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훈의 말을 듣고 나는 누가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는지 조사해야겠다 마음먹었다.“신호연은 정말 죽을 팔자가 아닌가 보네요!” 나는 무심코 강훈에게 한마디 했다.“그러니까요! 자칫하면 위태로웠을 겁니다. 수중에 있는 공사도 이미 다 마무리했으니, 회의 때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한 거 아니겠어요. 중심을 외부로 이전하여 경쟁을 회피하겠다고 말입니다.” 서강훈도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이제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 재료도 준비하고 있는걸요!” “신호연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요.” 나는 무심코 물었다.“네. 병세가 꽤 심하시다 합니다.” 서강훈은 답했다.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나는 먼저 레스토랑을 떠났다.저도 모르게 시어머니 김향옥이 떠올랐다. 불쌍한 사람은 반드시 고약한 점이 있는 법, 아들이 자신에게 손찌검하는 것을 빤히 지켜보면서 어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추스르며 다짐했다.신 씨네 집안 식구들에게만은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말라고 말이다.사무실에 돌아온 후, 나는 이동철을 불렀다. “신호연이 맞은 후 누구랑 만났는지, 그리고 인천의 공사 분포는 어떤 회사에서 개발한 것인지 즉시 확인해 보세요.”동철은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이 리스트의 출처를 보세요! 신호연이 체결한 계약서가 인천 쪽의 것입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누구와 만났는지 중점적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입원한 후, 이틀간 출장을 다녀왔는데 그때 계약서를 가져왔다고 하더군요.”“알겠습니다.” 동철은 말했다.신호연의 계약서를 조사하라고 한 이유는 그 인간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이 일이 수상쩍어 보였기 때문이다. 입원 기간에 계약을 체결한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려 무시할 수가 없었다.특히 신호연이 마지막으로 욕한 말 몇 마디가 아주 거슬렸다. 내가 그들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외치던데... 신호연이 말한 그들은 누구고, 또 그 인간과는 어떤 사이일지 궁금했다.더욱이
영식은 내 말을 듣더니 금새 얼굴이 환해졌다. 항상 점잖게만 보이던 그의 얼굴이 희열로 붉게 상기됐다.난 그 순간 심장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어쩌면 난 그에게 너무 잔인한 짓을 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이런 자그마한 제안에도 이 정도로 감동하니 말이다. “이건...한번도 생각 못 해봤어!”조금 긴장한 듯한 모습.“그럼 받아! 남방의 기후도 느껴보는 거지. 너도 번거롭게 오며가며 할 필요 없고 두 집에서 함께 명절을 보내면 북적북적 하고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혜선이가 가족이 없잖아.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걷질 못하고...혜선이도 우리 집에 오라고 해! 무슨 호텔이야 우리 집에서 북적거리면서 같이 지내!”나의 말은 전부 진심이였다. 영식의 부모님은 나도 한번 뵌 적이 있다. 아버지는 작게 장사를 하고 계시고 어머니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계셨다. 내 기억속에 두 분은 모두 굉장히 좋은 분이셨다. 비록 방금 떠오른 생각이라 아직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우리 부모님은 반대하시지 않을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집으로 가는건 너무 실례 아닐까?”영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실례야! 아니야 내 말 대로 하는 걸로 해. 아니면 내가 지내는 쪽으로 와도 좋아. 한 집에서 건물 하나씩 쓰는거야. 그럼 이동하기도 편할거야. 이왕이면 우리 마당에 집 한 채 사버리는건 어때?”생각없이 뱉은 말에 영식은 잠시 멍해지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좋아. 노력해 볼게!”우린 그렇게 한참을 더 계획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에 나는 걸음을 재촉해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화면 속 발신인이 배현우인걸 본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 벨소리는 요란하게 사무실 전체에 울려퍼지고 있었고 그 속에 나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서있기만 하다 신호음이 끊기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5통... 나는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의자에 풀썩 앉았다. 배현우가 나한테 왜 연락한걸까...얼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긴 채 억지로 괜찮은 척 대답했다.“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애써 감정을 숨긴 채 담담한 척 내뱉은 말이었다.“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세요.” “없어요!” 나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내뱉었다.“진짜 없는 거죠?” 나를 빤히 응시하는 눈동자가 차갑게 느껴졌다.“저를 부르신 이유가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기 위한 거라면 죄송하지만 이만 가보겠습니다.”이곳에서 의미 없는 기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럴 바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그는 눈을 내리깐 채 물었다. “그 정도로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은 거예요? 묻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텐데? ”단번에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말이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마치 독심술이라도 하듯 그는 언제나 내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나는 뭔가에 찔린 듯 눈을 내리깔았다. 아직도 그에게 헛된 환상을 품고 있다는 것도, 아직도 심장이 쿵쿵 요동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내 자존심이 상처받는 것은 허락할 수 없었다.스캔들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데 한편으로는 날 갖고 놀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 비열함이 신호연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더이상 그에게 가치 없는 사람일지언정 스스로를 비굴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내 모든 감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밖에서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스캔들이나 내고 있는데 내 감정 따위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겠지.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애초에 마음속에 내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그의 눈에는 하찮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이제야 지금껏 현우 씨에게 온 마음을 빼앗겨 그가 나에게 접근한 이유를 간과하고 있었단 것을 깨달았다. 왜 나에게…. 관심을 보였을까?누군가의 대체품이어도 좋고 갖고 노는 장난감이어도 좋다. 그가 말했듯 난 자격이 없으니까.하지만 들려오는 소문을 무시할 수는 없다, 거리를 두고 멀리하는 게 좋겠지. 일찍 마음을 접어야 한다. 상처받을 자격도 없으니까.
나는 입만 뻥긋뻥긋할 뿐 더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저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가방끈을 꽉 잡았다.그 고통이 오히려 시원하다고 느껴졌다.바로 이때, 배현우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핸드폰 너머에서 청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현우 씨, 어디예요?”“나 지금 바빠!”그는 전혀 상대방의 응성을 받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밖에서 좀 볼까요? 아니면... 저희 집에 오셔도 돼요!”그 여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중에! 이만 끊어! 지금 할 일이 있어!”배현우는 그렇게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나는 뻘쭘하게 그가 통화를 마친 것을 보고 말했다.“현우 씨, 먼저 일 봐! 나는 이만 가볼게!”나는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뒤돌아 나가려고 했다.나도 빨리 움직였지만, 그는 나보다 더 빨랐다. 어느 순간 나는 그의 품에 안겨져 있었다.나는 비명소리를 질렀고 그는 나를 돌려세우더니 그를 마주하게 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나에게 입맞춤하려다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더니 순간 분노의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그는 나의 목덜미를 보더니 화를 꾹 참으면서 저음으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예요? 누가 그랬어요?”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조금 당황한 마음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나의 손목을 잡더니 실내에 있던 다른 한쪽 문으로 끌고 갔다. 그의 커다란 손은 마치 족쇄처럼 나의 가느다란 손목을 조여왔다. 너무도 아팠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 벽면이 온통 거울인 호화로운 욕실이었다. 그는 나를 거울을 향해 세우더니 말했다.“보세요, 직접! 설마 누가 그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건 아니겠죠?”환한 거울을 쳐다보자, 옷깃 쪽에 선명한 키스 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참을 멍때리다 갑자기 신호연이 그랬던 것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서야 그의 손에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를 바라보자 당혹감이 앞섰다.“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나, 나는 이렇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이렇게 비굴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고. 당당하게 사랑도 못 하고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니, 난 그저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원할 뿐이야. 네 말이 맞아,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나는 매일 서로 속고 속이는 이 관계가 싫어. 너한테 계산 당하고 생각을 간파당하지. 둘이 만나면 항상 신경전을 벌여야 해.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항상 내 곁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을 선택할 거야.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아!”이 말들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하찮은 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것들이었다.얻을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게 맞다. 계속 안고 있는 것도 내 것이 아니다.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정말 확실히 결정한 거야?”“그래.”나는 한마디 대답을 건넨 후 고개를 숙였다.그는 갑자기 매력적인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이민지, 드디어 너만의 결정을 내렸네.”나는 지금 그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그의 표정을 보고 무엇을 찾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이건 그의 선택이 아닌가? 그는 왜 이것이 나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나는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왜 그는 떳떳하게 다른 여자와 애정 행각을 벌이면서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는 것일까?“용기가 대단하네.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어. 정말 칭찬해 주고 싶어. 네 이익이 되는 건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너랑 한 협력은 깨뜨리지 않을 거야.”나는 의아해져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가!”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그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생각 정리됐으면 가. 나를 계속 이렇게 쳐다보면 떠나기 아쉬워하는 것 같잖아. 지금 안
깨어났을 때 폐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냄새가 나에게 이곳은 병원이라고 알려주는 듯했다.“깼어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눈에 보이는 건 배현우였다.“내가 왜 여기 있어요...?”내가 무기력하게 물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그는 손을 뻗어 벨을 눌러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는 얼른 들어와 나의 상태를 검사하며 물었다.“어디 불편한 곳 없어요?”“없어요. 그냥 힘이 없고 피곤해요.”난 곧이곧대로 대답했다.마침 김우연이 밖에서 들어왔다.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있었는데 의사를 보고 그 가방을 건네며 얘기했다.“의사 선생님, 이건 엑스레이 사진입니다. 한번 봐주세요.”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꺼내 몇 장을 유심히 보다가 물었다.“환자분, 전에 쇄골이 골절된 지 얼마나 된 겁니까?”나는 멍해서 의사를 보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저 말이에요?”“네. 엑스레이를 보면 쇄골이 골절된 지 오래된 것 같아요. 오래된 골절입니다. 평소에 조심하셔야 해요. 이런 부위는 쉽게 다치니까요.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다행히 차 속도가 느려서 큰 문제는 없어 보여요. 돌아가서 잘 휴식하시면 됩니다.”의사의 말에 나는 매우 놀랐다. 입을 딱 벌린 채 의사를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제가 골절했었다고요?”내 말에 의사도 꽤 놀란 듯했다. 그리고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이건 금방 찍은 엑스레이입니다. 배현우 씨께서 환자분의 목뼈 건강이 걱정된다고 전면적인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쇄골 부위의 골절은 확실히 있는 겁니다.”의사의 말에 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내가 언제 골절되었다는 거지?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배현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하긴, 내 상처를 그가 알 리가 없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쇄골을 만졌다.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의사의 말이 틀릴 수도 없었다. 엑스레이는 그의 손에 있었고 그것이 증
집에 들어가니 부모님이 주무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나를 본 엄마가 얼른 내 가방을 받아주며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밥은 먹었어?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밥 아직 안 먹었어요. 엄마, 저 배고파요”말을 마친 나는 어쩐지 코가 찡해 났다. 누구든지 엄마 옆에만 있으면 아이가 되는 것 같다. “알았어, 바로 반찬 데워줄게.” 엄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가방을 놓은 후 주방으로 달려가 저녁 준비를 했다. “아빠, 저 옷 갈아입고 올게요.”말을 마친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딸이 보고 싶어 곧장 콩이 방으로 향했다. 단잠을 자는 콩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작고 통통한 다리를 조심스럽게 이불 속으로 넣어주었다. 콩이가 돌아눕자 작은 손에 내 옷깃이 닿았다. 내가 온 것을 의식한 듯 졸린 눈을 뜨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그 순간, 나는 온 세상을 가진 듯 행복했다. 이렇게 귀엽고, 예쁘고, 똑똑한 딸이 내 옆에 있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토닥토닥 두드려 주니 콩이는 웃으며 다시 잠에 들었다. 사실 콩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지 못하고 자주 함께하지 못해서 마음속 한구석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눈물이 차올라 눈 앞을 가렸고 코가 시큰거렸다. 나는 앞으로 비현실적인 꿈을 생각하는 것보다 콩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이런 생활을 선택했으니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포만감이 나를 행복하게 하였고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안도감으로 가득 찼다. 집의 온기가 내가 내 것이 아닌, 허황한 것들에서 멀어지려는 결심을 더욱 굳히게 하였다. “이것 봐, 음식을 먹으니, 안색도 많이 좋아졌어.” 엄마가 테이블을 정리하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일이 적으면 적게 해.”나는 얌전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곧 설이잖아요. 설에 푹 쉴 거예요. 맞다
나는 대문 밖에 아직 그 차량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마음이 갑자기 심란해졌고 피하고 싶었지만, 방 안의 무드등이 켜져 있어 그가 날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나는 제 자리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마음을 굳게 먹고 손을 뻗어 커튼을 닫았다. 그리고 불을 끈 후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새 눈가가 붉어졌고 마음속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나한테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각자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 걸까?한참 후에야 밖의 차가 천천히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았던 눈물이 결국 두 볼을 타고 떨어졌다.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급히 커튼을 열고 밖을 쳐다보았는데 점점 멀어져가는 빨간색 후미등만 보였다. 나는 가슴이 아려왔다. 밤이 늦었는데 그는 떠났다. 더 이상 예전처럼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커튼을 천천히 닫고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참 동안 앉아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기 위해 애썼다. 이튿날내가 깨어났을 때 이미 점심이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고 피곤도 풀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씻은 후 일 층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고 고민하다 회사에 가보기로 했다. 연휴 전 일도 많고 전부 중요한 일들이라 압력을 모두 장영식에게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은 후 엄마에게 말했는데 마침 시장에 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시장 가시게요? 내일부터 연휴에요?”엄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너희 아빠랑 뭐 파는지 그냥 구경하러 가는 거야. 미리 봐둬야 나중에 살 때 안 까먹지. 올해 오는 사람도 많은데 예전처럼 대충하면 안 되지.”“그럴 줄 알았어요. 제가 안 올 때 대충 보냈죠.”나는 마침내 트집을 잡을 기회를 잡았다. 두 사람은 만면에 꽃을 피우며 웃고 있었는데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나도 귀찮아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이 한바탕 바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문을 나서니 내 차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