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만 뻥긋뻥긋할 뿐 더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저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가방끈을 꽉 잡았다.그 고통이 오히려 시원하다고 느껴졌다.바로 이때, 배현우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핸드폰 너머에서 청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현우 씨, 어디예요?”“나 지금 바빠!”그는 전혀 상대방의 응성을 받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밖에서 좀 볼까요? 아니면... 저희 집에 오셔도 돼요!”그 여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중에! 이만 끊어! 지금 할 일이 있어!”배현우는 그렇게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나는 뻘쭘하게 그가 통화를 마친 것을 보고 말했다.“현우 씨, 먼저 일 봐! 나는 이만 가볼게!”나는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뒤돌아 나가려고 했다.나도 빨리 움직였지만, 그는 나보다 더 빨랐다. 어느 순간 나는 그의 품에 안겨져 있었다.나는 비명소리를 질렀고 그는 나를 돌려세우더니 그를 마주하게 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나에게 입맞춤하려다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더니 순간 분노의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그는 나의 목덜미를 보더니 화를 꾹 참으면서 저음으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예요? 누가 그랬어요?”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조금 당황한 마음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나의 손목을 잡더니 실내에 있던 다른 한쪽 문으로 끌고 갔다. 그의 커다란 손은 마치 족쇄처럼 나의 가느다란 손목을 조여왔다. 너무도 아팠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 벽면이 온통 거울인 호화로운 욕실이었다. 그는 나를 거울을 향해 세우더니 말했다.“보세요, 직접! 설마 누가 그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건 아니겠죠?”환한 거울을 쳐다보자, 옷깃 쪽에 선명한 키스 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참을 멍때리다 갑자기 신호연이 그랬던 것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서야 그의 손에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를 바라보자 당혹감이 앞섰다.“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나, 나는 이렇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이렇게 비굴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고. 당당하게 사랑도 못 하고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니, 난 그저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원할 뿐이야. 네 말이 맞아,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나는 매일 서로 속고 속이는 이 관계가 싫어. 너한테 계산 당하고 생각을 간파당하지. 둘이 만나면 항상 신경전을 벌여야 해.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항상 내 곁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을 선택할 거야.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아!”이 말들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하찮은 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것들이었다.얻을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게 맞다. 계속 안고 있는 것도 내 것이 아니다.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정말 확실히 결정한 거야?”“그래.”나는 한마디 대답을 건넨 후 고개를 숙였다.그는 갑자기 매력적인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이민지, 드디어 너만의 결정을 내렸네.”나는 지금 그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그의 표정을 보고 무엇을 찾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이건 그의 선택이 아닌가? 그는 왜 이것이 나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나는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왜 그는 떳떳하게 다른 여자와 애정 행각을 벌이면서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는 것일까?“용기가 대단하네.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어. 정말 칭찬해 주고 싶어. 네 이익이 되는 건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너랑 한 협력은 깨뜨리지 않을 거야.”나는 의아해져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가!”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그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생각 정리됐으면 가. 나를 계속 이렇게 쳐다보면 떠나기 아쉬워하는 것 같잖아. 지금 안
깨어났을 때 폐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냄새가 나에게 이곳은 병원이라고 알려주는 듯했다.“깼어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눈에 보이는 건 배현우였다.“내가 왜 여기 있어요...?”내가 무기력하게 물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그는 손을 뻗어 벨을 눌러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는 얼른 들어와 나의 상태를 검사하며 물었다.“어디 불편한 곳 없어요?”“없어요. 그냥 힘이 없고 피곤해요.”난 곧이곧대로 대답했다.마침 김우연이 밖에서 들어왔다.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있었는데 의사를 보고 그 가방을 건네며 얘기했다.“의사 선생님, 이건 엑스레이 사진입니다. 한번 봐주세요.”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꺼내 몇 장을 유심히 보다가 물었다.“환자분, 전에 쇄골이 골절된 지 얼마나 된 겁니까?”나는 멍해서 의사를 보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저 말이에요?”“네. 엑스레이를 보면 쇄골이 골절된 지 오래된 것 같아요. 오래된 골절입니다. 평소에 조심하셔야 해요. 이런 부위는 쉽게 다치니까요.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다행히 차 속도가 느려서 큰 문제는 없어 보여요. 돌아가서 잘 휴식하시면 됩니다.”의사의 말에 나는 매우 놀랐다. 입을 딱 벌린 채 의사를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제가 골절했었다고요?”내 말에 의사도 꽤 놀란 듯했다. 그리고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이건 금방 찍은 엑스레이입니다. 배현우 씨께서 환자분의 목뼈 건강이 걱정된다고 전면적인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쇄골 부위의 골절은 확실히 있는 겁니다.”의사의 말에 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내가 언제 골절되었다는 거지?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배현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하긴, 내 상처를 그가 알 리가 없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쇄골을 만졌다.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의사의 말이 틀릴 수도 없었다. 엑스레이는 그의 손에 있었고 그것이 증
집에 들어가니 부모님이 주무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나를 본 엄마가 얼른 내 가방을 받아주며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밥은 먹었어?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밥 아직 안 먹었어요. 엄마, 저 배고파요”말을 마친 나는 어쩐지 코가 찡해 났다. 누구든지 엄마 옆에만 있으면 아이가 되는 것 같다. “알았어, 바로 반찬 데워줄게.” 엄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가방을 놓은 후 주방으로 달려가 저녁 준비를 했다. “아빠, 저 옷 갈아입고 올게요.”말을 마친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딸이 보고 싶어 곧장 콩이 방으로 향했다. 단잠을 자는 콩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작고 통통한 다리를 조심스럽게 이불 속으로 넣어주었다. 콩이가 돌아눕자 작은 손에 내 옷깃이 닿았다. 내가 온 것을 의식한 듯 졸린 눈을 뜨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그 순간, 나는 온 세상을 가진 듯 행복했다. 이렇게 귀엽고, 예쁘고, 똑똑한 딸이 내 옆에 있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토닥토닥 두드려 주니 콩이는 웃으며 다시 잠에 들었다. 사실 콩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지 못하고 자주 함께하지 못해서 마음속 한구석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눈물이 차올라 눈 앞을 가렸고 코가 시큰거렸다. 나는 앞으로 비현실적인 꿈을 생각하는 것보다 콩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이런 생활을 선택했으니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포만감이 나를 행복하게 하였고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안도감으로 가득 찼다. 집의 온기가 내가 내 것이 아닌, 허황한 것들에서 멀어지려는 결심을 더욱 굳히게 하였다. “이것 봐, 음식을 먹으니, 안색도 많이 좋아졌어.” 엄마가 테이블을 정리하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일이 적으면 적게 해.”나는 얌전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곧 설이잖아요. 설에 푹 쉴 거예요. 맞다
나는 대문 밖에 아직 그 차량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마음이 갑자기 심란해졌고 피하고 싶었지만, 방 안의 무드등이 켜져 있어 그가 날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나는 제 자리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마음을 굳게 먹고 손을 뻗어 커튼을 닫았다. 그리고 불을 끈 후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새 눈가가 붉어졌고 마음속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나한테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각자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 걸까?한참 후에야 밖의 차가 천천히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았던 눈물이 결국 두 볼을 타고 떨어졌다.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급히 커튼을 열고 밖을 쳐다보았는데 점점 멀어져가는 빨간색 후미등만 보였다. 나는 가슴이 아려왔다. 밤이 늦었는데 그는 떠났다. 더 이상 예전처럼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커튼을 천천히 닫고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참 동안 앉아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기 위해 애썼다. 이튿날내가 깨어났을 때 이미 점심이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고 피곤도 풀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씻은 후 일 층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고 고민하다 회사에 가보기로 했다. 연휴 전 일도 많고 전부 중요한 일들이라 압력을 모두 장영식에게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은 후 엄마에게 말했는데 마침 시장에 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시장 가시게요? 내일부터 연휴에요?”엄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너희 아빠랑 뭐 파는지 그냥 구경하러 가는 거야. 미리 봐둬야 나중에 살 때 안 까먹지. 올해 오는 사람도 많은데 예전처럼 대충하면 안 되지.”“그럴 줄 알았어요. 제가 안 올 때 대충 보냈죠.”나는 마침내 트집을 잡을 기회를 잡았다. 두 사람은 만면에 꽃을 피우며 웃고 있었는데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나도 귀찮아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이 한바탕 바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문을 나서니 내 차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이번 설은 많은 사람들로 이례적으로 북적거렸다. 나도 계속 집에 있으면서 대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만끽했다. 집에는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다만 아이들이 적어 콩이가 모든 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이미연도 본가에 갔다 연휴 3일째 되는 날, 우리 집으로 왔다. 여기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요리 솜씨를 뽐냈고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마당에는 엄마가 빨간색 등을 가득 매달아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낮에는 나도 아무 일 없는 듯 즐겁게 보냈지만, 저녁이 되자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긴 설 연휴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서울에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배현우는 더 이상 내게 전화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전화할 이유가 없어 새해 안부 전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내가 통제력이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이미연과 신혜선이 옆에 있어 주었다. 이미연이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한소연은 이미 한물간 것 같아. 말로는 해외에 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고 했는데 애초에 해외에 가지도 않았어. 배씨 도련님이 또 새로운 사람이 생긴 것 아니야?”이미연이 입을 열자, 도혜선이 얼른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치를 줬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생기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어.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으면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야.”이미연이 도혜선을 보더니 입을 삐죽했다. “들었지? 우리 이제 지아 아가씨가 결심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지켜봐야 해.”둘은 박장대소했고 나는 마음속으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 마음이 얼마나 씁쓸한지 그들은 모르고 있다. 나는 자꾸 가족, 분위기, 집, 아무 기댈 곳 없이 홀로 서 있는 배현우의 모습이 생각났다.왜인지 집이 떠들썩할수록 마음이 더 아팠고 머릿속은 배현우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비록 진짜 내가 생각한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했다. 하지만 곧바로 또 다른 자아가 나와 내게 그는
내가 뛰어 내려갔을 때 풀숲 앞은 텅텅 비어있었다. 나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방금 본 것이 내 착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잠시 후, 장영식이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서 있었다. “같이 산책할래?”나는 고개를 들어 자상하게 웃는 얼굴을 봤다.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우리는 나란히 마당에서 걸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무안하게 하지 않았다. 왜 갑자기 뛰어나왔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는 나랑 학창 시절 얘기를 했고 나는 갑자기 물었다. “영식 오빠, 왜 난 어릴 때 기억이 안 날까?”“언제 기억 말하는 거야? 나에 관한 기억이 있으면 꼭 기억해 낼 수 있게 도와줄게.”말하곤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더 어렸을 때 기억 말이야. 오빠에 관한 기억은 다 있어, 우리 아빠가 우 선생님께 내 물리 과외를 부탁해서 그때 우 선생님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잖아. ”“맞아, 우 선생님 사무실에서 처음 봤어. 네가 교복 입은 모습이 다른 사람이랑 달랐어. 까만 윤기 나는 머리에, 큰 눈, 그리고 속눈썹이 엄청나게 길었어. 그래서 누가 뒤에서 속눈썹 요괴라고 불렀어.”“진짜? 난 왜 몰랐지?” 나는 웃었다. 속눈썹 요괴는 너무 과장됐다. “그때가 고1 두 번째 학기였어.”장영식이 흐뭇해하며 말했다. “그니까! 중학교 이전의 기억이 없어. 고등학교 입학시험 이후의 일들만 기억나. 오빠는 이런 적 있어?”나는 몸을 돌려 뒤로 걸으며 그를 보았다. 그런 나를 보더니 장영식이 다정하게 말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그러고는 머리를 저었다. “난 없어, 기억력이 엄청 좋아.”“안 좋은 건 아닌데...”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이 걸렸다. 장영식은 재빨리 손을 뻗어 날 잡고 팔짱을 꼈다. “제대로 걸어! 이젠 엄마인데 아직도 장난꾸러기야.”장영식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갑자기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해외에 오래 있었
장영식의 말에 말문이 막힌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반어법이야?”“말하는 것 좀 봐.”날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 내가 뭐?” 장영식이 내 말을 유도하는 것을 느낀 나는 갑자기 긴장되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일 때문에 그러는 거지?”나는 장영식이 일만 하느라 모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민감하고 감성적이었다. 실시간 검색어까지 알 줄이야.“난 괜찮아. 많은 일들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몸부림칠 바에 포기하는 게 나아, 안정감 있고.” 나는 장영식의 말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내 맘속에서 항상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오빠 같은 느낌이었다. “영식 오빠, 나도 오빠가 나한테 잘해주는 거 잘 알고 있어. 내 맘속에 누구도 대체할수 없는 좋은 오빠야. 고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오빠가 있으면 든든했어. 지금 나도 막막해, 며칠 동안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정신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헤어 나오기 힘들어. 일단 회사 일부터 잘하고 보자.”‘알았어.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말을 마치고 손을 뻗어 친구에게 용기를 주듯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영식 오빠,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 부모님 나이도 있으신데, 걱정이 많으셔. 내가 오빠한테 진 빚이 많다는 걸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오빠랑 어울리지 않아. 난...”이번에는 진짜 나를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다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 근데 내가 너무 용기가 없어서 너한테 말 못 했어. 그래서 널 놓쳤어. 이건 내가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거야.”날 꼭 끌어안은 장영식을 나는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장영식에게 감정이 담긴 포옹을 빚졌는데 나는 그를 속이면서 줄 수 없었다.최소한 지금은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담고 있어서 줄 수 없었다. 비록 그 사람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유령처럼 내 마음속을 가득 차지하고 있어 내쫓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