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준은 진은영의 차가운 목소리에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잠시 후, 그는 애써 자신의 성격을 눌러가며 말했다.“내일 점심에 회사로 데리러 갈 테니까 잊지 마요.”비즈니스 회관 복도에서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던 진은영의 눈에는 촉촉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저절로 유이준과 임하민의 포옹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아려왔고 목소리까지 함께 가라앉았다.“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아요. 더군다나 그런 자리는 제가 갈 자리가 아니잖아요.”유이준이 그 말에 반문했다.“왜 은영 씨가 갈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밤이 깊었다.진은영은 점점 지루해졌다.그녀가 원한 것은 단지 모호한 감정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향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술기운이 담긴 나지막이 물었다.“이준 씨, 이준 씨는 저 사랑해요?”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스쳤지만, 여전히 진은영은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술 마셨어요?”진은영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대답했다.“네.”밀려오는 실망감과 슬픔에 눈을 뜰 수 없었다.하지만 진은영은 자신을 슬픔이라는 감정 속에 오래 노출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만약 회사가 강제로 현대에게 인수된다면 진은영이 여태껏 쏟아왔던 모든 것들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녀는 수중에 조금 남은 돈으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을 진은영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유이준이 더 말을 꺼내기 전에 진은영은 빠르게 전화를 끊고 다시 객실로 돌아갔다. 박 대표는 여전히 검은색과 황금색이 섞인 테이블 옆에 앉아 잔을 들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약간의 고민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35살에서 3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얼굴의 박 대표는 한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은 상태였다. 전처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났던 아들은 지금 해외에서 공부 중이었다. 그는 지금 독신이긴 했지만 사업을 통해 몇 차례 유흥은 즐겨본 사람이었다.객실로 돌아온 진은영
차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진은영의 얼굴은 마치 유령처럼 창백했다.그녀는 유이준이 차가운 표정을 마주하며 문득 깨달았다. 오랜 시간 동안 유이준과 함께 지내왔고 둘 사이에는 진별이까지 있었지만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만약 유이준이 진은영과 같은 세계에 살고 있었다면 어떻게 이런 눈빛으로 진은영을 바라볼 수 있을까?어떻게 임하민이랑 그런 사랑을 나눠놓고도 이런 모욕감을 준단 말인가?진은영, 참 어리석기도 하지.너무 평화로운 나날들만 보내서 약해진 거야? 이제 와서 뒤늦게 연애 감정에 빠져버렸다는 건가?오늘 진은영은 어리석게도 유이준에게 자신을 사랑하냐는 질문까지 던졌다. 대체 무슨 대답을 기대했단 말인가?이제 그는 답을 주었다. 유이준에게 진은영은 그저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여자일 뿐이다.유이준이 자신을 사랑해주길 기대한 것일까.한참이나 침묵이 흘렀다...진은영이 소리 죽여 웃었다.“맞아요, 이준 씨말대로예요. 나 진은영은 그런 여자예요.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여자라고요!”그 말에 유이준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진은영!”진은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빳빳이 폈다.“저는 이준 씨가 아니에요. 태어날 때부터 풍족한 게 아니었다고요. 오늘 제가 일궈낸 건 다 저 스스로 해낸 겁니다. 앞으로 나 진은영은 그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든 이준 씨한테만큼은 손을 뻗지 않을 거예요. 사업을 위해 이준 씨와 관계를 갖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준 씨의 이름도 더럽혀질 일은 없겠네요.”차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여태껏 그 아무도 유이준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오직 진은영, 이 미울 만큼 고집스러운 여자만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더 어이없는 것은 자신이 이런 여자와 함께 진별이라는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었다.그 순간, 유이준은 진은영에게 싶은 실망감을 느꼈다. 진별이가 생긴 후로 그는 진은영과의 미래
유이준은 차에 앉아 자리를 뜨는 진은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마음이 울적해졌던 그는 곧 차를 몰고 진은영의 별장에서 벗어났다. 교교한 달빛이 차가운 빛을 내며 높이 떠 있었다. 유이준의 차도 점점 속력을 높였고 그의 마음 역시 달빛처럼 차갑게 식어갔다.마음이 불편했던 탓이었을까. 그토록 신중하던 유이준이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놓고 차를 가드레일 너머에 있는 수풀로 몰아버렸다.이윽고 쿵 하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시멘트 블록에 세게 부딪친 유이준의 차는 이어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에어백까지 터져 나왔다.강한 충격에 잠시 멍해 있던 그는 간신히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차의 보닛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에 그는 더 이상 운전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다른 차가 다니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잠시 후, 그는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고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온 김 비서는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20분도 안 돼 견인차가 와서 유이준의 차를 카센터로 끌고 갔고 김 비서는 직접 차를 끌고 유이준을 데리러 왔다.유이준을 마주한 순간, 김 비서는 저도 모르게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밤하늘 하래 그녀의 상사 유이준은 홀로 코트 단추도 잠그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그의 완벽하리만치 잘생긴 옆모습에는 어딘가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슬픔이라...김 비서는 “슬픔”이라는 단어로 유이준을 묘사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유이준은 태생부터 하늘이 낳은 귀인이나 다름없었고 스물다섯 살에 정식으로 YS 그룹을 이끌며 탄탄대로만 걸어온 사람이었다.“대표님.”김 비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밖이 너무 추워요. 일단 차에 타시죠.”유이준은 길쭉한 손가락으로 담배를 입가에 가져가더니 이내 불을 끄고 김 비서의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가는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 비서는 백미러를 통해 유이준을 바라보며
유이준이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새벽에 가까웠다.밤은 차가웠고 아버지 유선우는 잠도 자지 않은 채 거실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은은한 조명이 유선우의 얼굴을 비추어 각진 그의 이목구비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나이가 60에 가까워지는 유선우였지만 여전히 잘 관리된 미모로 매우 단정하고 멋있는 분위기를 풍겼다.“아직 안 주무셨어요, 아버지?”유이준은 겉옷을 벗어 소파 위에 대충 던지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그 모습을 보던 유선우는 웃음을 터뜨렸다.“평소엔 집에서 담배 안 피우더니, 뭐야 오늘은? 여자가 널 속상하게 했나? 별이 엄마랑 싸운 거야?”유이준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회관 문 앞에서 봤던 그 장면을 떠올렸다. 그 모습을 떠올릴수록 자신이 정말 바보처럼 느껴졌다.박준식 같은 이혼남까지 웃으며 받아들이다니. 생각할수록 마음속에 분노와 슬픔만이 가득 들어찼다. 하지만 진별이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생긴 이 일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그가 진은영과 얘기를 나누던 때, 진은영이 조금만 부드럽게 나왔다면 그 역시 더 몰아붙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장면은 단지 우연이었을 뿐이라고, 절대 진심이 아니었다고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진은영은 거절은커녕 인정을 해버렸다.그녀는 자신이 목적만 가지면 그것을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그렇다면 진은영은 이때까지 얼마나 많은 남자와 관계를 가져왔을까?그는 생각할수록 이 감정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졌다.유선우는 괴로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는 유이준의 어깨를 토닥이기 시작했다.“이준아, 네가 24살이 되기 전까지 나랑 네 엄마는 개인적으로 계속 널 걱정해왔단다. 네 성향이 남들과 다를까 봐. 네 곁에는 너랑 어떤 접점이 있던 여자가 한 명도 없어와서 그랬어. 그래서 네 취향을 존중해줘야 할까에 대해서도 계속 얘기해봤지. 하지만 우리가 경솔했어. 네가 여자에게도 관심이 없고,
유이준은 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가볍게 대충 입을 열었다.“아까 오다가 차가 좀 긁혀서요. 별일 아니에요.”조은서는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유이준이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가 작은 담요로 별이를 감싸 안으려 하자 조은서를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겨우 잠들었어. 자기 전에 우유 한 병 마시더니 엄마를 계속 찾더라고. 이따가 깨면 네가 달래줘야 할 거야.”유이준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달랠게요.”진은영에게서는 큰 실망감을 안고 돌아왔지만 유이준은 별이를 진심으로 아꼈다. 별이에게서는 그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 말이다…밤이 깊어갔다. 유이준은 아이를 품에 안고 텅 빈 복도를 걸었다. 별이는 잠결에 잠시 멍해 있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가 아빠의 냄새를 맡자 곧장 손을 뻗어 유이준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아이가 내뱉는 따스한 숨결이 목을 간지럽히자 유이준의 마음 역시 한결 편해졌다.“아빠.”별이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엄마를 찾았다.유이준은 아이를 더 끌어안으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며칠만 더 지나면 엄마 만날 수 있어.”그는 생각보다 무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별이의 양육권은 얻어야 하지만 진은영이 아이의 친모라는 사실을 감안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모녀가 만날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별이는 아빠의 가슴에 조용히 몸을 기대며 그의 안정적인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유이준은 자신의 침실 앞에 도착하자 한 손으로 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드등을 켰다.따스한 노란 빛이 부드럽게 방을 밝혔다. 자신의 품에 안겨 아직도 잘 자는 별이를 유이준은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부드러운 조명 아래, 아이의 피부는 도자기처럼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다.유이준은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가 더 어렸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매일 밤, 이렇게 조용히 이불 속에서 자랄 아이를 생각하며 혈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다음 날, 유이안과 강원영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일부러 어린 강
한편, 조은혁은 자신의 딸을 돌보느라 정신이 팔렸었고, 그 반면에 진안영은 조용히 한쪽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유이준과 진은영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유이준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점심을 먹기 전, 아마 일부러였는지는 몰라도 진안영은 화장실에서 유이준과 마주쳤다.따뜻한 저택 안에서 연한 분홍색의 울 드레스를 입고 있던 진안영은 온화하고도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유이준의 옆에 서서 황금색으로 된 수도꼭지를 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별이 양육권을 원한다는 거, 저도 알아요. 별이가 도련님 아이인 건 맞으니까요. 하지만 별이는 도련님만의 아이가 아니잖아요. 우리 언니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를 때, 힘들게 별이를 낳았어요. 도련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간에, 언니는 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어요.”“화해를 권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도련님, 옛날 일을 생각해서라도 언니한테 한 번쯤이라고 기회를 주면 안 될까요? 도련님한테는 얼마든지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할 기회가 있고 아이를 가질 기회도 있겠지만 저한테 언니는 별이밖에 없어요.”거울 속의 유이준은 진안영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그래요?”아마도 진은영 때문이든 조진범 때문이든 유이준은 진안영과 친척이긴 했지만 전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그녀는 진은영을 대신해 중간에서 자비를 베풀어달라 부탁하는 상황이었다.유이준은 말을 마치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진안영은 거울 앞에 홀로 남아 멍하니 서 있었다.유이준이 양육권을 다투려는 사실을 아직 유씨 가문과 조씨 가문 모두 모르고 있었고, 분명 유이준 역시 이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진안영 역시 입을 열기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자칫했다가는 진은영의 입장만 더욱 난처해질 것이 뻔했다.온 가족이 유이준과 진은영의 갈등을 알고 있던 지금, 별이가 상처를 받을 것이 두려워 이 문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오후가 되자 유이안과 강원영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
유이준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멍해졌다.아무도 유이준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 바보도 아니고 진은영과 유이준 사이에 감정적인 얽힘이 있다는 것은 빠르게 눈치챘다. 둘 사이에는 심지어 아이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방금 유이준의 말뜻은 이제 진은영을 완전히 밀어내겠다는 뜻이 아닌가?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그 아무도 감히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마침내 용기를 낸 김 비서가 입을 열었다.“유 대표님이랑 진 대표님께서 편히 얘기 나누셔야 하니까 저희는 잠시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어떨까요?”유이준은 진은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말했다.“지금 우리 법무팀은 제 이혼 소송을 위해 꾸려진 팀이니까 굳이 자리를 피할 이유도 없습니다.”김 비서 역시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조용히 옆으로 물러섰다.유이준은 다시 진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은영 씨가 아이를 키우는 데 엄청난 힘과 돈을 들였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은영 씨가 아이를 헛되이 낳은 걸로 만들 생각은 없거든요. 원하는 걸 말해보세요. 타당하다 싶은 건 뭐든 다 받아들일 테니까요. 그리고 별이를 보고 싶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별이를 데리고 같이 밤을 지새우는 건 안 돼요.”진은영은 조용히 유이준을 바라보았다.귓가에는 그가 내뱉은 차가운 단어들이 맴돌았다.[아이를 헛되이 낳은 걸로 만들지는 않겠다.][원하는 걸 말해봐라.][만나는 건 가능하지만 밤을 지새우는 건 안 된다...]...이것이 유이준이 베푼 자비라는 걸까.예전 같았으면 진은영은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겠지만 별이의 문제였던 탓에 그녀는 함부로 굴 수 없었다. 오히려 유이준에게 애원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별이 데리고 하와이에서 살게 해주세요. 별이는 없는 셈 치고 이준 씨 결혼 생활에 아무 타격 없게 할게요. 여기 회사도 다 정리할 거고, 다시는 B 시에 잘 안 들일게요... 제발 별이 양육권
박준식은 돌리는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지난번에 한 번 만났을 때, 저는 이미 진심으로 진 대표님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괜찮다면 더 깊이 알아가고 싶은데요. 만약 저희가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까지 마친다면 저는 충분히 진 대표님 회사에 투자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혼자라면 아이의 양육권을 얻는 데도 문제가 없을 거고요.”더 말할 것도 없었다. 박준식의 말에 진은영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박준식에게 아무런 감정도 품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두 사람은 비즈니스적으로 봤을 때는 아군보다 적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유이준에게 크게 데인 상태였고, 별이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서라면 박준식과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걱정거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박준식과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녀는 박준식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박준식과의 결혼은 진은영에게 있어 그저 단순한 거래에 불과했다.석양이 지며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었다.차 안에 있던 진은영이 조심스레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다른 조건은 다 뒤로 하고요, 일단 명확히 하고 가야 할 게 있는데요. 저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습니다.”하지만 박준식은 생각보다 더 흔쾌히 진은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저한테도 아이가 있고 진 대표님한테도 이미 별이가 있으니까요... 아이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저도 진 대표님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해드리겠습니다.”진은영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그럼 내일 다시 만나서 조금 더 자세히 얘기 나눠보죠.”박준식은 기분 좋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전화를 끊은 진은영은 온몸의 힘이 전부 빠져나간 듯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댄 채 하늘의 금빛 노을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희미하게 깃든 아픔은 점점 짙어져 이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변해갔다.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내일 박준식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나누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히 별이의 양육권을 찾아오기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