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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2화

전화를 끊고 조진범은 한참 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비로소 손끝의 담배가 꺼진 것을 발견했다. 담배의 절단된 부위로부터 담뱃재가 양복바지에 떨어져 내렸고 길쭉한 손끝은 영문도 모른 채 가볍게 떨려 났다.

다시 눈을 들어보니 그 임산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문득 조진범은 가속 페달을 밟은 후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뒤쫓아갔지만 백 미터 정도 달려나가더니 다시 급정거하며 차를 멈춰 세웠다. 온몸이 심하게 떨려 나고 그는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정신을 차렸다.

조진범은 손가락을 떨며 담배 반 토막에 다시 불을 붙였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미친 것마냥 처음 보는 임산부를 뒤쫓아 갔던 거지? 임산부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감정제어가 안 된다고? 아니라면 어깨에 늘어뜨린 푸른 머리카락이 전처와 똑 닮았기 때문일까?

만약...

만약 진안영이 임신했다면 그녀도 풍만한 몸으로 이런 슈퍼마켓에 와서 어린아이들 물건을 사고 눈 오는 날 혼자 걷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남편은?

여자의 남편은 왜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았을까? 사이가 좋지 않은 걸까?

조진범의 눈동자가 점차 흐릿해져 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왜 낯선 여자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지? 조진범은 이제 반드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다. 조진범의 삶.

조진범은 정지혜라는 여자와 선을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안영과 선을 본 지 이제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불과 1년 만에 그는 결국 또 실혼을 하고 또 선을 보러 간다... 모든 것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부드러운 가랑눈이 자동차 앞 유리에 푸슬푸슬 내려앉았다.

조진범은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검은 와이퍼는 마치 이 아득한 세상 사이의 유일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는 조용히 그 와이퍼를 지켜보며 남은 담배를 천천히 피웠다.

잠시 후, 차에 시동이 걸리고 조진범은 이 자욱한 눈 사이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자동차의 바퀴 자국은 북쪽으로 향했고...

조금 전 진안영의 발자국은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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