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씨 노부인은 비웃으며 말했다.“그건 자기 속임수에 불과해. 사람들이 알까 봐 두려워했지만, 결국엔 전 세계가 알게 됐지. 그래서 쥐구멍에 숨어 들어가 사실을 숨긴 거야. 자기가 듣지 않고, 보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배현우는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애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겨우 10살이 되기 전에 그런 끔찍한 환경에서 고통받았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있어.”차 씨 노부인은 탄식했다.“앞으로는 순탄한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 잘 돌봐줘야 해!”“할머니, 명심할게요.”나는 진지하게 약속했다.“지금도 여전히 작은 소란들이 일고 있지만, 현우는 이미 성숙해졌어. 그런 환경이 현우의 강인함, 신중함과 전략적인 사고를 만들어냈지. 현우는 안정적이고 인내심 있는 사람이야, 큰일을 해낼 놈이지.”차 씨 노부인은 진심으로 말했다.“배천석 옆에 있던 이재승을 만나본 적 있으세요?” 나는 말을 꺼내고도 자신도 놀랐다. 왜 이 질문을 한 거지?역시나 차 씨 노부인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음, 만난 적 있어.”“정말요?” 나는 흥분해다.“어떤 사람인가요?”“침착하고, 결단력 있고,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어!”차 씨 노부인은 이재승에 대해 높은 평가를 했다.“당시 배천석의 많은 사업, 특히 차씨 가문과 관련된 사업은 그가 관리했었어.”“그의 아내 제경선은 고석우와 동창이자 친구였어. 두 쌍의 젊은 부부가 함께 있을 땐 정말 강력한 팀이었지. 아주 좋은 파트너였어!”“그런데 왜 제경선의 건강이 나빠졌고, 이재승과 배 씨 부부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돌아가신 후, 슬픔에 잠겨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이재승을 따라갔다고 하는 거죠?”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서둘러 말했고, 차 씨 노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그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어. 내가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야. 제경선은 아주 건강하고 쾌활한 사람이었어. 사람들에게 아
집에 돌아오자마자 예상대로 김향옥은 너무 기뻐했다. 김향옥도 우리가 차 씨 저택에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처음 알게 된 날에는 우리 엄마에게 “지아는 정말 참된 아이예요. 신 씨 가문이 복이 없는 거죠.”라고 말했다고 한다.우리 엄마는 그 당시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과 다툴 생각은 없어 그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현우는 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몸을 일으켜 떠났다.콩이를 재우고 난 뒤, 김향옥이 내 방문을 두드렸고 나는 다급하게 그녀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그녀는 내 앞에서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고 나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손을 뻗어 소파에 김향옥을 앉히며 말했다.“무슨 일 있어요?”“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너랑 좀 더 있고 싶어서.”그녀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아려왔다. 나는 이런 약자를 보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 마치 신 씨 가문에 있을 때처럼 그녀 곁에 앉았다.신 씨 가문에 있을 때, 산후 조리시기 김향옥은 나를 최선을 다해 돌봐주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자기 아들보다 더 나에게 진심이었을 것이다.그때 신호연은 이미 신연아와 사실상 그렇고 그런 관계가 있었고, 시어머니만이 진심으로 나를 돌봐줬던 사람이었다.“...어머니...”나는 어색하게 말을 뱉었다. 나는 10년 넘게 이 호칭을 사용했었기에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단지 그들이 나에게 준 상처가 너무 깊었을 뿐이다.내 부름에 김향옥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고 입꼬리도 심하게 바들거렸다.“...지아야, 나는 복이 없어! 너를 얻고도 다시 잃어버렸으니 말이야, 전생에 분명히 큰 죄를 지었을 거야. 그래서 이번 생에 이런 벌을 받는 거지.”“어머니,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어쨌든 우린 10년 동안 한 가족이었잖아요. 그게 아니어도 어머니는 우리 콩이의 할머니인데, 저를 당신 딸처럼 대해도 돼요! 그 양심 없는 사람은 생각하지도 마세요, 그동안 짐승을 키웠다고 생각하고, 불쾌한 것들은 그만 잊어요.”나
나는 김향옥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여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와 그녀의 아들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면, 그녀는 당연히 아들의 편을 드는 게 당연했다.“그 작은 집에서 8년 동안 살았어요. 넓고 밝은 집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그저 그것이 집이라고 생각할 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었어요. 그저 그와 함께 있으면 큰 공간도 필요 없고 그 작은 집만으로도 충분했죠.”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다.“하지만 그는 나 몰래, 콩이의 교육 조건과 미래도 고려하지 않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골드 빌리지에 신연아의 집을 사줬어요. 생각해 보면, 나도 한번 또 한 번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가만있는 바보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내 것을 되찾아야 했어요. 그게 잘못된 건가요?”나는 김향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늘어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니까, 여기에서 사는 이상,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나는 그저 콩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야. 난 돌아갈 거야!”김향옥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깊이 생각 말아요. 여기도 어머니 집이에요. 요즘 어떠세요? 불편한 곳은 없어요? 몸이 아프면 꼭 저한테 얘기해줘야 해요. 이것도 제가 콩이 엄마로서 해야 할 책임이니 꾹 참고 있지 말아요!”“알겠어.”그녀는 계속 귤을 들고 먹으려 하지 않았다.“걱정할 필요 없어요. 신호연은 벌써 서른을 넘긴 남자예요.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그에게도 아들이 있고, 가정도 완성됐으니 더는 고집 부리지 마세요. 누구든 없으면 못사는 사람은 없어요.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잖아요.”“아들, 지아야... 그 아이는 누구 아이인지 확실하지도 않아! 그 아이가 신 씨 가문의 사람 같아 보이니? 우리 호연이랑 닮았어? 아마... 아마 신 씨 가문의 피가 아닐 거야!”그녀는 쓰라린 표정으로 창백한 낯빛을 하고
그날 밤,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신호연과의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소란스러워졌고 김향옥이 불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의지할 곳이 필요한데, 김향옥은 스스로도 알 만큼 의지할 가족이 없는 사람이었다.그녀의 인생은 한평생 비굴했고, 마지막에는 자기 아들을 위해 간청하기까지 했다.어쨌든 지금 그녀는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김향옥이 우리 집에서 살게 된 뒤로 신호연은 단 한 번만 찾아왔었다. 그는 어머니를 보러 많은 보양식을 들고 왔지만, 이웃집을 방문하듯 어머니를 데려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 쪽에 있으면 어머니가 더 잘 보살핌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김향옥에게 강숙자가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다 15일간 구속됐다고 알려줬고 김향옥은 그 소식에 상당히 기뻐했다. 아들이 그녀를 위해 복수해 준 줄 알았지만, 사실은 배현우가 한 일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떠날 때, 아들의 좋은 점만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도혜선에게 찾아준 집은 미연의 옆에 있는 복층 건물에 있었다. 배현우가 찾아준 곳으로 40평 되는 크기에, 4층, 넓고 밝은 구조가 마음에 들어 그녀 대신 구매를 결정했다. 도혜선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심지어 해외인지 국내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하지만 서강민은 그녀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몸이 상당히 야위었고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있었다. 그 뒤로 멀리서 그를 딱 한 번 봤을 뿐,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내가 그녀의 행방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금요일, 유상현이 주최한 서울 상업 모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장소에 크게 신경을 쓴 듯 상상치도 못한 호화로운 요트에서 이틀 밤낮으로 열렸다. 금요일 밤 승선해 일요일 오후에 마무리되는 일정이었다.이번 대모임은 서울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유상현의 명성으로 많은 외국 재벌과 기업가들을 초청했고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루었다.상업계뿐만 아
배현우는 그와 악수하고 나서 우리는 VIP 대기실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서울의 상류 사회 유명 인사들이었고, 배현우를 보며 모두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이번 모임에서 배현우의 역할은 상당히 컸는바 그는 많은 해외 재벌들을 초청했고 그들 모두가 프로젝트를 가지고 참석했다.이번 모임을 이 시기에 마련한 이유는, 하반기 계획이 마침 진행 단계를 맞이했기 때문이었고 그들은 이곳에서 만날 예정이었다.배현우는 사람을 보내 우리를 위해 마련된 VIP 휴게실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은 상당히 호화로운 스위트룸이었고, 육지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거기다 환경도 몹시 조용했는데 아마 이 구역은 귀빈들이 머무는 곳이었기에 다른 외부인들이 오가지 않는 것 같았다.옷을 정리하고 방을 나와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니, 아직도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배에 오르는 중이었다.원래 미연도 올 예정이었지만, 남미주가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상할까 봐 마음을 접은 것이 나로서는 아쉬움이 가득했다.배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나는 이렇게 큰 크루즈를 타본 적이 없었다. 내가 있는 곳은 배의 앞부분에 가까웠고 VIP 구역이라 갑판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아마 모든 사람이 탑승하고 나면, 배는 항구를 떠날 것이다.먼 곳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옆에 우뚝 다가왔고 깜짝 놀라 옆을 쳐다보니 이세림이었다.“오랜만이네요, 지아 언니!”그녀는 오늘도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파란색 그라데이션 드레스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돋보이게 했고 공주님 머리를 어깨까지 풀어 헤치고 섬세한 메이크업까지 했다. 매혹적인 미소에, 나를 보는 눈빛은 의미심장했다.나는 가볍게 웃고는 마음속으로 정말 어디에나 없을 때가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얼마 안 된 것 같은데요!”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평온하게 대답했다.“세림 씨가 기억력이 안 좋은 것 같네요.”“아! 근데 왜 저는 오랜만에 만난 것 같
이세림이 좋지 않은 의도를 담아 말하려는 찰나, 뒤에서 한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서 뭐 해요?”뒤를 돌아보니 배현우가 서 있었고 그의 차가운 눈빛은 이세림을 훑고 있었다.“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요?”이세림은 말하려던 것을 꿈 삼키며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곧 태도를 전환하고는 배현우의 팔을 껴안으며 말했다.“현우 오빠, 지아 언니랑 그냥 수다 떨고 있었어요. 별거 아니에요.”나는 평온한 미소를 유지하며, 빠르게 태도를 전환한 이세림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세림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일 것이고, 나는 이 좋은 기회를 또 놓쳐버렸다.이 모든 것들은 기억의 조각처럼 내 머릿속에서 조금씩 맞춰지고 있었다.배현우는 주저하지 않고 이세림 앞에서 내 손을 잡더니 말했다.“들어가요! 잠깐 쉬면서 뭘 좀 먹어요, 곧 배가 출발할 거예요!”이세림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지만, 여전히 이해심 많은 척 연기하며 말했다.“그럼 들어가세요, 저도 제 친구들을 찾아볼게요. 천우 오빠, 내일 저 경원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배현우는 그녀를 향해 무심한 눈길을 던졌다.“경원은 현재 내부 개조 중이니, 외부인은 못 들어와.”나는 이세림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지 못할뻔했다. 배현우의 말은 분명 그녀가 외부인임을 암시하고 있었다.배현우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이세림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찡그려져 있었다.이세림이 나를 증오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결국, 배유정이나 배씨가문은 더 이상 배현우를 통제할 수 없었고 이세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이 게임에서 하찮은 장기 말일 뿐이었다.특히 이번에 배현우가 완전히 권력을 되찾은 후에는 그녀의 역할은 끝난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녀가 배유정에게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리라 확신했다.배씨 가문의 내막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나는 이전의 배현
우리가 있는 갑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는 나를 안고 뱃머리에 서서 말했다.“타이타닉호의 그 장면이 바로 이 위치에요, 당신도 한번 느껴봐요!”그는 나의 귓가에 속삭이며 부드러운 포옹으로 나를 감쌌다. 이 순간, 나는 행복감에 젖어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과 끝없는 사랑에 취해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큰 소리로 바다를 향해 외치자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고, 뱃머리에 서 있는 기분은 마치 바다 위를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아름다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점점 해가 지자 금빛 노을이 옅어지더니 바다는 검고 어둡게 변해갔다.배현우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가요, 곧 개막식이 시작될 거예요.”중앙 홀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 환한 미소를 띤 채 활기찬 모습이었고 상업 모임이라기보다 새해 축제나 파티 같은 장면에 나는 흠칫 놀랐다.다만 친숙한 얼굴들도 많았고 가장 놀라운 것은 이미연도 배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흠칫 놀랐고 우리는 멀리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휴대전화를 가지고 오지 않아 그녀가 연락해도 볼 수가 없었다.배현우의 여자 친구로서, 나는 그가 소개하는 모든 귀빈에게 집중해야 했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안산의 최고급 인사들도 자리했다는 것이었다.나는 단번에 그 뜻을 이해했다. 배현우는 나를 위해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 중이었다.안산의 프로젝트에 대해 나는 관심이 많았지만, 항상 그들의 핵심 인물들과 접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안산은 낯선 곳이었고, 인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핵심 중의 핵심과 직접 얼굴을 틀 수 있게 됐다.배현우가 내 마음을 이해한 뒤 도와주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역시 거짓이 없는 사람이었다.배현우는 의도가 다분한 말을 흥미롭다는 듯 꺼냈다.“양 선생님은 손에 큰 프로젝트를 들고 있어요. 아마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기회가 되면 협력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나는 그의 의도를 단번에 이해하고는 웃으며 물꼬를 틀 준비를 했다. 물론 배현우도 능숙한
나는 고개를 들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남미주임을 알아챘다.솔직히 말해, 남미주와 이렇게 마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가 나를 찾아온 이유를 확신할 수 없었다. 애초에 나와 그녀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함께 이야기할 거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이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지아 씨,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나는 흠칫 놀라며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고 대답했다.“좋아요.”그녀는 내가 동의하는 것을 보고 배현우 쪽을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눈길을 나에게 돌려 구석진 쪽으로 걸어갔다.중앙 홀의 양쪽에는 작은 좌석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나도 고개를 돌려 배현우를 쳐다봤다. 나를 찾아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바로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나는 밖으로 나가는 남미주를 가리켰다.그는 남미주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흔들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알겠다는 뜻을 전했다.나는 남미주를 따라 구석진 조용한 좌석에 앉았고 그녀는 오만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뭐 마실래요?”“화이트 와인 한 잔 주세요.”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남미주는 웨이터에게 손짓했고 멀지 않은 곳에서 트레이를 들고 있는 웨이터가 다가왔다. 나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직접 집어 들었다.사실 나는 술에 대해 별다른 취향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화이트와인의 색깔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남미주는 나를 훑어보더니 나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했다.“지아 씨, 왜 당신을 찾았는지 아세요?”남미주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던진 질문은 내 귀에는 그리 유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주도권을 갖고 있고, 나는 그녀의 힘 아래 순응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오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게 답했다.“귀담아들어 볼게요.”그녀는 나의 차분한 반응에 약간 놀란 듯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