보통 기업인이 아니었다. 그는 재벌 중의 재벌,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는 같은 업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계와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엄청난 이슈가 될 것은 뻔했다.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은지의 머리속에 과거 자신이 인스타그램에서 했던 발언이 떠올랐다. 이 시점에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녀에게 이건 재앙이었다. 커리어가 끝장나는 소리였다.그녀는 재빨리 박태준에게 차 좀 멀리 세우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한참,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돌아오지 않자, 신은지는 불안감이 점점 고조되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데로 쏠린 틈을 타 얼른 밖으로 빠져나왔다.식당을 나오자마자, 신은지는 곧바로 박태준의 차 쪽으로 향했다. 동시에 박태준도 후방 미러를 통해 그녀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가 창문을 내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직전, 신은지가 그 옆을 막아섰다. “얼른 창문 다시 올려.”“….”박태준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그녀가 원하는 대로 다시 창문을 올렸다.“회식은 끝났어?”“아직, 한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아.”신은지가 좀 전에 관장이 술을 더 시켰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여기서 어슬렁거리지 좀 마.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입술이 오므려졌다. 박태준은 이 상황이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졌지만, 화를 표출하고 싶지는 않아 일단 참았다.“우리가 불륜이야? 왜 숨겨야 해? 연인 사이끼리 데리러 오고 하는 거지.”“오늘 식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누군지 알아? 다 내 선배들이야. 모두 이 바닥에서 한 이름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런 사람들조차 이런 고급 외제 차 못 타고 다녀. 그런데 막내인 내가 아이바흐를 탄다? 어떻게 생각하겠어?”그녀는 이 분야에서 남들보다 경력도 나이도 어린 편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왕관 복원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에 얼굴을 내비치자, 동족 업계 사람들한테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