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주말 아침. 신은지는 며칠 전 강혜정과 쇼핑 약속을 했다. 신은지는 그 당시 강혜정과의 약속을 망설였다.박태준과 이혼했는데 시어머니와 연락하고 지낸다면 사람들은 신은지가 미련이 남았다고 오해할 것이다. 하지만 강혜정은 신은지에게 ‘태준이랑 이혼했다고 나랑도 인연을 끊을 거니?’라는 말을 했었다때문에 신은지는 강혜정과의 약속을 거절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경인 시에서 제일 큰 갤러리아 백화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강혜정은 신은지의 팔짱을 끼고 신은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명품 하나 걸치지 않은 신은지를 보고 강혜정은 말했다. “태준이 그놈이 합의금 얼마 줬니?”강혜정은 뉴스를 보고 신은지와 박태준의 이혼 소식을 알게 되었었다. 박태준은 강혜정에게 이혼과 같은 중대한 일도 말하지 않았으니, 이혼 합의서는 더더욱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전에 큰 빚을 갚아줬어요…” 신은지는 말했다. “마누라 빚 갚아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니? 그리고 대신 갚아줬다니? 너도 속은 거잖아.” 강혜정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태준이가 맨몸으로 나가래?”“그건 아니에요…” 신은지는 빚을 갚고 남은 3억 원을 떠안고 나왔다. 강혜정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태준이가 망나니는 아니구나. 참, 그린올에서 신상이 나왔던데. 잡지에서 보니까 너한테 잘 어울릴만한 게 있더라, 한번 가 보자.” “네.” 신은지는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쇼핑하러 나왔으니 강혜정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했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전예은을 마주쳤다. 전예인은 친구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전예은은 환하게 웃으며 강혜정에게 인사했다. “어머! 어머님, 안녕하세요?” “내가 전예은 씨한테 어머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나? 전예은 씨도 이제 남자친구가 있고, 황 대표님 나이가 있으니 나한테 인사를 하려면 어머님이 아니라 언니라고 해야지?”강혜정
오전 내내 쇼핑을 한 강혜정과 신은지는 다리가 아파 카페에 들어갔다. 강혜정은 신은지에게 말했다. “밥은 뭐 먹을래?”신은지는 근처 맛집을 찾기 위해 앱을 켰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 뒤에서 신은지의 이름을 불렀다. “은지 씨.”신은지는 고개를 돌렸다.신은지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던 진선호였다. 진선호는 등산복 차림에 커피를 들고 있었다. 백화점에 한껏 꾸미고 온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진선호는 신은지가 강혜정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진선호는 강혜정이 박태준의 어머니인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번 신은지의 아파트 앞에서도 마주친 적이었었다.하지만 진선호는 예의를 차려 강혜정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강혜정도 박태준과 원수 사이인 진선호를 한눈에 알아봤다. 하지만 강혜정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진선호를 훑어봤다. 진선호는 말도 살갑게 잘 하고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눈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집안도 나쁘지 않았다. 신은지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꿀이 떨어졌다.강혜정은 진선호를 보면 볼수록 박태준에게 승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강혜정은 박태준이 친아들이지만 입 꾹 다문 채 말하지 않는 것이 꼴 보기 싫었다. 진선호는 두 사람의 쇼핑백과 다 마신 커피잔을 보고 이미 쇼핑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왔을 거라고 예상했다.“어머니, 아직 식사 안 하셨죠? 근처 맛있는 중국집 있는데, 가실래요?” 강혜정은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진선호가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어머니가 은지를 친딸처럼 아껴주신다고 하셔서 제가 식사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어요. 지난 3년 동안 은지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해요.”“……” 강혜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혜정은 심장이 떨리고 손발에 힘이 빠졌다. 진선호의 말투로 보아 신은지를 자기 사람으로 생각하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듯했다. 머지않아 정말 강혜정이 양어머니가 되는 거 아닐까? 신은지는 고개를 돌려 헛소리하는 진선호를 쳐다봤다. 그리고
강혜정은 신은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박태준의 등짝을 한 대 때리며 말했다. “질투할 거면 곱게 해! 그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면 멋있어 보일 줄 아니?”만약 집이었으면 박태준은 등짝이 아니라 뒤통수를 맞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박태준은 강혜정에게 반박하지 않았다. 이때, 진선호는 금방이라도 험한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강혜정 앞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진선호는 겉으로는 화난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동으로는 인정사정 없이 박태준의 다리를 걷어찼다. 진선호는 군화를 신고 있었다. 군화 신은 발로 맞으면 다리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박태준에게 한방 먹인 셈이다. 하지만 박태준은 살짝 옆으로 비켰다. 그러자 진선호는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진선호는 박태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박태준 씨, 또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구는 겁니까?”“뭐?!” 박태준은 버럭 화를 냈다. 두 사람은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때, 신은지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머니, 저 먼저 가볼게요.”강혜정은 난감한 표정을 신은지를 붙잡았다. “이제 곧 음식 나오니까 먹고 가거라.” “괜찮아요. 누구 보면 밥맛이 떨어져서요.” 신은지의 시선은 박태준에게 향했다. 그러자 박태준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박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선호는 신은지를 뒤쫓아갔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도 잊지 않고 강혜정에게 다음에 다시 식사 대접을하겠다며 인사를 남겼다. 물론 진선호의 말은 예의상 하는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았다. 잠시 후, 진선호와 신은지가 나가자 강혜정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 혼자 맛있게 먹어라. 그리고 앞으로 밖에서 나 마주쳐도 아는척하지 마. 너 보면 정말 속 터져 죽겠다.”신은지는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허 원장의 전화를 받았다.허 원장은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실버야, 누가 작업실에 와서 그림을 복원해 달라고 하는데?.”“네? 무
신진하가 없으면 집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신은지는 이미 신진하의 집을 샅샅이 뒤지고 팔 문건을 모두 팔았기 때문에 최여진의 물건이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톡으로도 물어볼 수 있지만 신진하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신은지는 신진하의 표정을 보고 단서를 찾기 위해 온 것이다. 신은지는 신진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제야 신진하가 해외에 나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 신은지는 며칠 동안 신진하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 갈지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신은지는 정말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신진하가 해외를 나갔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신은지는 고민 끝에 그림을 찍어 신진하에게 보내고 물었다. “이 그림 본 적 있어?”“아니, 없어.” 신은지는 신진하와 말이 통하지 않자 고민 끝에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전화를 했다. 정체불명의 남자는 신은지의 전화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주소를 보내주며 말했다. “혼자 가기 무서우면 친구랑 같이 가세요.”신은지는 진유라와 함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주소를 보내주고 만약 10분 이상 연락이 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신은지는 깊은 산속에 있는 한 별장에 도착했다. 별장에는 그날 봤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가정부가 훼손된 그림의 일부를 가지고 나와 말했다. “이 그림입니다.” 그림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이 상태의 그림이라면 2주 이상은 걸릴 것이다. 이 시각, 재경 그룹.회사 직원들 모두 최근 박태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놓고 욕을 퍼부으며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했다.업무 보고를 하러 박태준 사무실에 들어간 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박태준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직원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박 사장님, 공정 부서에서 급하다고 합니다. 카톡으로 보내드린 서류 좀 처리해 주세요.”이때, 진영웅은 박태준 사무실에 노
“맞아. 이 돈 주고 또 거머리처럼 붙어서 돈 갚으라고 할 줄 누가 알아?” 신은지는 일부러 박태준의 성질을 건드렸다. 신은지와 박태준은 이미 이혼한 사이기 때문에 더 이상 돈으로 엮어서는 안 된다. 사실 신은지가 박태준에게 돈을 갚을 필요도 없다.하지만 신은지가 좋게 말하면 박태준과 언제까지 실랑이할지 모른다. 자신감 넘치는 박태준은 신은지의 말에 분명 비웃으며 카드를 돌려받을 것이다. 신은지의 예상대로 화가 잔뜩 난 박태준의 얼굴은 서서히 붉어졌다. 그리리고 신은지의 목덜미를 잡고 키스를 했다. 깜짝 놀란 신은지는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박태준은 더욱더 격렬하게 키스를 했다. 잠시 후, 박태준의 격렬한 키스에 신은지의 입술이 빨갛게 변했다. 신은지가 자포자기할 때쯤 박태준은 신은지를 놓아주었다. 박태준은 신은지의 빨갛게 변한 입술을 쳐다보며 말했다. “귀찮게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써.” 화가 난 신은지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 돈은 신은지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이자 따위는 없다. 신은지는 며칠 전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그 후 신은지는 그림 주인과 장기 협력을 맺었다.그림 주인은 박태준의 빚을 갚기에 충분한 돈이 들어 있는 카드와 쪽지를 보냈다.쪽지에는 ‘빚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면서 일에 지장 가지 않도록 이 돈으로 빚을 갚고 마음 편하게 일하세요.’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신은지는 장 변호사에게 계약서를 보여준 후 계약서와 카드에 있는 돈은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 박태준에게 돈을 준 것이다. “박태준, 우리는 이미 이혼한 사이야. 외로우면 발정 난 짐승처럼 굴지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 도대체 얼마나 외로웠으면 결혼생활 3년 동안 성적 매력을 못 느꼈던 전 부인한테 그러는 거야?” “만약 네가 조금만 더 큰소리를 냈으면 밖에 있는 직원들이 우리가 사무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았을 거야.” “……” 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은지는 더럽다는 표정으로 박태준을 쳐다
조용한 복도에서 신진하가 ‘쾅’하고 부딪히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신진하는 부딪히자마자 고통스러워 신음 소리만 냈다. 상대방과 눈이 마주친 신진하는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었다. “아버님 기억력이 안 좋으셔서 제가 했던 말을 기억 못 하시는 것 같군요.”남자는 바로 박태준이었다. 잘생긴 박태준의 표정과 말투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잠시 후, 박태준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신진하에게 다가갔다. 신진하는 몸을 움츠리고 웃으며 말했다. “태준아, 어찌 됐든 나는 은지 친아버지야. 너희가 이혼했으니 나를 아버지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한테 윗사람이야.” “그날 당신이 재경 그룹에 와서 난리를 피웠을 때 다시는 신은지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었죠? 그때 뭐라고 약속했죠?” 잠시 후, 박태준은 신진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돈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하에 평생 신은지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했었죠?”“재경 그룹에 가서 소란을 피웠어요? 언제요?” 신은지는 신진하가 재경 그룹에 가서 소란을 피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달 전, 박 사장님께서 정한 상환 기간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신은지는 이제야 진영웅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영웅은 신은지가 자신을 쳐다보자 공손하게 말했다. “사모님.” 신은지는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대우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는 당신 사장하고 이미 이혼했어요. 예전에 불렀던 대로 신은지 씨라고 부르세요.” 신은지는 박태준 앞에서 진영웅의 실체를 폭로했다. 하지만 진영웅은 전혀 개의치 않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박 사장님은 오늘 중요한 국제회의가 있었어요. 그런데 신진하 씨가 사모님 집 앞에 있다는 경비원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오셨어요.”“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박태준은 진영웅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진영웅은 박태준의 표정을 보자마자 말했다. “박 사장님, 제가 신진하 씨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두 분 말씀 나누세요
놀랍게도 눈앞에 있는 사람은 조태오였다. 신은지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과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핸드폰은 떨어지면서 스피커폰으로 바뀌었다. 이때, 핸드폰 너머로 나유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오후에 회의 있어. 역사 관광 지구 설계 방안에 대해서 상의할 거야. 회의에 참석 못 하면 화상으로 들어와.” 조태오는 바닥에 떨어진 디자인 초안을 보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 선생님, 많이 바쁘시네요.” A급 복원사와 B급 복원사는 서로 다른 건물을 사용한다. 신은지는 항상 이시간 쯤에 출근해 화장실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무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오늘 조태오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입사 첫날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을 새까맣게 잊을 뻔했다. “조 선생님보다는 안 바빠요.” 신은지는 동료에게 조태오가 A급으로 승진하기 위해 매일 같이 야근을 한다고 말을 들었다.A급과 B급은 급수로 따지면 1급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급여는 하늘과 땅 차이다.잠시 후, 조태오는 신은지를 힐끗 쳐다보고 휙 돌아서 가버렸다. 조태오는 자신과 부딪혀 떨어진 서류를 주워주기는커녕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신은지는 그냥 가버리는 조태오에게 말했다. “조 선생님도 박물관에서 명성 높은 선배님 아니에요? 다른 사람하고 부딪혀서 물건이 떨어졌으면 고개 숙여 사과는 하지 않을지 언정 주워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조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원래 무섭게 생긴 조태오의 얼굴은 더욱 무서워졌다. 잠시 후, 조태오는 마치 학생주임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신 선생님, 가정교육을 그렇게 받았어요? 윗사람한테 이게 무슨 태도에요?”“죄송하지만 저는 고아에요. 괜히 사람들한테 웃음거리 되기 전에 조 선생님이 주우세요. 웃음거리는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요?” 신은지는 스스로 주울 수 있었다. 하지만 조태오 같은 사람은 참고 물러날수록 더욱 괴롭힐 것이다. 조태오는 말했다. “A급이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지 마세요. 3개월에 한 번씩 시험을 보지 않습니까? 그러니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본전도 못 찾는 일에 믿음 갈 일이 없다.지금 이 상황에 닥친 신은지는 어제 신진하가 엄마의 유산에 대해 언급한 게 생각났다. 대체 어느 회사에서 아무런 정보 조사 없이 20억이라는 금액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대출해 주는지 궁금해 그들이 건넨 명함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신진하는 마음이 얼마나 급한 지 며칠 기다리지도 못하고 그녀가 받은 유산을 뺏으려 했다. 신은지는 그들의 수작을 꿰뚫고 있었다.“우리가 신진하 체면을 본 게 아니라 신은지 씨 당신 면목을 보고 대출해 준 겁니다. 박 씨 집안은 재력도 있고 체면도 살려야 하잖아요. 아무리 박태준 사장님이랑 이혼했다 하더라도 당신이랑 같이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전 부인이 빚 때문에 고통받는 걸 보고 있기만 하지 않겠죠.”신은지는 그들의 말에 냉정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돈도 없거니와 대신 갚아 줄 의무도 없으니 신진하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세요.”“신은지 씨가 이렇게 나오면 당신 전 남편, 시어머니 그리고 당신 외삼촌 댁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습니다..”이건 불법 대출업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빚쟁이 가족이나 지인들한테 전화를 해서 뭐라도 받아내려는 꼼수였다. 그 두 사람은 신은지한테 통보하러 온 거여서 자기들 말만 하고 그냥 가버렸다.신은지는 너무 화가 나 부들부들 떨며 신진하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정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인간이었다.그러자 신은지는 그들을 사기 혐의로 신고했고 경찰서에 가서 등록한 뒤 더는 이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뒤로 일이 너무 바빠 잠잘 시간도 없어 다른 일에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그리고 일주일 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검은색 차량이 아무 증조 없이 뒤에서 들이박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핸들에 머리를 부딪혔다. 검은색 차량 운전사는 어디 다쳤는지 차에서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을 보고 신은지는 경찰에 먼저 신고를 했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거리에는 걸어가는 사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