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이 크고 단단한 유이준은 부드러운 여자의 몸을 대신할 수 없었다.깊은 밤, 그는 다섯 살이 된 진별이를 안고 침실 안을 걸어 다니며 조용히 달래고 있었다.진별이가 곧 잠에 들려고 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천둥이 울리고 폭우가 쏟아지며 세상을 뒤덮었다.우렁찬 소리에 진별이는 놀라서 깨어 버렸다.진별이는 유이준을 좋아했지만 화려하고 멋진 유씨 저택이 나고 자란 곳이 아니다 보니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면 자신을 키워준 아줌마가 그리웠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사무쳤다.진별이가 엄마를 찾으며 크게 울었지만 유이준은 마음을 다잡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진별이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울다 지쳐 잠들었고 잠시 뒤 천둥소리에 다시 놀라 깼다.그렇게 몇 차례를 반복하자 유선우와 조은서로 소란스러움에 깨어났다.유선우는 마음이 아팠다. 그는 아들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넌 융통성이 없는 나무토막이야? 밖에 비가 온다고 핸드폰이 안 통해? 너랑 진별이 엄마가 다투고 있다고 해서 진별이가 엄마랑 통화조차 못 하게 해? 무슨 아버지 노릇을 그렇게 하는 거야!”유이준은 자연스레 말문이 막혔다.조은서도 질책하며 말했다.“애가 그렇게 울면 몸 상해. 얼른 은영이한테 전화부터 해서 날 밝으면 며칠 동안이라도 아이를 보내줘. 이렇게 어린애가 엄마 없이 어떻게 지내?”이때 진별이는 유이준의 어깨에 기대어 간신히 잠들어 있었다.유이준은 어쩔 수 없이 진별이의 양육권 얘기에 대해 꺼냈으나 이유는 생략했다.이야기를 들은 유선우 부부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그들은 둘이 다퉜다는 사실은 짐작했지만 유이준이 법무팀까지 동원해 아무런 힘도 없는 진은영을 괴롭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유선우는 유이준을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유선우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따끔하게 말했다.“유이준, 너도 참 대단하다. 사업하며 배운 수법을 자기 여자한테 써먹어? 진은영이 누구야? 네 아이 엄마야! 어떻게 아이를 엄마로부터 억지로 떼어놓으려고 해? 이
진은영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오후에 봐요. 오전에는 약속 있어요.”유이준은 진은영이 사업을 하고 있으니 만날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해 그녀의 의견에 따라 오후로 약속을 잡으며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유이준이 장소를 YS 그룹으로 정할 것이라는 진은영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고급 클럽의 프라이빗 룸으로 정했다. 진은영은 유이준이 변호사들을 데리고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 장면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시렸지만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진은영이 동의하자 유이준은 전화를 끊었다.유이준은 자신이 생각해 둔 타협안이 그리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유이준은 여전히 진은영과 박준식 사이의 일을 신경 쓰고 있었고 그녀가 자신을 아끼지 않음을 원통하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유이준은 어스름한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새벽부터 진별이를 안고 왔다.아버지인 유이준이 직접 진별이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봄이 시작되는 날씨라 진별이는 노란 오리 무늬의 스웨터를 입었다. 하얗고 작은 얼굴은 유난히 귀여웠는데 그녀는 동그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아빠를 바라보았다.“정말 저를 엄마한테 보내주시는 거예요?”유이준은 진별이에게 양가죽 신발을 신기며 고개를 끄덕이고 반쯤 무릎을 굽힌 채 아이를 안고 약속했다.“그래. 아빠가 금방 다시 진별이를 데려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진별이는 안심하며 유이준의 목을 끌어안고 뽀뽀했다.“진별이는 아빠가 좋아요.”그 말에 유이준은 마음이 저렸다.또한 자신이 한 결정이 옳음을 느꼈다.아침 싟를 마치고 유이준은 진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주었다.출발하기 전 유선우 부부는 아쉬움을 표했다.그들은 박준식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아이만 있으면 두 사람도 언젠가 다시 합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진별이를 기꺼이 돌려보냈다.그러나 유이준이 진은영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었다.진은영의 별장에 도착한 유이준이 아이를 하와이에서 함께 온 가정부에게 넘겼다.차에서 내린 진별이가
“당신은 그저 유씨 가문 사모님 역할만 하면 돼요. 유씨 가문 사모님으로서의 의무로는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YS 그룹에 스캔들을 일으킬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부부로서의 의무도 포함됩니다. 둘째 아이를 가질지는 결혼 2년 후에 다시 결정하도록 하죠.”유이준이 그의 뜻을 완전히 표시하고 말을 끝냈을 때 진은영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청난 특혜를 주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매일 아이를 볼 수 있고 매년 200억의 생활비가 지급되고 둘째 아이를 낳을 기회까지 주시네요. 유 대표님, 많은 여자가 그 자리를 부러워할지 몰라도 저는 아닙니다. 이 결혼에서 당신은 저를 한 사람으로 대우할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유이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진은영이 단칼에 거절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이전에는 울고불고 매달리며 진별이를 데리고 하와이에서 살겠다고도 하더니... 나랑 결혼하는 것보다 그게 더 좋은가?’유이준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거절하면 부모님 설득할 방법은 많아요. 예를 들어 진별이를 먼저 해외로 보낸다던지...”유이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진은영은 그의 뺨을 후려쳤다.청명한 소리가 정적을 깼고 두 사람 사이의 마지막 정까지 끊어냈다.두 사람은 급박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매섭게 노려봤다.한참 후, 유이준이 손을 높이 들었으나 진은영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은 채 그의 손길을 기다렸다.‘차라리 잘 됐어. 서로 한 대씩 주고받으면 이전의 정까지 끊어내고 원수로 지내도 괜찮겠지.’하지만 유이준은 그녀의 뺨을 내려치는 대신 그녀의 볼에 사뿐히 손을 내려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진은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상담했었어요. 제 부채를 상쇄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기만 한다면 이준 씨는 제 양육권을 빼앗을 수 없어요.”“그래요?”유이준이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진은영 씨, 너무 순진하시네요. 어디 가서 조 단위
진은영이 아래로 내려가자 길이를 추가한 검은색 캠핑카가 빌딩 앞에 세워져 있었다.진은영이 다가오자 기사가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열며 공손하게 말했다.“박 대표님께서 계속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정말 진심입니다.”기사가 말한 박 대표님이란 바로 박준식이었다.오전, 박준식과 진은영은 원만한 합의를 이루어 결혼을 하기로 했다.이 결혼은 거래에 더 가까웠다.진은영은 박준식이 가지고 있는 자산의 뒷받침이 필요했고 박준식은 대외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아내와 진은영이 진행 중인 신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가 필요했다.진은영과 결혼하면 박준식은 상당한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는데 그 누구도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니었다.진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 뒷좌석에 올랐다.박준식이 완벽한 차림새를 한 채 진은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그녀의 능력에 대한 인정과 알아채기 어려운 남성적인 부드러움이 있었다.박준식 같은 남자는 거래를 위한 결혼이 필요 없었다.하지만 그가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진은영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었다.박준식은 그녀를 얻고 싶었고 더 나아가 소유하고 싶었다.캠핑카 뒷좌석은 매우 넓었지만 진은영은 불편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낯설다시피 한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약혼자였고 두 달만 있으면 진정한 부부가 될 사람이었다.오전 중, 그들은 많은 세부 사항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디테일은 모두 그녀와 진별이의 성장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박준식은 그녀의 기분을 눈치채고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결혼 후에도 최대한 당신을 존중해줄게요.”그의 말에 진은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강한 척하는 그녀가 결혼에서 원하는 건 단지 존중일 뿐이었다....클럽 안, 진은영이 자리를 떠난 후 유이준은 한참이나 룸 안에 앉아 있었고 김미영은 곁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10여 분 후, 유이준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김 비서, 진은영이 결혼하겠다고
조진범은 자기 아내를 올려다보며 눈으로 물었다.[은영이한테 언제 이런 약혼자가 생긴 거야? 유이준이 알면 분명 미쳐 날뛸 텐데?]진안영은 아이를 안아 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도 이틀 전에 알았어요. 당신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유이준은 언니랑 소송 중이잖아요. 이게 더 좋은 결말 아닐까요?”그날 유씨 저택에서 진안영은 유이준에게 간청했지만 유이준의 태도는 강경했다.그 순간 진안영의 마음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유이준을 상대하고 있는 진은영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그래서 박준식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진안영은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반대하지 않았다.세상에 누군가가 진은영을 보호하고 그녀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다면 그 남자가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안영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조진범은 달랐다.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제일 잘 안다고 했다. 하물며 두 사람은 사촌 형제였다.유이준이 진은영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결혼식장을 뒤집어엎을 수도 있었다.그래서 조진범은 소파에 몸을 기대어 담담히 유이준에게 문자를 보냈다.[네 전 여자 친구랑 식사 중이야. 박준식이라는 남자와 함께 있는데 사업을 꽤 크게 하는 사람이야. 아, 양쪽 부모님도 와 계셔. 그리고 진별이가 그 남자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아주 자연스럽더라. 곧 있으면 아빠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어.]문자를 보내고 난 후, 조진범은 친절하게 레스토랑 이름과 위치도 함께 첨부했다.그는 문자를 다 보내고 어린 딸을 품에 안고 다정히 달래주었다.우연의 일치로 유씨 가문 사람들도 같은 레스토랑 다른 룸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유선우 부부, 유이안과 강원영이 어린 강윤을 데리고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식사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유이준은 조진범의 문자를 받았다.유이준은 문자를 두 번이나 읽어보고 나서 진은영과 박준석이 상견례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아챘다.그것도 같은 레스토랑에서 말이다.유이준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한순간,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모두가 유이준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신혼부부처럼 다정하게 나란히 앉은 진은영과 박준식을 번갈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주 화기애애하네요. 결혼 이야기 중이신가요?”진별이가 유이준을 바라보며 귀엽게 말했다.“아빠!”진별이의 목소리에 유이준은 이성을 되찾아 상을 뒤엎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진별이에게 다가가 아이를 안아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은영을 응시하며 말했다.“잠시 나와서 얘기 좀 하시죠.”진은영이 라 답하기도 전에 유씨 가문 사람들도 룸에 들어왔다.안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고 잠시 멈칫한 유선우가 얼른 유이준에게 말했다.“은영 씨가 가족 모임 중인가 보네. 나중에 다시 얘기해. 급할 것 없잖아.”유선우는 진은영이 마음에 들었고 며느리로 삼고 싶었다.하지만 유이준이 진은영을 몰아붙여 그녀가 급하게 상견례까지 하는 마당에 더 이상 권유할 입장은 아니었다.게다가 진별이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싸움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유선우의 단호한 태도와 진별이의 존재 덕분에 유이준은 겨우 분노를 억눌렀다.유이준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진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약속 시간은 다시 정하시죠.”진은영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유이준이 진별이를 데려가려 했지만 잠시 생각하던 진은영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유선우 부부가 있는 한 그녀는 진별이의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이렇게 한바탕 소란은 일단락되었다.사람들이 나가고 룸 안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마음은 모두 무거웠다.박준식의 부모님은 융통성 있는 분들이셨다.그들은 조금 전 들어온 남자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고 또한 어른으로서 그 남자가 진은영에게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들은 자기 아들이 젊고 잘생긴 남자의 상대가 되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박준시근 진은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는 배려심 있게 부모님을 먼저 돌려
밤이 깊어지고 유씨 저택 안에서 유선우 부부는 성심성의껏 진별이를 달래고 있었다.그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진별이를 대했고 작은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도, 진별이 앞에서 박준식이라는 사람에 관해 묻지도 않았다.어른들의 일은 어린아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쌀쌀한 봄날의 밤, 유이준은 얇은 흰 셔츠 하나만을 걸친 채로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 바닥에는 꽁초가 쌓여 작은 더미를 이루었다.시간을 계산한 유이준은 담배를 끄고 옷을 입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1층에서 유선우가 그를 멈춰 세우며 물었다.“어디 가니?”하지만 유이준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현관문을 밀며 말했다.“진은영 만나러요.”차가운 바람이 불어 들어오자 유선우는 유이준을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하룻밤도 못 기다려? 네 성격은 대체 누굴 닮은 거냐? 그렇게 신경 쓰였으면 처음부터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지 말았어야지! 이제 와서 수습하려 해도 늦었다.”유이준은 별다른 답 없이 세차게 현관문을 닫았다.유선우는 그의 행동에 또다시 욕설을 내뱉었다....차에 올라탄 유이준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무기력함을 느꼈다.그는 또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고 불을 붙여 몇 모음 빨다가 끄고 엑셀을 밟아 진은영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고요한 밤, 성능 좋은 검은색 벤틀리가 도로를 빠르게 질주하여 반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검은색 꽃이 수 놓인 대문 앞에 도착했다.유이준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진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몇 번 울린 후 그녀가 전화를 받자 유이준의 목소리는 밤공기보다 더 서늘했다.“집 앞에 있어요. 잠시 얘기 좀 하시죠.”잠시 생각하던 진은영이 동의했다.전화를 끊은 진은영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하연을 마주했다.예전에 있는 사모님이었던 하연은 유이준을 알고 있었다.그의 성격에 대해서도 겪어본 적 있는 하연은 걱정이 앞섰지만 진은영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안심시켰다.“엄마, 몇 마디만 하고 들어올 거
유이준의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고생을 먹은 것도 사실이었다. 매번 혼자 멍때릴 때 유이준이 임하민을 안고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떠올랐다.평화는 이대로 끝이었다...유이준은 진은영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목을 잡고 차에 밀쳤다.“이준 씨!”진은영은 놀란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유이준은 고개 숙여 헤아릴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입맞춤하는 것이다. 반강제적인 입맞춤에 진응영은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유이준이 다리로 받쳐주지 않았다면 스르륵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진은영이 애원했다.“이준 씨, 이런 안 돼요...”하지만 유이준은 못 들은 척 더욱 거칠게 대했다. 진은영은 어쩔 수 없이 한쪽 손으로 그의 뺨을 때렸다.쨍한 소리와 함께 정적이 깨지고 말았다.유이준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진은영을 쳐다보았다.이번이 두번째로 그에게 손대는 것이다.차에 기대어 있던 진은영은 살짝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이준 씨, 저는 곧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사람이에요. 과거는 과거일 뿐, 저는 이제부터 박 사모님이 될 거라고요. 그리고 이준 씨도 하민 씨와 잘될 거고요... 이준 씨, 제가 이렇게 빌게요. 네?”유이준은 그녀를 우두커니 쳐다보았다.“난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을 것이고, 아직 결혼할만한 상대도 없어요. 저는 더이상 감정 문제와 혼인 생활에 정력을 쏟고 싶지 않아요. 이것만 물어볼게요. 박준식 씨랑 결혼할 거예요? 아니면 저랑 결혼할 거예요?”공기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진은영은 다 큰 어른이라 박준식과 한 협의도 장난이 아니었다.어두운 밤, 유이준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조용히 담배를 피우면서 진은영을 주시했다. 담배 한대를 다 피울 때까지 시간을 줬지만, 진은영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글썽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서로 사랑한다고 해서 달라질 거 뭐 있어. 성격이 안 맞아서 맨날 싸우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데.’유이준의 손에 쥐고 있던 담배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