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은 눈을 찌푸렸다.그는 나무 아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아내와 꽤 괜찮은 외모의 남자를 바라보았다.조진범과 함께 있을 때와 달리 진안영의 눈빛은 편안했다.남자가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그는 평범한 선생님은 아니었다.그는 남자의 진안영을 바라보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바라보며 질투심이 피어올랐다.남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겨울날 밖에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조진범은 그들에게 더 긴 시간을 주지 않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안영 씨."가까운 거리에서 조진범이 아내를 불렀다.진안영은 고개를 들어 멍하니 조진범을 바라보았다.그가 학교까지 와서 자신을 데리러 올 줄 꿈에도 몰랐다.그때, 조진범이 하도경에게 악수라도 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조진범입니다. 안영 씨 남편이죠."하도경은 의외였다.JH 그룹의 대표인 조진범을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진안영의 남편이라는 신분은 익숙지 않았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 연예인과 스캔들이 난 그가 지금은 아내와 사랑을 속삭이다니.하도경은 진안영을 좋아했다.하지만 그는 진안영에게 남이었다.그는 진안영의 상사이자 동료였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하도경은 자신 때문에 눈앞의 부부관계가 깨지기를 원하지도 않았기에 그도 손을 내밀었다."하도경입니다! 학교 부교장이죠."조진범은 그의 손을 맞붙잡았다."부교장이셨군요."그리고 조진범은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다."우리 집으로 돌아가죠."진안영은 하도경과 인사를 나누었다."저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하도경은 등불 아래서 잔잔히 웃음을 지었다."조심히 들어가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진안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미소를 지었다."도경 선생님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그녀가 머뭇거리던 몇 초의 시간 동안 조진범은 불타오르는 질투를 느꼈다.하지만 그는 신사적인 모습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차에 올라탄 후 진안영은 옆자리에 앉은 조진범을 빤히 쳐다보았다."기사님은요?""먼저
"아예 뭐요?"조진범은 핸들 방향을 틀고 진안영에게 되물었다.그는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티 내지 않고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보았다."아예 이혼하려고요? 그리고 그 하도경 부교장과 함께하려고요?"그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퍼부었다.여태까지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이야기했었다.하지만 여자 연예인, 부교장 그리고 사후 피이약은 그들의 평화로운 관계를 깨뜨리기에 충분했다.그들도 싸울 수 있었고 여느 커플처럼 질투를 느낄 수 있었다.설령 상대에 대한 소유욕이라도 말이다.진안영은 그의 아내였고 다른 남자에게 뺐길 수 없었다.진안영은 눈시울이 붉어져 반문했다."진범 씨, 뭘 하려는 거예요?""뭘 하려는 것 같은데요?"조진범의 입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얘기가 나오다니, 진안영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명문가의 남편인 조진범은 침대에서도 그녀를 이렇게 뜨겁게 원한 적이 없었다.그때, 조진범은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그녀는 그의 조금은 거친 손의 마찰에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마치 전류가 그녀의 온몸에 흐르는 듯한 짜릿한 느낌이었다.그 짜릿하고 간지러운 느낌에 진안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그저 조진범을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조진범은 욕망에 들뜬 눈빛으로 빤히 아내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집으로 가지 않고 호텔로 가서 밥 먹어요."진안영은 가슴이 더 빨리 뛰었다.그녀는 조진범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진범은 액셀을 밟고 빠르게 운전했다.그는 내비게이션도 쓰지 않고 빠른 시간 내로 가장 가까운 5성급 호텔로 향했다.차가 주차장에 멈춰진 뒤에도 진안영은 발버둥일 치고 있었다."우리 그냥 집으로 돌아가요! 밖에서 밥 먹고 싶지 않아요."‘달칵!'조진범이 안전벨트를 풀었다.그는 힐끗 아내를 바라보며 호텔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호텔은 JH 그룹 산하의 호텔이었다. 그는 책임자에게 두 통의 콘돔을 스위트룸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그리고 실크 잠옷과 호텔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하는 그녀에게 미슐랭 식사를 준비
조진범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물건을 집어 들고 진안영과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등 뒤에서 호텔의 직원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저번의 여자 연예인인 줄 알았잖아.][그러게 말이야.][그럴 리 없잖아! 대표님도 신혼이야. 남자들은 신혼에 바람을 피울 일은 적지.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은 조진범의 부부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스위트 룸 전용 엘리베이터 안.[XXL] 사이즈 콘돔을 담은 주머니는 바닥에 떨어졌다...진안영은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었고 눈 앞에는 그녀의 남편이 있었다.그의 커다란 몸이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지게 만들었고 진안영이 조금만 움직이면 그의 턱과 마주쳤다.조진범은 위에서 우수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 보았다.그의 눈빛엔 남성의 욕망으로 불타올랐다.진안영은 더 이상 그의 눈빛을 견딜 수 없어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조진범은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이윽고 그녀의 입술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다가왔다.그의 뜨거운 남성 욕구가 그녀와 완전히 결합했다.진안영의 가녀린 몸은 조진범에 의해 움직일 수 없었다.그의 팔 움직임과 유혹, 그리고 깊은 입맞춤에 그녀는 아기 고양이처럼 신음소리를 내었다.결혼을 한 후 그들의 관계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대부분 조진범은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했고 별다른 애무도 없었다.그들은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입맞춤을 해서인지 서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조진범은 자극을 참지 못하고 아내의 얼굴에 여러 각도로 돌려가며 더 깊은 입맞춤을 퍼부었다.둘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혀 가며 불빛 아래서 서로를 탐닉했다.최고층으로 도착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조진범은 스위트 룸 문을 열었다.스위트 룸은 매우 넓었다.안엔 비어 있었고 어두었지만 조진범은 자주 왔었기에 안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그는 아내를 안아 침실의 침대에 내려놓고 불을 켜려고 할 때 진안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불 켜지 말아요."
진안영이 그를 사랑하면 조진범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가 더 이상 결혼 생활에서도 많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마음이 그한테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아내에게서 배신을 당하거나 아이의 유전자 문제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씩 시간을 내 그녀를 달래기만 하면 되었다. 그녀가 그의 자식을 두 명 낳을 때까지 그는 자신의 모든 정력을 업무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그때면 진안영도 서른이 되어 더욱더 성숙해지고 현실적으로 변할 것이다. 소녀 같은 현실적이지 못한 생각은 많이 사라질 것이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더 안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조진범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는 아내의 몸을 끌어안고 다시 한번 관계를 맺었다. 그렇게 그들은 적합한 교류 방식을 찾았고 앞으로의 삶은 더욱 슬기롭게 지냈다. 그리고 부부 사이의 관계도 더욱 매끄러웠다. 매번 관계를 맺을 때마다 그는 피임조치를 취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정략결혼이 아닌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처럼 서로에게 애원했다. 조진범에 의해 진안영은 더욱 진정한 여인으로 되었다. 그녀는 그의 품에서 더욱 성숙해졌다. …날이 빨리 지나 곧 설날이 되었다. 섣달그믐날 조진범은 진안영을 데리고 조씨 저택으로 가서 설을 보냈다. 오후에 진안영은 박연희와 함께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했다. 박연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집에서 설을 쇠는 그들의 습관을 얘기해 주었다. 조범진은 집안의 장남이었고 진안영은 큰 며느리였기에 그녀가 앞으로 많은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진안영은 인내심 있게 듣기만 했다. 박연희는 며느리의 그런 모습을 보다가 이 부부 사이 감정이 꽤 좋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안심했다.몇 해 동안 조범진과 조민희 사이의 사랑은 그녀의 마음에 큰 짐이 되었다. 조민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김설진이 그녀에게 아주 잘 대해줬다. 박연희가 가장 걱정하는 건 조범진이 너무 나빠 진안영에게 잘 대해주지 않아 그녀가 도망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오늘 그들의 사이좋은 모습
조진범은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집 안에서 이미 밖의 외투를 벗은 지 오래되었고 바지 주머니에서 현금 봉투를 꺼내 조민희에게 건넸다. “원래 너에게 주려고 준비한 건데 아이에게 주어야겠네.” “고마워, 오빠.” 조민희는 현금 봉투를 건네받고 환하게 웃었다. 조진범의 눈빛은 아련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이미 유부녀란 사실을 잊지 않았고 자신 또한 아내가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자신의 눈빛을 거두고 소파에 앉아 한 잡지책을 평온하게 들여다보았다. 조우현과 조은희도 함께 내려왔다. 조은희는 아직 나이가 제일 어렵고 애교를 잘 부렸다. 그녀는 뒤에서 조진범의 눈을 감싸며 소리를 질렀다. “나랑 우현의 용돈은?” 조진범은 바지에서 두 봉투를 꺼내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퉁명한 듯한 목소리였지만 사실 사랑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잊을 리가 있나.” 조은희는 용돈을 가지고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잊으면 안 되지.” 조진범은 가볍게 고개를 젓다가 그제야 김설진을 발견한 듯 낮게 입을 열었다. “앉아요, 집에 돌아왔는데 긴장할 필요 없어요. 민희가 임신했는데 힘들게 하지 말고요.” 김설진은 낮게 웃었다. 그는 사실 매우 불편했지만 조민희는 조씨 사람이었기에 어쨌든 그와 가끔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설이 지난 후 그들은 외국으로 나가서 살기에 1년에 한 번씩 만나면 되었다. 집사는 향기로운 차를 가져왔다. 저택은 분위기가 좋았다.두 남자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은혁도 그 자리에 같이 참석했다. 모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어느샌가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잊어버렸다. 박연희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이 내쉬었다. 조은희는 조민희를 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박연희는 진안영과 함께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박연희는 며느리에게 설을 준비하는 절차를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조민희
조진범은 아내를 바라보며 꽁치를 한 젓가락 집어 그녀의 그릇에 담아두며 부드럽게 말했다. “많이 먹어요.” 진안영은 낮게 웃었다. 조은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놈아, 원래 이렇게 했어야지.” 그렇게 설날 밤은 북적북적하게 지나갔다. 9시쯤 되자 하늘은 눈이 나부끼기 시작했고 부드럽게 하늘을 수놓았다.조진범은 그들이 함께했었던 6년이라는 시간이 떠올랐다. 조민희는 김설진과 함께 차에 올랐고 조은혁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집에서 하룻밤 묵어. 내일 집에서 밥 먹고 오전에 가도 되잖아. 집의 방은 많아. 그리고 민희의 침실은 항상 청소해 주는 사람이 있어.” 김설진은 운전대에 앉아 핸들을 꼭 쥐고 창밖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조심스럽게 운전할게요,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조은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김설진이 운전할 수 있게 자리를 내두었다. 밤하늘 아래서 눈이 차 위에 내려졌고 불빛을 내며 차는 천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은혁은 눈 속에서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마음이 씁쓸했다. 다행히 조민희는 좋은 사람에게 시집갔다. 옆에서 조진범이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이 그의 시야를 흐트렸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었던 여자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남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그녀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조은혁은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지나갔어. 네 아내랑 앞으로 잘 살아. 안영도 좋은 사람이야. 잘 대해줘야 해.” 조진범은 담담히 웃었다. …겨울밤 눈이 펑펑 쏟아졌다. 차 안은 밖과 달리 너무 따뜻했다. 조민희는 좌석에 기대어 아무 말도 없이 밖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옆에 앉은 김설진은 빨간 불이 되었을 때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지금 뭘 생각해요?” 조민희는 몸을 돌려 아련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내일 뭘 먹을지 생각해요.” 김설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진안영은 손에 물건을 꽉 쥐었다. 잠시 후 조진범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진영은 그 평안 부적을 감추고 눈앞의 남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인사 마쳤어요?” 조진범이 가볍게 응답했다. 오늘은 섣달그믐날이었고 다른 날과 의미가 달랐다. 게다가 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기에 조진범은 마음이 울적해져 아내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쥐며 입을 열었다. “이 비서에게 당신 새해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까먹었어요. 지금 내려가서 차에서 가지고 올게요.” “아니요.” 진안영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지금 너무 추워요. 내일 줘도 똑같아요.” 하지만 조범진은 기어코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코트를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현관을 나갈 때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다가가 차 안에서 네이비색 쥬얼리 박스를 찾았다. 박스 위에 하늘에서 내린 눈이 조금씩 쌓였다. 조진범은 고개를 숙여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그해 서울에 있었던 날이 떠올랐다. 이별하던 밤은 오늘과 비슷했었다. 지금 몇 년이 지난 후 그들은 모두 각자의 가정이 생겼고 아무리 깊었던 사랑일지라도 지금은 과거로 되었다. 조민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에 얽매어 있었고 그 모습은 참 우스웠다. 그는 나머지 담배를 피우고 난 뒤 3층으로 돌아왔다. 너무나 추웠기에 안방으로 들어올 때 걸치고 나간 코트 위에 얇은 얼음이 생겼다. 진안영은 그에게 다가가 옷을 걸어 주었다. “내일 다른 옷으로 바꾸죠?” 조진범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옆의 소파로 다가갔다. 진안영의 손엔 주얼리 박스가 들려졌다. 그녀는 천천히 박스를 열었고 안은 다이아몬드 주얼리가 빛나고 있었다. 그 디자인은 이 비서가 고른 듯한 디자인으로 보였고 아주 크고 화려했다. 불빛 아래에서 그 주얼리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드레스에 어울릴 모습이었다. 진안영은 평범한 여인이었다. 여자라면 모두 반짝거리는 물건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진은영은 그녀와 포옹을 나눴다. 바람이 셌지만 맞붙은 그녀의 얼굴은 따뜻했다. 조진범은 진은영에게 신사답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차에서 선물을 가지고 내렸다. 그의 모습에 진은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동생에게 물었다. “집에서도 저렇게 차가워? 왜 저렇게 얼굴을 구기는 거야?” 진안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집에선 좀 괜찮아.” 진은영은 진안영과 함께 웃었다. 조진범의 차가운 모습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이미 자주 보았었던 모습이다. 그녀는 지금 동생에게 농담을 한 것뿐이었다. 조진범이 짐을 옮기는라 바쁠 때 진은영은 동생에게 낮게 말했다. “진철수가 내연녀를 B 시로 데리고 왔어. 지금 그쪽에서 설을 보내고 있어. 엄마 앞에서 그 사람 얘기 꺼내지 마, 엄마 슬퍼하니까.” 진아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조진범은 이미 선물을 거실로 다 옮겼다. 하연은 직접 나가 조진범을 맞이했다. 그녀는 사위가 아주 마음에 들어 그를 아주 정성스럽게 맞이했다. 그녀의 말에는 어른의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조진범은 눈치가 빨랐기에 진철수를 거론하지 않았다. 진철수의 망나니의 모습은 이미 그들 사이에서 소문이 난 지 오랬다. 하지만 진철수는 이미 집사에게 조진범이 올 거라는 소식을 듣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들어왔다. “참 미안하네. 설 연휴인데 업무가 바빠서 밖에 접대를 하러 나갔네. 조금 이따가 우리끼리 술 한 잔 하지?” 조진범은 몸을 일으키지 않고 티슈로 손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참 안 됐네요. 오늘 기사를 데리고 오지 않아서 술을 마시긴 어려울 것 같아요.” 진철수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뱉었다. “안영이 운전하면 되지.” 조진범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안영 씨는 내 아내지 기사가 아닙니다.” “다음에 마시죠?” …조진범은 억지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에 진철수는 꽤 당황한 모습이었다.그는 진안영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진안영은 고개를 숙여 밥만 먹을 뿐 그런 그의 모습을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
진석은 조은희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눈치챘다.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조은희의 얼굴을 감싸안고 입을 맞췄다.“너와는 결혼 첫날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지! 게다가 방금 술을 마셨으니까 오늘은 아마 어려울 거야. 너에게 더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해.”조은희는 얼굴이 빨갛게 변했고 진석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참 묘했다!예전에는 그저 감정에서 비롯된 관계였고 항상 예의를 지키며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한 침대에 누워 서로의 몸이 밀착된 채로 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조은희는 적어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나도 처음이야! 결혼 첫날 밤을 준비하기 위해서 미리 배워둘게.”조은희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책을 보거나 동영상을 본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진석의 품에 몸을 맡겼다.햇살이 창문 틈새로 스며들기 시작할 때쯤, 진석은 조용히 일어나 집을 떠났다. 조은희의 집이었기에 그 잠깐의 온기는 이미 지나쳐버린 상태였다...그들은 예전에는 갑자기 헤어졌지만, 지금 다시 함께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 조은희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확실히 진석과 다시 함께하게 되었고 결혼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있었다.그들은 연애를 건너뛰고 바로 결혼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조은희는 조금 망설였다...조진범은 레드 와인을 손에 들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사실 일찍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적어도 아이도 일찍 낳고 그 후엔 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테니.’진안영은 말했다.“아이를 낳으면 둘만의 시간은 더 이상 없지 않을까요?”조우현이 답했다.“다시 만난 연인들은 가장 먼저 혼인신고를 한다고요. 그게 아니면 후회할 거예요. 많은 시간을 허비할 테니까요. 사실 처음에 부소연과 결혼해야 했어요.”오빠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은희는 그 말
진석은 예의 있게 조은혁을 호칭했다.“아버님.”조은혁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고 가볍게 기침하며 조은희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먼저 올라가라. 네 엄마가 네가 돌아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마 할 얘기가 있을 거다.”조은희는 처음엔 가만히 있었고 진석은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밀면서 말했다.“먼저 올라가.”조은희는 그제야 움직였고 조은혁 옆에 다가갔다. 집에서 막내딸인 조은희는 가장 애교가 많았고 조은혁을 안고 인사한 후 아쉬운 듯 올라갔다.조은혁은 작은 딸을 안자 화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리더니 진석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서 얘기해.”진석은 즉시 자리에 앉아 조은혁에게 차를 따랐고 조은혁은 일부러 그를 자극하는 듯한 말을 던졌다.“눈치가 빠르네.”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버님 앞에서는 실수하지 않으려 합니다.”조은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는 이제 두 사람이 다시 함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여전히 아버지로서 딸의 미래를 걱정했다.“은희와 만나고 싶다면 지금은 조건은 없어. 하지만 요구 사항은 몇 가지 있네.”진석은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은혁은 진석의 태도를 만족스러워했지만, 하는 말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첫째, 결혼을 하게 되면 은희는 너의 집에 가지 않고 결혼식과 생활은 모두 B시에 있어야 해. 둘째, 조씨 가문은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니 결혼 때 충분한 축의금을 줘서 편하게 생활하게 할거야. 하지만 네가 결혼 후 벌어들인 모든 돈은 은희와 공동 재산으로 해야 하며 은희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간섭할 수 없어. 또한 아이를 가질지 안 가질지 은희의 선택을 존중해야 해.”이 조건들은 모두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그렇지만 진석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할 수 있습니다.”조은혁은 더 이상 그를 어렵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진석을 보며 잠시 마음을 정리했다.사실 그도 같은 도시에서 사업을 하며 진석이 처음부터 얼마나 힘들었을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
다음 해 8월. 조우현과 방유설의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방유설은 조우현에게 아들을 낳아주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조우찬으로 지어졌다. 이 이름은 큰아버지인 조진범이 지어준 것이었고 방유설은 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조진범과 진안영의 막내아들의 이름은 조우진이었다. 조우찬과 조우진, 이 두 아이는 조씨 가문의 차세대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첫 아이는 여전히 진아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주님으로서 이 작은 소녀는 조은희 고모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올해로 세 살 반이 된 진아현은 곧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조우찬의 돌잔치 날 조은희는 여전히 진아현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옛사람을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해 그녀가 타국으로 떠난 이후로 가끔 스쳐 지나갈 뿐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조은희는 차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벌써 4, 5년이 된 것 같았다. 진석은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행사장의 중앙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조씨 가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은 잊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은희 진아현의 손을 잡고 있었고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진아현은 고개를 들어 고모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저 사람 좋아해요?” “아니야.” 조은희는 순간 당황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아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왜 자꾸 그 사람만 보고 있어요? 물론 잘생겼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좀 더 절제해야 해요.” 조은희는 잠시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아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항상 엄마한테 말했어요. 잘생겼어도 자기만 보면 안 된다고. 여
유이안의 말이 끝나자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연희였다. 그녀는 서둘러 유이안에 물었다. “유설이 상태는 괜찮아?” 유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외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유설 씨 상태는 좋아요. 그냥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우현이가 안에서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박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조은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뜻밖에 아이라니. 그게 좋은 거지! 좋은 거야.” 두 사람의 부부 사이는 원래도 좋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게다가 조우현과 방유설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니 그 아이 역시 틀림없이 예쁠 거라는 생각에 조은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격동되었다. 방유설을 닮은 귀여운 딸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후 조우현이 방유설을 부축하며 나왔다. 방유설은 설탕물을 조금 마신 덕분에 정신을 차렸지만 집에 돌아가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모든 일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찾아온 아이였지만 방유설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조우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마음속 깊이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방유설도 한 번쯤은 행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우현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말했다. “유설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조우현은 가끔은 철없고 유치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성숙했고 갈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가끔 방유설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우현은 젊은 나이에 결혼한 편이었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모두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