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문서답하자 도혜선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그녀는 내 옆에 앉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아마 내가 갑자기 한 말에 그녀가 일시적으로 반응하지 못한 것 같다. “만약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사람을 만난다면 이렇게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되잖아. 너, 나, 그리고 이번에는 이미연! 왜 우리 모두 알맞은 타이밍에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까?”나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내 말을 해석했다. 도혜선은 바로 내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그때 내가 옆에 있는 장영식을 알아보고 순풍에 돛단 듯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면 우리를 평범하고 따뜻한 날들을 보냈을 거야. 얼마나 행복한 일이야.”내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너는 알맞은 타이밍에 서강민을 만났다면 서로 더 아끼고 사랑했을 것 같아. 얼마나 행복했겠어. 이미연도 만약 알맞은 타이밍에 문기태를 만났더라면 지금처럼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됐잖아.”나는 마음이 심란해서 다리를 뻗고 벽에 기대 앉았다. “너는 어떻게 이게 알맞은 타이밍이 아니라고 확신해?”도혜선이 내 말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 사람의 감정을 일반적으로 첫눈에 반하는 것과 시간이 지나서 애정이 생기는 것, 두 가지로 나뉘잖아.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어서 두 가지 감정 모두 피할 수 없었던 거야.”그녀도 나와 같이 기대왔다. “우리 중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어. 어떤 감정이든지 요약하면 다 이 두 가지에 속하는 것 같아.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애정이 생긴 경우고, 이미연은 첫눈에 반한 경우야. 넌... 아마 너도 첫눈에 반한 경우인 것 같아. 첫눈에 반한 건 능동적인 거고,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생긴 건 피동적인 거야. 그런데 능동적이든지 피동적이든지 마지막에 남는 건 정밖에 없어.”그녀는 해탈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가 ‘나와 이미연은 서로 부속된 것이 아니라 생명이에요. 남
콩이의 문제가 나를 말문이 막히게 하여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얼른 일어섰다. “아가야, 엄마가 오늘은 바빠서 못 데려다주겠어. 외할머니랑 천천히 산책하면서 유치원에 가.”“엄마, 그러면 언제 돌아와요? 우리 언제 섬에 가요?”의자에서 내려온 후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뛰어 오는 콩이의 눈빛에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 함부로 대답하면 끊임없는 질문 세례를 받을 것이 뻔해서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하마터면 자신의 입을 때릴뻔했다, 이놈의 입!아무 이유 없이 그걸 왜 말했는지. 가더라도 서프라이즈로 갑자기 가는 게 좋았을 텐데. 이미 말을 꺼냈는데 지키지 못하면 어떡하지?지키지 못하면 콩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꼭 지켜야 한다. 흥분된 콩이의 작은 얼굴을 보고 나는 몸을 숙여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가 울산에서 돌아오면 가자.”저번에는 신호연때문에 난리가 나서 못 갔는데 마침 엄마, 아빠를 모시고 쉬어야 할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울산에 가기 위해 준비한 작은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고 콩이에게 인사를 한 뒤,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그런데 내 차가 금방 골드 빌리지 앞을 지날 때 대문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봤는데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얼굴은 초췌했으며 몸집도 많이 야위었다. 그녀는 수시로 대문 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초조하고 긴장한 것 같았다. 너무 익숙하지만 이미 남이 된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넋을 잃었다.그 사람은 바로 신호연의 엄마이자 콩이의 할머니인 김향옥이었다. 아침부터 여기에 찾아와 수시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보아 우리 집의 사람을 기다리는 게 확실했다. 정확히 말하면 콩이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눈빛에 드러난 갈망으로 보아 그녀는 아주 급박해 보였다. 내 차가 바로 그녀의 옆으로 지나갔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목을 길게 뻗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원래 그냥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냥 차를 타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가 차를 바꾼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차
내말을 듣고 그녀는 제자리에 입을 벌리고 굳어버렸다. 마치 내가 진심으로 한 말인지 내 표정을 관찰했고 내 상냥한 얼굴이 믿기지 않는듯 했다. 나는 속으로 불쌍한 사람에게 꼭 증오심도 있다고 남몰래 투덜거렸다.한참동안 대치하다 그녀는 내 눈빛을 피하고 작은소리로 웅얼거렸다. “난, 난 그냥 보려고.”김향옥의 모습을 보고 나는 또 마음이 약해졌다. 생각해 보면 이미 반년이나 콩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가 이혼하기 전 그들이 별장에서 살았을 때 보고 그 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그녀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 지금 여기에 서 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제 전화번호 있잖아요. 보고 싶으면 전화주시면 돼요.”나는 최대한 평온한 말투를 유지하며 말했다. 그녀는 의혹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 내가 콩이를 만나도 돼? 막지 않을 거야?”“저는 한 번도 만나지 말라고 한적이 없어요. 그저 콩이의 일상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흐트러지게 하지 않고 다치게 하지 않는다면 막지 않을 거예요.”만나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요구가 있었다. 김향옥의 눈가가 순식간에 빨갛게 되었고 방금까지 경계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빛이 부드러워지며 불쌍한 표정으로 울먹거리며 말했다. “내가 왜 다치게 하겠어. 그 애는 내...”그녀는 나를 몰래 한번 바라보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 내 손녀잖아.”나는 그녀를 데리고 그늘로 가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전달하고 또 차에서 물을 한 병 꺼내줬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아하니 이미 한참 밖에서 기다린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나를 두려워하고 또 조금 원망했다. 내가 사는 집에 대해 아마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을 텐데 고생하고 있는 그녀에게 이 집이 얼마나 큰 유혹인지, 그리고 눈뜨고 나에게 점령당한 기분이 어떤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전화를 꺼내 엄마에게 집에서 나왔는지 전화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콩이의 할머니가 콩이를 보러 문 앞에 와있다고 전했다. 전화기 너
문 앞의 김향옥은 순식간에 멘탈이 붕괴되어 안으로 팔을 뻗어 손을 흔들며 다급하게 외쳤다. “콩이야, 이리 와. 콩이야...”그순간, 아무리 큰 원한이 있었더라도 모두 눈 녹듯 사라지고 그녀는 단지 황혼의 노인일 뿐이었다. 특히 김향옥은 한평생 진정으로 마음 편히 지낸 적이 없었다. 진짜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다니. 그런데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은 또 누구의 책임인가. 나는 코끝이 찡해서 고개를 돌리고 숨죽여 울음을 삼켰다. 나는 두 눈으로 직접 콩이라 뒤로 피하고 무너져 내린 김향옥이 흐느껴 우는 것을 봤다. “콩이야, 이리 와. 할머니 안보고싶었어? 할머니야...”그녀는 조급함에 두리번거리며 도움을 청하려는 듯 했고 더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를 본 콩이는 소리쳤다. “엄마!”그러고는 외할머니의 손을 놓았다. 그런데 조급해하는 할머니를 보고 달려오지 않았다. 나는 콩이가 무서워하는 건지 아니면 배척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할머니의 변화가 너무 커 낯설어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김향옥이 곁으로 가서 그녀를 위로했다. “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타일러볼게요.”김향옥은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나를 바라봤는데 눈에는 간절함으로 가득 찼다. 사실 내 마음속에는 측은함과 조금의 원망이 있었다. 이럴 거면 애초에 그러지 말지, 조금이라고 덜 매정하게, 아이에게 잘 해줬더라면 오늘 콩이가 이런 표정일 리 없다. 엄마는 또 콩이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뭐라고 말했다. 아마 다가오도록 타이르는 것 같았는데 역시 우리 집에는 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김향옥이 나를 간절히 바라보며 말했다. “지아야, 딱 한 번만 안아볼게. 콩이야, 이리 와. 할머니가 한번 안아보자. 할머니 안보고 싶었어?”나는 들어가 콩이 앞에 무릎 꿇고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콩이야, 가서 할머니 만나봐. 할머니가 콩이가 너무 보고 싶었대. 할머니는 지금 나이가
나는 김향옥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예전의 우리는 비밀 없이 모든 걸 얘기하는 사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되다니, 정말 사람 일은 모르는 것 같다. 난 아직도 돌잔치에서 신연아를 도와 날 욕하던 장면을 기억하는데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녀의 지금 생활도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면 이렇게까지 초라할 리 없었다. 차에 오른 후 곧장 회사로 향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우울했다. 긴급한 일을 처리하고 장영식에게 울산에 다녀오겠다고 말하자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하루 미루는 게 어때? 내일 같이 가자.”“오빠도 가려고?”“저번에 말했잖아. 나도 마침 울산에 친구 몇 명 만나러 가야 한다고.”장영식이 부드럽게 날 보며 웃었다. “오늘 부산에서 손님이 오기로 해서 못가.”생각해 보니 하루쯤은 미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면 아침에 생긴 일 때문에 기분이 하루 종일 안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콩이도 오늘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해월에게 비행기 티켓 변경해달라고 할게. “마침 민여진도 회사에 와 있었다. 그녀의 사무실이 비록 여기에 있지만 그녀는 일 때문에 항상 건설자재 시장에 있었고 아침저녁에만 회사에 왔다. 가끔 바쁠 때는 며칠씩 회사에 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녀를 상당히 신임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이후로 이동철과의 인수인계도 잘 됐고 이동철은 비록 시장 쪽 업무를 민여진에게 인수인계했지만 여전히 시장 개척에 힘썼는데 이것이 나를 제일 안심시켰다.우리 직원들은 다들 사이가 좋았고 누구도 모난 사람이 없었다. 민여진이 직접 나를 찾아온 것을 보니 용건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내 사무실에 들어왔고 민여진이 내게 말했다. “신연아가 자꾸 협력업체와 접촉해서 요즘 바빴어요.”민여진은 그녀가 몰래 연락한 업체 몇 곳을 알아냈는데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민여진이 나에게 준 리스트를 보고 그녀가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을 본 나는 기
안산은 인천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지만 경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인천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였다. 비록 인천과 가깝지만 한가지 지리적 특징이 부족한데 그것은 바로 해안선이었다. 그래서 개발이 인천에 비해 많이 늦었다. 몇 년간 신호연은 안산에 공정이 없었는데 주요한 원인이 개발이 늦어 공정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는 안산을 고려한적이 없는데 오늘 안산의 고객이 찾아오니 지금 그곳의 상황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맞아요. 다들 개발업을 하고 있어서 친구가 아니더라도 다들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에요. 모두 신흥의 인테리어가 서울에서 최고라고 해서 예전부터 한 대표님과 한번 협업하고 싶었는데 계속 타이밍이 맞지 않았어요.”그는 내 얼굴을 보며 아주 가식적으로 웃었는데 하는 말도 어색하고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는 담담히 웃었다. “권 대표님, 과찬입니다. 신흥은 그저 평범한 회사예요. 올해도 힘들게 버티고 있어요. 그래서 권 대표님이 최고라고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다만 신흥은 일할 때 성실과 신용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품질로 승부를 보고 있어요. 권 대표님께서 지금 건설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나는 그와 말을 에둘러 하고 싶지 않아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한 대표님 너무 겸손하시네요.”그의 두 눈이 줄곧 나를 뚫어지게 쳐다봐서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 “프로젝트 있는데 올해 안산의 중요한 공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윗선에서 안산의 랜드마크로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공정 레벨을 높여야 해요. 높은 수준의 공정이 필요해서 저희도 신중해야 하고 또 이렇게 기회가 되어 한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어요.”“권 대표님, 감사합니다.”나는 마음이 움찔했다. 안산에 중요 공정이 있다고?나는 ‘중요’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그런데 눈앞의 사람은 아무리 봐도 중요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내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가 사람 됨됨이를 따라간다고 이 느끼한 아저씨는 두터운 인품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동태눈깔로 여자
이날 나는 온종일 바삐 돌아쳤다. 퇴근하기 직전까지 밀린 일 처리를 하며 머리를 싸맸고, 창고 점검이 끝났으니 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채형건의 말에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회의실에 서둘러 들어가면서도 나는 얼른 딸을 보러 가서 서프라이즈를 할 생각에 신나 있었다.아침에 김향옥과 콩이가 끌어안던 모습은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외할머니가 그리도 좋을까.그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우리 콩이를 보여주기엔 마음이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답답했고 보여주지 않기엔 또 못된 어미 같아 차마 그럴 수 없었다.어찌 되었든 콩이도 신 씨네 집안의 아이니, 내가 중간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도 아닌 것 같았다.회의는 생각보다 오래 진행되었고 회의 도중 엄마의 전화를 받은 나는 그대로 회사를 뛰쳐나갔다.전화에서 엄마는 콩이가 사라졌다며 대성통곡하고 계셨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진 채로 진행 중이던 회의를 제대로 해산시킬 겨를도 없이 일어나서 밖으로 뛰어나갔다.‘멀쩡하던 아이가 왜?’내가 허겁지겁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해월도 따라 나왔다. 해월이가 내 손에 있는 차 열쇠를 빼앗아 차에 올랐고 곧 차는 지하 주차장을 떠났다.우리는 재빨리 골드빌리지로 돌아왔고 멀리서부터 엄마가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숨이 막히도록 우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곧바로 뛰어갔다.“엄마, 일단 울지 말아봐요. 콩이가 왜 사라져요?”아빠가 창백해진 얼굴로 콩이가 사라진 과정을 다시 되짚으며 힘겹게 말씀하셨다.엄마의 말에 의하면 콩이를 데려온 후, 콩이는 마당에서 혼자 놀았고 엄마는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마당에 있던 콩이를 부르려고 했으나 대문이 열려있었고 마당에 장난감 삽들만 남겨둔 채 콩이는 사라졌다고 했다.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고,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나에게 전화한 것이라고 한다.사실 골드빌리지의 마당은 매우 안전한 곳이다.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고급 빌리지였으니 말이다.얼
그 순간 나는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미친 듯이 배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을 든 손이 바들바들 떨렸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나는 너무 떨려 이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 편에서 전화를 받았고 그쪽에서 입을 열기도 전에 나는 고함을 질렀다.“현우 씨, 퇴근하고 골드빌리지 왔어요?”내 머릿속은 온통 콩이가 망연자실하게 차 뒤쪽을 바라보는 뒷모습이었다.“간 적 없어요.”단호하게 부정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요, 무슨 일 있어요?”“분명 현우 씨 차였어요. 현우 씨가 콩이 데려간 거죠? 맞잖아요. 콩이 다시 데려와요!”그의 확실한 부인에 나는 더 미칠 것 같았다.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나는 엉엉 울었다.차 안에 있던 건 틀림없이 콩이가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콩이를 그토록 신나게 했다가 실망하게 할 사람은 틀림없이 배현우일 것으로 생각했다.배현우만이 그 겁 많은 아이를 집 밖으로 뛰어나가게 할 수 있다.나는 가슴이 아파 울부짖었다.“...콩이야!”해월이와 장영식이 돌아왔는데 모두 실망한 표정으로 묵묵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그들이 빌리지를 찾아본 것과 별개로 나는 여전히 뛰쳐나가 찾고 싶었다. 콩이가 그 차에 탔는지의 여부가 나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지아 언니, 일단 침착해요. 뒤쪽은 우리가 다 찾아봤어요.”해월이가 나를 잡아당겼다.“언니가 조급해하면 부모님도 덩달아 불안해져요. 일단 진정해요!”그제야 아버지의 몸이 편찮으신 것이 생각나 나는 정신을 조금 차렸다.장영식이 이동철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우리보다 경험 있는 그가 꼭 필요했다.“나도 차에 문제가 있다고 봐. 그 차가 콩이를 데려간 게 분명해.”장영식이 확신하며 말했다.이것이 바로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었다. 장영식이 이렇게 말하고 있음에도 나는 그 차의 주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왜 콩이를 데려갔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