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진은영은 눈가가 촉촉한 느낌에 손으로 만졌더니 온통 눈물이었다.어두운 밤, 그녀는 유이준이 떠나가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있었던 추억을 되돌려 보았다.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했더니 박준식이었다. 잠시 후 진은영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준식 씨.”이해심과 존경심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기만 했다.“은영 씨, 저희 아직 관계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해도 괜찮아요.”박준식은 비즈니스맨으로서 무엇보다도 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그런데 그런 그에게 어쩌다 진짜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심지어 오늘 진은영이 마음이 바뀌었다면 유이준과 그녀를 축복해 주기로 했다. 나중에 가끔 불같은 성격의 진은영과 함께했을 때의 자신이 얼마나 마음 넓은 사람이었는지 추억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진은영이 감정을 추스르면서 이렇게 나지막하게 말하는 것이다.“이준 씨가 고소를 취하했어요. 준식 씨, 저희 결혼해요.”전화기 너머의 박준식은 1분 동안 침묵하다 그제야 진은영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사실 진은영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은커녕 좋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랑 결혼하기로 한 최대이유가 유이준과 헤어지고 싶어서겠지?’성격이 좋지 않은 유이준에게 상처받은 진은영은 그에게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박준식한테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무조건 하고 싶다고 할 것이다.돌싱이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인 그에겐 진은영 같은 사람이 가장 좋은 결혼 상대였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예쁘기도 한데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밤, 진은영과 유이준은 이대로 헤어지게 되었다....애인을 잃어버린 유이준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유씨 저택으로 향했다. 진은영 말고도 그에게는 진별이를 포함한 가족이 있었다. 진은영이 누구한테 시집가든 진별이는 영원히 그의 딸이었다.별장
핸드폰을 확인하니 진은영한테서 답장이 온 것이다.[네.]아주 짤막한 답장이었다.문자를 한참 쳐다보던 유이준은 왜 진은영과 사이좋았을 때마저도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말만 했을까 후회되기도 했다.헤어진 지금이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 보였다.진은영은 곧 다른 사람의 와이프가 될 사람이었기 때문에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 내내 그녀의 답장을 곱씹어 보다 결국 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다.문 앞에서 한참을 지켜보던 유선우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조은서에게 말했다.“우리 집에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 납셨어. 하하.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쌤통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조은서는 생각이 많았다.유이준이 진별이를 데려간 틈을 타 박준식에 대해 조사해 보았는데 마침 조은서의 아는 사람이 박준식의 전처와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둘은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성격이 안 맞다는 이유로 이혼했고, 이혼 후에도 아들 때문에 가깝게 지낸다고 했다.그러다 큰 비밀을 알게 되었다.박준식의 전처가 유방암을 앓고 있는데 박준식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타이밍에 박준식한테 알려주면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겠지? 새로 찾아온 사랑이냐, 사랑했던 전처냐,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당연히 조은서는 몰래 진행하려고 했다....아침햇살이 비춰들어 오고, 잠에서 깨어난 유이준은 고개 숙여 진별이를 쳐다보았다.진별이는 유이준의 품에 엎드려 자고 있었고, 마침 발이 그의 복근에 닿아있었다. 녀석의 따뜻한 볼 때문에 가슴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른다.유이준은 뒤척이지도 않고 조용히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제저녁, 다시는 진은영과 감정적으로 엮이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진별이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이럴수록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새로 맞이할 아내가 진별이를 잘해줬으면 했다.YS 그룹 계승권은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진별이의 권력을 보장하기 위해 잠깐 생각하
반 시간 뒤, YS 그룹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진은영이 박준식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직원들은 싱글 대디인 유이준을 위해 진별이의 새엄마가 되고 싶어했다.그래서인지 아직 젊고 미혼인 여직원들이 장난감과 간식들을 들고 진별이 보러 달려왔다. 알게 모르게 추파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대놓고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상황이 꼴보기 싫었던 김미영은 죄다 쫓아냈다.일에 집중한 유이준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채 진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김 비서, 곽 변호사한테 지분양도서를 가지고 오라고 해.”김미영이 배시시 웃으면서 진별이를 쳐다보았다.‘정말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네.’김미영은 유이준이 시킨 대로 곽 변호사를 불러왔다. 유이준은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직접 일어나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그것도 모자라 특별히 진별이의 손을 흔들면서 인사시키는 것이다.“여기 와봐. 아저씨라고 불러.”진별이는 유이준의 무릎 위에 앉았다. 5살이면 그렇게 어린애도 아닌데 유이준은 이정도로 진별이를 아꼈다.이때 곽민재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쳐다보는 진별이와 그 옆에 있는 유이준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70%는 대표님을, 30%는 진은영 씨를 닮았네요.”유이준은 기분이 좋았다.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었다.유이준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딸들은 원래 아빠를 닮게 되어있어.”간단한 대화 이후, 곽민재는 노트북을 켜 유이준의 뜻대로 지분양도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YS 그룹 50%의 지분을 진별이에게 넘겨주는 것 외에 좋은 위치에 있는 별장과 건물도 넘겨주기로 했다. 그 가치를 따져보면 4조 원은 되었다.심지어 진은영의 몸값보다도 더 비쌌다.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해 왔는데, 유이준을 위해 낳아준 아이보다도 못했다.곽민재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 들어 유이준을 쳐다보았다.“YS 그룹 지분을 양도하는 거, 대표님과는 상의해 보셨어요?”유이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아버지 진별이를 엄청나
저녁쯤 진별이를 데리고 퇴근하던 길에 향기로운 꽃냄새를 맡게 되었다.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이때 벚꽃 가지 하나가 유이준의 검은색 벤틀리 차 안으로 뻗었다. 눈처럼 깨끗한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진별이는 손으로 만지고 싶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유이준은 가지를 꺾어 진별이에게 건넸다.“꺅!”진별이가 몹시 기뻐하더니 유이준의 볼에 뽀뽀했다.순간 피곤함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진별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저 맥도날드 어린이 세트 먹고 싶어요. 채연 아줌마가 그러는데 다른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랑 자주 먹는다고 했어요. 진별이도 먹고 싶어요.”어린이 세트는 물론 하늘의 별까지 따주고 싶었다.“알았어.”유이준은 진별이에게 안전 벨트를 매주면서 알겠다고 했다.10분 뒤, 맥도날드 가게에 도착한 유이준은 안전 벨트를 풀어 진별이를 들어서 안았다. 값비싼 정장 차림에 인형 같은 아이를 안고 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유이준은 늘 그랬듯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맥도날드 가게로 들어간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맥도날드 옆은 바로 웨딩드레스 샵이었고 투명한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진은영이 보였기 때문이다.유명한 디자이너의 작품인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있는 진은영은 몸매와 하얀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허리라인마저 완벽했는데 박준식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이 장면은 유이준에게 충격이 컸다.유이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참을 쳐다보았다. 이때 진별이가 그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아빠. 지금 뭘 보고 있어요?”유이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어린이 세트 먹으러 가자.”“네!”유이준은 진별이를 꽉 안고서 또 진은영을 힐끔 쳐다보았다.성숙하고 듬직해 보이는 박준식과 있으니 나름대로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진은영이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정말 박준식을 좋아하는 건지 알수 없었다. 그런데 하는 행동을 보면 절대 싫어하는 것처럼
...유이준은 뒤돌아 맥도날드 가게로 들어갔다.진은영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박준식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사이가 맞는지 입어봐요. 안 맞으면 다시 수정해야 해요.”박준식은 휴지로 다정하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 와중에 진은영의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이 정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결혼하기로 마음먹지도 않았다.진은영은 고개를 들어 박준식과 눈을 마주쳤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이끌리다보니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수 있었다. 나중에 헤어진다고 해도 박준식은 결혼 상대로 적합한 남자라고 생각될 정도였다.박준식은 직원과 함께 탈의실로 향했다.이제 막 셔츠와 바지를 입었는데 핸드폰이 울리는 것이다. 발신자는 다름아닌 아들 박준서였다.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엄마가 쓰러졌어요.”박준식은 순간 당황했다.전처의 상태를 확인해 보려고 이제 막 사람을 붙여놓았는데 이렇게 빨리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올 줄 몰랐다. 무슨 상황인지 묻자, 박준서가 울먹거리면서 말했다.“어젯밤 엄마가 꿈속에서 계속 아빠 이름을 불렀어요.”박준식은 전처와 큰 다툼이 없었고, 그저 가정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이혼하게 되었다.그래도 그녀와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아들이 불쌍해서라도, 책임감 있는 남자로서 P 국을 다녀와야 했다. 이제 한 달 뒤면 진은영과의 결혼식인데 그녀에게 미안하기만 했다.진은영은 입 밖에 꺼내기 어려워하는 박준식을 보더니 이해하는 마음으로 거창한 말대신 그의 손을 잡고서 나지막하게 말했다.“비서님한테 전용 비행기를 준비시키라고 하세요. 이럴 때일수록 아이도, 엄마도 준식 씨가 필요할 거예요.”진은영은 주나영이 앓고 있는 병이 전 세계적으로 완치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박준식은 순간 목이 메어왔다. 절대 결혼식에 지장이 가지 않게 1주일 뒤에 돌아오겠다고 했고, 또 지금 그에게는 진은영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다.이에 진은영은 피식 웃고 말았다.박준식이 셔
잠시 후, 유이준은 차에 시동을 걸어 일몰 방향으로 달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핑크빛과 보랏빛이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외도된 건지 차는 유난히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진별이는 뒷좌석에서 음도 맞지 않는 동요를 부르고 있었다.운전대를 잡은 유이준의 잘생긴 얼굴에는 미소가 보였다.진은영은 또 한 번 버거를 한입 베어물었다.이순간 누가 봐도 화목한 가정으로 보였지만 진은영을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어디로 가는 거예요?”유이준은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걷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하이힐은 걷다 보면 발뒤꿈치가 벗겨질 수 있으니 차에 앉아 노을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진은영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그저 묵묵히 버거를 먹을 뿐이다. 이때 진별이가 콜라 한잔을 건네면서 귀여운 말투로 말했다.“아빠가 그러는데 엄마가 너무 약해서 드레스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어요.”‘일부러 그런 말을 한 거겠지.’유이준은 피식 웃고 말았다. 기분이 좋아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검은색 벤틀리는 한 시간 정도 시내 중심 주위를 두 바퀴 돌고 유턴해서 진은영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유이준은 운전하면서 하연의 근황을 물었다.달라진 태도에 진은영도 경계심을 늦추게 되었다.“컨디션이 아주 좋아요. 그저 방금 도착해서 적응이 안 되는 것뿐이에요.”유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있을 때 시내 구경 좀 많이 시켜줘요. 최근에 B 시에도 변화가 많았지만 사실 은영 씨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진은영은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이때 진별이가 달콤하게 말했다.“아빠도 많이 변했잖아요.”분위기는 순식간에 묘해졌다.진은영은 유이준이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원성이 가득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다.“아빠는 안 변할 수가 없어. 안 변하면 여자들이 아빠를 안 좋아하거든.”“진별이는 아빠를 영원히 좋아할 거예요.”유이준은 백미러를 통해 으쓱한 표정으로 진은영을
조은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바람을 피우는 남자는 두 개의 핸드폰을 갖고 다니는 건가?유선우가 샤워를 하고 있을 때, 그의 애인이 셀카 한 장을 보냈다.아주 젊은 여자였는데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싼 옷들을 입고 있으니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선우 씨, 생일 선물 고마워요.」조은서는 눈이 아플 때까지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는 유선우 곁에 여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이런 여자일 줄은 몰랐다. 마음이 아픈 외에, 남편의 취향을 알게 되어 놀랐다.그녀는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유선우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등 뒤에서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선우가 물기에 살짝 젖은 채로 나왔다. 새하얀 샤워 가운은 선이 분명한 복근과 가슴을 가려주고 있었는데 더욱 섹시해 보였다.“언제까지 볼 거야.”그는 조은서 손에서 핸드폰을 뺏고 그녀를 힐긋 보더니 옷을 입기 시작했다.유선우는 아내에게 불륜을 들켜서 미안하다거나, 마음이 찔린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조은서는 그런 유선우의 태도가 그의 경제 수입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조은서는 결혼 전에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지금은 그저 유선우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사는 가정주부니까.조은서는 그 사진으로 따지고 들지 않았다. 따지고 들 수 없었다.나가려는 유선우를 본 조은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선우 씨,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유선우는 천천히 벨트를 매고 조은서를 보며 작게 웃었다. 아마도 아까 침대에서 가냘픈 목소리로 반응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또 하려고?”이건 사랑이 아닌 그저 관계일 뿐이다.유선우는 조은서를 아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실수였을 뿐이고, 어쩔 수 없이 한 결혼이니까.시선을 거둔 유선우는 침대맡에 놓인 파테크 필리프 시계를 손에 차며 담담한 말투로 얘기했다.“오 분 정도밖에 없어. 운전기사가 밑에서 날 기다리고 있고.”조은
6년이다. 조은서는 유선우를 6년 동안 좋아했다.힘이 빠진 조은서는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다....유선우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금요일 저녁, 조은서의 친정에는 큰일이 생겼다.조씨 가문의 장남인 조은혁이 JH 그룹의 경제 범죄 사건 때문에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0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 충분한 시간이다.그날 밤, 조은서의 아버지는 급성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 갔고 상황이 긴급해 수술이 필요했다.조은서는 병원 복도에 서서 계속 유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유선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은서가 포기하려고 할 때, 유선우가 문자를 보냈다.여전히 짧은 문자였다.「H시에 있어. 일이 있으면 진 비서에게 연락해.」조은서가 또 전화를 걸자 유선우는 전화를 받았다. 조은서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선우 씨, 지금 우리 아빠가...”유선우는 그런 조은서의 말을 끊었다. 귀찮아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얘기했다.“돈이 필요한 거잖아? 몇 번을 말해. 돈이 급한 거면 진 비서를 찾아가라고. 조은서, 듣고 있어?”...조은서는 고개를 들어 무표정으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스크린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YS의약 그룹 대표 타워랜드 대절, 이성 친구를 위한 불꽃 축제」화면 속에는 불꽃이 예쁘게 터지고 있었다.젊은 여자가 휠체어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조은서의 남편인 유선우는 바로 그 휠체어 뒤에서 핸드폰을 쥔 채 그녀와 통화하고 있었다.조은서는 눈을 깜빡였다.그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선우 씨, 지금 어디예요?”유선우는 잠시 멈칫했다. 조사받는 기분이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저 대충 대답했다.“바빠. 별일 없으면 이만 끊을게. 진 비서한테 연락해.”유선우는 울먹이는 조은서의 말투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고개를 숙여 옆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꽤 다정했다.조은서는 눈앞이 까매지는 기분이었다.아, 유선우에게도 부드러운 면이 있구나.등 뒤에서는 새엄마인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