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지는 당황하여 큰 눈을 뜨고 머리를 돌리며 남자의 거친 키스를 피하면서 비명 을 질렀다.“박태준,날 나줘.이 미치놈,변태,정신병자……”신경이 극도로 팽팽해 있었던 신은지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악한 말로 부단히 박태준한테 퍼부었다.그녀가 강하게 몸부림치고 머리는 땡땡이처럼 흔들어 박태준이 몇 번이나 하려던 키스를 피했다.남자는 극도적인 반항으로 인해 붕괴 상태에 이른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가의 웃음은 더 차가워지고 그녀의 두손을 머리 위로 올려 본인의 목에 걸려 있던 넥타이로 묶었다.키스로 촘촘하게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곳곳에 붉은 흔적을 남겼다.신은지는 오늘 바지를 입었다. 그러나 박태준의 공포적인 폭력하에 바지는 치마와 다를 바 없이 모두 찢어졌다.“박태준 너 약 먹어서 정충이 머리로 올라갔으면 전예은를 찾아가.”그녀는 정서가 많이 흔들려 말조차 순서 없어졌다.“너하고 그녀가 스캔들 나고 그녀한테 투자를 찾아주고 난 말 한마디 안 했어. 오늘 저녁 진선호가 마침 날 구해줬을 뿐이야. 나와 진선호는 너하고 전예은보다 더 결백해.”쫙---천이 찢어지는 소리는 그녀의 외침 소리만 있는 홀에서 유난히 선명했다.맨손으로 청바지도 찢을 수 있는 박태준의 힘에 관하여 신은지에게는 상상조차 못 할 공포적인 힘이었다.박태준은 웃고 있었으나 눈에는 웃음이 없었다.“당신하고 진선호가 결백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렇잖으면 오늘 저녁 여기에 엎드려 있을 사람은 진선호야.”신은지는 미치듯이 박태준을 걷어찼다. 그러나 그녀의 두 다리는 박태준에게 깔려 있어 아무런 실질적인 상처를 줄 수 없었다.“당신이 그렇게 능력 있으면서 왜 아직까지 전예은 잡지 못했어? 왜 감정도 없는 명의상의 아내한테 매달려. 씨발. 당신이 남자라면 가서 전예은을 강폭해. 그럼 내가 백년해로 하라고 축의금도 보내줄테니까...”평소의 신은지는 이런 일기촉발의 순간에 박태준을 자극하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 아무리 잘 보이고 착한척하고 순종할지라도 박
다음날 신은지는 전화벨 소리에 깨났다. 어제 저녁 일 때문에 허원장님은 특별히 며칠 동안 휴가를 주어 집에서 푹 쉬게 하였다.전화를 건 사람은 아파트 관리실이었다.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정문에 사모님의 아버지와 여동생이 왔는데 만나자고 합니다.” “안 만나요.”신은지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전화 너머로 심진하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은지야, 너의 엄마 핸드폰을 찾았다.”“……”그해에 그녀는 나이가 어려서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줄 알고 많이 슬펐는데 어떻게 갖고 있던 소지품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나중에 이상하여 핸드폰을 찾으려고 하니까 보이지 않았고 통신회사의 기록도 찾지 못했다.심진하한테 물어보니 못 봤다고 하였다. 그래서 차 사고 날 때 뿌리워 없어 졌다고 추측했다.근데 이 시간에 없어진 지 오래된 핸드폰이 나왔다는 건 심진하가 거짓말 했던지 아니면 엄마의 죽음이 심진하와 관련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즉 심진하가 핸드폰을 숨겨두고 신은지를 속인 것이다.신은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들을 들여보내요.”경호원이 있어서 그들이 나쁜 마음을 가질지라도 아무 일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0분후, 심진하는 심지연을 데리고 올라 왔다.갑자기 보니 대나무 장대처럼 생긴 여자가 심지연인줄 하마트면 알아보지 못할번했다.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고 창백하고 어둡고 누렇고 반점까지 생겼다.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모든 면에서 그녀와 비교하던 심지연이 오늘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들어오자 마자 심진하가 엄하게 꾸짖으며 말했다.“무릎 굻어.”신은지는 본래 심진하가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 몰랐는데 심지연이 풍덩하고 자기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비로서 반응했다. 심진하가 뜻밖으로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신은지는 한쪽으로 비켜섰다. 심지연을 싫어 하지만 무릎을 꿇는 것은 싫었다.“난 아직 죽지 않았어요. 지금 무릎 꿇는 것은 너무 일찍 하지 않나요.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얘기 하
심은지는 말했다. “알고 있어.”박태준은 입술을 치켜들고 긴 웃음을 지으며 말씨마저 웃음으로 젖여 말했다.“내가 조사하는 거 싫어 아니면 신세 지는 것이 싫은 거야. 나하고 얽히기 싫은 거야 아니면 계속 추궁하고 싶지 않은 거야?”심은지는 긴장하게 그녀를 보고 있는 심진하를 보고는 대답했다.“추궁하고 싶지 않아.”이번에 박태준은 정말 웃었다. 냉소였다.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말했다.“당신은 경인 시에 있지 말아야 해.”“응?”“륵산에 가서 불상 보고 일어나라 하고 당신이 거기에 앉으면 향불이 흥성하겠네.”심은지:“……”박태준란 개 남자의 입에서 좋은 말이 안 나올 줄 알았다.전화를 곧바로 끊었다. 심은지는 심진하를 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만족했어요? 핸드폰 주세요.”심진하는 자신이 이 일에서 편애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핸드폰을 심은지한테 넘겨줬다. 그리고 심은지 목에 남긴 보기만 해도 끔찍한 키스 자국도 보았다.그도 남자이다. 그래서 어느 만큼의 격렬한 키스를 해야 촘촘하고 선명한 흔적을 남길 수 있겠는가, 그건 분명히 한 여자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백프로의 점유욕으로만이 이런 키스를 할 수 있는 것이다.그전에 두 사람이 이혼한다고 들었는데 밖에 서 있는 경호원을 보고 심진하는 기쁜 마음이 생겼다.“어제저녁 너하고 박태준……”말이 끝나기 전에 옆에 서 있던 심지연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심진하의 핸드폰을 잡아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쳤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힘껏 두 발로 밟았다. 그녀는 심진하의 옆에 있으면서 일찍 계획하고 있었던것이다. 심은지가 제일 빠른 속도로 막으려 해도 한발 늦었다.경호원이 문밖에서 훈련이 잘되었어도 날개가 없는 한 날아 올 수 없었다.“심지연 너 ……”심은지는 그녀에게 귀뺨을 한 대 후려쳤다. 힘을 너무 주어서인지 아프던 머리가 찌끈 찌끈 더 아팠다. 심은지는 귀뺨을 맞아 바닥에 넘어진 심지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너 진짜 죽고 싶었구나. 그럼 도와줄게.”
신은지는 몸을 옆으로 돌려 진선호의 손을 피했다.“오해 받는 일은 하지 마세요. 도움을 받으려고 진선호씨를 찾았어요.”진선호는 자신의 빈손을 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발꿈치를 들어 따라갔다.칸 좌석은 원래 커플을 상대로 설계하였기에 공간이 크지 않아 억지로 네 사람이 비집고 들어가 두 사람이 서 있을지라도 많이 비좁았다. 진선호는 종업원의 복잡한 눈길에서 머리를 들고 문신처럼 꿋꿋이 서 있는 경호원에게 말했다.“옆방의 좌석에 앉는 게 어떨까요? 제가 비용을 낼게요.”경호원은 진선호를 내리 굽어보며 말했다.“안 됩니다.”이 사람은 분명히 사모님한테 다른 생각이 있어!진선호는 예의적인 건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두 분은 밖에 서 줄수 있을까요. 여기에 이렇게 서 있으면 당신들이 난처하지 않다고 해도 내가 난처해요.”그는 부대에서 크든 작든 직급을 가진 사람이었다. 평소에 그 많은 가시를 다룰 때 기세가 세지 않으면 제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웃고 있을 지라도 무의식중에 뿜어져 나오는 압박과 위험성은 순간적으로 사람의 신경을 곤두세웠다.경호원은 전문 훈련을 받았고 임직기간에 고용주에게만 복종한다. 그래서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한보도 물러설 수 없기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신은지를 몸 뒤로 보호하는 동작을 취했다.신은지는 말했다.“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이 분은 제 친구예요. 할 얘기가 있어요.” “네,알겠습니다.”경호원은 대답하고 한 명은 밖에 서 있고 한 명은 카운터로 갔다.칸 좌석은 한 겹은 천과 한 겹은 베일, 두 겹의 커튼을 걸었다. 진선호는 한 겹의 베일을 내려놓았다. 그는 신은지가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다. 워낙 자신은 거친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의 험담에 개의치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험담을 듣게 할 수는 없었다.커플 카페 예약은 완전히 여동생이 친구하고 얘기 나눌 때 이 가게 이름을 듣고 예약했던 것이다. 그래서 금방 돌아온 지 한달도 안 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최유리의 말투는 매우 차가웠다. 신은지의 기억이 맞다면 최유리와는 서로 이름도 모르는 초면이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다. 하지만 최유리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신은지를 쳐다봤다. 진선호는 매우 거친 남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만난 여자는 열 손가락을 셀 수도 없다. 이 순간 진선호는 매우 독한 남자였다. 잠시 후, 신은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최유리는 직접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은지가 말하려고 하니 굳이 말리지 않았다.“선호 오빠도 언니가 유부녀인 거 알아요?”“……” 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선호와 신은지의 연극은 시작하자마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신은지는 고개를 돌려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진선호를 쳐다보고 직접 설명하라는 눈짓을 했다. 최유리에 말에 신은지는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신은지도 자신의 친한 친구가 유부남을 만났다면 상대방이 고의로 친구를 속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최유리보다 더욱 못되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선호는 최유리를 차갑게 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절하게 대한 것도 아니다. 최유리는 진선호에게 단지 동생의 친구일 뿐이다. “나도 알고 있어.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일이야.” “오빠…” 진은비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늠름하고 멋있는 진선호를 쳐다봤다. 어렸을 때부터 진선호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다. “오빠, 저 여자가 유부녀라는 걸 알면서도 만난다는 거야? 엄마가 아시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야…”진선호는 굳은 얼굴로 진은비에게 “진은비,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어서 가.”이때, 신은지는 참치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진선호는 한숨을 내쉬며 신은지를 쳐다봤다. 하지만 진선호의 눈빛에는 사랑으로 가득했다. 신은지는 진선호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최유리는 분노를 삼켰다. 진선호는 최유리의 것이다. 최유리는 오랜 세월 동안 오매불망 진선호만을 기다렸다. 절대 진선호를
박태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신은지를 쳐다봤다. 박태준은 마지막에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박태준은 신은지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느니 차라리 화를 냈으면 했다. 잠시 후, 신은지와 진선호는 가방을 챙겨 룸에서 나갔다. 이 순간 두 사람은 박태준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다. 박태준은 두 사람을 따라나갔다. “미안, 방금 한 말은 사과할게. 네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니야.”지금까지 누군가에 사과를 해본 적이 없는 박태준은 매우 서투르게 사과했다. 지금 이 순간 박태준은 평소 사장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신은지는 박태준의 사과를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한 박태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은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박태준은 신은지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신은지는 박태준의 말에 시종일관 침묵을 지켰다. 신은지는 카페에 올 때 경호원의 차를 타고 왔다. 하지만 박태준과 관련된 사람과 물건은 쳐다보기도 싫어서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신은지가 몇 걸음 떼지도 않았을 때, 박태준은 신은지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차 저쪽에 있어.” 신은지는 박태준의 손을 뿌리치고 짜증을 내며 말했다. “택시 타고 갈 거야.” “안 돼, 위험해.”박태준과 같이 있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하지만 신은지는 박태준에게 화를 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박태준에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신은지는 아무 말도 없이 택시를 잡기 위해 거리로 향했다. 박태준은 이를 악물고 멀어지는 신은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박태준은 결국 신은지에게 향했다. 박태준은 신은지의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은지를 들어 안았다. 깜짝 놀란 신은지는 두 다리를 흔들며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박태준! 내려줘!” 신은지는 계속해서 박태준을 밀쳐내다 손톱으로 박태준의 목을 긁었다. 박태준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신은지, 가만히 있어. 안 그러
“뭐?” 신은지는 어리둥절했다. 신은지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박태준을 쳐다봤다. 신은지는 박태준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신은지는 박태준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출혈은 멈췄다고 했잖아. 입원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더 빨리 회복될 거야.”이 병원은 시설이 좋은 병원이 아니다. 박태준 집에는 전문 의사와 가정부들이 있어 일반 병원보다 더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박태준은 신은지를 쳐다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갔는데 또 코 피를 흘릴지 누가 알아? 우리 집은 외진 곳에 있고, 밤에 아무도 없는데 출혈이 심해서 쓰러지면 어떡해? 그냥 그렇게 죽으라는 거야?” 신은지는 이를 꽉 깨물며 박태준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건데?”“너네 집으로…”신은지는 박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입원시켜 주세요.”“……”다행히 이 병원은 유명한 병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원 수속이 수월했다. 박태준은 5층에 있는 병실을 배정받았다. 병실 안, 병상 위에는 색깔이 바랜 파란색 시트가 깔려 있었다.신은지는 박태준이 더러운 시트와 이불을 보고 기겁할 거라고 생각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난 박태준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살았기 때문에 더러운 것을 보면 참지 못한다. 박태준의 집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박태준은 병상을 한번 훑어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신발을 벗고 병상에 누웠다. 신은지는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샤워용품을 샀다. 그리고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박태준의 코 피가 묻은 옷을 빨았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신은지는 화장실에서 나와 박태준에게 말했다. “화장실 안에 수건 뒀으니까 씻어.”잠깐 졸은 박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아파서 움직이기 싫어.”박태준의 코는 많이 부어 있었다. 게다가 얼굴에 핏자국도 그대로 남아있는 박태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신은지 말에 찬성하는 진유라는 몇 마디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유성 앞에서 박태준 험담을 할 수 없어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잠시 후, 진유라는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신은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엄마가 여행 가서 네 선물 사 오셨어. 상할까 봐 빨리 전해주려고 왔어.”“이모한테 고맙다고 전해드려.” “아 맞다, 지난번에 그 꽃병은 어떻게 됐어? 집주인이 출국한다고 미리 받을 수 없냐고 물어봤어.” 신은지는 대답했다. “다 됐어. 집에 가서 가져다줄게.” 주문은 진유라가 받았으니 진유라에게 꽃병을 주면 된다. 진유라는 신은지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으니 직접 가지고 가겠다 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급해 하는 신은지의 모습에 말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신은지는 집에 물건을 가지러 간다는 핑계로 박태준에게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신은지의 의도를 파악한 나유성은 웃으며 말했다. “은지야, 일 있으면 갔다 와. 내가 태준이 옆에 있을게.”박태준은 손발이 멀쩡해 병간호가 전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신은지는 나유성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신은지가 없을 때 박태준을 봐 줄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박태준이 또 어떤 꾀를 부릴지 모른다. “유성 오빠, 그럼 부탁할게. 진짜 빨리 올 테니까 잠깐만 있어줘. 병실은 507호야.”신은지는 아직 박태준의 아내이다. 게다가 박태준이 입원한 것도 신은지 때문이다. 나유성과 박태준의 사이는 좋지만, 나유성이 병간호할 이유는 없다. 때문에 신은지는 나유성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나유성은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빨리 가 봐.” 이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박태준은 로비에서 나유성과 신은지가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박태준은 신은지가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신은지가 박태준을 보고 웃었던 것은 차가운 웃음이 아닌, 비웃음이었을 것이다. 신은지는 병실에 박태준과 함께 있었을 때는 가시 돋은 장미였지만, 밖에
정민아는 팔짱을 끼고는 고연우가 들고 있는 꽃을 무심하게 훑어보았다.“연우 도련님, 이건 또 무슨 의미야?”“공 비서가 오늘이 여성의 명절이라고 했어.”“그래서?”주위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고연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정민아, 우리 이혼하지 말자.”너무 진부한 이야기였다. 정민아는 더 이상 이 주제를 논의할 의욕조차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 담뱃갑을 더듬었다. 옆의 재떨이엔 얇은 층으로 쌓인 담배꽁초가 있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정민아가 피운 것임을 립스틱 자국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연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정민아가 담배를 피우는 걸 싫어하면서도 막지 않았다.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민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담뱃불은 희미하게 밝아졌다가 사라지며 그녀의 눈을 비췄다. 그 순간, 눈 속의 차가운 무관심이 한층 누그러져 보였다. 은빛 실처럼 가늘게 펴지는 연기 너머로 정민아는 당당하고 제멋대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정민아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고연우는 어김없이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다음 순간 정민아가 말했다.“고연우, 너 이상한 거 아니야?”“그렇지. 이상하지 않았다면 여기 서 있지도 않았을 거야.”고연우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목시계를 가리켰다.“시간 됐어. 레스토랑으로 가자. 예약해 놨어.”정민아는 이미 샘플 수정으로 지쳐 있었는데 고연우의 집요함이 정민아를 더욱 짜증 나게 했다. 고연우의 고급스러운 코트가 눈에 들어오자 정민아의 머릿속에 문득 나쁜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그의 코트에 대고 눌렀다.‘치...’불꽃이 꺼지면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타는 냄새가 코트에서 퍼져 나왔다.정민아는 차가운 얼굴로 꺼진 담배꽁초를 옆의 쓰레기통에 던졌다.“꺼져.”고연우는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의 타는 자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민아의 손을 잡았다.“이 코트는 가격이 6자리 숫자야. 디자인에서 완성까지 3개월이 걸렸어. 나와 저녁 정도는 함께 먹어줘야 하
고연우는 벨트를 풀며 말했다. 남자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승부욕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특히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 감정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그런 암흑 같은 분위기는 우리 상황과 맞지 않아.”정민아는 원래 고연우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고연우는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보였을 것이니 고연우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정민아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고연우는 옷을 반쯤 벗었고 단단한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었으며 술기운에 물든 피부는 은은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공기 중에는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마치 곧 무언가가 터질 듯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가끔 고연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정민아가 말했다.“요즘 운동 안 했어?”고연우는 어이없었다.“?”정민아는 손바닥을 고연우의 가슴 아래쪽에 대고 살짝 눌러보았다. 그러고는 평가하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이 좀 줄었네.”“...”정민아는 마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연우를 응시했다. 고연우는 모른 척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옷을 다시 입고 정민아의 손을 자기 몸에서 조심스레 떼어내더니 문을 향해 나가며 화가 난 듯 정민아를 한번 매섭게 쳐다보았다.“네가 이겼어.”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다....며칠 동안 고산그룹 대표실이 있는 층은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공민찬이 급한 서류 묶음을 들고 고연우에게 사인을 받으려 일어서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났다. 그때 최민영이 가방을 들고나와 미소를 지으며 공민찬에게 인사를 건넸다.“공 비서님.”공민찬은 다가서며 말했다.“최민영 씨.”최민영은 사무실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연우 씨 사무실에 있나요?”“최민영 씨, 잠시만요”공민찬은 그녀를 막아섰다.“대표님께서 지금 바쁘십니다. 우선 접대 실에서 잠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최민영은 눈썹
고연우는 짜증 내며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지더니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가세요. 나중에 송씨 아주머니한테 작업복 하나 달라고 하세요.”“도련님,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하린은 우유를 들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저 예전에 마사지도 배운 적 있는데, 제가...”“그만 나가.” 고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손을 피하다가 우유를 엎지르고 말았다. 우유가 쏟아지며 더럽혀진 셔츠를 내려다보며 그는 얼굴은 굳어진 채 입술을 오므렸다. 한참 후에야 한 마디 내뱉었다. “사모님께서 보낸 겁니까?”그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어냈다.하린은 고연우의 차가운 눈빛에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말을 더듬었다. “도련님, 정말로 사모님께 저를 보내셨습니다.”“나가세요. 앞으로 제 허락 없이는 서재에 들어오지 마세요.” 하린은 금수저 남편을 찾기 위해 가사 도우미로 취직했다. 이를 위해 매니저에게 봉투까지 건넸지만 고연우의 사늘한 태도에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품지 못했다. 서재를 나오자마자 난간에 기댄 채 그녀를 쳐다보는 정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모님...”하린은 갑자기 발걸음 멈추더니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불순한 의도를 품었던 그녀는 사모님을 보면 본능적으로 불안했다. “도련님께서 드시지 않았어요...”비록 정민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하린은 괜히 자신을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마침 정민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몇 번 더 가져다주세요.”하린은 정민아의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눈치챘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재벌 부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여자를 찾아주는 걸까? 설사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돈이면 충분할 텐데, 그러다 사생아라도 생겨 상속 분배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 어쩔 생각인지.’그녀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련님께서 송씨 아주머니한테 익숙해졌는지 저를 좀 꺼리시는 것 같아요. 아
다음 날.정민아와 사연희는 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야...”주소월이었다. 사연희는 정민아의 과거에 대해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주소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 자식을 챙기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설령 절친이라도 남의 가정사에 깊이 개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초대장 몇 개 빼놓고 못 보낸 것 같은데, 금방 보내고 올게. 쇼에 관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주소월을 흘끗 쳐다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정민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소월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어젯밤에 충분히 더 이상 정씨 가문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주소월이 여전히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오늘 밤에 연회가 있는데, 같이 가겠니?” 정민아가 거절할까 봐 주소월은 서둘러 한 마디 덧붙였다. “너희가 쇼를 열잖아? 오늘 밤 연회에 너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잠재 고객을 몇 명 발전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어.”“지금 그 무리에서 잠재 고객을 발전시키라는 말씀이세요?”그녀와 최민영의 갈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못한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렸고 반면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좋은 사람은 고아 때문에 굳이 적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주소월은 정민아가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민아야, 미안해. 엄마가 너를 데려오긴 했지만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너한테 이렇게 상처만 줬네...”“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저를 정씨 가문으로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그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서, 그리고 또... 그 미친놈으로부터 구해줘서 고마워요.”마치 세월의 흔적을 덮은 한 자루의 칼처럼 서서히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민아야...” 주소월은 울먹거리며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 그
정민아는 문을 열고 지친 몸으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발을 갈아신던 중 슬쩍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았다.“아주머니, 제가 전화드렸잖아요. 저녁 먹고 온다고,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렸어요?”송씨 아주머니는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련님께서 아직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연우라는 말을 듣자 정민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그렇군요.”“아가씨...”송씨 아주머니가 망설이며 그녀를 불렀다. “도련님께서 아가씨가 돌아오시면 같이 식사하자고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제가요?” 정민아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해하며 돌아봤다. “왜요?”“도련님께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셨는데... 두 분 혹시 싸우신 거 아닌가요?”“그 사람이 기분이 안 좋다고 제가 달래줘야 하나요? 그럼 왕자님, 저녁 드세요라고 말이라도 해야겠네요?” 정민아는 피식 웃더니 입가에 맴돌던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먹든 안 먹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먹기 싫으면 굶으면 되죠.”송씨 아주머니는 시선을 정민아 뒤쪽으로 옮기더니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 도련님...”정민아가 뒤돌아보자 고연우는 난간에 기댄 채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가 약간 젖어 있었고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고 옷자락은 허리선에 맞춰 깔끔하게 넣었다.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를 뽐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배경처럼 흐릿해 보이게 만들었다.고연우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저녁 먹자.”사실 그는 조금 더 튕기고 싶었지만 계속 자존심을 부리다 이 무심한 여자는 그냥 가버릴 것 같았다.정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난 이미 먹었어.”“네가 장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 해결해 줬더니, 겨우 도시락 하나 사주는 거냐? 정민아, 너 정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 적 없어.”정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하자 덜 말려진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하얗고 맑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 위에는 물방울까지 맺혀있어 고연우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그 어떤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방안에 가득 찬 정민아의 향기가 그림자마냥 고연우의 주변을 맴도는 탓에 고연우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주먹을 말아쥐었다.술기운이 뒤늦게 밀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저 고혹적인 자세 때문인지 고연우는 머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에 정민아는 문을 열고는 손님을 배웅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내가 불편해지면서까지 다른 사람한테 맞추긴 싫거든. 그러니까 일단 최민영부터 죽이고 와서 사랑 타령해.”“... 다른 건 안 될까?”“다른 거 뭐?”정민아의 산만한 시선이 고연우의 몸에 머물렀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보는 듯 곳곳을 훑어보고 있었다.“너한테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뭐 다른 게 있긴 해?”상처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모욕적인 말임은 틀림없었다.하지만 웃긴 건 정민아의 말에 고연우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아무리 봐도 돈과 권력 외에는 정민아가 관심을 가질만한 게 없어 보이는 듯한 몸에 고연우는 고개를 들더니 그래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그 기생오라비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어.”정민아가 혹여 듣지 못할까 봐 고연우는 기생오라비라는 단어에 더 힘을 주며 말했다.어려서부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던 고연우는 저에게도 이렇게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필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었다.하지만 정민아는 관심 없다는 듯 입꼬리를 움직이며 말했다.“얼굴 자랑 말고 가서 약이나 좀 사지 그래? 내가 너에 대한 흥미는 약의 자극을 받아야만 생길 것 같거든.”머리에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아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도 입안에는 분노 가득한 험한 말들이 서러움과 함께 맴돌고 있었다.“넌 앞으로 그냥 말을 하지 마.”
고연우의 질문에 정민아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대학 때 후배.”그 말에 고연우는 아까 정민아를 보던 임우빈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물었다.“쟤가 너 좋아해?”“응.”“...”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을 해버리는 정민아에 말문이 막혀버린 고연우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너 저렇게 기생오라비 같은 놈 좋아했었어?”정민아의 성격 때문에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임우빈한테 유난히 관대한 것만은 보아낼 수 있었다.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민아 앞에서 주책맞게 떠들어 댄 게 자신이었다면 정민아는 진작에 제 머리를 비틀어 화분으로 삼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정민아는 언짢아 보이는 고연우를 보며 말했다.“기생오라비 같은 게 아니라 어린 거야. 턱선이 당신처럼 뚜렷하진 못해 그래서. 그리고 뒤에서 다른 사람 험담하는 건 격 떨어지는 일이야, 고연우 도련님.”고연우 도련님이라는 단어에 올라가는 억양을 붙인 게 아무리 봐도 조롱 같았던 고연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턱선이 나보다 뚜렷하지 못하고 어려서 그렇다고? 그럼 뭐 나는 늙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아내를 탐내는 데 내가 얼마나 격을 차려야 한다는 거지? 난...”고연우는 간신히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참아냈다.“곧 이혼할 건데 뭘.”“꿈 깨.”혈관 속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은 느낌에 원래도 나빴던 기분이 더 완벽히 잡쳐버린 고연우는 정민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난 이혼에 합의 안 할 거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사이에 사별은 있어도 이혼은 없어.”고연우의 말에 정민아가 문고리를 잡아 내리며 대꾸했다.“그럼 아직 살아있으니까 납골함이라도 직접 골라. 귀신 돼서도 네가 직접 고른 집에 있으면 기분이라도 좋겠지.”“정민아, 너...”고연우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앞에서 문이 “펑”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 탓에 하마터면 거기에 얼굴을 맞을 뻔한 고연우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누가 이딴 식으로 짜증을 내고 들
말을 안 하고 앉아있는 정민아에 기사는 정민아가 슬퍼하는 줄로 알았지만 그렇다고 한낱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답답한지 기사는 의자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진심으로 좋아하면 시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솔직하게 알려줘야죠. 이런 식이면 남자는 점점 더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모든 남자들이 저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여자의 유혹을 당해낼 남자도 없어요.”“저도 남자예요, 믿어도 좋아요.”끊임없이 말하는 기사가 귀찮았는지 정민아는 고개를 돌리며 짧게 대꾸했다.“응, 믿으니까 출발해 빨리.”정민아가 고연우를 시험하는 건 그가 저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주 씨 집안 간의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지금 보니 이 길은 이미 글러 버린 것 같았다.임우빈은 한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당기며 고개를 돌려 정민아를 바라보며 그 나이대 특유의 당찬 표정을 하고 말했다.“저렇게 양옆에 여자나 끼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 홀려대는 남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잖아요. 누나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죠. 저는 어때요?”임우빈은 제 이두근을 자랑하며 말했다.“젊고 잘생긴 데다가 체력도 좋고 무엇보다 일편단심이에요. 누나 말곤 아무도 안 봐요, 길가는 암컷 강아지한테 눈길 안 줄 자신 있는데.”“... 너희 엄마는 네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여자를 집안 며느리로 들이려 한다는 사실 아니?”정민아의 말에 임우빈은 툴툴대며 대답했다.“많이는 아니죠, 고작 세 살인데. 오버는 하지 말죠. 그리고 내가 정말 누나를 집에 데려가면 우리 엄마는 엄청 좋아할걸요. 적어도 앞으로 두 세대는 미모는 보장할 수 있으니까.”임우빈은 정민아의 대학교 후배였는데 1학년 때 운동장에서 정민아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해버려 결혼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제대로 들이대 보지도 못하고 정민아가 퇴학을 해버리는 탓에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정민아가 있다는 경인시까지 와서 대학원을 다니고 여기서 취직
사연희는 잔뜩 감동한 얼굴로 정민아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우리 가게 때문에 민아 씨만 고생했네요.”안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노 대표님의 생각을 바꿀만한 둘레의 허벅지를 찾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시간이 촉박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은 그저 노 대표님이 술을 깨기 위한 시간이었다.사연희가 오해한 걸 알아차린 정민아는 해명하기도 귀찮아져 그냥 사연희를 데리고 나가려 했는데 그때 공민찬이 나오면서 말했다.“고 대표님, 방금 룸까지 다 확인했습니다. 사모님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주위의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고연우는 공민찬을 흘겨보며 언짢은 듯 말했다.“너만 입 달렸어?”“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공민찬은 사과 하나는 빨리하며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사모님께 말씀은 하셨어요?”“...”“대표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사모님 마음 못 돌려요. 사모님이 최민영 씨한테 괴롭힘 당할까 봐 문 앞에 사람까지 세워서 지키시면 뭐해요, 이런 건 대표님이 말씀 안 하시면 사모님은 영영 모르실 텐데요. 그럼 감동도 못 받으실 테고 사모님이 감동하지 못하시면...”그런 공민찬을 보던 사연희는 주먹을 말아쥐며 입술을 깨물더니 정민아에게 귓속말을 했다.“안 되겠어, 나 여기 더는 못 있겠어.”밖으로 나가기 전 사연희는 한 번 더 공민찬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사연희가 만약 공민찬처럼 말 많고 사실만 얘기하며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 비서를 뒀다면 얼마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을 텐데 무표정으로 듣기만 하는 고연우를 보니 허벅지 대표님의 성격은 꽤 차분해 보였다.“입 다물어.”그 차분한 고연우도 더는 듣기 싫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공민찬 손에 들려있던 차 키를 뺏어 들고는 정민아를 보며 말했다.“가자.”“응.”정민아의 대답을 들은 고연우의 발이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한참 만에 땅에 닿았다.정민아의 조롱 섞인 거절이거나 분노는 너무나 익숙하고 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