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지는 사람들이 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고개를 들어 볼 힘이 없었다.하지만 박태준은 눈을 부릅 뜨고 산에 올라오고 있는 사람을 봤다. 놀랍게도 고연우가 아니었다. 남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방수 효과가 좋은 우비를 입고 검은색 군화를 신어 비에 젖어 미끄러운 산길에도 문제없었다. “은지 씨…” 남자는 박태준 품에 안겨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신은지를 향해 달려갔다.남자는 바로…진선호였다. “왜 혼자 왔습니까?” 박태준은 진선호를 보자 긴장이 풀렸다. “얼어 죽었는지 보러 왔습니다. 살아있으니 알아서 내려오세요.” 진선호를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신은지의 상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 박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선호는 주머니에 손전등을 꽂은 후 박태준 품에 안겨 있는 신은지의 팔목을 잡았다. 박태준은 무의식적으로 진선호의 손을 잡았다.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진선호를 멈칫하게 만들었다.잠시 후, 진선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박태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은지 씨랑 여기서 얼어 죽을 겁니까?”진선호는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차를 몰고 산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고연우보다 일찍 도착했다.다행히 진선호 차에 등산 장비도 모두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진선호도 박태준처럼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을 것이다. 고연우는 진선호에게 박태준이 신은지를 데리고 절대 법원에 가지 않을 거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하지만 몸값이 몇 억 이상이 되는 박태준이 허름한 전망대에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진선호는 이런 전망대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진선호는 차를 몰고 산 아래로 향했다. 진선호는 박태준이 절벽인 산길에서 자신보다 빠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위험한 길이지만 진선호는 매우 익숙해서 눈 감고도 운전할 수 있었다. 역시, 박태준은 보이지 않았다. 진선호는 잠시 망설이다 핸들을 돌려 다시 산으로 향했다.전망대를 찾느라 고생을 한 진선호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런 허름한 곳까지
“……” 고연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고연우는 박태준에게 호의를 베풀다가 자신의 무덤을 판 셈이다.잠시 후, 고연우는 말했다. “아, 이건 업무용 핸드폰이야. 우리 영화 드라마 제작 기획사에 지원한 여자 연예인들인데? 무슨 문제 있어?”고연우는 그저 박태준에게 아무 여자나 한 명 소개해 주고 싶을 뿐이다. 늦은 밤, 박태준은 병원에 도착해 간호사에게 신은지가 있는 병실을 물었다.“선생님, 지금 면회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다른 환자분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내일 다시 오세요.” 이때, 박태준은 한 병실에서 보온병을 들고나오는 진선호를 보았다.박태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간호사에게 말했다. “그럼 저 사람은 왜 아직도 있습니까?”“저분은 환자 가족이니 당연히 같이 계시는 거죠.” 간호사는 박태준의 표정에 잔뜩 겁을 먹고 박태준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말했다. “가족…” 박태준은 간호사가 ‘가족’이라고 말하자 더욱 굳어진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가족이라고요? 신원 확인 제대로 했습니까?”“본인이 환자분 남편이라고 했어요…” 간호사는 진선호의 첫인상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잘생긴 외모에 남자답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자를 들어안고 계단을 올라갈 때 환자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모습에 모든 간호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못 먹는감이었다. “남편이요? 혼인 신고서 봤습니까? 저 사람이 남편이라고 하면 남편이 맞는 건가요? 거짓말이면요?” “……” 박태준이 다짜고짜 따지자 간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무슨 혼인 신고서까지 확인을 할까?게다가 환자가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보호자 사인은 그저 형식적이었을 뿐이다.이런 상황에서 60~70대 노인이 환자의 남편이라고 했어도 캐묻지 않는다. 그 당시 응급상황이었기 때문에 보호자 서명이 필요했었다. 때문에 진선호는 남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나유성도 병실에서 나왔다. 당직실 앞에 서 있는 박태준을 본 나유
박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 앞잡이 같은 손 어디 안 치워?”그러자 진선호는 신은지 이마에 놓고 있던 손을 내리며 박태준 보는 데서 요리조리 흔들고 있었다. “지금 이 손 말하는 건가?”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또 도발한 듯 신은지한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30대 다 돼가는 남자가 아이처럼 이런 유치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걸 생각 못 했다. 신은지가 그의 행동을 막지도 못하고 머리는 이미 지푸라기처럼 부실 부실했다.그리고 진선호는 박태준한테 말했다. “이미 이혼한 사람은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는 게 전 남편으로 제일 좋은 매너라는 걸 모르고 있는가 봐. 당신처럼 하루가 멀다고 전 부인 앞에 나타나는 거는 지랄발광하는 거나 마찬가지고 그건 상대방한테 큰 실수를 하는거에요.”박태준은 덮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이때 간호사가 들어와 박태준한테 체온계를 건네며 말했다. “체온을 재야합니다.”그리고 뒤돌아 의자에 앉아 있는 나유성한테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요. 지금 시간 늦었으니 병원 규정 상 환자 보호자 아닌 이상 저녁 11시 전 병실에서 나가야 합니다.”나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간호사는 그가 바로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의자를 챙겨 박태준 침대 옆에 앉았다. “일인 당 보호자 한 명이잖아요. 잘 됐네요. 오늘 제가 박태준 씨 보호자로 여기 있을게요.”“......”박태준은 나유성의 말에 얼굴 표정이 굳어 귀찮다는 말투로 말했다. “얼른 꺼지시지.”그러자 나유성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은지 오빠나 마찬가지고 넌 은지 전 남편이니까 나를 형님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가 외롭게 있는 거 보고 선심 써서 오늘 여기 같이 있어줄게.”나유성의 말에 병실의 분위기는 싸해졌다. 박태준과 나유성은 두 눈을 똑바로 떠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하나는 차가운 눈빛이었고 하나는 온순해 보였지만 두 사람의 눈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다들 아무 말
박태준은 고개를 돌려 신은지를 바로 보았다. 그러자 신은지는 눈을 흘겨보았고 옆으로 몸을 돌려 더는 자기를 보지 않았다.이때 전예은은 의자에 앉아 박태준이 먼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태준은 전예은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화장으로 초췌함을 감췄다는 걸 눈치 못 챘을거고 지금 아무것도 입지 않고 나체로 그의 앞에 나타났어도 몰랐을거다.“태준아......” 그녀는 조금 큰 목소리로 박태준을 불렀다.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뒤도 안 보고 나가 이 남자가 자기한테 고개 숙이며 사과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을거다.전예은도 두 사람이 같이 지내왔던 시간들을 생각해 봤는데 박태준이 자기한테 신경 쓰고 고개 숙였을 때는 다 신은지가 옆에 없었을 때였다. 그리고 사실 고개 숙였다기 보다는 전예은이 말한 요구를 다 받아들이는 것뿐이었고 돈으로 다 해결 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거 같다.지금 제일 후회되는 거는 옛날에 박태준과 결혼하고 싶어서 그의 진심을 테스트한다고 외국으로 나간 것이었다. 오늘 여기까지 온 목적을 생각하니 전예은의 목소리는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게 내가 할 얘기가 있는데 혹시 밑에 내려가서 산책하면서 얘기할까?”사실 요즘 전예은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연예계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데뷔하기 전부터 루머에 시달렸고 오디션은커녕 서류 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폰서 해주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드라마나 영화는 없었고 인터넷 드라마 제안만 들어왔다. 게다가 눈에 띄지도 않는 역할이어서 딱 봐도 인기를 얻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다시 자기 본업인 무용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전에 그녀의 부정적인 행동 때문에 해외에서 쌓인 커리어도 아무 소용 없었다. 게다가 다들 그녀가 박태준 눈밖에 났다는 걸 알고 있어서 공연할 수 있는 무대는커녕 광고주도 찾기 힘들었다.전에 있던 무용단도 그녀 때문에 해체되었고 엄마도 자기한테 전부터 화난 데다 루머까지 생긴 걸
신은지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그녀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그러게 말이야,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날 뿐만 아니라 게다가 너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만나잖아.”“나 같은 사람? 그게 어떤 건데?”신은지는 손가락을 접으며 하나하나 말했다.“독설을 내뱉고 잘난체하고 사람을 업신여기며 남을 존중할 줄도 모르는 거. 게다가 세상에서 본인이 제일 잘난 줄 알고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잖아. EQ도 낮고 막말을 하며 누가 몇 천억 빚을 지기라도 한 것처럼 온종일 정색만 하잖아. 쓰레기 같은 놈인데다 입만 뻥긋하면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들지, 게다가 제일 중요한 건 운이 더럽게도 없다는 거...”개기월식을 보던 도중 비가 내렸고 사람들 모두 산을 내려갔지만 그들 두 사람만 갇혔던 것이다.그녀의 말을 듣던 박태준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신은지가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가 이렇게 엉망일 줄이야.“그럼 장점은 하나도 없어?”“당연히 있지.”신은지는 솔직하게 인정했다.“잘 생겼고 몸도 좋고 돈도 많잖아, 하지만 이 장점들이 너의 단점을 가릴 수는 없어. 내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억울하게 매일 너 때문에 힘들어야 해?” 고통이나 다름없었다.누가 흔쾌히 남편의 독설을 감당하려고 하겠는가. 그녀는 서로 애증 하며 별거 아닌 일로 서로 상처 주는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다.화가 난 박태준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너 그럼 명품 브랜드 커스텀 상품은 필요 없어? ”명품 브랜드의 커스텀 된 상품은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몰래 상품을 구해와야 했으며 매년 소비해야 하는 금액도 있었다. 게다가 가격도 상당히 높아 잘나가는 연예인이라도 구하기 힘들었다.신은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시장에서 파는 3벌에 2만 원짜리 옷이라도 나는 입을 수 있어. 매일 새 옷 입을 수 있고 버려도 아깝지 않으니까.”박태준은 신은지가 신당동에서 이사 나갈 때 드레스룸에 사치품들을 두고
신은지가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경계하는 그녀의 자세를 본 운전기사는 상대방이 자신의 수상쩍은 모습에 놀랐음을 알아채고 급히 말했다.“아가씨, 오해하지 말아요. 난 나쁜 사람도 아니고 악의도 없어요. 단지 방금 카운터에서 전화를 걸어왔는데 성이 박 씨인 남자분께서 저에게 600만 원을 이체하셨다고 해요... 아니, 아가씨한테 드리는 돈이죠. 저더러 핸드폰 가게에 들러 핸드폰을 사드리고 남은 돈을 현금으로 바꿔주라고 하더군요.”사실은 700만 원을 이체했고 100만 원은 그에게 주는 수고비라고 했다.어머, 별것도 아닌 일로 돈을 이렇게나 많이 준다고? 이렇게 통 큰 손님들한테서 매일 돈을 받아도 많다고 사양하지는 않을 거다.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아는 성이 박 씨인 사람은 박태준 집안사람들뿐이었다.택시는 핸드폰 가게 문 앞에 멈춰 섰고 신은지는 손을 뻗어 문을 열려고 했다. 배상을 해준다는데 받지 않을 이유는 없지, 비록 지난번 핸드폰도 그가 샀지만 그녀는 분명 돈을 이체했고 받든 안 받든 하는 건 본인의 일이니까.“잠... 잠시만요.”운전기사는 급히 문을 잠그며 그녀를 막았다.“핸드폰을 사기 전에 질문 하나 하라고 했어요.”신은지가 물었다.“뭔데요?”“그 사람 이름이 뭔가요?”신은지는 어이가 없었다. 성이 박씨라며?“그 사람 미친 거 아니에요?”운전기사는 ‘허허’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사람을 잘못 봤을까 봐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프런트에서 외모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고 한 번 더 확인하면 안심되니까요. 제가 빨리 일을 끝낼 수 있게 아가씨는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도와주시죠.”말을 마친 그는 몰래 핸드폰의 녹음 앱을 열었다.신은지는 이에 대해 알 리 없었고 그저 박태준이 정말 개자식이라는 생각만 했다.하지만 아직도 간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운전기사를 본 신은지는 일을 마무리하는 데에 급급한 것보다는 빨리 그녀를 데려다주려고 그러는 거라 생각했다.그녀는
신은지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2만 원을 본 박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신은지, 넌 내가 무슨 배달기사인 줄 알아?”신은지는 몇 초동안 침묵하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아니야, 배달기사도 이렇게 먼 곳에서 물건을 가져다주면 2만 원은 넘어.이건 수고비가 아니라 진짜 고마워서 밥 사려고 주는 돈이야.”그녀는 진지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박태준은 차라리 그녀가 무심하게 말을 내뱉었으면 했다. 그녀가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하는 건 분명 그를 거절하려는 의도였으니까. 그가 입을 열어 그녀의 말을 끊으려던 그때, 신은지가 말했다.“하지만 우린 아이도 없고, 전 남편과 전 부인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 더 이상 매달리는 건 너한테도 나한테도, 그리고 미래의 배우자에게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해.”그녀가 망설이며 말했다.“결혼 생활 동안 넌 이미 잘못을 했고 부디 다음 결혼에서는 다른 여자에게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길 바랄게. 3년 동안 차갑게 대하다가 갑자기 왜 나한테 마음을 갖고, 나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여자를 3년 동안이나 차갑게 대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사랑하지는 않은 거겠지. 넌 그저 나한테 차인 게 불쾌했던 거야. 예전에는 전예은, 지금은 나한테 이러는 거잖아. 너를 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을 갖지 말고 눈앞의 사람이나 소중하게 대했으면 좋겠어.”비록 그녀는 박태준의 옆에 다른 여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와 같은 남자는 여자들이 쫓아다닐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박태준은 냉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긴장감이 달해 언제든 무너질 것 같았다.“그러니까 우린 아이를 낳았어야 했다는 얘기지?”신은지는 말문이 막혔다.“......”그녀가 더 말해봤자 소 귀에 경 읽는 격이었다.그녀는 문을 열더니 앞으로 두 걸음 다가가 그의 손에 쥐어진 가방을 빼앗았다. 가방 안에 신분증만 들어있지 않았다면 여기서 그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안나가 가자 텅 빈 거실에는 신은지 혼자만 남았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유라가 눈치챈 CCTV만 해도 5개라고 했고 보이지 않는 구석에 더 있을 수도 있었다.누구를 감시하는 걸까? 설마 신은지?그녀가 오기 전, 이 별장에는 이안나와 그 얼굴 없는 어르신뿐이었다. 하지만 이안나가 방금 어르신께서 외출하셨다고 했고 그렇다면 위층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신은지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특히 이렇게 조용한 공간에 있으면 말이다. 두근... 두근...매번 귓가에서 울리는 소리는 같았다.그녀는 돌아서서 위층을 향해 올라갔다.카펫이 깔려져있었고 게다가 호텔에서 신는 푹신한 일회용 슬리퍼를 신어 일부러 조용히 걷지 않아도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서재는 2층에 있었지만 2층 복도에서는 이안나를 찾을 수 없었다.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너무 작고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라 잘 들리지 않았다. 아마 3층에 있는 것 같다.신은지는 계단의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았고 차가운 온도 때문에 깜짝 놀라 이내 손가락을 웅크렸다.세 계단을 오르자 머리 위 천장에서 갑자기 ‘위잉’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가뜩이나 긴장되어 있는 데다 조용한 집안에 갑자기 귀를 찌르는 소리에 하마터면 깜짝 놀라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신은지는 어이없어하며 걸음을 멈추었다.바로 그때, 이안나가 계단 입구에 나타나더니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누가 올라와도 된다고 허락했나요? 남의 집에 왔으면 이 정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도 모르시나요? 대체...”뒷말은 남녀 구별이 안 되는 가벼운 기침소리에 끊겨버렸고, 조금 전까지도 사납게 말하던 이안나는 갑자기 목이라도 졸린 듯 아무 말 하지 못했다.신은지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무언가 훔칠 생각은 없었지만 꼬리가 밟힌 뒤의 구차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미안해요, 바람 때문에 뭐가 떨어진 줄 알고, 제가 뭐라도 도와드릴 수 있을까 해서 올라와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