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복도에서 신진하가 ‘쾅’하고 부딪히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신진하는 부딪히자마자 고통스러워 신음 소리만 냈다. 상대방과 눈이 마주친 신진하는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었다. “아버님 기억력이 안 좋으셔서 제가 했던 말을 기억 못 하시는 것 같군요.”남자는 바로 박태준이었다. 잘생긴 박태준의 표정과 말투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잠시 후, 박태준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신진하에게 다가갔다. 신진하는 몸을 움츠리고 웃으며 말했다. “태준아, 어찌 됐든 나는 은지 친아버지야. 너희가 이혼했으니 나를 아버지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한테 윗사람이야.” “그날 당신이 재경 그룹에 와서 난리를 피웠을 때 다시는 신은지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었죠? 그때 뭐라고 약속했죠?” 잠시 후, 박태준은 신진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돈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하에 평생 신은지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했었죠?”“재경 그룹에 가서 소란을 피웠어요? 언제요?” 신은지는 신진하가 재경 그룹에 가서 소란을 피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달 전, 박 사장님께서 정한 상환 기간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신은지는 이제야 진영웅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영웅은 신은지가 자신을 쳐다보자 공손하게 말했다. “사모님.” 신은지는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대우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는 당신 사장하고 이미 이혼했어요. 예전에 불렀던 대로 신은지 씨라고 부르세요.” 신은지는 박태준 앞에서 진영웅의 실체를 폭로했다. 하지만 진영웅은 전혀 개의치 않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박 사장님은 오늘 중요한 국제회의가 있었어요. 그런데 신진하 씨가 사모님 집 앞에 있다는 경비원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오셨어요.”“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박태준은 진영웅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진영웅은 박태준의 표정을 보자마자 말했다. “박 사장님, 제가 신진하 씨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두 분 말씀 나누세요
놀랍게도 눈앞에 있는 사람은 조태오였다. 신은지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과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핸드폰은 떨어지면서 스피커폰으로 바뀌었다. 이때, 핸드폰 너머로 나유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오후에 회의 있어. 역사 관광 지구 설계 방안에 대해서 상의할 거야. 회의에 참석 못 하면 화상으로 들어와.” 조태오는 바닥에 떨어진 디자인 초안을 보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 선생님, 많이 바쁘시네요.” A급 복원사와 B급 복원사는 서로 다른 건물을 사용한다. 신은지는 항상 이시간 쯤에 출근해 화장실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무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오늘 조태오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입사 첫날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을 새까맣게 잊을 뻔했다. “조 선생님보다는 안 바빠요.” 신은지는 동료에게 조태오가 A급으로 승진하기 위해 매일 같이 야근을 한다고 말을 들었다.A급과 B급은 급수로 따지면 1급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급여는 하늘과 땅 차이다.잠시 후, 조태오는 신은지를 힐끗 쳐다보고 휙 돌아서 가버렸다. 조태오는 자신과 부딪혀 떨어진 서류를 주워주기는커녕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신은지는 그냥 가버리는 조태오에게 말했다. “조 선생님도 박물관에서 명성 높은 선배님 아니에요? 다른 사람하고 부딪혀서 물건이 떨어졌으면 고개 숙여 사과는 하지 않을지 언정 주워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조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원래 무섭게 생긴 조태오의 얼굴은 더욱 무서워졌다. 잠시 후, 조태오는 마치 학생주임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신 선생님, 가정교육을 그렇게 받았어요? 윗사람한테 이게 무슨 태도에요?”“죄송하지만 저는 고아에요. 괜히 사람들한테 웃음거리 되기 전에 조 선생님이 주우세요. 웃음거리는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요?” 신은지는 스스로 주울 수 있었다. 하지만 조태오 같은 사람은 참고 물러날수록 더욱 괴롭힐 것이다. 조태오는 말했다. “A급이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지 마세요. 3개월에 한 번씩 시험을 보지 않습니까? 그러니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본전도 못 찾는 일에 믿음 갈 일이 없다.지금 이 상황에 닥친 신은지는 어제 신진하가 엄마의 유산에 대해 언급한 게 생각났다. 대체 어느 회사에서 아무런 정보 조사 없이 20억이라는 금액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대출해 주는지 궁금해 그들이 건넨 명함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신진하는 마음이 얼마나 급한 지 며칠 기다리지도 못하고 그녀가 받은 유산을 뺏으려 했다. 신은지는 그들의 수작을 꿰뚫고 있었다.“우리가 신진하 체면을 본 게 아니라 신은지 씨 당신 면목을 보고 대출해 준 겁니다. 박 씨 집안은 재력도 있고 체면도 살려야 하잖아요. 아무리 박태준 사장님이랑 이혼했다 하더라도 당신이랑 같이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전 부인이 빚 때문에 고통받는 걸 보고 있기만 하지 않겠죠.”신은지는 그들의 말에 냉정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돈도 없거니와 대신 갚아 줄 의무도 없으니 신진하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세요.”“신은지 씨가 이렇게 나오면 당신 전 남편, 시어머니 그리고 당신 외삼촌 댁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습니다..”이건 불법 대출업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빚쟁이 가족이나 지인들한테 전화를 해서 뭐라도 받아내려는 꼼수였다. 그 두 사람은 신은지한테 통보하러 온 거여서 자기들 말만 하고 그냥 가버렸다.신은지는 너무 화가 나 부들부들 떨며 신진하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정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인간이었다.그러자 신은지는 그들을 사기 혐의로 신고했고 경찰서에 가서 등록한 뒤 더는 이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뒤로 일이 너무 바빠 잠잘 시간도 없어 다른 일에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그리고 일주일 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검은색 차량이 아무 증조 없이 뒤에서 들이박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핸들에 머리를 부딪혔다. 검은색 차량 운전사는 어디 다쳤는지 차에서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을 보고 신은지는 경찰에 먼저 신고를 했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거리에는 걸어가는 사람들도
지금 두 사람 관계로 봤을 때 박태준은 자기를 구해 줄 의무가 없어 그가 후회했다고 하더라도 그한테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그러면 신은지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듣기에는 살갑지 않은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박태준은 손을 빼 그녀가 약을 못 바르게끔 하자 신은지는 소독제가 묻은 면봉을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박태준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싸해져 실내 온도도 낮아진 거 같았다. 그러자 그는 입을 오므리고 그 어떤 감정도 없이 말했다.“뭐라고 해봐!”그러자 신은지는 면봉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했다. “어쨌든 고마웠어.”박태준은 소파에 기댔고 그녀가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걸 보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남들은 고맙다고 하면 밥 한 끼 사겠다고 빈말이라도 하던데 넌 아무 성의 없이 고맙다고만 하는 거야?”신은지는 이를 악물고 마음속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뭐 먹고 싶은데? 내가 식당 예약할게.”박태준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잘난척하며 말했다. “엎드려 절 받기네. 내가 뭐 어디 밥 한 끼 못 얻어 먹을까 봐 이러는 거야?”신은지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고 박태준을 정상적인 뇌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뭐.”그녀의 말에 박태준은 무슨 의미일까 고민하던 차에 신은지는 계속 말했다. “내가 은혜 갚으려고 했는데 네가 이렇게 나오니 나도 어쩔 수 없지 뭐. 배은망덕한 사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허...” 박태준은 냉소를 지으며 말하려던 사이에 진영웅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사장님, 신진하 잡혔습니다.”전화를 끊고 그는 신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진하 잡혔데, 지금 경찰서에 있다고 연락 왔어.”오늘 자기한테 닥친 일이 모두 신진하 때문이라고 생각한 신은지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얼음 물에 두 번이나 빠졌다. 지금도 그 생각 하면 치가 떨릴 정도였다.신은지와 박태준이 경찰서에 도착하자 진
지금까지 신은지한테 공손했던 진영웅도 더는 못 참겠는지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일적으로 비서직을 맡고 있는 거지 사장님 개인생활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게다가 사장님이 저 때문에 다친 것도 아니잖아요. 저 아직 할 일이 많아서 그만 가볼게요.”진영웅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태준의 차를 타 신은지 앞에서 보란 듯이 떠났다. 그러자 박태준은 신은지한테 무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너 때문에 내 운전기사 가버렸네.”박태준 손등에 있는 상처는 전보다 더 심해진 거 같았다. 스패너에 찍힌 곳은 껍질이 벗거져 있었고 부은 손은 어느덧 퍼레져 아문 곳도 터져 피가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그의 상처를 보면 그때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 대출업자가 얼마나 힘껏 내리쳤는지도 알 거 같았다. 이게 보디가드한테 차여서 다행이지 아니면 더 심하게 다쳤을거다.만약에 박태준이 와서 신은지의 손을 잡지 않고 보디가드가 그 사람을 차지 않고 신은지 손에 내리쳤으면 박태준 보다 더 심각할 수 있었다.신은지가 예약한 차량이 도착했다. 그녀는 차 번호를 확인한 뒤 차에 올라탔고 박태준도 따라 올라탔다. 이에 대해 신은지는 그냥 그를 쳐다봤지 내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신은지 집에 도착해 그녀는 다시 박태준의 상처에 약을 발랐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진료소에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병원에 가자니 또 절차가 복잡해 사람도 많을 수 있어 그냥 집으로 돌아와 신은지가 대신 약을 발라주고 치료해 주기로 했다.상처에 소독까지 다 하고 말린 피부 껍질이 나중에 상처에 스칠까 봐 가위로 조심스레 잘라내고 있었다.정말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상처에 닿아도 안 되고 또 말라비틀어진 피부 껍질을 잘라내야 하기에 신은지는 그의 손에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레 잘라내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이 박태준 상처에 닿게 되었고 신은지는 긴장이라도 한 듯 자기 입술에 힘을 꽉 주게 되었다.조용한 아침,그리고 따뜻한 불빛에 자기 코 앞에 있는 여성의 몸에서는 산뜻한 로션 냄새가
박태준은 입맛을 다진 듯 입술을 물고 신은지의 허리에 손을 놓았다. 그냥 부추긴 듯 놓았지 완전히 닿진 않았다.네크라인 쪽 단추가 풀기 어려워 신은지는 단추 푸는 데에만 신경 썼지 그의 동작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애정이 담긴 것처럼 겹쳐진 것도 보지 못했다.신은지의 노력 끝에 단추도 술술 풀렸고 그의 속살도 보였다. 아침 차가운 공기와 맞대니 박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참고 있었지만 그의 가파른 숨소리는 더는 숨길 수 없었다.아랫배 쪽 단추까지 풀고 나니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한눈에 보였다. 거기다가 신은지 손까지 닿아...두 사람 모두 옷을 입고 있었지만 신은지는 생각만으로도 그의 뜨거운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이 빨개져 마치 불덩이를 만진 것처럼 바로 손을 뗐다.“네가 알아서 벗어.”단추까지 다 풀었으니 더는 자기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그녀가 도망간 듯 사라진 뒷모습을 보니 박태준은 더 참기 힘들었다. 어느덧 생리적 반응이 너무 세 한 손으로 힘들게 바지를 벗었다.신은지는 쉬려고 자기 침대에 누웠다. 경찰서 가기 전에 물론 샤워했지만 그래도 밖에 나갔다 오면 씻는 습관이어서 간단하게 샤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화장실이 하나라 지금 박태준이 쓰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안에서 뭐 이상한 짓 할지 모르니까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잘 준비를 하고 눈을 감았는데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지금 여기 박태준이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뭐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씻고 나서 다시 피까지 묻은 옷을 입는 거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금 머리를 감고 타올도 지금 방에 있어 조금 있다 박태준이 나체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다고 이때 박태준이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신은지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욕실 앞에 다가가 노크했다. “무슨 일인데?”박태준은 잠
박태준이 다친 건 오른손인데 주문한 음식은 포크랑 칼을 써야 하는 손 많이 가는 음식들이었다.신은지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박태준한테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너 지금 제정신 아니고 어디 아픈 거지?”박태준은 그의 오른손을 들고 신은지가 잘 보이게끔 내밀었다. “아프니까 너한테 온 거잖아.”틀린 말은 아닌데 듣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지금 여기 일이 너무 커진거 같아 나유성도 사무실에서 나오게 되었다. 사실은 나유성의 비서가 바로 달려가 말한 거다.두 사람이 서 있는 걸 보니 장말 천생연분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나유성은 함참 지켜보다가 두 사람한테 다가갔다.“박태준 씨, 우리 30분 뒤 회의 있어서 은지가 식사하시는 거에 도움 안 될 거 같은데. 괜찮으면 비서한테 부탁해서 도와드리라고 하는 건 어때?” 옆에 다가가니 벤드에 꽁꽁 싸인 박태준의 손을 보게 되었고 두 사람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서로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러자 박태준은 아무렇지 않는 듯 웃으며 말했다. “방금 1시간이라고 하던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두 사람의 눈빛에는 마치 칼이라도 뿜고 있는 듯 현장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러자 박태준은 신은지의 의자에 앉아 서 있는 나유성한테 말했다. “나유성 씨도 같이 겸상하려는 건가?”눈치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지금 박태준의 말은 사람을 쫓아 내려고 하는 말이라는걸 눈치챘을 텐데 나유성은 아무렇지 않는 듯하며 말했다. “박태준 씨가 초청한 거니 받아야죠.”그러자 나유성의 비서도 눈치 빠르게 나유성과 신은지의 의자를 챙겨 박태준 맞은편에 두고 갔다. 그러자 박태준은 그 비서한테 눈길 한번 보내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유성은 포크를 챙겨 스테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허리를 꿋꿋이 펴 사무실에 있었지만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처럼 우아해 보였다. 박태준은 자기랑 가깝게 서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상대방도 놀란 듯 잠깐 멍했지만
차 안.신은지의 눈가는 발갛게 달아 오르더니 눈물이 흘러 내렸다.눈 안으로 이물질이 들어 갔다. 거울을 들여다 보고, 휴지로 닦다가 발갛게 변한 것이다.하지만 이물질은 전혀 빠져 나오지 않았다. 이때, 박태준이 강제로 그녀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가까워 질 수록 따뜻한 입김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신은지는 박태준의 섹시한 입술을 바로 앞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달달한 커플의 모습이지만 신은지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어제 밤,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피부가 좋지 않았다. 결국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으로 가렸지만 손에 묻은 눈 화장을 보고 나서야 다시 기억이 났다. 하필 이럴 때에 박태준이 다가 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하지만 박태준은 신은지의 얼굴을 5분 동안 쳐다 보고 있는 중이다. 신은지가 그를 살짝 밀쳤다.“됐어?” “응.”그가 다시 말을 덧붙였다.“아직도 아파?”신은지는 눈을 깜빡 거렸다. 더 이상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곧바로 손을 놓아주나 싶었지만 박태준은 오히려 그녀에게 더 다가갔다.그는 신은지에게 입술을 맞추려는 것처럼 보였다.이때, 신은지가 고개를 돌렸다.“전예은.”박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너 전예은 좋아해? 매번 분위기 좀 바꾸려고 하면 그 여자 이름 부르잖아.”신은지가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한껏 비아냥거렸다.“네 오랜 연인은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야, 굳이 저 사람 앞에서 해야겠어?”박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전예은이 건너편에 서있었다. 아래 입술을 꽉 깨문 채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녀는 박태준과 눈이 마주치자 홀린 것 처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길이 넓지 않아서 전예은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보였다.“우는 거 봐봐, 다른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탑 여배우가 됐을 거야. 저렇게 우는데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박태준이 전예은을 쓱 보고는 말했다.“지금 너보다 예쁘다고 질투하는 거야?”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온 뒤, 창문을 올렸다.“솔직히 네 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