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림의 말을 들어보니, 천우 그룹 내부의 혼란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내부에서 도대체 뭐 때문에 다투는지 궁금했다.신호등이 파란 등으로 바뀌자 나는 다시 앞으로 달렸다. 나는 이세림에게 물었다.“그래서 어쩌자는 거예요? 나 거의 집에 도착해요!”“언니 혹시 급한 일이 없으면... 나와서 나랑 얘기 좀 해요! 난 여기서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이세림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그럼 회사 맞은편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 후 눈앞에 있는 어린이집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돌려 회사로 갔다.나는 스타벅스로 들어가서 쭉 훑어보았지만 이세림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제야 그녀는 웃으면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종이봉투를 내 앞에 놓았다.“선물이에요!”“뭐예요?”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세림을 보고 다시 종이봉투를 보았다.“입생로랑 신제품이에요! 방금 받았어요. 언니한테 줄게요!”그녀는 당당하게 말했다.나는 이 립스틱의 가격이 엄청 비싼 것을 알고 있다.“전 별로 화장하지 않아요! 세림 씨가 써요!”“언니를 위해 특별히 주문한 거예요!”그녀는 나를 흘끗 쳐다봤다.“왜 저한테 예의를 차려요? 언니가 저한테 밥 사주는 건 되고, 제가 선물 주는 건 안 돼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 전 이 브랜드만 써서 언니 주려고 두 개 챙겨왔어요.”“고마워요!”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또 거절하면 가식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이세림은 자리에 앉고 갑자기 나를 바라보더니 오버하면서 말했다.“어제 잠을 못 잤어요? 다크서클이 왜 이렇게 심해요?”나는 눈을 비비며 어색하게 웃었다.“네! 잘 못 잤어요. 친구들이랑 술을 마셨거든요! 집에 늦게 들어갔어요. 그렇게 심각해요?”“이게 안 심각해요?”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여자는 절대 밤
비록 이 순간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력감을 느꼈지만, 애써 차분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나는 이제 이세림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하지만 나는 그녀 앞에서 내 마음을 조금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 순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세림을 상대하기 쉽지는 않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 그녀는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내가 무심한 듯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약간 놀란 듯했다.“지아 언니, 설마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맛이 너무 써서 토할 것 같았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제가 그걸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는 아예 당신들의 삶이 이해되지 않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길거리 음식을 먹었고 그게 아주 맛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난 재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세림 씨가 말한 묶여있다는 거, 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나의 말투는 차분했고, 나는 무심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계속 말했다.“저도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수단을 쓰죠. 그런데 저는 제 가족을 속이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도 않고요. 절대 제 가족을 난감하게 하지는 않죠.”내가 한 말은 허울이 좋았다. 또 그녀가 듣게 의도적으로 한 말이기도 했다.이세림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진정되지 않은 듯했다.“왜 억지로 묶어놓죠? 두 사람이 서로 원하면 결혼도 할 수 있잖아요? 피가 섞인 친남매도 아닌데 뭐 어때요!”나는 이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도 그녀를 떠보려 그 말을 내뱉었다.그녀가 먼저 나를 찾아와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녀는 나와 현우 씨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알아내려고 했고, 내 앞에서 자신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말하고 있다.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만약 현우 씨가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했으면 바로 결혼하지, 왜 굳이 억지로 묶어두겠는가?앞뒤가 맞지 않는다!“어휴! 그만 말해요! 어쩌다가 화제가 이렇게 됐는지!”이세림은
예전에 내가 이세림을 너무 얕잡아봐서 욕심이 없는 줄 알았나 보다.천우 그룹의 사람은 정말 자신을 잘 숨겼는데,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다 그랬다.왠지 모르게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 다시 또렷이 내 감각으로 돌아와 도망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가는 길에 운전하며 정신이 가물가물해서 나는 다리를 꼬집어 정신을 차렸다.집에 도착하자, 방금 우리 엄마와 함께 유치원에서 돌아온 콩이,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환호를 지르며 달려왔다.“엄마, 오늘 일찍 오셨어요! 엄마, 외삼촌이 나에게 새 인형을 사주셨어요!”“외삼촌?”나는 조금 궁금했다.그때 장영식이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에서 나와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오후에 은행에 다녀왔는데 마침 어머님이 콩이를 데리러 가시는 걸 보고 어머님을 모시고 유치원에 갔다 왔어.”우리 엄마도 주방에서 나와 웃으며 말했다.“롯데몰도 데려가 줬어. 가는 길에 시장도 들렀고!”어머니는 나에게 말하며 기뻐하는 모습이었고, 나는 엄마가 마음속으로 장영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일찍 회사를 나서는 것 같더니 왜 이제야 돌아왔어?”장영식이 나를 보며 물었다.“말도 마, 유치원에 다 왔는데, 천우 그룹의 그 아가씨한테 또 걸렸지 뭐야.”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콩이가 새 인형을 안고 나에게 보여 주었다. 신형 바비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나도 바비를 좋아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장영식이 나에게 하나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 학교를 떠날 때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나는 장영식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쑥스러워하며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왜 영식 오빠를 요리하게 해요?”나는 그의 앞치마를 벗으려고 손을 뻗었다.“내가 할게.”“그만둬! 위층에 가서 잠 좀 자, 끝나면 부를게! 내가 만든 고향 음식이 정말 괜찮으니, 나에게 보여 줄 기회를 줘. 내가 솜씨 보여 줄게!”장영식이 몸을 피하며 내게 말했다.“피곤해 보여! 그동안 너무 지쳤지! 가서 자.”“외삼촌, 엄마 모시고
나는 아버지가 어젯밤 일을 묻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두근거렸다.역시 그는 나를 보고 배현우에 대해 직접 물었다.“아빠는 네 감정에 참견하고 싶은 게 아니야. 단지 네가 실패한 결혼생활에서 방금 나왔잖아. 아빠는 네가 다시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배현우 씨에 관해서 나도 좀 알아봤는데, 그의 가문은 우리와 잘 맞지 않아, 아빠는 네가 다시 험난해질까 봐 걱정돼!”나는 목이 메었다. 분명 아버지가 배현우를 잘못 본 것이다.“아빠! 걱정 끼쳐드렸네요!”나는 얼른 입안의 밥을 삼키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어요.”“아직 우리는 친구일 뿐이고, 그는 나에게 잘해주기는 하지만 저는 별로 생각이 없어요. 지금은 단지 사업을 안정시키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것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나는 접시의 음식을 뒤적거리며 어떻게 말해야 그가 안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사실 배현우 씨는 나에게 많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어요. 내가 강해져야 신호연으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고, 이 소인배를 제압할 수 있어요.”“나의 10년 청춘이 그의 손에 망가졌는데 과거를 그저 묻고 지나갈 수 없어요. 저는 이 한을 꼭 풀어야 해요. 그러니 아빠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연을 미워했다.“내가 자리를 잡으면 앞으로 내 삶을 생각해 볼 거예요. 어쨌든 나는 콩이가 있으니 콩이를 고생시킬 수 없어요. 방금 이혼했는데 저는 아직 이 일을 고려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가 어제 생일을 보내러 돌아올지 예상하지 못했어요!”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응! 아빠는 내 딸이 앞으로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랄 뿐이야! 다른 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 그 사람이 진심으로 널 아껴줄 수 있다면, 나와 네 엄마는 정말 안심할 수 있어! 만약 우리가 모두 가버리면, 너를 잘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지!”나는 아버지의 말에 감동했다.나를 지켜준다고! 배현우
나는 눈썹을 씰룩하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갔다. 프런트 데스크에 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서 있는 신연아를 보았다. 며칠 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의 아랫배가 더 나온 것 같았다. 그녀처럼 튀어나온 배는 정말 위풍당당 당했다.내가 싱긋 웃었다. 이것은 자진해서 나에게 정보를 보내온 것이다.“사모님, 오셨어요? 그렇게 화내지 말아요. 뱃속의 도련님도 조심하셔야죠!”신 씨네는 지금 모두 신연아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남자라고 말한다.신연아는 갑자기 돌아서서 나를 쳐다보았는데,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자마자, 곧 표적을 돌려 나에게 화를 냈다.“헐! 한지아, 그렇게 비꼬지 마!”“왜 이렇게 거칠어요! 태아에게 좋지 않으니 태교에 주의하세요!”나는 일부러 그녀를 화나게 하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어쨌든 신씨 가문 사모님이니까, 교양은 있어야죠! 더군다나, 여기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화를 버럭버럭 내면 당신 오빠가 마음이 아플 거예요!”내 말 한마디에 화가 난 얼굴이었던 프런트 여자애 몇 명이 모두 입을 가리고 웃으며 칭찬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신흥엔 왜요?”나는 그녀에게 물었다.“그럼 가요! 나랑 같이 올라가 보는 것도 좋아요. 아직 모르죠? 또 사람이 꽉 찾아요. 당신이랑 당신 오빠한테 고마워해야겠죠? 그 늙은이들을 다 데리고 가줘서 고마워요, 회사가 지금은 완전히 젊어졌어요.”“한지아, 너무 득의양양해서 하지 마. 계약 두 개를 받았다고 우격다짐하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충고하는 거야. 형원의 계약이 공짜라고 생각해?”신연아가 화가 나 두 눈이 시뻘게졌다.“그건 신호연이 너를 불쌍히 여겨서 준 거야!”“그래요! 당신 오빠는 정말 양심적이에요! 좋아요! 그럼 당신과 당신 오빠가 결혼할 때, 내가 큰 선물을 줄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과 당신의 오빠를 박대하지 않을 테니!”나는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그녀와 그녀의 오빠라는 단어에 힘을 줬다.내가 ‘오빠'라는 단어를 뱉을 때마다 거기 있는 직
내 생각에 신연아 같은 사람은 더 많은 걸 물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물어봐도 헛수고인 것 같다.“됐어! 신호연 부인님, 누가 나한테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알 바 아니야!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고 싶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 돌아가서 오빠한테 전해. 내가 고마워한다고 말이야, 그래도 어떻게 형원에 아부해야 할지나 고민하라고 전해.”나도 말을 많이 하기 귀찮아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푹 자니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한지아, 거기 서. 다시 신호연과 엮이면 나를 탓하지 마!”그녀는 내 뒤에서 달갑지 않게 소리쳤다.“걱정하지 마! 이 더러운 개똥 너만 꼭 껴안아, 나는 관심 없으니까!”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손을 치켜들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멀리서 아직도 내게 화를 내는 신연아를 보며 나는 속으로 욕을 했다.‘더러운 년! 내가 어떻게 신호연이라는 쓰레기가 마음에 들 수 있겠어,예전의 내가 막 부끄럽네.’그는 바로 하수구에 있는 쥐였다는데 어느 날 좋은 음식을 먹더니 뜻밖에도 족제비인 척하였다.하지만 정말 이 비열한 인간을 무시할 수 없었다. 도혜선의 말이 맞았다. 그는 똥을 싸서 온몸에 문질렀다.나는 신연아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녀는 내가 이 계약을 받아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신호연이 나를 ‘도와줬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박힌 가시였기 때문이다.사무실로 돌아와 배현우가 준 펜을 들었는데 무겁게 손을 눌렀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배현우라는 세 글자를 쓰며 그가 어떤지 궁금했다.이세림은 어제 오늘 돌아올 거라고 했는데, 이 시간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손에 전화기를 들고 꾹 참고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전화기를 내려놓으려는데 손에 든 전화가 울려서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양대수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양 주임님!”“한 대표님!”양대수는 기뻐하며 말했다.“드디어 착공이에요! 이것이 우리의 좋은 출발이기를 바랍니다.”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생각하던 중, 룸의 문이 열리자 양대수는 환한 얼굴로 얼른 일어나 열렬히 맞이했다.“아이고! 신 사장님, 전 사장님, 딱 맞춰 오셨군요!”나는 양대수의 말을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바로 한마디 욕을 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신호연이 올 줄은 몰랐다.난 정말 재수 없나 보다. 이혼한 날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다시는 안 보기는커녕 거의 따라다니는 수준이다.그들이 걸어오자 몇몇 사람들은 신호연과 그 전 사장이라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며 열띤 반응을 보였다.이해월은 시큰둥한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쳤지만 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양대수는 눈치 빠르게 먼저 전 사장님을 먼저 소개했다. “한 대표님,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 이분은 전지훈 사장님이세요. 우리 대표님의 처남이기도 하죠.”양대수는 아첨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 전지훈이 어떤 거물인지 신비롭게 나에게 소개했다.나는 고개를 들어 이 처남을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대단한 전 사장님을 보았는데, 30대 중반에 키가 매우 크고 야위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닭의 볏처럼 큰 올백 머리를 빗고 젤로 모양을 잡아주었다는 것이다. 눈에 트일 정도로 스타일리시한 그는 파란색 슈트 한 벌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 주머니에 하얀 손수건까지 넣고 있었다. 원래도 아주 좋은 슈트였는데 그가 입으니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전지훈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한 대표님! 존함은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나는 의례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원래는 한번 생각해 보려 했지만, 그에게 손이 꼭 쥐어졌다. 그리고 신호연을 바라보았다.“형님, 이렇게 예쁜 형수님이 어떻게... 네? 하하!”그 웃음소리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신호연은 그의 편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동생, 과찬이야! 형수님이라고 불러!”“형수님은 무슨! 이젠 와이프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무슨 형수님이에요!”그의 손은 여전히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고, 눈은 줄곧 내 얼굴을 응시했다.“한 대표님, 반갑습니다
나는 신호연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체면을 세워줄 생각은 더더욱 없이 담담하게 전지훈을 바라보았다.“전 사장님, 마음은 고마운데 신흥은 작은 회사이니,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합니다! 아무 프로젝트나 다 맡는 게 아니에요!”내 말 한마디에 전지훈은 너털웃음을 지었는데, 뜻밖에도 가느다란 사마귀 같은 팔을 내게 뻗어 내 어깨에 걸치고 가볍게 다독였다.“하하하, 이 여자 정말 귀여운데!”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고, 신호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지아는 항상 몸을 낮추는 걸 어려워하니 다들 이해해주세요.”그의 말을 들어보니,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다.전지훈의 큰 손이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개성 있는 여자죠. 만약 이것이 다른 여자에게 놓였다면, 진작에 매우 기뻐했을 거예요. 한 대표님의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자태를 봐요! 오기가 넘치잖아요! 세상 물정을 잘 안다니깐요. 난 이런 사람 좋아해요. 이런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한 대표님, 오늘 반드시 저랑 친구 해야 합니다!”내 옆에 앉은 이해월은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지만 내가 난처할까 봐 살며시 내 다리를 툭툭 치며 나를 위로했다.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틈을 타 일어나 술잔을 들었다.“여러분, 저 한지아는 다시 한번 이번 프로젝트 일에 신경 써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순조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매우 기쁩니다. 우선 양 주임님께서 신흥을 생각해주셔서 이번 기회가 생긴 것이니 감사합니다. 신흥은 반드시 품질과 양을 보장하여 프로젝트를 완성할 것입니다. 이 술은 제가 먼저 건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그리고 나는 술잔에 든 술을 마시고, 이해월이 내 의자를 잡아당겨 전지훈이 내 어깨에 걸치고 있는 손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전지훈은 조금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손은 줄곧 내 의자 등받이에 걸터 있었고, 만족스러운 듯 한마디 했다.“사리 밝군요!”신호연은 웃으며 두 번째 잔을 권했다. 그 자세는 마치 부창부수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